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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Aug 11. 2021

출산 5년 만에 '산모 교실' 기획한 이유

세상에 없던 '산모 교실'을 시작합니다

“내 삶은 수백 년 동안 아이를 키워온 과거 여성들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다. 하지만 큰 의미가 있는 작은 차이들이 있다. 내게는 글을 쓰고 생각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충분하지는 않지만, 있다. 그리고 나는 솔직할 수 있다. 만약 지금 아이를 키우고 있는 우리들이 진실을 말할 수 있다면, 결국 우리는 앞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수전 그리핀 ‘페미니즘과 엄마됨’, <분노와 애정>  


‘마더티브 산모 교실’ 모집 글을 올리고 책 <분노와 애정>을 다시 펼쳤다. “만약 지금 아이를 키우고 있는 우리들이 진실을 말할 수 있다면, 결국 우리는 앞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라는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이 책은 서른여덟에 첫 아이를 낳은 사진작가 모이라 데이비가 여성 작가 16인의 ‘엄마됨’(motherhood)에 대한 글을 엮어서 만들었다. 60년간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글은 시대도 상황도 주제도 글의 톤도 들쑥날쑥하다. 완결성 있는 글도 있지만 맥락을 알기 어려운 토막글의 나열도 있다. 이 ‘매끈하게 정리되지 않음’ 조차 엄마의 삶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모이라는 분노와 애정이 뒤섞여 있는 엄마됨에 대한 솔직한 글들이 자신에게 “생명줄"이었다고 말한다.


나를 지키고 싶은 엄마를 위한 서사를 담는 웹진 ‘마더티브’가 산모 교실을 연다. 이름하야

 

‘세상에 없던 산모 교실’.


지난 월요일 모집 페이지를 오픈했고, 9월 1일부터 온라인으로 6주간 진행한다.


@마더티브


아이 말고 엄마를 위한 산모 교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는 3년 전 처음 마더티브를 시작할 때부터 나왔다. ‘세상에 없던 산모 교실’이라는 이름도 3년 전에 지었다. 그러니까 무려 3년을 묵혀 온 기획이라는 거다.


마더티브에 이어 창고살롱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인성님과 기획회의를 하고 상세페이지를 만들고 인스타그램에 올릴 카드뉴스를 제작하면서 기분이 이상했다. ‘우리가 진짜 이걸 하는구나’. 곧 출국을 앞두고 있는 혜영님은 아쉽게도 산모교실 1기 기획, 운영은 함께 하지 못하게 됐다.

 


'엄마' 기획, 또 하는 이유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부터 <내 일을 지키고 싶은 엄마를 위한 안내서> 그리고 ‘산모 교실’까지. 솔직히 말하자면 이제 ‘엄마’에 대한 기획은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그러고 보니 마더티브 사업화를 접고 이직했던 두 번째 직장에서도 엄마의 몸에 대한 콘텐츠를 만들었다).


나는 엄마로만 살고 싶지는 않은데. ‘엄마의 일’로, ‘여성의 지속가능한 일과 삶’으로 삶의 질문이 계속 옮겨가고 있는데. 임신, 출산 이야기를 하다 보면 과거에 계속 머물게 되는 게 아닐까. 엄마들은 자신에게 돈을 잘 쓰지 않기 때문에 엄마 대상 콘텐츠도, 서비스도 사업성 없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던 영향도 있었다.


또 한 가지. 아이가 다섯 돌쯤 지나니 임신, 출산 시절이 한없이 멀게 느껴졌다. 얼마 전 아이와 해수욕장에 갔다. 튜브를 끼고 수영하던 아이가 커다란 파도에 휩싸이지 않고 능숙하게 파도를 탔다. 아이는 허세 가득한 얼굴로 자랑스럽게 말했다.


“내가 나를 구했어.”

 

이제 아이는 스스로 꽤 많은 걸 할 줄 안다. 아이의 손과 발이 돼주어야 했던 집중육아기를 지나 ‘몸이 힘든 것보다 감정적으로 힘든’ 육아가 도래했다. 아이가 자라면서 육아에 대한 고민, 일에 대한 고민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초보 엄마일 때는 선배들이 ‘배 속에 있을 때가 좋은 거다’라고 말할 때 괜히 심술이 났다. 이제는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 것 같다. 육아에는 계속해서 새로운 퀘스트가 생기고 그 퀘스트를 통과하다 보면 그 전 퀘스트는 전생처럼 느껴진다. 애를 낳으면서 뇌도 같이 낳는다는 말이 뭔지도 절절이 깨닫고 있다. 어제 뭐 먹었는지도 기억이 잘 안나…


그럼에도 출산 5년 그리고 아이디어가 떠오른 지 3년 만에 산모 교실을 열기로 한 이유는 빚을 많이 졌기 때문이다.



내가 했던 고민을 먼저 한 사람


계획했던 임신이었지만 임신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무방비 상태로 정글에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남들은 ‘배 속에 있을 때가 제일 편한 거야'라고 말했지만 나는 전혀 편하지 않았다. 아이가 잘 자라고 있는지, 혹시 내가 뭘 잘못해서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닐지. 컨디션은 들쑥날쑥했고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았다. 출산 과정에 대한 두려움도 컸다. 무용담 같은 출산 후기를 듣고 있으면 차라리 귀를 막고 싶었다. 출산 후도 걱정이었다. 내가 과연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계속 일할 수 있을까.


정보가 없는 건 아니었다. 온라인에는 오히려 정보가 너무 많아서 탈이었다. 출산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나 환상이 아니라, 생산적인 대화를 나눌 누군가가 있으면 좋을 텐데. 조금 먼저 출산한 이들은 육아하느라 숨이 넘어갔고, 집중 육아기를 벗어난 엄마들에게 임신, 출산기는 두루뭉술한 추억이었다. 비슷한 시기 임신한 이들은 나와 사정이 그리 다르지 않았다.  


엄마로 살아가는 게 힘들고 막막할 때마다 힘이 됐던 건 먼저 엄마가 된 여성들의 글과 말이었다. 아, 나만 이렇게 힘든 게 아니었구나. 세상에 완벽한 엄마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구나. 아이를 미워했다가 사랑했다가, 엄마로 살아가는 데는 늘 양가 감정이 존재하는구나. 아이를 돌보는 것만큼이나 나를 잘 챙기는 것도 중요하구나. 혼자 다 잘하려고 하지 말고 도움을 받아야 하겠구나.


“사실 한 사람 한 사람은 스스로를 유일무이한 존재로 여기지만, 대개는 어떤 패턴의 조합으로 이뤄져 있는 게 아닐까? 그런 패턴을 확인할 때 스스로가 작아지기도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기도 한다. 내가 했던 고민을 먼저 한 사람들이 있고, 내가 했던 고민을 다시 시작할 사람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면 가벼워지는 것이다.” 정세랑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2018년 7월, 동료들과 마더티브를 창간한 후 우리의 임신, 출산, 육아 서사를 부지런히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내 일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10명의 여성을 인터뷰했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여성들과 함께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과정은 나를 지킬 수 있게 만들어 줬다.


번아웃에, 당장 창고살롱 시즌3 기획도 해야 하는데. 산모 교실을 진행해야 할까 말까 고민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시기를 통과했다고 해서, 이제 괜찮다고 해서, 무관한 사람처럼 살아도 되는 걸까? 그러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빚을 는데.

 


주어가 엄마인 산모 교실


마더티브가 기획한 ‘세상에 없던 산모 교실’에서는 애 말고 엄마가 주어다. 임신한 나의 현재 몸과 마음 상태를 돌아보고, 출산 후 나의 미래를 주체적으로 계획하고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다.


@마더티브


이를 위해 말과 글을 적극 활용하려 한다. Zoom으로 진행되는 총 3번의 워크숍에서 1회에서는 나에 대해, 2회에서는 내 몸에 대해 3회에서는 남편과의 공동 육아에 대해 참가자들이 함께 대화를 나누고 글로 생각을 정리할 예정이다.


-구조화된 질문에 서로 답하면서 나조차 잘 알지 못했던 내 마음을 정리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방향을 설정하는 것


여성 온라인 커뮤니티 창고살롱에서 그동안 해왔던 것들이다. 마더티브가 만든 책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와 마더티브 에디터들이 폭풍 오열하며 봤던 영화 <툴리>가 생각을 이끌어 내는 데 마중물이 되어 줄 것이다.


1회와 3회는 나와 인성님이 이끄는 워크숍 형태로 진행되고 2회에서는 김유진 더패밀리랩 연구소장이 워크숍을 이끈다.


@마더티브


유진님과는 재작년 산후 헬스케어 소셜벤처 더패밀리랩에서 만나 1년 넘는 시간을 동고동락하며 ‘헤이마마’ 앱을 함께 론칭했다. 유진님만의 철학이 담겨 있는 산후운동을 알리기 위한 콘텐츠를 만들면서 이런 내용을 애 낳기 전에 알았더라면!!!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유진님은 최근에 둘째를 출산해 9살, 1살 두 딸의 엄마가 되었다. 더욱 깊고 진해졌을 유진님만의 콘텐츠가 기대된다.  


@마더티브


3회에서는 남편과의 서로 인터뷰를 통해 ‘공동육아 3가지 원칙’을 만들 예정이다(사전 과제로 진행되기 때문에 워크숍에는 남편이 함께 하지 않아도 된다).


‘애는 같이 만들었는데(?) 왜 임신도 출산도 나만 하는 거야’ 억울했던 나는 출산 용품 준비를 남편에게 전적으로 맡겼다. 그때부터 반반육아를 향한 기나긴 투쟁이 시작되었고... 지금은 50:50의 육아를 실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도 동료 여성들의 말과 글이 큰 도움이 되었다. 출산 후 남편과 수많은 대화와 협상을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임신했을 때부터 아니 임신하기 전부터 나눴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마더티브가 만든 구조화된 질문을 통해 참가자들이 남편과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지 기대된다.


1,2,3회 워크숍 결과물을 포함해 ‘나를 지키고 싶은 출산 준비 계획서’를 노션으로 만들 계획이다. 출산 후 1개년, 5개년 계획을 ‘나’, ‘가족’, ‘일’을 중심으로 세워보려 한다. 출산 후 1년, 5년이 지났을 때 다시 들춰보면 내 삶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점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열심히 만들었는데 주변에 임신부가 없다 ㅎㅎㅎ 마더티브 독자들도 그새 아이들이 많이 컸다(눈물...)


임신 중인 분들뿐만 아니라 임신을 고민하는 분들, 최근 출산한 분까지 모두 참석 가능하다. 전 과정 안전하게 온라인으로 진행되니 해외 거주자도 함께 할 수 있다.


@마더티브


결론은… 널리 널리 소문 내주세요:) 궁금한 점은 마더티브 mothertive@gmail.com 이메일이나 마더티브 인스타그램 DM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진짜 이런 산모 교실, 세상에 없어요.



자세한 프로그램 내용 확인과 신청은 여기에서.


에디터 인성이 쓴 소개 글


마더티브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 브런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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