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드 루이스와 영화 <내 사랑>, 사랑이 필요한 우리
To. The Artist's Mind
세상에 하나뿐인 시선을 가진 당신에게
예술가로서 듣고 싶은 말이 있나요?
나는 영화에서 아주 멋진 말을 찾았어요. 그 말이 계속 떠올라 편지를 써요.
영화 <내 사랑(2016)>을 봤습니다. (원제는 'Maudie'예요. 주인공 모드의 애칭이죠). 어느 화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서 봤어요. 나는 예술가가 주인공인 영화는 다 보고 싶어지거든요.
결혼 전 이름이 '모드 다울리'였던, 캐나다의 화가 '모드 루이스(Maud Lewis, 1903~1970)'는 화가로 정식 교육을 받은 적은 없었고, 캐나다 동부 노바스코샤에 살았습니다. '에버릿 루이스'라는 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평생 같이 살았죠.
영화 앞부분에 모드가 가족들에게 소외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모드의 오빠는 물려받은 집을 팔아버립니다. 그리고 갈 곳 없는 모드를 이모의 집에 맡기죠. 모드는 어릴 때부터 류머티즘 관절염을 심하게 앓았는데, 그로 인해 턱, 어깨, 손가락 등이 굽었고 걸음도 불편했습니다. 오빠와 이모는 모드가 자기 앞가림을 못 할 거라고 생각했고 짐처럼 여겼어요. 그런 이모와 갈등을 겪던 모드는, 일을 구해서 나가 살아야겠다고 결심합니다. 모드는 이러한 현실적 필요로 에버릿을 만났습니다. 모드는 집과 음식을 제공해 주는 일자리가 필요했고, 에버릿은 생선 파는 일 등을 하는 사이에 집을 청소하고 관리해 줄 가정부가 필요했죠.
에버릿이 처음에는 모드를 폭력적으로 대했고, 같이 사는 동안 그녀의 그림에서 나온 수익을 취했기 때문에, 그 둘의 관계를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관객들의 시선이 나뉩니다. 나도 그런 에버릿의 태도 때문에 마음이 불편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모드를 무시하던 에버릿이 딸을 잃었던 모드의 상처에 같이 아파하고(모드는 이전에 딸을 낳은 적이 있습니다), 또 걸음이 불편한 그녀를 자신이 끄는 수레에 태워 다니고, 완성하지 못한 그림은 팔기를 싫어하는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는 모습을 보면서, 영화의 끝에 가서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기대어 사는 모습에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이 영화를 두고 '사랑'에 대해 말하자면, 긴 편지를 따로 한 통 써야 할 것 같아요. 한 사람의 인생에서 진실한 사랑의 경험이란 아주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기 계발을 하고, 자기 마음을 다독일 수는 있지만, 꼭 한 번은 자기 밖의 타인으로부터 받아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사랑,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인정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부모가 그 사랑을 줍니다. 아이의 필요에 관심을 가지고,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건강과 행복을 위해 애쓸 때,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아,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 정성을 다해 돌봐주다니, 나는 소중한 존재인가 보다'라는 느낌을 갖게 될 겁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아이는 스스로 자신을 아끼게 되고, 행복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걸 거예요. 아마도 어린 시절 어려운 환경으로 상처가 많았을 에버릿에게 모드는 이러한 사랑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가 끝나고 생각했어요. 인간이라면 태어나서 햇빛처럼 당연히 받아야 할 사랑을, 누군가는 쉽게 받고 누군가는 너무 어렵게 받는구나. 또 누군가는 끝내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겠구나, 하고요. 그래서 어쩌면 사랑이 없는 집을 뛰쳐나온 모드와 사랑이 뭔지 몰랐던 에버릿이 만나고 함께 했다는 게 기적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눈물이 났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부터 나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건 '산드라'였어요. 정확히는 산드라가 한 말이죠.
"당신의 시선을 보고 싶어요."
"당신의 시선을 보고 싶어요."
"당신의 시선을 보고 싶어요." (Show me how you see the world.)
산드라가 한 말이 자꾸 생각났습니다.
산드라는 영화에서 모드의 그림을 가장 먼저 좋아해 준 사람이에요. 산드라가 실제 인물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드가 집 벽에 그린 그림이며, 종이에 그린 카드 그림에 처음으로 반응한 사람이죠. 나중에는 더 큰 그림을 보고 싶다며 찾아와서는 이렇게 말했어요.
"뭘 그리든 내가 살게요."
"당신의 시선을 보고 싶어요."
모드와 에버릿의 집 현관 앞에 서 있는 모드 루이스
(DSC_2987 by Ron Cogswell, CC BY 2.0)
산드라가 좋아했던 모드의 시선은 어떤 걸까요? 모드의 그림에 잘 나타나 있죠. 모드는 자기가 살던 바닷가 마을과 동물들을 많이 그렸는데, 세상을 밝고, 따뜻하고, 유머러스하게 봤어요. 나는 모드의 그림 하나를 보고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좁은 길을 남녀가 오픈카를 타고 가고 있는데, 자동차보다 두 배나 큰 소와 마주친 거예요. 그래서 양쪽 다 꼼짝 못 한 채, 서로 멀뚱하게 바라보고 있는 거 있죠?
산드라와 모드의 첫 만남은, 산드라가 에버릿의 집으로 찾아오면서 시작됩니다. 산드라는 에버릿에게 생선값을 냈는데, 그가 생선을 가져다주지 않았다는 거예요. 혼자 집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던 모드는 산드라의 이야기를 듣고, 혹시 개나 고양이가 생선을 먹은 건 아니냐고 진지하게 물었어요. 돈을 주고도 물건을 받지 못해 따지러 온 고객한테 말이죠! 그런데 산드라는 우리집엔 개 없어요, 고양이도 없어요,라고 하면서 모드를 재밌다는 듯 바라봐요. 나는 이 장면이 너무 좋은 거 있죠? 둘 다 어떻게 그럴 수 있죠? 내가 만약 모드의 엄마고, 그 대화를 들었다면 "손님한테 개나 고양이가 생선을 먹지 않았냐고 묻는 게 다 뭐니? 어서 에버릿에게 확인하고 생선을 가져다드리겠다고 하렴."이라고 했을 거예요.
모드 루이스의 삶을 두고 10명의 감독이 영화를 만든다면, 다 다른 영화가 나오겠죠? 한 편의 영화를 10명의 관객이 본다면, 다 다른 이야기를 하겠고요. 사람은 다 다르고, 그래서 시선도 다 다르고, 우리는 누군가의 시선에 동감하거나 감동하기도, 반대하거나 화가 나기도 해요.
당신은 누군가가 좋아해 주기 전에도 예술가입니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당신 작품에 나타난 시선을 발견하고, 그것을 좋아해 주고, 다음 작품을 기대할 때, 당신은 또 한 번 관계 속에서 새롭게 존재하고, '내가 계속해도 되겠구나'라고 힘을 얻는지도 모르죠. 우리는 일차적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서 혼자 그림을 그리고, 노래하고, 춤추고, 글을 쓰지만, 그걸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세상에 하나뿐인 개성을 가진 예술가로서 사랑받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부모는 우리를 사랑하지만, 반드시 우리 안의 예술가를 인정하고 사랑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자식이 고생할 앞날이 걱정되기 때문일 수도 있겠고, 예술 사교육비가 부담될 수도, 부모가 예술에는 가치를 두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겠어요. 또 우리의 작업에 나타난 시선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이제 그 사랑을 주는 사람은 부모님이 아니라, 당신의 시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될 거예요. 우리는 예술가인 우리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날 겁니다. 그러기 위해 더 열심히 연습하고, 작업하고, 자신을 알리려고 노력하겠죠.
그런데, 뭔가 멋진 일이 하나 더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표현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이잖아요? 당신은 분명 누군가의 팬이겠죠?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아마 자기 세계를 완성한, 죽은 예술가들일 거예요. 한편, 아직 그 세계가 완성되지 않은, 그렇지만 분명한 개성을 가진, 시작하는 예술가들에게 반한 적도 있을 거예요. 당신 옆에 있는 동료일 수도 있겠죠.
세상에 하나뿐인 당신의 시선이, 세상에 하나뿐인 또 다른 시선을 바라본다는 게, 얼마나 특별한 일인가요? 게다가 둘 다 살아 있다면요!
당신은 예술가로서 듣고 싶은 말이 있나요?
우리가 누군가에게 그런 마음을 느꼈다면, 그 마음을 표현해 보면 어떨까요?
물론 그 사람은 작업을 계속하겠다고 굳게 다짐하고 있겠지만, 이제 막 예술가로 태어나서 타인의 사랑을 필요로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한 다발의 애정을 전한다면, 그가 평생 작업할 힘을 모으는 데 큰 도움이 되겠죠? 누군가는 또 당신에게 그렇게 해줄 거고요.
우리, 마음을 전해 보아요.
*추신
하나. 이 편지지에 그린 그림은, 어느 순간 누군가의 시선이 그의 모든 시간과 모든 경험에서 나온다는 걸 표현한 거예요. 나비가 변태해온 과정과 나비가 경험한 날씨를 날개에 그려 넣었어요. 그 모든 걸 가지고 나비가 꽃을 바라보고 있네요.
둘. 모드 루이스에 대한 국내 서적은 거의 없는데, ‘남해의봄날’이라는 출판사에서 영화 개봉 후 출간된 『내 사랑 모드』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1996년에 쓰인 책을 번역한 거고요. 저는 모드의 그림을 좀 더 많이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또 모드가 부모로부터 사랑받은 짧지만 행복한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것, 에버릿이 영화에는 고아원에서 자란 것으로 나오지만 아버지가 집을 나가고 어머니와 농장을 떠돌며 생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셋. 제가 모드에 관한 사실을 잘못 안 게 있다면, 알려주세요. 실존 인물에 대한 영화는 각색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영화를 통해 알게 된 부분이 사실인지 항상 조심스럽습니다.
넷. 그리고 어쩌면 당신은 이미 오래전에, 당신의 시선을 좋아한 누군가를 만났을 거예요. 그 사람을, 그 사람이 해준 말을 기억하고 있나요? 나누고 싶은 기억이 있다면, 댓글로 달아 주세요.
2018년 12월 어느 날
당신의 시선이 많은 사랑을 받을 그날을 같이 기다리며,
연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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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8.12.07. 유튜브에 업로드한 내용을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