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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키자 Jan 04. 2017

보람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2016년을 마감하며

월급로그아웃. 한 취업포털에 따르면 2016년 올 한해 직장인이 꼽은 신조어 1위는 '월급로그아웃'이었습니다. 동의어로는 '월급이 통장에 묻었을 때는 카드로 지우면 깨끗하게 사라진다', 'XX카드 : 퍼가요~♡' 등을 꼽을 수 있죠. 2위는 직장 상사 등쌀에 시달리는 '직장살이', 4위는 업무시간 외에 울려대는 카톡을 상징하는 '메신저 감옥' 등이 차지했습니다. 월급 빼고 다 오르는 요즘, 하루 종일 쏟아지는 메신저로 정신 없는 이들의 현주소입니다.

일명 '약치기 그림'으로 유명한 양경수 작가도 직장생활의 애환을 담은 한 장의 그림으로 수만개의 '좋아요'를 얻었습니다. '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 '아 보람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등 웃픈 한 줄 멘트에 공감이 돼 빵 터지다가도 이내 씁쓸해집니다. 직장 관련 콘텐츠가 일정 이상의 반응이 보장된 평가와 함께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것을 보면 여느 직장에나 고됨, 짜증, 지침 등의 감정이 뒤섞여 있나 봅니다.


한편 별처럼 많은 일자리 속에 왜 내가 몸담을 곳 하나 없을까 고민하며 불안해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대학생 502명을 상대로 취업을 생각하며 불안감을 느낀 경험이 있는지 묻자 응답자의 99%가 '불안감을 느낀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지난 11월 기준 청년실업률 8.2%. 학벌, 학점, 토익, 어학연수, 자격증, 공모전, 인턴, 사회봉사, 성형수술까지 스펙 세트는 숫자만 늘어가고 취업은 쉽지 않습니다. IMF 외환 위기 직후와 비슷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상황에서 밥벌이를 위한 생존싸움은 더욱 치열해지기만 합니다.

그 와중에 최고 권력자를 위시해 튀어나온 국정농단은 크나큰 상실과 열패를 가져왔습니다. 비록 초과 근무로 눈은 벌개지지만, 오늘 버티면 지금과는 다른 내일과 승진으로 보상받을 것이라는 소망. 비록 50개째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지만, 끝내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 정상적으로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다는 믿음. 그게 무너졌습니다. 금수저니 흙수저니 단어에 나를 끼워 맞추지 않으려 버텼지만, 실제로 세계는 영화에서나 볼 법한 사적 권력 중심으로 작동하고 있었다는 절망. 우리를 덮쳐왔습니다.


끝 모를 깊이의 현 상황이 개인의 잘못만은 아닙니다. 주변의 '모든 직장인'이 쥐꼬리만한 월급과 연이은 야근으로 고민하면 그건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주변의 '모든 취준생'이 변변찮은 직장을 구하지 못해 신음하면 사회의 문제입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차별, 경직된 연공금 임금체계 등 밥벌이와 관련한 노동시장의 문제적 사회구조는 그 깊이와 두께를 가늠하기 힘듭니다.


슬프고 우울합니다. 그런데 또 뻔하지만, 우리 살아냅시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으로 채워나갑시다. 2016년 11월과 12월 당신이 만들어냈던 촛불처럼 불현듯 깨달은 문제들을 서로 얘기하다 보면 어느 순간 '칼퇴'나 '취뽀'가 입에 오르지 않는 날이 올 것이라 믿습니다. 월급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연이은 광탈 소식에 좌절하더라도 내일은 조금 더 나아질 겁니다. 그나저나 저도 야근 중인데 '보람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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