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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Jul 09. 2021

애 데리고 국회 출근, '쇼'여도 괜찮아

일-가정을 분리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지

▲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생후 59일 아들과 함께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 '출산 후 첫 등원'을 해 로텐더홀을 지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애 낳을 거면 국회의원은 왜 됐냐."

"국회 어린이집에 맡기면 되잖아."

"애 맡길 곳 없으면 사퇴하든지."


지난 5일, 생후 59일 된 아이를 안고 국회에 출근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유모차를 끌고 국회에 도착한 용 의원은 아이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 회의장 아이동반법(국회법 일부개정법률안)' 통과를 촉구했다. 수유가 필요한 24개월 이하 영아의 국회 출입을 허용하는 내용이다.


현재 국회법 151조(회의장 출입의 제한)에는 '국회 회의장에는 의원, 국무총리, 국무위원 또는 정무위원, 그 밖에 의안 심의에 필요한 사람과 의장이 허가한 사람 외에는 출입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


용혜인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기 힘든 제도, 문화는 바뀌어야 한다"며 "아이동반법이 통과된다면,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를 만드는 국회에서 일과 육아가 양립 가능하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를 키워야 하는 국회의원이라니, 새삼 낯설게 느껴졌다. 기사를 읽다 용 의원이 현역 의원 중 세 번째로 출산한 여성 의원이라는 데 놀랐다. 70년 넘는 헌정 역사 동안 수많은 국회의원의 아이가 태어났을 텐데, 임기 중 출산한 여성은 이제 겨우 세 명밖에 안 된다니. 배우자와 함께 2세를 맞이한 남성 의원들은? 그러고 보니 갓난 아이와 함께 있는 남성 의원을 본 기억은 없었다. 돌봄을 전담하는 아내가 있어 일과 육아를 철저히 분리하는 게 가능했던 걸까. 하긴 여성 국회의원이 어떤 옷을 입었는지가 화제가 되는 시대다. 국회의 시계는 참 느리게 돈다.


용 의원과 아이의 동반 '출근'에는 "갓난 아이를 정치 쇼에 이용한다"부터 시작해서 부정적 시선이 존재한다. 아이동반법에 반대하는 의견에는 '국민의 혈세를 받으면서 일은 제대로 안 하는 특권층' 국회의원에 대한 반감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그 특권층인 국회의원조차 아이를 낳아도 출산휴가를 보장받지 못하고, 친정 엄마 찬스를 쓰며 육아를 해야 하며, 자신의 일터인 회의장에 아이를 데리고 들어갈 수 없는 게 2021년의 현실이다.


사실 국회의원이라는 직업만 다를 뿐 현재 용 의원에게 쏟아지는 비난은 대한민국에서 임신, 출산, 육아를 경험하는 여성이 받아야 하는 시선과 별반 다르지 않다. 저출생을 사회적 문제라 말하는 이 나라에는 여전히 '애 낳고 출산휴가, 육아휴직 쓸 거면 회사는 왜 들어왔냐'는 말을 듣는 여성이 존재한다. 가임기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취업에서 불이익을 겪고, 기혼 유자녀 여성은 면접 자리에서 '애는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을 듣는다. 기혼 유자녀 남성은 한 번도 듣지 않았을 질문이다. 아이를 배제한 노동이 당연한 사회에서 아이가 있는 여성은 '불완전한 노동자' 취급을 받는다.



사적이지 않은 출산


첫 번째로 출산한 국회의원이었던 장하나 전 의원도 이런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나 보다. 장 전 의원은 "'젊은 여성을 뽑아 놓으니까 애 낳고 일 쉬는 거 아니냐'는 식의 말을 듣기 싫었"다며 "넉넉한 코트 안에 만삭의 몸을 숨"겼다고 고백했다. "다들 바빠 죽을 지경인데 갑작스런 임신과 출산으로 '태업'하게 된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미안했"다고.


장 전 의원은 임기가 끝난 후 <한겨레>에 쓴 '엄마 정치' 칼럼에서 "지금은 엄마(부모)가 된다는 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정부의 책임과 엄마 정치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지만, 저야말로 저의 출산을 철저히 사적인 일로 치부했"다며 "엄마 국회의원이 엄마들의 문제를 제대로 대변하지 않은 것은 엄마들에 대한 배신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회고했다.


나도 비슷했다. 일하는 엄마로 사는 건 늘 미안한 일의 연속이었다. '아이 때문에'라는 말을 하는 건 민폐 같았다. 엄마가 되어서도 이전과 똑같이 일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일은 일이고 아이는 아이였다. 하지만 아이가 있는데 아이가 없는 것처럼 일하는 건 불가능했다. 아이는 수시로 일의 세계에 침투했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면 되지 않냐고? 아이가 어린이집에 못 가는 상황은 생각보다 자주, 예고도 없이 발생했다. 멀쩡히 잘 있다 갑자기 열이 오르기도 하고, 전염병에 걸리면 일주일씩 어린이집에 가지 못 했다. 여름에는 수족구, 겨울에는 독감. 여기에 노로 바이러스, 아데노 바이러스, 뇌수막염, 장염, 수두… 이름도 무서운 온갖 전염병이 수시로 유행했다. 모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중에는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을 신뢰할 수 없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아이에게 사정이 생길 때마다 일의 흐름은 뚝뚝 끊겼고 회사와 동료들에게 수시로 양해를 구해야 했다. 아이에게도 회사에도 죄인이 된 것 같은 날들이었다. 육아휴직 복직 1년 만에 나는 9년간 다닌 회사를 그만뒀다.


아이가 없는 것처럼 일하는 방법은 있다. 육아를 완전히 외주화 하거나, 일도 육아도 완벽히 해내는 슈퍼맘이 되거나. 두 방법 모두 돌봄 문제를 온전히 개인이 떠안는 방식이다. 육아를 외주화 할 경우 주로 친정엄마, 시어머니 등 또 다른 여성의 희생이 따른다. 저출생은 사회적 문제라는데, 아이는 나라의 희망이라는데, 돌봄의 책임은 양육자, 주로 여성이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 그러면서 아이를 낳지 않는 요즘 여성들을 이기적이라 욕한다. 저출생은 문제가 아니라 결과다.



일과 육아를 분리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지



▲ 김상희 국회부의장이 지난 5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에서 출산 후 출근한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을 만나 용 의원의 아이를 안은 채 면담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누군가는 묻는다. 아이 동반 근무와 일-가정 양립이 무슨 관련이 있냐고. 아이동반법은 단순히 아이를 직장에 데리고 가서 함께 일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첫 번째 회사를 퇴사한 후, 나는 아이가 없는 것처럼 일하기를 그만두기로 했다. 남편과 공동 양육자가 되어 일과 육아를 함께 할 수 있는 업무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남편은 대기업을 나와 유연한 근무가 가능한 작은 회사로 이직했다. 남편의 회사 대표는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다. 회사 사무실에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고 간식이 잔뜩 쌓여 있다. 아이는 아빠의 회사를 장난감과 간식과 즐겁게 놀아주는 삼촌이 있는 곳으로 인식한다. 아이가 아프거나 내가 급한 일이 있을 때 남편은 아이를 데리고 회사에 출근한다. 조금 일찍 퇴근했다 아이가 잠든 후 일을 이어가기도 한다.


지난해 가을 창업 후 100%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나 역시 일 속에 육아가, 육아 속에 일이 공존한다. 현재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모두 엄마다. 우리의 일 속에는 수시로 육아가 스며든다. 아이가 아프면 데리고 일하기도 하고, 초중생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중간중간 아이 라이딩을 하러 갔다 온다. 업무 캘린더에는 어린이집과 학교 관련 일정이 함께 공유된다. 화상 회의 화면에는 아이들이 수시로 출몰한다.


일과 육아가 확실히 분리되지 않는 상황은 분명 힘들다. 이건 일하는 것도 아니고 애 보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비상 상황이 생겼을 때 아이와 함께 일할 수 있는 선택지가 생겼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한결 편하다. 그전 같았으면 아이 때문에 변수가 생겼을 때 '일을 그만둬야 하나' 생각했을 텐데, 지금은 혼자 빨리 가는 게 아니라 아이와 함께 조금 천천히 가자고 생각한다. 아이는 엄마와 아빠의 일터를 보면서 엄마 아빠가 어떻게 일하며 살아가는지 지켜볼 수 있다.


얼마 전 <내 일을 지키고 싶은 엄마를 위한 안내서> 온라인 북토크를 하는데 우리 집 아이가 서재에 난입했다. 조금 당황했지만 양해를 구하고 다시 발표를 이어갔다. 대부분이 엄마인 참석자 가운데는 비디오를 꺼놓고 아이를 재우며 한쪽 귀에 이어폰을 꽂고 듣거나 아이와 함께 줌 화면에 등장한 이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데 뭉클했다. 양육자와 아이가 함께 있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데, 왜 아이의 존재를 애써 지우려 했을까. 양육자에는 엄마뿐만 아니라 아빠도 당연히 포함된다.



상징성을 넘어서


코로나19로 인해 일-가정 양립은 그 어느 때보다 벼랑 끝에 몰려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3~11월 여성 노동자 3007명을 대상으로 여성 노동자들이 겪은 일·돌봄 변화를 조사해 연말에 발표한 결과, 전체 응답자 5명 중 1명인 20.9%는 이 시기 퇴직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퇴직을 경험한 여성의 비율은 막내 자녀가 어릴수록, 미취학 또는 초등학생 자녀 수가 많을수록 높아졌다. 초등학생 이하 자녀가 있는 여성의 주요 퇴직 사유는 "자녀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73.2%)였다.


일과 육아의 통합이 자칫 돌봄의 책임을 가족에게 더 많이 지우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따라서 공적 돌봄 체계 개선이 꼭 필요하다. 언제든 믿고 맡길 수 있는 공적 돌봄 시스템 말이다. 여기에 장시간 노동 문제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돌봄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사회적 문제가 얽히고설켜 있다.  


국회의원 한 명이 아이를 회의장에 데리고 들어가는 건 어쩌면 상징성에 불과할지 모른다. 용혜인 의원 역시 아이동반법 통과가 그저 상징적인 의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아이동반법은 국회의원의 의정활동과 육아를 양립 가능하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제도화 되어있지만 쓸 수 없는 육아휴직을 더욱 폭넓게 보장하고, 임신과 출산에 대한 의료지원을 확대하며, 더 나아가 경력단절 문제를 해소하고 성별 임금격차를 해소하는 등 우리 사회 전반의 변화까지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동료 의원의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며 회의를 주재하는 트래버 맬러드 뉴질랜드 국회의장 ⓒ 트래버 맬러드 의장 트위터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아이와 함께 국회 출석한 국회의원', '모유수유하는 국회의원'이라는 강렬한 이미지가 자칫 "아이는 엄마가 봐야 한다"는 식의 모성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것이다. 내가 본 해외 국회에 출석한 아이 사진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모습은 2019년 8월, 트레버 맬러드 뉴질랜드 국회의장이 동료 의원의 아이를 안고 분유를 먹이며 본회의를 진행하는 장면이었다. '신성한 국회'에서 일과 육아 그리고 동료 시민의 지지가 공존하는 아름다운 모습.


이 아이는 타마티 코피 의원이 남성 파트너와 동성 결혼한 뒤 대리모를 통해 얻은 아이였다. 코피 의원은 배우자 출산휴가를 마치고 이날 의회에 출석했다. 그는 "동료들로부터 정말로 지지를 받고 있다고 느꼈다"며 아이를 안고 등원한 소감을 밝혔다. 능숙하게 아이를 돌본 맬러드 의장은 세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확실히 한국 국회 시계는 참 느리게 돌고 있다. 머지 않은 시기에 남성 국회의원이 갓난 아이를 국회에 데리고 오는 '쇼'도 꼭 나오기를 바란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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