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밀밀 Aug 02. 2022

'만5세 입학'에 '어린이'는 없다

7세 키우는 엄마가 본 학제개편안 

아이는 따로 돌잡이를 하지 않았다. 돌잡이 용품으로 청진기, 판사봉, 마이크 등이 있었지만 모두 치우고 명주실 딱 하나만 올려두었다. 건강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건강하고 즐겁게'. 우리 부부가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다. 아이 이름 '이현'의 '이'는 '즐거울'이라는 뜻이다.

아이를 3세 때부터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낸 것도 건강하고 즐겁게 클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는 한글, 영어, 수학 등 인지 교육을 하지 않으며 사교육을 지양한다. 나와 남편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학업 스트레스나 경쟁에서 벗어나 신나게 놀았으면 했다. 매일 나들이를 가며 자연과 가까이 지내고, 어린이집이라는 작은 공동체 속에서 나 혼자만이 아니라 우리를 함께 생각하며 자랄 수 있기를 바랐다.

올해 7세인 아이는 얼굴이 까맣게 타고 옷이 엉망이 되는 것도 상관없이 매일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논다. 매미 유충을 손으로 잡아 유심히 관찰하고 나도 알지 못하는 식물 이름을 줄줄 꿴다. 건강하고 즐겁게 잘 자라는 아이를 보며 뿌듯한 마음이 들다가도 '이렇게 놀기만 해도 되는 걸까' 불쑥 불안감이 올라온다.

어떤 애들은 3세부터 학습지를 한다는데, 어떤 애들은 5세부터 영어 유치원에 다닌다는데, 어떤 애들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한다는데… 이러다 우리 아이만 뒤처지는 건 아닐까,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제때 못해주고 있는 건 아닐까 괜스레 초조해지기도 한다. 


아이가 6세가 되면서부터 주변에서 '한글 공부 안 시키냐'고 묻기 시작했다. 육아 선배들은 한글 모르고 학교 가면 고생한다는 경험담을 들려줬다. 한글을 모른 채 학교에 입학했다 아이가 수업 시간에 주눅 들어서 속상해했다는 이야기, 담임 선생님에게 따로 연락이 와서 '어머님이 신경 좀 쓰셔야겠다'는 소리를 들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7세까지는 인지 교육을 시키지 않겠다'는 다짐이 점점 흔들렸다. 6세 하반기에 한글 공부 책을 사놓고 차일피일 미루다 7세가 되면서부터 조금씩 아이와 함께 한글 공부를 하고 있다.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한글 공부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가'를 모르는 아이를 보면 그렇게 답답할 수 없다. 모르는 건 그렇다 치고 공부하는 자세를 보면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한글 공부 하자'고 하면 아이는 책도 펼치기 전부터 구운 오징어처럼 몸을 배배 꼰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신나게 놀던 아이가 갑자기 배 아프다 하고 졸리다 하고 언제 끝나냐고 묻는다.



아이의 1년은 성인의 1년과 다르다



▲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으로부터 부처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2022.7.29ⓒ 대통령실 제공



정부가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6세(8세)에서 만 5세(7세)로 앞당기는 학제개편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아이 어린이집 방학을 맞아 캠핑장에 있다가 뉴스를 확인하고 눈을 의심했다. 초등학교 입학 연령이 1년 앞당겨진다면 늦어도 6세부터 초등학교에 보내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아이가 6세였던 1년 전을 떠올려 봤다. 연필도 제대로 잡을 줄 모르고 의자에 10분도 가만히 못 앉아 있는 아이를 데리고 한글 공부해야 한다고, 학교 가면 화장실에서 응가 하고 혼자 뒤처리할 줄 알아야 한다고 연습시키는 모습을 상상하니 아찔했다.


6세와 7세의 차이는 성인이 된 이후 21세와 22세의 차이와 전혀 다르다. 5세까지만 해도 자신의 욕구가 가장 중요했던 아이는 6세가 되면서 '저 친구가 나보다 다른 친구를 좋아하는 것 같다'며 서운해하는 감정을 알게 됐고, 7세가 되자 친구를 위해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포기할 줄 아는 배려심이 생겼다.


같은 7세라 해도 개월 수가 늘어날수록 아이는 점점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나고 있다. 정부 정책상에서는 고작 1년일지 모르겠지만 그 1년 사이 아이들은 끊임없이 바뀌고 자란다. 성인의 1년과 어린이의 1년은 그 무게가 같지 않다. 어린이 정책을 세울 때 더욱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학제개편안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번 추진 정책은 학령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소외 계층 아이들의 교육 격차를 해소하고 출발선상의 공정한 교육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출발선상의 공정한 교육 기회'라는 대목에서 헛웃음이 났다. 현재의 공교육이 공정한 교육 기회를 제대로 제공하고 있다면 왜 이토록 많은 부모들이 내 아이만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 입학 전부터 조기 교육을 하고 사교육에 매달리는 걸까. 학제개편으로 인해 공정하지 못한 교육 기회가 오히려 앞당겨지고 아이들이 충분히 놀 수 있는 기회를 빼앗을까 우려스럽다.


아이의 학교 입학은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가족은 내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오는 가을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갈 예정이다. 이른 하교 이후 저녁까지 아이를 안정적으로 맡길 수 있는 마을 방과후 학교에 가기 위해서다. 8살 아이를 '학원 뺑뺑이' 돌리고 싶지 않고, 부모 중 한 사람이 경력 공백을 겪지 않기 위해 내린 결정이긴 하지만 결국은 공교육이 아닌 사교육에 기대는 방식이라 뒷맛이 씁쓸하다. 


돌봄 공백에 대해 박 장관은 "오히려 초등 1~2학년은 8시까지 학교 돌봄을 하게 되면 유치원이나 학원 보내는 것보다 더 안정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보육이 필요한 7세와 8세가 이른 아침부터 밤 8시까지 하루종일 학교에 있는 것이 과연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박 장관은 7세와 8세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걸까.



윤석열 정부의 '인재 양성'에 보이지 않는 것



▲  윤석열 대통령ⓒ 대통령실 제공



이번 학제개편안에 정말로 화가 나는 이유는 현 정부가 아이들을 바라보는 관점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 7월 29일 학제개편 배경을 설명하며 박순애 장관은 "영유아와 초등학교 시기가 (성인기에 비해) 교육에 투자했을 때 효과가 16배 더 나온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박 장관은 또한 "예전보다 아이들의 지적 능력이 높아지고 전달 기간도 빨라져 현재 12년간의 교육 내용이 10년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 장관의 발언에서 어린이는 학습을 시켜 효율적으로 효과를 내야 할 대상이다. 이는 입만 열면 '인재 양성'을 외치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과도 맞닿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학제개편안 업무 보고에서 "취학 연령을 1년 앞당기는 방안을 신속히 강구하라"고 지시하는 한편, "교육부는 미래 인재 양성을 담당하는 사회부처이자 경제부처임을 명심해 주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언제부터 교육의 목적이 경제 발전을 위한 미래 인재 양성이 된 것일까. 윤 대통령이 "목숨을 걸고 육성하라"고 말하는 인재에 정작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는 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 '방구뽕'(구교환)이 등장했다. 세 아들을 모두 서울대에 보낸 이력을 내세워 대치동에서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무진학원' 원장의 막내 아들 방구뽕은 어느 날 엄마가 운영하는 학원 버스를 탈취해 아이들을 산으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4시간 동안 산속에서 "놀고 놀고 또 놀아서 어린이 해방을 이루려" 한 죄로 구속돼 재판을 받는다.


▲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ena



무진학원에 다니는 10살, 11살 초등학생들은 밤 10시까지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공부를 한다. 엄마들은 "다 애들 미래를 위해서 그런 거죠"라고 말하지만 아이들은 공부 감옥에서 해방되고 싶다. 어린이 해방군 입대식에서 방구뽕은 이렇게 말한다.


"대한민국 어린이의 적은 학교와 학원 그리고 부모다. 그들은 어린이를 놀지 못하게 한다. 그들은 행복한 어린이, 건강한 어린이를 두려워 한다. 불안해 하는 어린이, 고통 받는 어린이, 복종하는 어린이를 원한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를 조종해 어린이들을 더 바빠지게, 더 나빠지게 만들어 어른이 되기도 전에 세상과 등지게 만든다."


방구뽕은 아이들과 함께 외친다. "하나, 어린이는 지금 당장 놀아야 한다. 둘, 어린이는 지금 당장 건강해야 한다. 셋, 어린이는 지금 당장 행복해야 한다."


방구뽕의 선언을 들으며, 초등학교 입학 이후라는 "나중"에 사로잡혀 "지금 당장" 아이를 행복하지 못하게 한 것은 아닐까 반성했다. 박순애 장관과 윤석열 대통령도 부디 어린이들을 한 명 한 명의 사람으로 먼저 바라봐 주기를, "법과 제도를 조종해" 아이들을 "더 바빠지게, 더 나빠지게"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