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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Feb 26. 2020

친정엄마의 고백 "나 사실 BTS '아미'야"

엄마에게 방탄이들이 있어서 다행이야

“장모님은 그런 거에 좀 약하더라. 권위”      


처음 엄마가 BTS를 좋아한다고 했을 때 나도 남편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해외에서 유명하고 인기 있다 그러니까 덩달아 좋아하는 거 아니야? 원래 BTS 관심도 없었잖아. 정승환 좋아하지 않았어?


한순간 열병인 줄 알았던 엄마의 사랑은 점점 깊어졌다. 지난해 부산 갔을 때였다. TV로 가요대상을 함께 봤다. BTS가 제일 마지막에 나왔다. 엄마는 감탄 감탄을 연발했다. TV 끄고 자려는데 엄마는 유튜브로 다시 BTS 영상을 보고 있었다. “뭐야, 방금 본 거잖아.”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인지 나는 정확히 안다. 나도 왕년에 덕질 좀 해본 사람이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은 내내 H.O.T, 젝스키스, 이상민(가수 말고 농구선수) 등등 덕질로 점철돼 있다. 용돈 모아서 잡지 사고, 방송 나오면 비디오테이프 녹화하고, 가사지 너덜너덜해지도록 전곡 가사 다 외우고, 시간 날 때마다 사서함 확인하고, 팬레터 쓰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팬미팅을 갔다 오기도 했다. 보고 또 봐도 또 보고 싶고 또 생각나는 게 덕질의 핵심이다.      


내 덕질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언론고시생 시절, 박재범에 빠져서 밤새도록 영상 보고 커뮤니티 활동하고... 하마터면 취업도 못 할 뻔했다. 그랬다. 내 덕질 유전자는 엄마에게 온 것이었다. 아니 내 덕질 유전자가 뒤늦게 엄마한테 간 건가.    

            



기승전-BTS


엄마가 충격 받은 블랙스완 무대


지난주 금요일 오후, 엄마가 부산에서 서울에 왔다. 엄마 오기 전만 해도 부산은 코로나 안전지대였는데 주말 사이 부산, 아니 전국이 뚫려버렸다. 뉴스를 볼 때마다 확진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있었다.


남편은 주말에도 출근하고, 엄마와 나는 소파에 나란히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이는 엄마와 할머니 번갈아 가며 놀아달라 했다.


코로나 때문에 너무 심난하다던 엄마는 갑자기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우, 얘들은 맨날 비행기 타고 시차 안 맞아서 어떻게 사노.”      


비행기? 시차? 이스라엘 간 사람들 얘긴가 했는데 엄마 폰을 들여다보니 BTS 입국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뭐야, 이런 것도 보나.”

“BTS는 귀국하고 입국하는 게 다 화제야. 얘네가 무슨 내기 같은 걸 한단 말이야.”

“아...”


엄마는 시차가 안 맞아서 고생하고 있을 방탄이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엄마와의 대화는 모든 게 기승전-BTS로 끝났다. 어느 날은 "뉴질랜드가 진짜 좋다더라"면서 BTS가 뉴질랜드 가서 번지점프 한 이야기를 꺼냈다. “다들 무서워하는데 막내 정국이만 안 무서워하더라니까.” 엄마 목소리에 생기가 묻어났다.


“세상에, BTS 새 앨범이 전 세계 차트에서 1위부터 20위까지 줄을 세웠단다. 진짜 대단하제.”

“걔네 새 앨범 나왔나?”

“블랙 스완 못 봤나. 진짜 너무 충격받았다니까. 어떻게 아이돌이 이런 걸 하지. 너무 예술적이제.”   


극한직업 할머니


손자가 보고 싶어서 왔다는 엄마는 손자를 보다가도 수시로 스마트폰으로 방탄이들을 들여다봤다. 어떨 때는 손자 보는 것보다 방탄 보는 게 먼저인 것 같기도 했다. 생활 기저에 방탄이 깔린 느낌이랄까. 언젠가 칠순을 앞둔 아빠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니는 내보다 BTS가 더 좋제?”(노년의 사랑은 미스터리...)


엄마는 BTS를 알게 된 후 다른 아이돌 무대는 시시해서 못 보겠다고 했다. 엄마는 지민이가 제일 좋다고 했다. 춤을 그렇게 잘 춘다고.      


“다른 사람들은 만나면 다 미스 트롯, 미스터 트롯 이런 이야기 하거든. 내 나이에 안 맞게 내가 비정상인갑다.”

“다 취향이 있는 거지.”

“근데 60대 아미도 있단다.”

“그걸 엄마가 어떻게 아는데.”

“댓글 보니까 자기도 60대라고 하는 사람들 많던데. 근데 정식 아마 되려면 시험을 봐야 한대. 문제가 엄청 어렵대...(후략)...”




기차역에서 춤을  


이날이 처음이자 마지막 외출이었다


지난해 환갑이 된 엄마는 얼마 전 그동안 쓴 일기장을 모두 정리했다고 했다. 엄마 나이 정도 되면 그런   미리미리 정리해야 한다고. 그게 다 엄마 개인 기록이 되는 거 아니냐 했더니 자기가 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남들이 보는 걸 원치 않는단다(근데 엄마, 내가 어릴 때 좀 많이 훔쳐봤어...).


엄마가 없는 세상은 한 번도 떠올려 본 적 없는데 엄마는 조금씩 마지막을 준비하나 보다. 엄마는 그게 요즘 추세라고도 했다. 역시 60대에 BTS 좋아하는 트렌드에 민감한 사람답다.      


월요일 오후, 어린이집 휴원이 결정됐다. 생업이 있는 엄마는 다음날 부산에 돌아가야 했다. 시부모님도 생업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고민 끝에 어린이집 긴급 보육을 신청했다. 괜히 눈물이 났다.     


엄마 속을 들쑤시는 모진 말도 했다. 다른 집은 다 조부모가 봐준다고. 우리만 맡길 곳 없다고. 이러다 우리 애만 어린이집에 남는 거 아니냐고. 엄마는 아무 도움이  돼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는 이미 엄마 품을 떠난 자식이고 엄마의 생계를 책임져줄 수 없다. 내게는 내 인생이 엄마에게는 엄마 인생이 있다. 그걸 알면서도 자꾸만 서운해하고 엄마에게 상처를 준다.


화요일 아침, 아이 등원을 시킨 엄마는 집 정리를 해놓고 부산으로 떠났다. “너희들만 남겨놓고 오려니 마음이 무겁네.” 부산에 도착한 엄마에게 카톡이 왔다.


나는 재택근무라도 할 수 있지, 고객 방문 서비스를 해야 하는 엄마는 코로나 때문에 당분간 생활이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아빠 일터도 며칠간 문을 닫는다. 그러고 보니 엄마와 나흘 내내 함께 있으면서 외식 한번 못 했다. 엄마가 좋아하는 파스타도  먹었다.     


엄마가 떠난 집, 소파에 앉아 BTS 무대를 봤다. 웅장한 기차역에서 폭발할 듯한 에너지로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엄마 말처럼 정말 예술이었다. 엄마도 이 영상을 몇 번이나 보고 또 보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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