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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Jun 07. 2021

어린이집 생일카드 때문에 생긴 일

엄마는 아이를 모른다

“엄마, 근데 친구들은 나를 싫어하나 봐. 아무도 생일카드 달라고 나한테 말 안 해.”


어린이집에 다녀온 아이가 시무룩한 얼굴로 말한다. 매달 한 번 열리는 어린이집 생일잔치. 그달 생일인 아이들은 자신에게 생일 카드 전달해 줄 아이를 직접 고를 수 있다.


“아니야. 친구들이 날날이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냥 더 좋아하는 친구가 있을 뿐이야. 날날이도 OO이를 제일 좋아하잖아. 그럼 다른 친구들은 싫어하는 거야?”

“아니. 나는 친구들 다 좋아. 근데 OO이가 조금 더 좋아.”

“거봐. 다른 친구들도 똑같아. 조금 더 좋은 친구가 있을 뿐이야.”


6세가 되면서 아이는 부쩍 친구 관계에 예민해졌다. 가장 좋아하는 친구, 그다음으로 좋아하는 친구가 생겼고 좋아하는 친구가 다른 친구와 더 친하게 지내면 질투하는 마음, 서운해하는 마음이 생겼다. 다른 친구와 자신을 비교하는 일이 잦아졌다.


애써 쿨한 척했지만 나는 이미 아이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있었다. 달뜬 얼굴로 생일 케이크 앞에 앉은 친구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를 잔뜩 기대했다 이내 실망하는 아이의 동그란 얼굴을.


아이를 재워 놓고 어린이집 카페에 들어가 생일잔치 사진을 본다. 생일인 아이와 생일 카드 전달하는 아이가 어색한 표정으로 껴안고 있는 사진. 사진 제일 마지막, 날날이는 같은 방 친구들과 나란히 앉아 손으로 브이를 그린 채 해맑게 웃고 있다. 어쩐지 속이 탄다.



인기 없는 아이


나는 인기투표에서 선택받지 못하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한 번도 반장 부반장이 돼본 적 없다.


그럼에도 매년 학기 초만 되면 반장 선거 며칠 전부터 온 신경이 거기에 쏠렸다. ‘혹시 누군가 나를 추천하지 않을까. 누군가 투표지에 내 이름을 쓰지 않을까. 나라도 내 이름을 써야 하나. 그 한 표가 나인 줄 알면 어쩌지.’ 안 될 걸 알면서 매년 수상소감을 준비하는 만년 후보처럼, 혼자 잔뜩 기대했다 실망했다 체념했다를 반복했다.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건 너무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엄마에게 속상하다고 말한 적도 없다. 언젠가 엄마가 학부모 면담을 다녀와서 “현진이가 인기 있는 스타일은 아니"라고 했다는 선생님의 말을 전해줬을 때 가슴이 쿵 떨어졌다.  


“대수롭지 않은 일 같지만, 도시락을 혼자 먹어본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곤혹스러운 일인지 알 것이다. 그것의 고통은 내가 혼자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혼자인 것을 모두가 ‘보고’ 있다는 데 있다. 나는 그것을 견딜 수 없었다.” -김애란 <영원한 화자>


인기 없고 자존심 센 아이가 선택한 나름의 생존법은 1.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2. 인기에 전혀 관심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 3. 많이 웃는 거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따돌림을 당한 적 있다. 수업 시간에 소리 내어 책 읽는 목소리가 재수 없다 했던가. 내가 잘난 척을 해서 싫다 했던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혼자여도 괜찮은 척 친구가 없어도 괜찮은 척. 따돌리는 게 재미 없어진 아이들은 따돌림을 멈췄다.


지금은 생각한다. 그때 엄마한테 솔직하게 울면서 힘들다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울어야 할 때 울지 못한 아이는 미움받을까 두려운 마음을 꽁꽁 숨기는 어른이 되었다. 작은 티끌 하나에도 내 마음에는 폭풍이 치는데 겉으로는 잔잔한 호수인 척 자존감을 연기했다. 쿨한 척, 타인의 애정 같은 것에는 관심 없는 척.



사랑한다는 말


남편은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내내 반장, 부반장을 놓치지 않았다 했다. 학교 가는 게 매일 즐겁고 기대됐다는 남편의 이야기를 들으며 진심으로 놀랐다. 그게 가능한 일이구나.


남편은 감정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게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가르쳐 준 사람이다. 무한한 애정을 표현하고 또 갈구하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남편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있게 됐다.


아이가 태어난 후, 나는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이 되었다.


토실토실 쫀득쫀득한 볼과 손

웃을 때 나처럼 반달이 되는 눈

장난칠 일이 떠오르면 다른 곳을 쳐다보며 살짝 올라가는 눈꼬리

용수철이라도 달린 것처럼 잘도 뛰어다니는 두 다리

“엄마 좋아~”하며 와락 안기는 단단한 몸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어떤 사랑은 결코 숨길 수 없다는 걸. 아이에게는 내가 갖고 있는 결핍이 없기를 바랐다. 이미 자신이 갖고 있는 사랑만으로 충만해서 타인의 관심과 인정에 연연하지 않는 아이가 되기를. 말과 말 사이 눈빛과 공기를 부디 눈치 못 채기를.


아이는 대체로 밝고 즐겁지만 친구들의 말이나 주변의 분위기를 예민하게 포착한다. 오늘은 누가 나한테 뭐라고 했어. 오늘은 누구랑 놀아서 즐거웠어. 오늘은 누가 나랑 안 놀아서 속상했어.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길부터 그날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한다.


요즘 아이는 걱정이 많다. 여드름이 날까 봐 걱정, 사랑니가 아플까 봐 걱정, 군대 가는 게 무서워서 걱정. 아이에게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봐도 아이의 걱정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하루는 자기 전 아이가 말했다.


“엄마, 친구들이 나를 싫어할까 봐 그게 걱정이야.”


나는 아이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누구나 그런 거야. 엄마도 무서워. 아마 평생 그럴 걸.”



나와는 다른 존재


그냥 생일잔칫날 등원하지 말까@unsplash


이번 달에는 아이의 생일과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 A의 생일이 함께 있다. 아이는 A에게 생일 카드를 달라고 할 거라 말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날날이는 A에게 카드를 받았는데 A가 날날이 아닌 다른 친구에게 카드를 달라고 하면 어쩌지. 날날이가 크게 실망하지 않을까. 그 얼굴을 또 어떻게 보지.


하지만 좋아하는 친구에게 카드를 받는 건 생일인 아이가 누릴 수 있는데 큰 기쁨인데. 설령 내가 선택받지 못해 서운하고 속상해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그만큼 좋아하지 않는 건 언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니까. 어쩌면 평생 겪어야 할지 모를 일이니까. 아. 그냥 생일잔칫날 등원을 하지 말까. 나는 또다시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었다.


저녁을 먹다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날날아. 근데. 만약 A가 다른 친구한테 카드 받고 싶다 그러면 어떨 것 같아?”


아이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난 그래도 괜찮아.”


아이는 정말 괜찮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다시 물었다.  


“왜? 왜 괜찮아?”

“음. A는 가끔씩 나랑 안 놀 때도 있거든.”


아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이 선택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 그러면서도 A에게 생일카드를 받겠다고 하는 마음은 뭘까. 나라면 A가 다른 친구를 선택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A를 선택하지 않을 텐데. 아이는 나보다 훨씬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다. 그리고 현명했다.


눈물이 나오는 걸 간신히 참으면서 아이에게 웃으며 말했다. 목이 메었다.


“맞아. 날날아. 엄마도 아빠가 좋지만 아빠랑 놀기 싫을 때도 있어. 좋다고 늘 같이 노는 건 아니야.”


“근데 나도 A 말고 다른 친구랑 놀고 싶을 때도 있어. 난 맨날 마음이 바뀌어.”


“맞아. 다들 마음이 변하는 거야.”


내 속에서 나온 아이는 분명 나와 다른 존재다. 6살 아이의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그런 아이에게 자꾸만 나의 과거를 투영하며 신파를 찍고 있었다. 아이의 감정을 다 안다고 생각하면서.


이미 아이는 내 손이 닿을 수 없는 세상으로 저만치 달려가고 있다. 내가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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