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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Mar 18. 2021

사누르의 밤 생활

여기 너무 좋다, 정말 좋다



식당 안에는 아소토유니온 김반장이 생각나는 자메이카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제 분명히 여기서 nothing’s gonna change my love for you를 누가 라이브로 부르는 걸 지나가다 들었는데. 어제랑 느낌이 너무 다르잖아 ㅎㅎㅎ 오늘은 라이브 공연이 없는 날이라고 했다. 발리에 오니 올드팝이 많이 나와서 학창 시절 굿모닝 팝스 추억이 계속 소환되고 있었는데. 이런 펑키함이라니. 너무 좋다. 벽에는 밥 말리의 얼굴이 커다랗게 그러져있다.

유기농 채소를 제공한다는 주방에서는 식당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흥겨운 추임새가 새어 나왔다. 알 수 없는 재빠른 언어도 함께. 편안한 복장의 서버는 일하는 중간중간 노래하고 춤췄다.

기대했던 립은 다 떨어졌고 기대했던 라이브 음악은 못 들었고 비록 자리는 화장실 앞이지만 우리는 행복했다. 절로 어깨춤이 나왔다. 흥이 올랐다. 여기 너무 좋다, 너무 좋다는 말을 남편과 계속 주고받았다. 뜨거운 공기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에어컨이 없어도 괜찮았다. 나는 빈땅을, 남편은 다이어트 콜라를, 아이는 생수가 든 잔을 들었다. 건배!

고단했던 하루를 떠올렸다. 쉰 건지 신 건지 알 수 없는 스프링롤도,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100원을 덜 거슬러주던 공중화장실 캐셔도, 발리의 미친 교통체증도. 다 괜찮아졌다. 북적이고 정신없는 꾸따에 있다 사누르에 오니 집처럼 마음이 편안해진다. 정성스럽고 맛난 음식에 아이도 신이 났다. 의자를 두드리며 춤을 춘다. 이제 이런 곳에서 아이와 저녁도 함께 먹을 수 있구나. 정말 고생했다 너도 우리도.



“2차 가자!!!”

나는 손을 높이 들며 외쳤다. 식당을 나왔는데도 몸이 계속 들썩였다. 사누르에서 가장 칼라풀한 플레이스라는 ‘카사블랑카’에 가보기로 했다. 거기선 매일 밤 라이브 공연을 한다고.

발리에 와서 밤 생활을 너무 못 즐겼다. 밤 8시 넘으면 취침, 아침 6시 넘으면 기상. 방이 하나라서 애가 자면 우리도 자야 한다. 안 그럼 다음 날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하는 빡센 일정을 감당 못 한다. 본의 아니게 건강하고 건전해졌다. 이른 저녁을 먹고 집에 올 때마다 다른 방은 모두 불이 꺼져있었다. 남편과 말했다. “우리 빼고 다들 놀러 나갔나 봐!!! 다 어디서 노는 거지(부럽다...).”

뒤늦게라도 밤을 불태워보자 싶었다. 애는 알아서 자겠지 뭐... 동영상이나 보여주지... 하며 입구에 들어섰는데 공연이 9시부터 시작이란다.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네. 게다가 식당이 너무 캄캄하고 조명만 칼라풀. 세 돌 아이랑 가기에는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흥이 올랐는데 8시밖에 안 됐다니. 8시밖에 안 됐는데 생체 시계는 한밤중 느낌. “집에 술 있지?”하며 우리는 집으로 2차를 갔다. 남편이 안주를 대령했다. 과자와 과일 안주에 아이도 2차 먹부림을 했다. 아이는 갑자기 코모도 도마뱀에 꽂혀서는 한참이나 도마뱀과 공룡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나 홀로 발리 하이 한 병 비우고 9시에 취침했다는 이야기. 또르르.


                                                                                                          

                                                                                                          2019년 5월 3일. 발리에서


*2019년 봄 떠났던 발리 여행기. 멋진 여행 에세이를 써보겠다며 드문드문 메모장과 블로그에 글을 썼는데 결국 정리해서 올리지는 못했다. 완벽한 글쓰기라는 강박을 내려놓고 하나씩 옮겨 본다. 글만 읽어도 다시 여행지에 있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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