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따뜻한 손
사랑하는 예술가에게.
책을 읽다 잠이 들었습니다. 남자가 여자 곁을 떠난 뒤였어요. 남자는 여자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자기도 모르게 깊이 그녀를 사랑하게 됐습니다. 남자는 그녀와 그녀의 약혼자 두 사람으로부터 우정 어린 대우를 받으며 그들 곁에 머물렀습니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자신이 떠나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죠. 그가 길을 떠나 새로운 곳에 도착하고 그곳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자, 나는 그만 졸음에 빠졌습니다. 앉아 있던 소파의 팔걸이에 한쪽 팔을 뻗고 머리를 기댄 채 잠이 들었어요. 얼마나 지났을까요. 문득, 불쾌한 느낌이 들어 잠에서 깼습니다. 머리 밑에 있던 팔은 저릿하고, 그 손은 차가운 허공에 축 늘어져 있어 내 몸이 아닌 것 같았거든요. 가만히 보니 다른 쪽 팔은 평온하게 담요를 덮고 있더군요. 몸을 일으켜 따뜻한 손으로 차가운 손을 녹이며 생각했습니다. 한 몸의 두 손이 한쪽은 이렇게 죽은 듯 찬데 다른 쪽은 이렇게 따뜻할 수 있다니, 이상하고도 신기하다고요.
나는 잘 지냅니다. 잘 자고, 잘 먹고, 운동도 합니다. 무엇보다 잘 느낍니다. 춥던 어느 날, 동네를 걷는데 잎 하나 없이 가지가 잘린 나무며, 아파트 담장에 말라붙은 덩굴을 보는데도 '봄을 기다리는 인내심' 같은 게 느껴지던걸요. '그래, 너희들은 죽은 게 아니라 살아서 봄을 기다리고 있는 거구나'라고요. 익숙한 동네인데도 그날따라 여행하는 듯 설레어 꽤 걸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마음이 이렇듯 명랑한 것은 아닙니다. 어느 봄인가, 매일 변하는 풍경 속에서도, 연록의 잎이 흐드러진 나무 아래서도,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던 때가 있었으니까요. 그럴 때 마음은 굳고 거의 모든 것은 의미를 잃습니다.
제가 읽던 책은 괴테가 청년 시절에 쓴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입니다. 이 소설은 주인공 베르테르가 쓴 편지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베르테르가 이미 약혼한 로테를 사랑하다가 실연의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권총으로 자살하는 결말로 유명하죠. 소설 속에서 베르테르는 절망을 거듭하여, 평소 좋아하던 것들에 흥미를 잃고 무기력해진 상태로 보입니다.
불행한 일이다! 빌헬름! 나의 활동력은 방향을 바꾸어 불안한 게으름으로 변하고 말았다. 멍청하니 하릴없이 지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어떤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내게는 공상도 없어졌고 자연을 감상하는 정서도 사라졌으니, 이제 책은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일어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잃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거나 마찬가지다. - 괴테,『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박찬기 옮김, 민음사, 1999, p.89)
스무 살 즈음에 처음 읽은 이 소설은 어김없이 '사랑 이야기'였습니다. 그때 제 눈에 들어왔던 건 베르테르가 로테에게 반하고, 행복해하고, 질투하고, 사랑을 이룰 수 없는 현실에 절망하는 베르테르의 연애 감정이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우울한 베르테르'가 유독 마음에 걸렸습니다. 소설에서 베르테르는 우울증으로 자살에 이르는 경우에 대해 논쟁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아마 당신도 인정하겠지만 건강이 몹시 상하고 체력이 소모되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고 마침내 건강을 다시 회복할 수 없게 되어서, 아무리 신통한 치료를 한다 해도 생명 활동을 다시 되살릴 수 없을 때 우리는 이것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것 봐요. 이 현상을 그대로 정신에 적용해 봅시다. 인간의 마음이 점점 좁아지는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갖가지 인상이 그에게 작용하고 관념이 마음속에서 고정되고 결국에는 점점 높아가는 걱정이 모든 냉철한 사고 능력을 빼앗아서, 마침내 그는 파멸하고 말아요. - 괴테,『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같은 책, p.81)
책을 읽다 잠에서 깼을 때, 나는 우울에 관한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래도 우울에 대해서는 우울하지 않을 때 생각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그런데 명랑한 요즘의 나는 우울한 마음에 쉽게 다가갈 수 없더군요. 그게 과거의 내 마음이라 할지라도요. 그래서 아주 만약에요…… 지금 당신이 깊이 우울하다면, 그래서 이 편지를 꺼내 든 거라면, 지금의 나는 당신의 마음에 온전히 다가갈 수 없고, 다만 당신이 처한 상황을 짐작해 볼 뿐이라는 걸 고백해야 합니다.
아마도 당신은 무언가 아주 소중한 걸 잃었거나 그럴 위험에 처해있겠고, 그러나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요. 더구나 지금의 상황은 앞으로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아서, 그렇다면 이 괴로움은 계속될 것이라 희망을 품을 수도 없다고요. 원하는 것은 지금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뿐이라고요. 나의 가장 어려웠던 때를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지금 당신이 명랑하다면 우울은 너무 먼 것이겠고, 정말 우울하다면 나는 당신에게 가 닿지 못하겠지만. 우리에게 앞으로 찾아올 우울이 얕은 것이든 깊은 것이든. 자꾸만 헤어 나올 수 없는 '좁은' 곳으로 향할 때는, 보되 보지 못하고 듣되 듣지 못하게 되니까. 그런 때 생기는 단단한 껍질을 밖에서 누군가가, 또 무언가가 뚫고 들어가기는 아주 힘든 일이니까.
미리 말하고 싶었어요. 차가워진 손에 당황하고 그게 자신의 전부란 생각이 들 때, 가만히 보면 고요히 잠들어있는 따뜻한 손이 있다고요. 만약에 당신이 차가운 가슴을 안고 돌돌 똬리를 틀었다면, 그 안에는 당신의 차가운 가슴뿐 아니라 따뜻한 생명력도 함께 갇혔을 거라고요. 그래서 무언가는 안에서부터 당신을 녹일 수, 안에서부터 껍질을 깨도록 도울 수 있을 거라고요.
내게도 언제 다시 어려운 때가 올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때가 오면…… 좋아했던 섬으로 여행을 갈까요?
아니면 하지 못한 말이 있는 사람에게 연락을 할까요? 음, 우선 음악을 틀어야겠어요. 영화도 몇 편 볼 거고. 아니, 100편쯤? 그러다 보면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질지도 모르겠어요. 아, 그리고 매월 두 번씩 찾아오는 이십사절기를 체크하며 지낼 거예요. 이번 달에는 '입춘(立春, 설 입·봄 춘)'과 '우수(雨水', 비 우·물 수)가 있었네요. 나도 자연의 일부니까 언제까지나 멈춰있을 순 없고, 변화하게 될 거라는 걸 기억하고 싶어요.
평온한 날에, 우울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어요.
미리 당신의 따뜻한 손에 내 작은 수다들을 쥐여주고 싶었어요.
작은 우울이든 큰 우울이든
살아남아서 다시 생의 기쁨을 느끼기를.
그래서 이번 봄, 그다음 봄, 그다음 봄도 우리
함께하기로 해요.
봄이 시작된 2019년 2월,
모두의 생을 바라는, 연서가.
*추신
1. 이 편지지에 그린 그림은, 우울에 빠져 있는 사람을 그린 거예요. 고개와 팔을 늘어뜨리고 있고, 온몸이―머리와 가슴까지도 차가워졌죠. 그렇게 굳어진 몸이 자신의 전부같이 느껴지지만, 살아 있다면 아직 따뜻한 곳이 있다는 뜻일 거예요. 따뜻한 한쪽 손으로 다른 쪽을 녹이기 시작했네요. 온기가 서서히 퍼지고 있어요.
2. 이 소설 속에서 베르테르가 사랑한 '로테'의 모델은, 괴테가 실제로 사랑했던 '샤로테 부프'라는 여성입니다. 괴테의 경험과 이 소설의 관계가 궁금하다면, 2017년 HUEBOOKS에서 번역되어 출간된 뤼디거 자프란스키의 괴테 전기, 『괴테 예술작품 같은 삶』의 7~9장이 도움 될 것 같습니다.
3.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나중에 몇 번쯤 더 읽고 싶은 소설입니다. 처음에는 제가 사랑 이야기로 읽었고 이번에는 우울 이야기로 읽었듯이, 다음에는 또 다른 이야기로 읽게 될 것 같거든요. 그러고 보니까, 제가 지금 모든 걸 읽어낼 수 없다는 사실이 새삼 좋아지네요. 지금 어떤 생각에 절망한다고 해도, 그건 다 알지 못하고 하는 절망일 테니까요. 살다보면 제가 했던 부정적인 예측들이 이리저리 어긋나는 걸 보면서 멋쩍게 웃을 테니까요.
4. 언젠가 불청객 우울이 찾아와서 눈치 없이 너무 오래 머물 땐, 잘 이겨내 주세요. 그리고 그 시간을 이겨낸 강하고 지혜로운 마음으로 좋은 작품을 만들어 주세요. 언젠가는 저도 그 작품을 만날 수 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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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9.03.01. 유튜브에 업로드한 내용을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