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밀밀 Jan 30. 2019

“엄마, 나 퇴사해” 친정엄마의 놀라운 답변

내 인생과 엄마 인생은 별개라 말해왔지만

페북에 알림이 떴길래 들어가 보니 최땡땡님이 마더티브 모든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러놨다. ‘엄마가 페북을 했어?’ 놀라움도 잠깐, 친구 한 명 없는 유령 계정으로 열심히 따봉을 누르고 있었을 엄마를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났다.


엄마는 우리가 만든 유튜브도 찾아보더니 너무 재밌다며(그런데 넌 말이 너무 빠르다며 팩폭) 아빠랑 맨날 하루에 한 번씩 마더티브 유튜브를 보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해야 도움되는 거 아니냐고.



그 딸에 그 엄마  


엄마에게 퇴사 소식을 알린 건 모든 게 다 결정되고 난 후였다. 서른 넘은 딸은 더 이상 삶의 중요한 결정을 엄마와 상의하지 않는다. 결혼할 때도 날짜 다 정해놓고 통보했고, 출산할 때도 아이 태어나고 나서 연락했다.


동생 낳다가 죽을 뻔한 경험을 했던 엄마는 내가 진통할 때 곁에 있어주고 싶어 했다. 부산-서울 거리가 있으니 진통 시작할 때 무조건 연락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어차피 분만실에 남편이랑 들어갈 건데 엄마가 와봤자 무슨 도움이 돼’ 무심한 딸년은 엄마 말을 듣지 않았다.


퇴사를 할 때쯤, 나는 몸이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한 달 넘게 어지럼증과 장염이 계속됐고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이러다 길거리에서 쓰러지는 건 아닐까(그럼 애 어린이집 하원은 어떡하지) 걱정하며 매일 출퇴근했다. 갑상선에 이상이 생기면 어지럽고 기운 없을 수 있다고 해서 피검사를 했고, 생리통이 유난히 심하기에 자궁 초음파도 했다.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렇게 몸이 약해서 무슨 일을 하겠노?”



퇴근길, 엄마에게 하소연하러 전화했더니 돌아온 말. 늘 이런 식이다. 그 체력, 그 성격에 대체 뭘 하겠냐고. 너는 독립심이 부족하다고, 참 손이 많이 간다고, 참 나약하다고. 엄마는 자주 내 자존감을 흔들어놓는 말을 했다.


가만히 있을 내가 아니다. 바로 반격을 했다.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렇지. 주변에는 다 친정 엄마가 도와주는데. 나는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힘들지.”


 

엄마 속 긁는 말을 귀신같이 아는 딸. 가만있을 엄마가 아니지. 바로 반격.

 


“그러게 누가 그 멀리까지 가서 살라 그랬나. 니가 부산에 있었으면 내가 도와줬지. 니가 서울 간 거잖아.”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만 낸 채 통화는 종료. 그러고는 한참 있다 엄마에게 전화해서 한 소리가 “나 퇴사해”였다.



퇴사 통보


엄마와 딸은 서로에게 늘 생채기를 냈다(이미지 출처 : pexels)



그동안 퇴사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면 엄마는 말했다. 세상에 그런 좋은 직장이 어딨냐고, 니 성격에 다른 데서는 조직 생활 못한다고, 그럼 이제 뭘 할 거냐고. 공무원 준비하라고(응? 이상한 전개). 맞다. 일 그만두면 둘째 가지라는 소리도 했지.  


그럴 때마다 나는 너무 화가 났다. 엄마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걸까. 엄마는 내가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거나, 애만 보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엄마에게 짜증과 막말을 퍼부었다.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아, 내가 알아서 할게.” 엄마에게 미주알고주알 모든 걸 이야기하던 딸은 언제부턴가 속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됐다. 그러다가도 뜬금없이 엄마를 찾았지만.

 

“엄마 나 퇴사하기로 했어. 더 늦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이 있어서 해보려고. 내가 대책 없이 퇴사하는 건 아니고 이런 계획이 있고, 이게 오래 한다는 건 아니고 1년만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다시 구직 할 거야, 다시 돈 벌 거야...”



잔뜩 긴장한 채 방어태세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전화기 너머에서 생각지 못했던 답변이 돌아왔다.



“그래. 잘했다. 젊은 사람이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아야지.”



엄마는 내가 한동안 연락이 없기에 무슨 일이 벌어졌구나 했단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아빠한테는 엄마가 좀 말해달라고 했더니, 엄마 아빠랑 상의할 게 뭐 있냐고 이제 어른인데 알아서 하면 된다는 엄마. 그 말을 듣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아이 하원도 못 시키고 어린이집 현관 앞에서 한참을 울었다.

  


엄마의 마음


내게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라고 한 건 엄마였다(이미지 출처 :  pexels)


내 인생과 엄마 인생은 별개라고 늘 말해왔다. 하지만 퇴사하면서 엄마 아빠를 떠올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니가 그 회사 입사할 때 진짜 기뻤는데...” 엄마는 9년 전을 떠올리며 말했다.


부모님의 스마트폰 메인화면에는 내가 일하는 언론사 앱이 깔려있었다. 지난 9년간 엄마 아빠는 내가 쓴 기사, 내가 편집한 기사를 늘 찾아 읽었고, 선거 결과가 나올 때마다 회사 상황을 걱정했다. 아빠는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후원회원으로 가입하기까지 했다.  


남동생이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에서 나는 부모님의 유일한 자랑이었을 거다. 대학, 직장, 결혼, 출산... 모범생 코스를 착착 밟아왔다. 부모님 때문은 아니었지만 부모님을 실망시키고 싶지도 않았다. 그랬던 딸이 더 좋은 회사에 가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느라 회사를 그만두겠다니. 부모님이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제 부모님은 서울에 있는 딸에 대해 친척들에게 뭐라고 소개해야 할까. “결국 애 보느라 회사 그만뒀구나”라는 소리를 듣지는 않을까. 하지만 그게 내가 퇴사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될 순 없었다. 나는 이기적인 딸년이니까.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불편한 건 사실이었다.


“진짜 꼭 잘 됐으면 좋겠다.”



엄마는 내가 꼭 성공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도전해야지, 지금 아니면 언제 해보겠냐고. 요즘 여자들은 예전과는 다르지 않냐고.


생각해 보면 엄마다운 반응이었다. 22살, 대학 생활에 적응 못하고 휴학했을 때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먼저 권유한 건 엄마였다. 거기 가면 돈도 벌고 영어도 배울 수 있다고. 엄마는 당장이라도 떠나라고 했다. 못할 게 뭐 있냐고. 넓은 세상으로 가라고. 세상이 바뀌었다고.  


그러다가도 엄마는 서울 우리 집에 오면 우리 딸내미는 살림은 정말 꽝이라고, 남자가 일 열심히 하는 게 뭐가 문제냐고, 남편 힘들게 하지 말라고 속 뒤집어놓는 말을 했다.  


아마 엄마도 갈팡질팡 할 것이다. 딸이 좋은 엄마, 좋은 아내, 좋은 며느리 역할하며 평범하게 살았으면 싶다가도, 엄마, 아내, 며느리 역할에서 벗어나 자신의 꿈을 이뤘으면 싶었다가. 그런 마음으로 내가 만들고 있는 콘텐츠를 보고 있겠지.


“최땡땡님이 또 폭풍 좋아요를 누르셨어요!!!”



마더티브 단톡창에 알람이 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