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서교동 204호-그 여자 시점
집을 보러 신혼부부가 왔다. 퇴근하고 바로 왔는지 옷차림이 단정하다. 30대 초반쯤 됐을까.
“우와 넓다.”
신혼부부는 집을 둘러보며 연신 감탄했다. 본인들이 지금 살고 있는 집에는 거실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부부는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집 구석구석을 적극적으로 살폈다. 둘 다 꼼꼼한 성격 같았다. 아이를 가질 생각이라 지금보다 좀 더 넓은 집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신혼부부의 모습이 남같지 않아 나는 평소에 비해 갑자기 말이 많아졌다.
“여기가 좀 넓게 나온 편이에요. 저희도 집 구하러 다녀 보니까 이렇게 거실 넓은 투룸이 잘 없더라고요. 2층이라 애 뛰어놀기도 좋고요. 단열이 잘 돼서 난방비나 냉방비도 많이 안 나와요.”
4년 전, 부동산 중개인과 함께 현관문을 열자마자 남편과 나는 맞은편 커다란 창을 가득 채우는 초록빛 가로수에 완전히 마음을 뺏겼다.
“황선우가 말했다. “창밖으로 플라타너스들이 눈 아래 일렁이는 게 바다 같았어.” 그리고 차에 타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나도 좋아.” 나는 그 순간 세상 모든 플라타너스 잎이 한꺼번에 펄럭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의 낭만적인 구절을 읽으며 4년 전 여름을 떠올렸다. 나도 그때 가로수 펄럭이는 소리를 들었던가.
직접 살아 보니 가로수 아래는 온동네 쓰레기 집결소였고, 초록빛 나무는 미세먼지와 매연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집 앞에는 연두색 마을버스가 지나다녔다. 2층이라 문을 열면 담배 냄새가 올라올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날 나와 남편의 눈에는 나무의 초록초록한 모습만 들어왔다. 지은 지 얼마 안 된 신축빌라는 네모 반듯한 구조에 세월의 흔적 없이 깔끔하고 깨끗했다. 널찍한 거실도 마음에 들었다. 그래 봤자 15평 남짓한 작은 빌라였지만.
바로 이 집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예산을 웃도는 가격을 듣고는 괜히 우리가 분수에 안 맞는 욕심을 부리는 건 아닐까 조바심이 났다. 뒤에는 다른 부부가 집을 보려고 줄을 서있었다. 전세 구하기 유난히 어렵던 시절이었다.
남편과 나는 급히 계약금을 입금했다. 부동산에서 1시간 가까이 기다려 집주인을 만났다. 이런 빌라를 10채 이상 가까이 갖고 있다는 집주인 아줌마의 손에는 평생 본 적 없는 크기의 왕 다이아몬드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남편은 건축업을, 아내는 임대업을 한다고 했다. 집주인은 부동산 중개인을 통해서 집 상태를 확인했다.
그전까지 살던 첫 신혼집은 1980년대에 지어진 빨간 벽돌 빌라였다. 끼익 낡은 쇠문을 열고 들어가면 지하에 사는 할아버지가 모아놓은 온갖 폐품이 빌라 입구에 아무렇게나 쌓여있었다.
겨울에는 밖에 있는 게 차라리 더 따뜻했고, 집들이를 하면 신발장과 화장실을 마주보며 밥을 먹어야 할 정도로 거실이 좁았다. 거실 소파와 TV 사이가 너무 가까워서 극장 맨 앞줄에서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빨간 벽돌도 아니고 현관문에서 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는 새 집. 이렇게 멀쩡한(!) 집에 살 수 있게 된 게 믿기지 않아 퇴근한 남편과 손잡고 몇 번이나 집 근처를 맴돌았다. 맞은편 놀이터에서 집을 올려다보며 우리가 살게 될 집 안 풍경을 상상했다.
새로운 집에서는 친구들을 불러 자주 집들이를 열었다. 허름한 고시원과 원룸을 전전하던 가난한 지방 출신 커플이 서울 한복판에 이런 집을 얻게 됐다는 게 뿌듯하고 감격스러웠다. 6명이 앉을 수 있는 커다란 식탁도 생겼다(식탁 바로 옆이 화장실이라는 게 함정^^)
내 집도 아니었고 한 달에 내야 할 이자가 상당했지만 그걸 감당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비로소 서울 시민 자격을 얻은 기분이었다. 상경한 지 10여 년 만이었다.
설렘은 얼마 가지 않았다. 이사 3개월 만에 나는 임신을 했다. 아이가 태어난 후, 나는 한동안 지독한 아파트병에 시달렸다. 아이 물건으로 발 디딜 틈 없는 집에 하루종일 갇혀 있으면 집이 나를 집어 삼킬 것 같은 망상에 시달렸다. 물건이 하나만 없어져도 영영 못 찾을까 초조했다.
SNS를 열면 하나같이 크고 깨끗한 집에서 아이가 예쁘게 놀고 있었다. 어떻게 사진을 찍어도 현관이 배경이 되는 우리집과는 달랐다. 점점 집에 누군가를 초대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그즈음 주변에서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은 지인들이 하나둘 아파트를 매입했다.
나도 대단지의 넓고 깨끗한 아파트로 이사가고 싶었다. 차 걱정 담배 걱정 안 하고 마음 편히 유모차 끌고 다닐 수 있고, 아이 안고 낑낑대며 계단으로 올라가지 않아도 되고, 큰 결심하지 않아도 아이를 데려갈 수 있는 안전한 놀이터가 있는 아파트.
아파트병 다음은 미니멀리즘병이었다. 부동산은 이미 계급의 문제였다. 이번 생에 아파트를 사는 것은 불가능했다(더군다나 내가 원하는 좋은 아파트는). 어차피 안 될 일에 마음 쓰지 말자고 생각했다.
2년 전 전세 재계약을 하면서 앞으로 작고 소박하게 살겠다고 다짐했다. 중요한 건 집 크기가 아니라 집의 여백이라고. 소비를 줄이고 꼭 필요한 것만 소유하며 살자고.
주기적으로 책과 옷을 마구 버렸다. 매일 손에는 물티슈가 들려있었고, 계속 집을 청소하고 정리했다. 손에 물기가 마르지 않았다. 꽉꽉 찬 쓰레기 봉지를 버릴 때마다 쾌감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꼈다.
그런데 이상했다. 비우고 치우려 할수록 스트레스가 더 늘었다. 아무리 집을 정리하고 물건을 버려도 집은 좀처럼 미니멀해지지 않았다. 아이가 10분만 놀아도 거실은 난장판이 됐다.
아이를 혼낼 수 없으니 화살은 남편에게 향했다.
너는 왜 음식을 먹고 여기 그대로 놓는 거냐
너는 이렇게 어질러져 있는 걸 보면 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냐
너는 왜 청소할 생각을 안 하는 거냐
이런 말을 직접 다 하지 않아도(물론 직접 할 때도 많았다) 내 표정에는 이미 불만과 짜증이 가득했다. 내가 물티슈를 들고 씩씩대며 정리를 시작할 때마다 남편은 내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 못 했다. 혼자만 하는 미니멀리즘은 종종 부부싸움의 원인이 됐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는 계속 집을 어질렀다. 그게 자신의 할 일이라는 듯.
어떤 날은 미니멀리즘이면 다 될 것 같았다. 불필요한 것 싹 다 버리고 깔끔하게 정리한다면 이 집에 계속 사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집 아래층은 필로티 주차장이었다. 이 정도 입지에, 아이가 마음껏 뛰어놀아도 되는 집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사 하려면 신경 쓸 것도 많고 돈도 많이 들었다. 중요한 건 집이 아니라 내 마음가짐이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후에도 미니멀리즘병과 아파트병은 미친X처럼 번갈아 찾아왔다.
물건을 버릴 때는 앞으로는 물욕을 줄여야지, 함부로 물건을 들이지 말아야지 결심했다. 결심은 얼마 가지 않았다. 또다시 옷을 사고 책을 사고 장난감을 샀다. 그리고 그 소비 때문에 또 스트레스를 받았다. 다 갖다 버리고 싶었다. 비우고 싶었다.
이게 다 집이 좁아서 생긴 문제가 아닌 건 알고 있었지만 가끔은 모든 게 다 집 때문인 것 같았다.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이왕이면 좀 더 넓은 집에서.
결국 우리는 4년 만에 서교동 빌라를 떠나기로 했다. 전세금을 조금 더 얹어서 지금 사는 집보다 조금 더 넓고 조금 더 오래된 빌라를 계약했다.
이사하는 날, 짐이 다 나간 집을 보는데 깜짝 놀랐다.
‘이 집이 이렇게 좁았나. 처음 이사 들어올 때는 정말 넓어 보였는데.’
집은 그대로인데 내 마음만 계속 변했다.
이 집을 꽤 오래 미워했다. 아이가 가려워하며 잠을 못 자면 결로 때문에 곰팡이가 생겨서 그런 게 아닐까 의심했고, 가끔은 집에 있는 시간이 숨막히게 싫었다. 이 정도 집밖에 살 수 없는 현실을 원망했고, 그런 속물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나 자신에게 수없이 실망했다.
이 집을 참 많이 사랑했다. 아이 생각도 없던 신혼부부에게는 아이가 생겼고, 아이는 이 집에서 40개월 가까이 자랐다. 돌이켜보면 즐겁고 행복한 일은 모두 이 집에서 일어났다.
무엇보다 이 집은 아이에게 최고의 놀이터였다. 이제 아이는 발뒤꿈치를 들고 걸어야 할 테고 마음껏 뛰지도 못할 거다.
집을 떠나기 전, 집주인을 대신해 부동산 중개인이 집 상태를 확인하고 영수증을 써줬다. 집주인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집주인은 이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이나 할까.
“지구는 공기 때문인지 유통기한이 있대. 우리 얘기도 그래서 끝이 있나봐.”-신재평 ‘여름날’
새로운 집으로 떠나는 차안에는 남편과 내가 연애 시절에 좋아하던 노래가 흘러 나왔다. 여름의 가로수는 여전히 눈부셨다.
“내일이 오면 괜찮아지겠지. 잠에서 깨면. 잊지 말아줘. 어제의 서툰 우리를.”
안녕, 204호-그 남자 시점
https://brunch.co.kr/@hongmilmil/59
제가 저자로 참여한 책이 나왔어요. 나를 지키고 싶은 엄마들 ‘마더티브’가 쓰고 그린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 주요 온라인 서점, 오프라인 서점에서 구매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