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나의 친구, 아티에게.
이전처럼 편지를 쓰려다 보니, 짚고 넘어가야 할 게 하나 있더라.
나를 예술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방 안에 앉아 내가 누구인지 생각하다 보면, 내 안에 있는 두 사람이 보여.
나는 한쪽을 ‘생활자’, 다른 한쪽을 ‘예술가’라고 불러. ‘생활자’는 돈을 벌고, 가족들을 챙기고, 청소나 빨래를 해. ‘예술가’는 책이나 영화를 보고, 좋아하는 것에 빠지고, 글을 써. 내가 나의 한 측면을 ‘예술가’라고 부르는 이유는 내 ‘영혼’ 때문이야. 그러니까, 세상으로부터 자극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대해 느끼고 생각해서, 감동과 깨달음, 아이디어를 자기 방식대로 계속 표현하며 살아야, 그 삶이 가장 만족스러울 사람 말이야. 방황하는 시간을 지나면서, 나는 자신을 그런 영혼이라고 생각하게 됐어.
그런데 말이야, 나를 광장에 세워놓으면 사람들이 나를 예술가라고 부를까?
사람들은 ‘예술 작업을 하고, 결과를 내는 사람’을 예술가라고 부르니까, 나에게 그동안 해온 작업이 뭐가 있냐고 물을 거야. 그러면 나는 거의 빈손을 내밀어야 해. 내가 가진 건, 중고등학교 때 썼던 시 몇 편과 서른에 썼던 단편소설 습작들이 고작이니까. 그 후로는 제대로 쓰지도, 결과를 맺지도 못했어.
그러니까 사람들은 날, 예술가라고 부르진 않을 거야.
10대 때부터 난 당연히 예술가가 될 거라고 생각했고, 꿈꿔 왔는데,
20년쯤 지난 지금, 왜 난 아닌 거지?
돈 보다, 직장 보다, 착한 딸이나 따뜻한 연인이 되는 것보다,
예술가가 되길 바랐는데?
내가 내 인생을 가지고 사기를 친 걸까?
진심이었냐고 묻고 싶겠지?
진심이었어.
그럼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냐고 묻고 싶겠지?
그러게. 도대체 뭐가 잘못됐던 걸까? 내가 뭘 꿈꿨던 걸까?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 기억나? ‘행복한 집안의 모습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집안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이제 와 보니, 예술가가 되는 과정도 그런 것 같아. 예술가가 되는 길을 하나만 꼽자면, ‘계속 작업하는 거’ 아닐까? 어떤 상황에서든 작업하는 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우선적으로 쓰며 살아가는 거. 사람들이 예술가가 되지 못한 이유는 제각각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계속 작업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심리적 이유들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
가장 큰 문제는, 나도 몰랐지만 예술가의 작업에 대한 환상이 많았나 봐. 작품이라는 결과물에서 내가 감동을 느끼는 만큼, 그걸 만드는 과정도 아름답고 멋있을 거라고 착각한 거지. 또 예술 작업이란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서 미친 듯이 몰입하는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내 과정이 엉망이라고 느껴지거나 애써 노력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이런 건 예술가가 되는 과정이 아닐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방향을 틀거나 멈춰버렸던 것 같아.
나는 워낙 겁이 많기 때문에 내가 하려는 일을 바로 시작하지 못했고, 문제를 만나면 뚫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회피했어. 예술가의 삶은 불안정하니까 안정적인 직장을 가져야 한다고, 작업할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일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본질로 들어가지 못하고 주위를 맴돌았던 것 같아.
그리고 아마도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어서, 주위 사람들 누가 봐도 그럴듯한 직업을 가지려 했어. 수능을 보고 가고 싶은 문창과에 가는 대신 오래된 권유대로 법대에 들어간 건, 내가 내 삶의 주도권을 쥘 힘이 부족했다는 걸 드러내는 순간이었어.
마지막으로, 그동안 내 욕구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건 표현하는 게 아니라 읽는 거였더라. 내가 굳이 뭘 만들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걸 감상하는 것만으로 충분했으니까.
이런 마음을 가지고도 내가 만약 작업을 지속할 수 있었다면, 그게 더 신기한 일일 거야.
지난번 편지를 쓴 후로 2년이 다 되어 가. 그 사이 생활환경이 크게 바뀌었고 느린 나는 거기에 적응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썼어. 어느 정도 적응한 후에는 다시 편지를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렴풋이 내 어리석음을 눈치채고 나니까 질문하기조차 싫었나 보다. 이제야 그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하려고 해.
그래서 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나에게 중요한 건 뭘까?
나한테 중요한 게 뭔지 궁금해질 때면, 스스로에게 묻는 게 있어.
‘내가 지금 갑자기 죽어서, 내 몸에서 빠져나와 내 몸을 보고 있다고 치자. 앞으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밖에 남은 게 없어. 그런데 꼭 한 가지만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난 무얼 하려고 할까?’
얼마 전까지도 내 대답은 ‘고전 장편소설을 다 읽고 가겠다’는 거였어. 민음사, 문학동네, 열린책들에서 나온 전집을 내 방에 넣어달라고 할 거야. 중고등학생 때부터 완벽하고 아름답다고 느꼈던 형식이 장편소설이거든. 실은 업데이트된 방송을 보느라 소설 읽는 건 급하지 않은 일이 되지만. 손안에 딱 쥐어지는 그 한 권에, 굉장히 특수한 하나의 세계가 있는 거지. 배경이 중세의 성이나 미래의 우주일 수도 있고, 주인공이 세계를 떠돌며 전쟁 중이거나 감옥에 갇혀 있을 수도 있고, 사건이 연쇄살인이거나 연인과의 사소한 갈등일 수도 있지만. 저마다 다른 감성과 생각을 가진 작가들이 피를 짜내는 노력으로 써낸, 그 농도 짙은 세계들을 내가 미처 다 들여다보지 못하고 가는 게 너무 아까웠거든.
그런데 요즘, 내 생각이 바뀌었어. 죽기 전이든, 죽어서든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할 수 있다면, 내가 벌여놓은 것들을 정리하고 가겠어. 내가 쓴 메모들, 아이디어들, 감상문, 스크랩 이런 것들. 내가 감동받고 좋아한 것들, 깨달은 것들, 그로 인해서 하게 된 생각들. 그런 걸 가지고 작업해서 결과물로 만들어놓고 갈 거야. 그걸 담는 형식은 몇 편의 소설일 수도 있고, 여러 통의 편지일 수도 있겠지?
아티, 예전에는 내가 갑자기 죽는다고 상상하면, ‘아쉽긴 하지만, 여한이랄 것까지는 없다. 나름대로 좋았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요즘은 이대로 그냥 죽는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아.
정확히 어떤 계기로 내 생각이 달라졌는지 솔직히 모르겠어. 그렇지만 확실히 느끼는 건, 예전에는 아웃풋 하고 싶었던 욕구가 전체의 10~20%였다면, 요즘은 50% 이상으로 커진 것 같아. 내가 인풋만 하거나 개인적 감상에 그쳐서는, 더 성장하거나 삶의 다른 차원으로 나아가는 데 한계가 있다는 걸 분명하게 느낀 듯해.
편지를 쉬는 2년 동안 글 쓰는 작업을 하지는 않았어도, 매달 한 번씩 개인적으로 가볍게 디자인했던 게 있어. 내 아이디어가 눈앞에 펼쳐지는 걸 실제로 보고 싶어서 할 때가 많았지만, 그냥 매달 하는 거니까 하기도 했어. 그런데 일 년을 꾸준히 하고 보니까, 인풋이 나에게 뭔가가 물리적으로 더해지는 느낌이라면, 아웃풋은 뭔가가 화학적으로 곱해져서 내가 새로워지는 느낌이랄까? 인풋을 할 때는 나의 일부만을 쓰지만, 아웃풋을 할 때는 문제를 해결하느라 나의 전부를 끌어다 쓰더라. 작업하는 과정에서 예상대로 안 풀릴 때 기존의 내 생각들을 깨게 되고, 하나하나 마무리해 나갈 때마다 꽃을 한 송이씩 피워내는 느낌? 그런데 그 꽃이 뭐라고 딱 정해진 것도 아니고 예상할 수도 없는 새로운 꽃을 피워내는 느낌? 그리고 지난 작업들을 쭉 보면, 일기나 사진을 볼 때와는 또 다르게 그 당시의 상황이나 고민, 기분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어.
나는 어리석었지만 오랫동안 전업 예술가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에, 앞으로 하는 작업들이 전혀 경제활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하면 크게 실망할 거야. 그렇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다른 카드를 선택할 건 아니야. 인풋-정리-아웃풋-피드백을 꾸준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해나가는 게, 나에게는 앞으로 남은 시간을 사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아.
꾸준히 작업해서 떳떳하게 예술가라고 불린다면, 꿈을 이루는 거겠지. 그런데 그것보다 더 좋은 건 내가 ‘제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걸 거야. 나는 주로 혼자 있는 성격이니까, 작업물을 공유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할 수 있을 거고, 사회 속에서 오직 나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뭔지를 발견할 수 있을 거고. 더 개인적으로는, 원하는 것이 있으면 환상을 가지지 않고 부딪혀 실체를 알아가는 법, 난관을 만났을 때 피하지 않고 그 지점을 통과하는 법, 하나를 얻고 싶을 때 다른 하나를 제대로 잃으면서 헌신하는 법 같은 삶의 방식을 배우는 게 더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
우선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나가려고 해.
소설은 아직 버겁고, 편지를 한 달에 한 번씩 쓸 생각이야.
아티, 그런 나를 지켜봐 주겠지?
내가 혼자 일기에만 써 내려갔다면, 지금 같은 깨달음을 얻지는 못했을 거야.
그런 의미에서, 편지 쓰는 동안 내 마음의 건너편에 있어 주어 고마워.
2021년 1월 어느 날,
연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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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1.01.05. 유튜브에 업로드한 내용을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