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고 나서 다시 생각하는 노키즈존
집 근처에 카페라테가 참 맛있는 자그마한 카페가 있다. 커피 맛이 풍부하고 신선해서 우리 부부가 한눈에 반한 곳이다. 마침 아이 어린이집 근처라 오며가며 커피 한잔 사들고 오고 싶을 때가 많은데 다행인지(가정경제를 생각하면) 불행인지 아이를 데리고는 그 카페에 갈 수 없다. 카페에 또렷하게 적혀 있는 문구. 'NO KIDS BUT PETS'. 애완동물은 되지만 아이는 안 된단다.
'날날이(아이의 별명)는 아직 돌 전이니 키즈가 아니라 베이비라 괜찮지 않을까'라는 억지를 부리며 테이크아웃 해오고 싶을 때도 있다. 그 정도로 커피가 맛있으니까. 하지만 늘 친절한 미소로 커피를 만들어주는 주인장이 저렇게 단호하게 '애는 안 된다'고 써놨는데(입구에도 '어린이 동반 입장 불가'라고 붙여 놨다). 존재만으로 진상 손님이 되는 것 같아 애써 발길을 돌린다. 애완동물은 되지만 아이는 안 되는 건 주인장의 취향이자 선택이니까. 카페는 그의 공간이니까.
아이를 낳기 전, 나는 굳이 나누자면 노키즈존에 찬성하는 사람이었다. 고향 부산으로 KTX를 타고 왔다 갔다 할 때 같은 칸에 혹시라도 아이들이 보이면 눈살을 찌푸렸고 아이들이 시끄럽게 하면 대놓고 말은 못 해도 무언의 눈치를 보냈다. 계속 쳐다본다든가 후, 하고 한숨 소리를 낸다든가.
그리고 집에 오면 엄마에게 애들이 시끄럽게 해서 너무 짜증났다고, 부모들은 뭐하는지 모르겠다고 분노했다. 비싼 돈 내고 내가 왜 이런 불편을 겪어야 하냐고, 애들은 그냥 따로 태웠으면 좋겠다고. 그럴 때면 엄마는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애들이 다 그렇지, 너도 애 낳아서 키워보면 그런 소리 못한다. 그때는 내가 이렇게 애 엄마가 돼서 카페도 못 들어가는 신세가 될 줄은 몰랐다.
▲ 아이와 함께 밥 먹으러 간다는 것.jpg
카페, 식당 주인들이 아이를 거부하는 이유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시끄럽지, 정신 사납지, 어지르고 더럽히지, 여기저기 뛰어다니니 위험하지, 다른 손님에게 피해주지... 어쩌면 아이를 못 오게 하는 게 더 이익일지도 모른다. 위험 요소를 사전에 차단하는 거니까. 나만 해도 날날이 데리고 카페나 식당 한 번 가면 전쟁이 따로 없다.
아기 의자에 앉아있기 싫다고 난리치는 아이를 달래려 과자를 입에 밀어 넣고 숟가락 쥐어줬다 컵 쥐어줬다 한다. 아이가 혹시라도 소리 지를까 노심초사. 아이가 뭔가를 떨어뜨리면 빛의 속도로 바닥으로 돌진해 줍는다(종업원이 오기 전에 빨리!). 입에서는 자동으로 '죄송해요'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하지만 아무리 신경을 쓴다고 해도 우리가 앉았던 자리는 난장판이 되고 아이는 꼭 몇 번씩 주위의 시선을 끈다. 아직은 날날이가 걷지 못하고 말도 못하니 이 정도지만 나중에는 더 정신없겠지.
노키즈존을 찬성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가장 큰 이유는 '일부 무개념 부모'들이다. 포털에서 수없이 본 댓글을 옮겨 보자면, 지 새끼는 뛰어다니든 소리 지르든 신경 안 쓰고 지들 입에 밥 처넣고 커피 마시고 수다 떠느라 정신없는, 다른 사람들 밥 먹는데 옆에서 애 똥 기저귀 갈고 그냥 버리고 나오는, 그러다 뭐라고 한소리 하면 내 새끼한테 왜 그러느냐 화내며 내 새끼 이쁘다 우쭈쭈 하는...이른바 '맘충'들(무개념 부모들이라면서 엄마만 문제가 된다) 때문에 노키즈존이 필요하다는 것. 노키즈존이라 쓰고 맘충 출입 금지라고 읽는다.
▲ 아이와 함께 일본 여행 갔을 때.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을 찾지 못해 푸드코트에서 분유와 맥주를 함께 해결했다. 난장판이 된 식탁.
물론 나도 대체 왜 저럴까 싶은 부모들을 공공장소에서 본 적이 있다. 저런 사람들 때문에 다른 부모들까지 욕먹는다며 억울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맘충이라는 말의 위력 때문인지 내가 부모 입장이라 그런지(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진다), 아이들을 그냥 우쭈쭈 하며 내버려두는 부모는 그리 많지 않았다.
'엄마가 그러면 안 된다고 했지, 몇 번 말해, 너 그럼 혼난다, 야!!!'
아무리 엄하게 꾸짖어도 아이들은 말을 안 듣는다. 아이로 인해 생기는 민폐는 대부분 부모도 어쩔 수 없는 것들이다.
내 뱃속으로 낳은 자식을 내 맘대로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는 데는 생후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징징대고 우는 아이 달래는 것, 입에 밥 한 숟가락 떠 넣는 것, 안 자고 놀겠다는 아이 토닥여서 재우는 것, 기를 쓰고 도망가는 아이 기저귀 채우고 옷 입히는 것, 유모차 태우는 것, 목욕시키는 것, 놀아주는 것...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없다.
생후 9개월쯤 지났을까. 겨울 내내 집에만 있다 지하철을 탔는데 그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대중교통만 타면 조용히 있던 아이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사람 많은 데 가면 쫄보처럼 가만히 있더니 이제 좀 컸다 이건가. 신나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갑갑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목청은 어찌나 큰지.
그때부터 나는 지하철에 탈 때면 초긴장 상태가 됐다. 앉는 건 꿈도 못 꾸고 아기띠를 하고 이 칸 저 칸 돌아다녔다. 한 손에는 아이에게 줄 과자를 들고. 무개념 부모 소리 안 들으려고 말귀도 못 알아듣는 아이를 꾸짖었다.
"날날아,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하면 돼요, 안 돼요."
애원도 해봤다.
"날날아, 이러면 엄마가 너무 창피해. 엄마 맘충 만들지마."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공공장소에서 떠드는 아이를 통제하지 못하는 부모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기에.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는 것 같고 손가락질 하는 것 같았다. 어찌나 스트레스를 받았던지 휴직 이후 처음으로 위염에 시달렸다.
그러다 깨달았다. 내가 아무리 공공장소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 안 주려 노력해도 아이가 없는 것 같은 상황을 만들 수는 없다.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온 이상, 민폐 끼치는 무개념 부모가 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훈육은 필요하지만 한계가 있다. 식당에서 아이들은 난리 치면서 뛰노는데 부모가 모른 채 묵묵히 밥숟가락만 뜨고 있다면 그 부모는 무개념이 아니라 혼내고 또 혼내다 지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아님 조금 뭐라고 하다가 안 먹혀서 그냥 포기했을 수도 있고. 아이는 부모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니다. 노키즈존 찬성 글에서 공공장소에서 떼를 쓰면 뺨을 때리는 프랑스 부모 사례를 드는 것을 봤는데 그건 명백한 아동학대다.
지나치게 방관하는 부모와 지나치게 엄격한 부모.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 사이에 있다. 하지만 맘충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보면 다 똑같아 보인다(부모가 어떻게 하건 아이가 시끄럽게 뛰어다닌다는 결론은 다르지 않기도 하고). 나도 누군가에게는 맘충이었을지도.
굳이 노키즈존이 아니더라도 아이를 낳고나서는 갈 수 없는 곳이 많아졌다. 우리 동네에는 아기자기한 식당, 카페들이 많은데 그런 곳은 아이 출입 금지라고 적어놓지 않아도 알아서 피하게 된다. 민폐 끼치는 게 싫어서. 입구에 턱이 있거나 계단이 있어서 유모차 끌고는 못 들어가는 곳이 대부분이기도 하고(아이를 낳고 나서 통행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이를 데리고 남편과 제일 자주 가는 곳은 대형 쇼핑몰이다. 유모차 끌고 다니기 좋고 수유실도 있고. 쇼핑몰에 있는 식당이나 카페는 규모가 크고 시끌벅적해서 아이가 말썽을 피워도 눈치가 조금은 덜 보인다(그래도 늘 긴장 상태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아이를 데리고 온 다른 부모들이 많아서 서로 이해해주는 분위기가 있다. 일종의 키즈존인 셈이다. 누군가는 노키즈존을 만들고 누군가는 키즈존을 찾아 나서고. 서로 피해주거나 받을 걱정 없이 쿨하게 따로따로. 이래도 괜찮은 걸까.
부모만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다. 말 안 듣고 제멋대로인 아이가 상식과 교양을 갖춘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는 이미 어른이 된 이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누구도 혼자 크는 사람은 없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은 그렇게 나왔다.
하지만 마을공동체가 무너진 핵가족 사회에서는 다른 아이를 만나거나 돌볼 기회 자체가 잘 없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같은 육아예능을 통해 간접경험할 뿐이다. 나만 해도 내가 아이를 낳기 전에는 아이를 안아본 기억이 거의 없다. 아이가 어떤 존재인지, 육아가 얼마나 어려운 건지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한 일이지만 상상 그 이상으로 힘든 일이다. 공동체가 붕괴된 사회에서 엄마들은 집에 갇혀 나 홀로 육아를 하고, 아이를 데리고 집밖에 나오면 맘충이 되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 한다.
가끔씩은 우리 사회가 정말로 아이를 원하는 게 맞나 라는 생각도 든다. 애초에 집 구석에서 애나 봐야 할 엄마들이 밖에 나온 게 잘못일까. 아이와 나는 종종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고, 때로는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노키즈존은 차별과 배제의 논리를 아예 대놓고 적용한다. 너희들은 피해를 주니까 여기 오지 말라고. 아이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사라진 사회에서 육아는 오직 개인의 영역이 되고 부모들은 각자도생한다. 이게 다 무개념 부모들만의 잘못일까.
키즈카페로, 문화센터로, 쇼핑몰로. 오늘도 아이와 엄마는 욕먹지 않을 곳을 찾아 떠돌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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