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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Aug 08. 2021

다음 주에 폐업하거든요

O와 X, 그 사이의 세계

엄마가 서울에 왔다. 6개월 만이다. 그동안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참 많았는데 어쩜 엄마를 한 번도 안 불렀을까. 나도 참 나다. 악으로 깡으로 울면서 버티다 이러다 죽겠다 싶어야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 엄마 앞에서는 자꾸만 괜찮은 척하고 싶어 진다.


띵동. 엄마는 5층 현관 앞에서 벨을 눌렀다. 보통 사람들은 부산에서 출발할 때 혹은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라도 연락할 것 같은데 엄마는 매번 마중도 배웅도 다 필요 없다고 한다. 혼자 택시 타고 알아서 오고 가면 되는데 뭘 귀찮게 하냐고. 역시 그 엄마에 그 딸인가(엄마도 나도 K-장녀…)


엄마가 평소에 잘 먹지 않을 것 같은 점심 메뉴를 골랐다. 발리 음식점에서 아얌삼발마따라는 이름도 생소한 생소한 닭고기 요리와 누구나 좋아할 맛의 나시고랭을 먹었다. 커피는 엄마가 사겠다고 했다.


평일 낮인데도 번화가라 그런지 어떤 가게에는 사람이 꽤 많았다. 길 모퉁이를 도는데 엄마가 저기도 카페인 것 같다고 가보자고 했다. 날이 더워서 그만 걸었으면 하는 눈치였다.  


“저기… 영업하시나요?”


입구 안쪽에 커튼이 처져 있어서 내부가 잘 안 보였다. 주인장이 들어오라 했다. 주인장은 커피를 내려주고는 옆 테이블에서 책을 보기 시작했다. 10평도 채 안 되는 카페 곳곳에 꽂혀 있는 책, 벽에 걸려 있는 그림, 흘러나오는 음악, 커피잔, 손글씨… 구석구석 주인장의 취향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나도 이런 아늑한 공간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엄마는 아이스 카페라테를 시켰다.



몰래카메라 아니지?


커피를 마시다 말고 엄마가 주인장에게 말했다@unsplash


오랜만에 만난 엄마는 할 말이 많다. 아빠 8남매, 엄마 4남매. 형제자매의 아들딸 이야기를 다 해줄 기세다. 엄마의 세상은 OX퀴즈 같았다. 좋은 대학 갔으면 성공, 돈 많이 벌고 안정적인 직장 들어갔으면 성공, 결혼했으면 성공, 아이 낳았으면 성공, 집 있으면 성공. 엄마가 보기에 내 인생은 O일까, X일까. 나는 영혼 없이 맞장구치며 카페 안을 들여다본다. 분주한 바깥과 달리 카페 안에는 나와 엄마 그리고 주인장뿐이다.


커피 마시다 말고 엄마가 옆에 있는 주인장에게 말했다.


“저기… 커튼을 열어 두면 사람들이 더 올 것 같은데.”


뭐? 난 귀를 의심했다. 정수기 관리사인 엄마는 20년 넘게 고객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 친화력 좋은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엄마! 남의 가게에서 왜 오지랖이고!”


말려도 이미 늦었다. 그러자 주인장은 웃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말씀하셔도 돼요. (가게 안이) 잘 안 보이기는 하죠.”


커튼마저 멋스럽다 생각하고 있는데 주인장이 말을 이었다.


“사실은… 여기 다음 주에 폐업하거든요. 저도 정리할 것도 있고 해서 커튼 쳐놓고 손님들이 문 열었냐고 물어보면 들어오시라고 하고 있어요.”


잠깐만. 이거 몰래카메라 아니지. 폐업이라니. 순간 정적. 하지만 당황하지 않는 엄마.


“여기가 안쪽이라 그런갑다. 길가에 있는 카페는 손님 많던데.”

“엄마! 폐업한다는데 그런 이야기를 왜 하노!”


정색해 보지만 이미 엄마의 고삐는 풀렸다. 주인장은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어머님들은 다 말씀하셔야 하더라고요. 저희 엄마도 맨날 똑같은 말씀 하세요.”


그 말에 용기를 얻었는지 엄마는 말을 이어갔다.


“걱정돼서 그렇지. 계속 앉아 있는데 우리밖에 손님이 없으니까.”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이번에는 내가 질문을 했다.


“여기서 카페 하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지나가면서 계속 보기는 했는데 오늘 처음 왔거든요.”

“저는 작년에 시작했어요. 그전에도 카페였다고 하더라고요. 이게… 퇴사하고 하고 싶었던 일이라 시작한 건데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다시 정적. 엄마는 카페를 둘러보다 나를 보며 말했다. 카페에 책이 가득한 게 꼭 너 같다고. 너도 퇴사하고 지금 고생하고 있지 않냐고. 그러게, 잘 다니던 회사 왜 그만두고…. 카페에는 Daniel Caesar의 Japanese denim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가 참 좋아하는 노래. 그러게. 내가 카페를 차린다면 꼭 이런 모습일 것 같다. 매끈한 인스타 갬성은 아니더라도 나만의 철학과 정성이 느껴지는 곳.



엄마를 이해시킨다는 것


다시 주인장은 주인장의 일을 했다. 나는 엄마와 대화를 이어가며 머릿속으로 방금 전 주인장의 말과 표정을 곱씹었다. 어쩌면 무례할 수도 있는 질문에 웃으며 답하게 되기까지 그는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폐업을 결심하기까지 어떤 고민을 했을까.


누군가는 주인장의 삶을 ‘그래서 퇴사하고 카페 차렸는데 망했대’로 기억할 것이다. 그러게 퇴사하고 카페 차리는 게 어디 쉬운 일인 줄 알았냐고, 어떻게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있냐고, 하고 싶은 것과 돈 버는 건 다른 문제라고, 이제 정신 차리고 다시 취업을 하든지 공무원 시험 준비하라고. 너도 나도 훈수를 둘 것이다.


지금의 내 모습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기억될지 모른다. ‘그래서 퇴사하고 창업했는데 돈도 못 벌고 몸도 마음도 힘들대’라고.


엄마는 몇 번이나 내게 물었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힘들게 사는 거냐고. 그냥 남들처럼 수월하게 살면 안 되냐고. 다시 회사에 들어가면 안 되냐고. 엄마는 내가 쓰는 글의 애독자다. 나의 번아웃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 평소라면 “아 그냥 내가 알아서 할게. 걱정하지 마”라고 말을 잘랐겠지만 지금 내 모습은 내가 봐도 걱정스러웠다. 파리한 얼굴, 초점 잃은 눈빛. 몸속에 에너지가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았다. “방법을 찾아야지, 찾으면 되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제야 생각났다. 그래. 이 말을 듣기 싫어서 내가 그동안 엄마를 안 봤구나. 도움의 손길이 아무리 아쉬워도 엄마를 부르지 않았구나.


환갑이 넘은 엄마는 여전히 일을 한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부터 엄마는 한시도 일을 쉰 적 없다. 일을 지속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생계였던 엄마에게는 돈보다 안정보다는 가치를 좇는 딸의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질 것이다. 자신보다 훨씬 많이 배운 딸이 배부른 고민 하느라 고생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것이다.


엄마는 알까. 내가 좋아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 그러면서도 사회적으로 도움 되는 일을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방황과 고민의 시간을 보내왔는지. 퇴사를 하고 창업을 하고 스스로 일을 만들어가며 하루하루 얼마나 설레고 반짝이는 시간을 보냈는지. 번아웃을 겪으며 길을 잃은 것과는 별개로 그 시간은 그 시간 그대로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는 걸. 당장 많은 돈을 벌지 못하고 숫자로 증명할 수 있는 명성을 얻지 못하더라도 나는 꽤 행복했다는 걸. 어떻게 엄마를 이해시킬 수 있을까. 나는 O와 X 사이 보이지 않는 서사를 세세하게 들여다보며 O와 X의 경계를 서서히 허물고 싶은 사람이라는 걸.


이런 이야기를 엄마에게 진지하게 말한 적은 없다. 엄마는 당연히 이해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엄마와 나의 세계는 다르다고.


삶을 납작하게 바라보는 엄마가 야속할 때도 있었지만 엄마의 걱정은 사실  마음속 소리이기도 했다.  또한 성공과 실패의 세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엄마의 질문이 부담스럽고 불편했다.



실패가 아닌 다른 이름


카페에는 손님들이 남기고 간 포스트잇이 벽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함께 온 사람들과의 추억이 담겨 있는 메시지. 내가 앉아 있는 자리에 앉아 포스트잇에 손글씨를 썼을 누군가를 생각했다.


나는 나조차 알지 못하는 카페의 시작을 기억하고 싶었다. 주인장이 고민 끝에 퇴사를 하고 꿈에 그리던 카페를 계약하고 공간을 어떻게 꾸밀지 구상하며 손님들과 관계를 맺어가고 자신만의 취향을 담아 공간을 채워가는 모습을. 적어도 나는 그 모습을 기억해주고 싶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김금희의 소설 <복자에게>에는 모든 삶에서 판사라는 에고를 놓지 않고 살아가는 이영초롱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영초롱은 유년 시절 기쁨과 슬픔이 있는 고고리섬에서 일련의 사건을 겪고 법복을 벗기로 한다. 영화 일을 하고 싶었던 영초롱의 동생 영웅은 프로덕션을 나와 그저 보관을 목적으로 영상을 찍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자 영초롱은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이름 붙일 수 있을지 묻는다.


“그래, 실패는 당연히 아니지만 그렇다면 뭐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까?”
“이름을 붙인다고?”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사표를 낸 것과 너가 더이상 상영을 목적으로 하는 영화를 하지 않는 것.”

영웅은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한동안 생각하더니 “글쎄, 그런 건 인생을 더 깊이 용인한다는 자세 아닐까?”라고 결론 내렸다.

-김금희 <복자에게> 중에서


혹시 이 글을 볼지 모르겠지만 이름 모를 카페의 전 주인장에게 이 문장을 선물하고 싶다. 어쩌면 우리는 인생을 좀 더 깊이 용인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그동안 참 고생 많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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