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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Jan 23. 2023

시아버지가 내가 쓴 글을 읽고 울었다

시부모님이라는 타인

시가에 왔더니 시어머니가 “책 내느라 고생 많았다”고 말한다. 시누이는 책이 나오자마자 인터넷 주문을 해서 오늘 받았다고 했다.


시가에 오기 전 남편은 농반진반 말했다.


“이제 엄마 아빠도 니 과거를 다 알겠네. “


책의 첫머리 저자 소개에는 번아웃을 겪으며 퇴사와 안식년을 결심한 이야기가 나온다. (시부모님이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지만) 시부모님에게는 내가 창업을 했던 것도 퇴사를 한 것도 따로 이야기한 적 없다.


책에는 어린 시절 기억부터 일과 관계에 대한 고민, 친정 엄마, 남편에 대한 이야기까지 온갖 내밀한 사연이 담겨 있다. 시어머니와 시아버지 이야기도 나온다.


오랫동안 검색만 하면 찾을 수 있는 공간에 에세이를 써왔지만 그 글을 모아둔 에세이집을 낸다는 건 숨겨둔 속을 발가벗겨 꺼내 놓는 느낌이다. 가까운 지인들이 책을 주문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고마우면서도 마음속에서 ‘헉’하는 소리가 나온다. 내 글을, 글 속에 있는 나를 어떻게 바라보게 될지 긴장되고 떨린다.


이번에 낸 책에는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시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도 실려 있다. 사실 이 글은 시부모님이 이미 읽은 적 있다. <오마이뉴스> ‘나를 키운 여자들’를 연재할 때 썼던 글이기 때문이다.



타인에 대한 글쓰기 


몇 달 전,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시아버지가 내 기사를 읽었다고.


영화 <죽여주는 여자> 속 소영(윤여정)의 이야기와 함께 시할머니와의 에피소드를 풀어낸 글이었다. 소영과 시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존엄한 나이 듦,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싶었다.


이 글은 포털사이트에서 2600개가 넘는 공감 반응을 얻었는데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쓴 글인지 모르고 읽다가 ‘어, 이거 우리 엄마 이야긴데?’하며 깜짝 놀랐다고 했다.  


기사에 대한 시아버지의 반응을 듣기 전까지 초조했다. 타인에 대한 글을 쓸 때면 늘 조심스럽다. 타인에 대한 글쓰기는 필연적으로 한계를 갖는다.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결국은 나의 관점에서 ‘나를 통과한 타인’을 나의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타인에 대해 쓸 때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타인을 이해하려 애쓴다. 누군가의 삶을 납작하고 무례하게 소비하는 글을 쓰지 않으려 노력한다. 결국 글을 쓰는 것은 나이지만 내가 너무 커서 타인을 양념으로 만드는 글은 쓰고 싶지 않다. 타인에 대한 글쓰기의 윤리다.

 

시아버지는 글을 읽고 많이 울었다고 했다. 눈물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 말을 듣자 안도감이 들었다. 내가 아주 형편없는 글을 쓰지는 않았구나 싶어서. 그 아빠에 그 아들인지 남편도 역시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남편은 고맙다고 했다. 할머니와의 추억을 글로 남겨줘서.



며느리 10년


모든 의무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4년 전, 나는 첫 번째 퇴사와 함께 명절 보이콧을 선언했다. 명절에 시가에 먼저 가는 것이 불공평하고 부당하다 생각한다고 시부모님에게 말했다. 세상이 바뀌었다고, 우리 아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은 달라야 한다고. 결혼 6년 차였다.


그 후 우리는 설날에는 시가에만 추석에는 친정에만 간다. 그 사이 시할머니가 돌아가셨고, 시가에서는 이제 명절에 더는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 지난해 추석 때 시부모님은 캠핑을 떠났다.


이렇게 되기까지 물론 진통이 컸다. 한동안 시부모님과 교류를 끊고 지냈고 나는 시가 단톡방을 나왔다. 다시 왕래를 시작한 후에도 시가 단톡방에는 다시 들어가지 않았다.


시가와의 관계에서 나만의 선을 정했다. 예쁨 받는 며느리가 되려 애쓰는 대신 시가와의 관계가 너무 가까워지지 않도록 경계했다. 남편과 아이만 시가에 보내는 날이 늘었고 시가와의 연락은 남편으로 일원화했다. 시가에 가서도 종종거리지 않으려 하고 너무 오래 머물지 않으려 했다. 부족한 며느리, 염치없는 며느리가 되기로 하자 시가와의 관계가 훨씬 편해졌다. 시부모님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시부모님을 떠올리면 복잡한 마음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해 뒀다 조금이라도 더 맛있는 밥상을 차려주려 하는 마음을 볼 때면 한없이 고맙다가도, 시가에서 밥을 먹으면 아직도 자주 체하고 소화가 잘 안 된다. 아이에게 무한한 사랑과 정성을 쏟는 시부모님을 보고 있으면 날날이에게 시부모님 같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어서 참 행운이다 싶다가도, 너무 큰 사랑이 징글징글하기도 하다. 역할과 의무로 시작된 관계는 쉽게 가벼워지지 않는다.


시간이 준 선물일까. 그래도 이제는 인간적으로 시부모님을 걱정하고 응원하는 나를 발견한다. 시부모님과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만나 적당히 포기하고 적당히 기대하며 보낸 세월이 벌써 10년. 한 해 두 해 나이가 들고 여기저기 고장 나는 시부모님이 안타깝고 안쓰럽다. 친정 부모님과의 관계가 그렇듯, 시부모님과의 관계도 미움과 사랑 어느 하나로 잘라서 말할 수 없게 됐다.



누가 효자 아니랄까 봐


지금의 관계가 건강하다 생각하는 나와 달리, 효자인 남편은 내가 자꾸만 자신의 원가족에게 선을 긋는 것이 신경 쓰였나 보다.


얼마 전, 야근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은 내가 쓴 글을 읽고 울었던 이유를 좀 더 자세히 말해줬다.


”그 글을 읽으면서, 아빠가 그 글을 보고 현진이가 우리 가족을 미워했던 건 아니었구나라고 생각했을 것 같더라고. 그래서 아빠가 그 글을 읽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


이 이야기를 하면서도 역시나 남편은 울었다. 누가 효자 아니랄까 봐. 아내와 부모님 사이에서 남편의 마음도 많이 복잡했겠구나 싶었다.


내가 나의 원가족에게 느끼는 애틋함과 미안함이 있듯이, 남편에게도 내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있을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할머니와 한집에 함께 살았던 남편은 아침에 하늘이 쨍하게 파란 날이면 하늘에 계신 할머니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난다고 했다.


설날 전날, 아침을 먹고 명절 음식을 만드는 대신 납골당에 계신 시할머니를 만나러 갔다. 할머니 유골함 앞에서 시아버지와 남편은 나란히 서서 한참을 울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시할머니 사진을 보면서 염치없이 부탁을 했다.


’할머니, 손주 며느리 책 나왔어요. 할머니 이야기도 있어요. 책 잘 되게 해 주세요.‘


라고. 할머니는 하늘에서 잘 지내고 있을까. 울고 있는 두 남자 옆에서 나도 자꾸만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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