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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Jul 13. 2022

39살에 완경이라니

 내 일이 될 줄 몰랐던 일

“예상했던 것처럼 난소 기능이 좋지 않네요.”


난소 기능 검사 결과지를 든 산부인과 의사의 표정이 어두웠다. 의사는 결과지를 내 앞으로 내밀더니 수치가 나온 부분에 연필로 동그라미 표시를 했다. 이대로라면 6개월에서 1년 사이 폐경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결과에 눈물이 쏟아져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39살에 폐경이라니.   


지난 3월 코로나19에 감염된 후 생리 주기가 갑자기 불규칙해졌다. 4월에 두 번 생리를 하더니 5월에는 거의 일주일 동안 생리가 멈추지 않았다. 이러다 빈혈이 오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코로나로 인한 호르몬 불균형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생리주기가 28 정도로  정확한 편이라 그다음 생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마지막 생리로부터 40일이 지나도록 생리가 시작되지 않았다. 임신일 가능성은 매우 낮았지만 혹시 모르니 산부인과를 찾았다. 의사는 생리 주기를 확인하더니 난소 초음파를 해보자고 했다. 초음파를  의사는 현재 난소가  기능을 하지 않는  같다고, 생리를 시작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친정어머님은… 생리를 제 나이까지 하셨나요?”

“엄마는 40대 초반에 조기 폐경했다고 들었어요.”


의사는 좀 더 자세한 검사를 위해 난소 기능 검사를 할 것인지 물었고 그 결과가 이번에 나온 것이다. 39살인 내 난소 나이는 48세였다.


친정 엄마는 40대 초반에 생리가 완전히 멈췄다고 했다. 세상에 생리가 그렇게 빨리 끝나는 사람도 있구나 놀랐는데 그게 내 일이 될 줄 몰랐다. 의사는 조기 폐경은 유전적 요인이 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한여름에도 긴 팔을 챙겨 다니던 내가 올해 들어 유난히 더위를 많이 타고, 바지를 새로 사야 할 정도로 허릿살과 뱃살이 급속도로 쪘던 게 떠올랐다.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여성 호르몬 감소 때문이었나.


의사가 알려준 난소 기능 개선에 좋은 영양제와 음식@홍밀밀


의사는 폐경이 되면 에스트로겐이 부족해지면서 골다공증 등 건강상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면서 그때 가서는 호르몬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만약 둘째 계획이 있다면 자연 임신이 될 가능성은 낮으니 지금이라도 시험관 시술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에게 난소기능검사 한다는 이야기를 해놓은 터라 엄마는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남편과 통화하며 한바탕 울어서 엄마와 통화할 때는 비교적 덤덤한 목소리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더 큰 병 아닌 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난 괜찮다고. “좋은 걸 못 물려줘서 미안하네.” 엄마의 목소리가 떨렸다. 엄마는 당시에 정보가 별로 없어서 호르몬 치료를 제대로 못 받았다며 관리를 잘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집에 돌아와 난소 기능 개선에 좋은 영양제를 검색하면서 건강상 문제보다는 “폐경 후 갑자기 허리가 사라졌다”는 엄마의 말이 자꾸만 맴돌았다. 근육은 하나도 없고 가슴부터 엉덩이까지 구분이 하나도 안 되는 살찐 몸이 떠올랐다. 목욕탕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아줌마’ 몸매. 나도 이렇게 꼼짝없이 아줌마가 되는 걸까. 나이 드는 게, 늙는다는 게 무서웠다. 그게 내 일이 될 줄 몰랐던 것처럼.


방송인 사유리는 40대 초반에 난소 나이가 48세라는 진단을 받고 충격을 받아 비혼 출산을 결심했다고 한다. 검색창에 난소 기능 저하를 치면 대부분 난임과 관련된 게시물이 떴다. 생리의 목적이 임신을 위한 것은 아니기는 하지만 아이를 더는 갖지 않기로 자발적으로 결정하는 것과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분명 달랐다. 꿈에도 그린 적 없던 둘째가 갑자기 아쉬워졌다. 이조차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고민일 수 있지만.


가장 가까운 친구들에게 병원에 다녀온 사실을 알렸다. 동갑내기 친구들은 나만큼이나 충격을 받았고 나만큼이나 함께 속상해해 줬다. 친구는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난소에 좋다는 석류즙을 보내더니 “석류에 밥 말아먹자!”라고 했다. 친구의 마음이 고마워 눈물이 나면서도 대화 창에는 ‘ㅋㅋㅋㅋㅋ'이 계속 이어졌다. 슬프고 우울한 건 우리랑 어울리지 않으니까. 슬프고 우울할 때도 웃으라고 친구가 있는 거니까.


대화의 끝은 “우리도 이제 관리해야 할 나이"로 끝났다. 어차피 나이가 들수록 타고난 체질과 체력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시기가 온다. 나는 그 시기가 남들보다 조금(10년 정도…?) 앞당겨졌을 뿐이다. 과식하지 않고 꾸준히 운동하고 영양제를 밥처럼 챙겨 먹는 수밖에. 그래도 함께 나이 들어가는 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도움을 요청할 만한 지인들에게도 연락을 했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다시 생리를 시작했다는 지인은 용하다는 부인과 한의원을 소개해줬고, 약사인 지인은 자신이 임신 준비할 때 효과를 봤던 영양제를 추천해주겠다 했다. ‘나 조기 폐경될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혼자 끙끙대는 것보다는 함께 고민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이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말했다.


“그래, 병은 알리라고 그랬어. 누군가 내가 모르는 정보를 갖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사실 이 글을 쓰면서 ‘폐경'이라는 단어를 쓰는 게 맞을까 고민됐다. 그동안 닫다, 버리다의 뜻을 가진 폐경보다는 완료됐다, 완성됐다는 의미를 가진 ‘완경'이라는 단어가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막상 내가 생리가 멈출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하니 ‘완'보다는 ‘폐'가 더 와닿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갑자기 닫혀버린 느낌. 버려진 느낌.


생각해 보면 중학교 1학년 때 첫 생리를 시작한 이후 생리 양이 많은 것을 제외하고는 생리 때문에 고생한 적은 없다. 생리 주기도 정확했고 생리통도 거의 없었다. 생리 불순을 겪은 적도 이번이 처음이다. 예상치 못하게 맞닥뜨린 ‘완경'이지만 그동안 고생 많았던 난소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니 조금만 더 힘을 내줘. 난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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