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예술, 삶의 한 가운데 있는 당신에게

프리다 칼로, 영화 <프리다>가 내게 준 것들

by 홍연서




고통이 예술이 되는 걸 잘 알기에,

고통을 계속 품고 있지는 않나요?








To. The Artist's Mind.

고통과 예술, 삶의 한 가운데 있는 당신에게.



몸과 마음이 힘들 때, 당신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나는 힘든 시간의 끝이 보이지 않을 때나 몸이 아파서 통증이 있을 때, 많은 순간 프리다 칼로Frida Kahlo를 생각합니다.


영화 <프리다> 포스터. (출처: IMDb.com)

멕시코 화가 프리다는 내게는 화가이기 이전에, 유머러스하고 아름답고 강한 한 사람입니다. 2002년에 개봉한 영화 <프리다Frida>를 보면서 그녀가 좋아졌어요. 영화는 힘든 상황에서도 농담하는 프리다를 자주 보여줍니다. 그중에서도 그녀가 고국 멕시코에서 열린 첫 개인전에 참석하는 장면을 좋아합니다. 전시회가 열릴 당시 그녀는 건강이 몹시 좋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오랫동안 바랐던 전시회이기 때문에 당연히 참석하려고 했어요. 그렇지만 주치의는 기관지염이 폐렴이 될 수 있으니, 절대로 침대를 떠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프리다의 남편과 주치의가 전시회장으로 떠나고, 집에 남겨진 그녀는 절망하는데요. 그러나 잠시 후에 프리다는 그녀를 돌봐주는 동생을 힘껏 소리쳐 부릅니다. "크리스티나~" 하고요. 누워서라도 참석해야겠다고 결심한 거죠! 그녀가 누운 침대가 사람들에 의해 마당을 거쳐 트럭으로 옮겨지고, 트럭은 전시회장으로 출발합니다. 침대에 누워 전시회장으로 들어선 프리다는 놀란 주치의에게 '침대를 떠나지 말라는 선생님의 지시를 따랐으니 문제 없죠?'라는 식으로 농담합니다.


책을 찾아보니, 실제는 조금 달랐을 수도 있겠어요. 침대에 누워 전시회에 참석한 것은 프리다의 즉흥적 결정이 아니라 사전에 논의된 것일 수도 있겠고, 그녀는 영화에서처럼 덜컹거리는 트럭이 아니라 구급차에 실려 전시회장으로 이동한 것 같습니다. 영화의 장면이 혹 구체적 사실과 좀 다르다 해도, 그녀의 의지적이고 유머러스한 성격을 잘 드러내 주는 것 같아 이 장면을 좋아합니다. 누워서라도 프리다가 원하던 전시회에 참석한 것만은 사실이니까요. 침대에 누워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사진이 남아 있습니다.







프리다의 그림을 본 적 있나요?

나는 그녀의 그림을 처음 본 게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선뜻 좋아할 수가 없었다는 건 기억합니다. 거기에는 상처, 인체의 장기, 눈물과 피가 곳곳에 있었으니까요. 조금 충격적이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어떤 일을 겪었고, 그 삶이 어땠는지 전혀 모를 때였어요.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1932) (출처:위키피디아)

'내 인생에는 두 번의 사고가 있었다. 하나는 버스 사고고, 하나는 디에고다. 후자가 더 나빴다.'라는 프리다의 말은 유명합니다. 프리다는 1925년 18살 때, 타고 있던 버스와 전차가 충돌하는 사고로 크게 다칩니다. 쇄골, 갈비뼈, 척추, 골반, 오른쪽 다리가 여러 군데 부러지고, 버스의 기둥은 그녀의 복부를 뚫고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평생 사랑했던 남자, 그녀의 남편이기도 했던 멕시코의 천재 화가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는 끊임없이 바람을 피웠습니다. 나중에는 프리다의 동생과도 바람을 피워서 그녀를 더욱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프리다는 디에고의 아이를 갖고 싶었지만 세 번이나 유산했고,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평생 수술을 스무 번 넘게 받았습니다. 나중에는 다리를 오른쪽 무릎 아래까지 잘라내야 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알게 된 후에야 그녀의 그림들이 경험의 산물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러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프리다의 그림 세 점에 대해 말해볼까 합니다.


첫 번째는 프리다가 막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때의 작품으로, 1926년에 그린 ‘붉은 옷을 입은 자화상’ 입니다. 그녀는 교통사고를 당한 후, 온 몸에 석고붕대를 감고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는데요, 이 때 침대 천장에 달린 거울을 보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그림에는 사고의 흔적이나 고통은 직접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당시 프리다가 르네상스 그림에 심취해 있었다고 하는데, 그녀의 모습이 우아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아름다워서 보고 있게 되지만, 나중에는 뭔가 프리다의 고집스러운 표정이 보이고, 그녀가 무어라 말을 하는 것 같은데 나는 잘 알들을 수 없어서 '뭐라고? 뭐라고?' 묻는 마음으로 한참을 보고 있게 됩니다.


다른 두 작품은 그녀가 신체적 고통으로 더 많이 절망하던 후기에 그려진 것입니다.


하나는 ‘부서진 기둥’으로 1944년작 입니다. 자신의 척추를 곳곳이 부서진 그리스식 기둥으로 그려 넣었고, 온몸에 못이 박힌 것으로 고통을 표현했습니다. 프리다는 그림 속에서 상체를 고정시키는 의료용 장치를 입고 있고, 아파서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요. '나의 척추는 부서진 기둥과 같고, 나의 고통은 온몸에 못이 박힌 것 같다. 나는 매우 절망스럽다'고요. 그런 메시지에 비해 그림 속 그녀의 표정은 무덤덤한데,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서 머무르지 않고, 그림 속에 펼쳐진 표현들을 다시 한번 둘러보게 됩니다.


마지막 그림은 ‘상처 입은 사슴’으로 1946에 그려진 것입니다. 프리다의 얼굴을 한 사슴이 몸에 아홉 개의 화살을 맞고 피를 흘리며 헐벗은 나무들 사이를 지나고 있습니다. 부러진 나뭇가지와 저 뒤로는 차가운 바다가 보여요. 이 그림은 프리다가 처한 구체적인 상황을 넘어서 '상처 입고 고립된' 모든 인간의 고통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그런 상황에 처하면 공감할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나도 그림을 개인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 그림 속 사슴을 보는데, '꼭 나 같구나, 나다'라고 느낀 적이 있거든요. 마음이 끌려서, 나와 그림이 하나인 것처럼 느껴졌고, '아, 내가 저렇게 아파하고 있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그걸 확인하는 건 어떤 힘, 내가 힘들어하는 상황을 인식하고 거기서 벗어날 힘이 되었습니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건강하게 보내지만, 몸과 마음이 힘들 때, 많은 순간 프리다 칼로를 생각합니다. 그런 때, 아파서 식은땀이 날 때, 거짓말같이 들리겠지만 나를 둘러싸고 프리다가 물결치는 걸 느낍니다. 문득, 그녀가 고통을 받아들이던 용기와 버티던 힘이 생각나요. 그러면 나는 그녀가 냉철하지만 재기발랄하게 던졌을 농담, 자신의 에너지를 고통이 아닌 다른 쪽으로 돌리려고 애썼을 노력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 누워서 통증에만 온 신경을 집중할 게 아니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이 상황을 뭐라고 농담하면 좋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아픈 중에도 말이죠.






어느 정도의 고통이 한 인간을 성숙하게 한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겠습니다. 그리고 예술가들은 그 고통을 통해 어떤 깨달음을 얻고, 자신이 평생 추구할 주제를 찾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만한 작품을 만든다는 것도 인정해야겠어요. 프리다의 고통이 있어서 프리다의 그림이 있고, 우리는 위로 받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예술가에게 닥치는 고통은, 그 개인뿐만 아니라 대중을 위해서도 의미가 있구나, 하는 생각에 이릅니다. 고통 후에 작품을 만들고 그 작품이 대중과 후세에 널리 알려져 어떤 힘이 되는 경우 늘 그런 결론에 이르지만, 나는 거기서 좀 복잡한 심경이 되고 맙니다. 예술가들은 무의식적으로라도 고통이 작품의 원천이 된다는 것을 잘 알겠고, 그래서 누군가는 작품을 위해 일부러, 혹은 자기도 모르게 고통을 만들고 있진 않은가, 예술을 위해 삶을 희생하고 있진 않은가 싶어서요. 지금 나는 그렇지 않은가, 돌아봅니다. 지금, 당신은 어떤가요?


아마 프리다는 자신의 생에서 신체적 고통이건 정신적 고통이건 덜어낼 수 있다면, 그녀의 그림과 명성들을 고민 없이 날려버렸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녀에겐 그림이 아니라 삶이 중요했으니까요. 살기 위해 그렸으니까요. 그녀의 그림은 화가로 성공하기 위한 작업이 아니었고, 그녀의 일기고, 진통제고, 기도였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프리다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고통을 이용하지 않았다는 게 좋아요. 오히려 살기 위해, 고통을 잊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는 게, 삶을 위해 예술을 이용했다는 게 좋습니다. 나는 우리가 대단한 작품을 만들기보다, 먼저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이기를 바랍니다.


일부러 아프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고통 받을 때는, 살기 위해, 이겨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예술을 이용했으면 좋겠어요. 때론 삶에는 계속되고, 도를 넘고, 점점 심해지며, 끝난다는 희망이 없는 고통도 있는 것 같지만, 우리가 가진 무기로 잘 이겨냈으면 합니다. 프리다처럼요.


그럼 우리, 오늘도 건강하자고요.



예술이 우리에게 고통의 진정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2018년 11월 어느 날,

연서가.






*추신

하나. 이 편지지에 그린 그림은, '고통스러워 눈물이 나면서도 웃는 프리다'를 그린 거예요. 몸에 못이 박힌 것으로 고통을 표현한 아이디어는 위에서 말했던 프리다의 그림 ‘부서진 기둥’에서 가져왔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웃고, 입가에 음표를 만들어내는 프리다를 통해서, 삶을 즐기려 했던 그녀의 긍정적 에너지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20180920_170230_adjust_cut&CR_700px.png 스케치를 넣어 편지지를 만드는 과정 ⓒ홍연서


둘. 프리다가 쓴 일기와 편지들이 책으로 나와 있는데, 아직 제대로 읽지는 못했습니다. 언젠간 그걸 읽고 다시 한번 편지를 쓸 수도 있겠네요.

셋. 제가 프리다에 관한 사실을 잘못 안 게 있다면, 알려주세요.

넷. 마음이나 몸이 아플 때, 당신이 고통이나 통증을 이겨내는 방법이 있나요? 공유하고 싶은 팁을 댓글로 달아주세요.





ⓒ 2018. 홍연서 All rights reserved.



https://youtu.be/BLTJYbC3f84

※이 글은 2018.11.18. 유튜브에 업로드한 내용을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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