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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성의 고리 - 두 번째 이야기 (7)

07. 뫼비우스의 띠

by 청랑

07. 뫼비우스의 띠


모든 이야기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그러나 자연의 순리는 다시금 끝을 새로운 시작과 연결시킨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그 사나이의 죽음이 이야기의 끝인지 아니면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인지, 그의 이야기가 이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가져다주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이토록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현대의 서울에서, 도쿄에서, 광대한 태평양 바다 너머 뉴욕에서, 런던과 파리에서, 모스크바에서, 아직 자본주의의 때가 덜 묻은 테헤란에서, 인간이 넘치는 뭄바이와 베이징에서, 일개의 인간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나는 거대한 세상의 규모에 압도당한다. 그 사나이라면 어땠을까? 그는 자신의 세상에서 무엇을 하고자 했으며 무엇을 남겼는가. 끝도 없이 광활하게 어둠으로 남은 우주에 비해서 찰나의 시간을 살고 사라지는 짧은 인생이, 또 다른 수많은 찰나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나는 왜 한 사나이의 삶에 이토록 이끌리는 것일까? 내가 만일, 수천 년 동안 전승되어 온 범접할 수 없는 초인의 이야기만을 생각했다면, 평생 그랬던 것처럼 나의 마음은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초인이었고, 나는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가 온 생애를 통해 보여준 사랑과 용서를 보통 인간인 내가 실천하지 않아도 된다는 핑계로 삼았을 테니까.


도대체 기적이란 무엇인가? 기적을 찾아 군중들이 그에게 왔고, 누군가는 기적을 보았으나, 대부분은 자신들이 갈망했던 기적을 찾지 못해 그를 떠나갔다. 장님은 여전히 빛을 보지 못하였고, 죽어가는 아들과 딸은 결국 살아나지 못했으며, 여기 있던 산이 저기로 옮겨 가지도 않았고, 그들의 나라는 여전히 강대국에게 착취당하는 속국이었다.


신화의 시대에 존재했던 기적과 마법은 현대에 와서 과학으로 치환되었다. 인간이 이해하지 못했던 자연 현상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고 고대의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이야기를 구성해 갔다. 자연의 경이로움은 지식의 발달과 함께 과학으로 해석되기 시작하였고, 이제 우리는 현대의 과학은 옳고 과거의 신화는 틀리다는 이분법적 패러다임 안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나 기적은 지금 여기에도, 다른 세계에 살았던 그 사나이의 삶 속에도 녹아있다. 그의 삶에 담긴 가난과 고통, 방황과 깨달음, 한 나라를 통치하는 것보다 어려운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그러기 위해서 사람의 눈을 바라보는 것, 그 안에 들어있는 온갖 더러운 것들마저 온전히 바라보며 희망을 찾아내는 것, 비울수록 강해지는 타인에 대한 공감력, 그리고 자신의 원수 역시 잘못된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나의 또 다른 어두운 그림자임을 깨닫고 증오와 복수의 굴레에서 빠져나오는 것, 그리고 친구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생애를 바치는 것; 이 모든 이야기 속에 과거와 미래가 만나고 떨어지며, 알려지거나 알려지지 않은, 우연과 동시성을 가장한 기적이 모두의 삶에 스며들어 있다.


긴 시간을 지나 마흔 무렵에 나는 겨우 의사가 되었고 고소득자로서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우연히 불로소득을 얻은 것이 아니라 긴 시간 동안 탈출구를 찾아 헤매며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겨우 다다른 곳이다. 그렇지만 그 사나이의 제자가 말한 것처럼 대다수의 사람들이 일 년이 지나도, 십 년이 지나도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삶 속에서 마모되어 간다는 것을 기억할 때, 나는 고소득자의 삶 앞에서 머뭇거리게 된다. 분명히 해가 갈수록 실질적 수입이 늘어나고 있는데, 내가 모으는 삶에 집중할 수 없는 것은 내 능력의 한계 때문인가 아니면 그 사나이를 만났기 때문인가? 그것은 무능한 한 인간이 이상 속에 갇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내가 언젠가 풍요로운 삶 속에 있는 자신을 바라볼 때 타인의 가난과 고통에 무뎌진 괴물로 남고 싶지는 않기 때문일 것이다. 사나이가 속해있고 그의 또 다른 원형들로 이루어진 견고한 이타성의 고리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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