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운 여자들] 영화 <죽여주는 여자> 속 소영
<죽여주는 여자>는 늙는다는 것의 처연함을 잘 보여주는 영화다. 65살 소영(윤여정)은 종로 탑골 공원 할아버지들을 대상으로 성매매를 하는 일명 '박카스 할머니'다. 탑골 공원 한편에 도도한 표정으로 서 있던 소영은 지나가는 노인들에게 넌지시 말한다.
나랑 연애하고 갈래요? 잘해줄게. 안 비싸.
소영은 노인들 사이에서 '죽여주게 잘하는 여자'로 명성이 높다. 그래봤자 소영이 성매매 할 때 받는 돈은 3만 원, 모텔비 포함이다. 이마저도 경찰 단속이 뜨거나 소영의 몸에 "하자"가 있을 때는 공치는 날이 많다.
▲ 65살 소영(윤여정)은 일명 '박카스 할머니'다. ⓒ CGV 아트하우스
영화에는 소영이 성매매를 하는 모습이 몇 차례 묘사된다. 낡은 모텔 붉은 조명 아래 촛불을 켜고 소영은 소주를, 남자는 박카스를 마신다. 늙은 여자 소영은 발기가 잘 되지 않는 늙은 남자의 성기를 손으로 만지고 오럴 섹스를 하기도 한다. 남자는 흥분하며 신음 소리를 내는데 소영의 얼굴에서는 아무 감정도 찾을 수 없다. 이곳이 모텔이 아니라 공장이나 사무실이라 해도 믿을 법한 무미건조한 얼굴. 소영에게는 이 일이 "벌어먹고 살"기 위한 직업이다.
남들에게는 미국 유학 간 아들 뒷바라지를 위해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 소영에게는 가족이 없다. 6.25 전쟁 때 태어난 소영은 남의 집 식모 살이, 공장 일 등을 전전하다 동두천 미군부대에서 '양공주'로 일하게 된다. 그곳에서 소영은 흑인 병사의 아이를 낳게 되지만 홀로 아이를 키울 수 없어 돌도 안 된 아이를 입양 보낸다.
임질에 걸려 산부인과를 찾은 날, 소영은 우연히 코피노(한국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민호를 만난다. 민호의 엄마인 필리핀 여자는 민호의 생물학적 아빠인 산부인과 의사를 가위로 찌른다. 민호 엄마는 경찰에 잡혀가고 소영은 말도 잘 안 통하는 민호를 집으로 데려와 먹여주고 재워준다. 성적 욕구만 채우고 양육은 나 몰라라 하는 무책임한 남자와 까무잡잡한 피부의 아이에게서 소영은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을 것이다.
소영이 살고 있는 이태원 낡은 주택 위층에는 트랜스젠더 여성 티나가, 옆집에는 한쪽 다리가 없는 장애인 도훈(윤계상)이 살고 있다. 무슨 생각으로 아이를 데리고 왔느냐는 도훈의 질문에 소영은 답한다.
몰라. 나도 왜 그랬나. 그냥 그래얄 것 같아서.
"그냥 그래얄 것 같아서"라는 말은 소영의 캐릭터를 잘 보여준다. 남들은 소영을 "몸 파는 년"이라며 인간 이하 취급하지만 이 영화에서 소영은 누구보다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소영이 비유적 의미의 '죽여주는 여자'에서 진짜 '죽여주는 여자'가 되는 과정도 이 인간다움과 관련이 있다.
▲ 재호(전무송)는 소영에게 다정하게 “소영씨”라고 불러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 CGV 아트하우스
소영을 시기하는 다른 박카스 할머니와 다투고 버스를 타고 가던 소영은 단골 고객이었던 재호(전무송)를 우연히 만난다. 소영의 고객은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들이다. 재호는 대중교통을 타고 꽃배달을 하는 중이다. 아내와 사별 후 혼자 살고 있는 재호는 "나 이제 그 짓도 못 해. 더 이상 남자가 아닌 거지"라며 한동안 종로를 찾지 않았던 이유를 설명한다. 소영이 "오빠 말고도 안 보이는 분들 꽤 돼요"라고 하자 재호는 쓸쓸한 표정으로 말한다.
모두들 번호표 타놓고 기다리는 인생들이니 안 보이면 병들었거나 죽었거나 하는 거지.
재호는 소영에게 다정하게 "소영씨"라고 불러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재호와 대화를 나누던 소영은 재호만큼이나 자신을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고객이었던 세비로 송이 중풍에 걸려 요양병원에 누워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소영은 음료를 사들고 송 영감의 병원을 찾는다. 늘 단정하게 맞춤양복을 입고 다니던 송 영감은 이제 침대에 누워 혼자 아무것도 못 하는 신세가 됐다.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 변을 처리하는 모습을 소영에게 보인 날, 송 영감은 울면서 소영에게 절규한다.
사는 게 챙피해. 죽고 싶어. 뭐냐고 이게. 나 좀 도와줘.
어두운 밤, 병실을 찾은 소영은 송 영감의 입에 농약을 들이붓는다. 흐느끼는 소영을 본 노인은 "괜찮아"라며 더 크게 입을 벌린다. 소영은 차마 노인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다. "어쩌자고 그랬어"라는 재호의 질문에 소영은 "그러게요. 제가 미친년이죠"라며 고개를 숙인다.
영화 초반, 민호를 데리고 왔을 때도 소영은 "내가 미쳤지"라는 말을 한 적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미친 짓이자 범죄이지만 소영에게는 타인의 고통을 못 본 채 할 수 없어서 저지른 일이다. 사람들은 소영의 진실을 알지 못한다. 아니 애초에 진실 같은 건 중요하지 않은지 모른다. 박카스 할머니의 "진실된 얘기"를 듣고 싶다며 소영을 찾아온 다큐멘터리 감독에게 소영은 말한다.
진실 좋아하네. 사람들 진실에 별 관심 없어. 다 지 듣고 싶은 얘기나 듣지.
송 영감의 죽음 이후, 재호는 소영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한다. 치매에 걸려 혼자 살고 있는 자신의 친구를 죽여달라는 것. "의지할 데 하나 없고 앞으로 지가 누군지도 모를 텐데 저놈 처지가 너무 불쌍하"다고. 소영은 처음에는 화를 냈다가 결국 재호와 그의 친구의 부탁을 들어준다. 급기야 재호는 혼자 남아 있는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고 비참하다며 소영에게 죽을 때 옆에 있어 달라 부탁한다. 재호는 홀가분한 얼굴로 자신의 입에 수면제와 독극물을 털어 넣는다.
화가 났다. 평생 여성의 돌봄 노동에 기대어 살아온 남성들이 푼돈을 주고 성적 욕구를 채우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죽는 것도 혼자 못 해서 죽여달라는 부탁까지 하다니. 어쩜 저리도 이기적일 수 있을까. 본인들은 죽으면 그만이지만 소영의 삶이 어떻게 될지는 아랑곳하지 않는 걸까.
이런 나의 분노와 무관하게 소영의 얼굴은 죽음이 반복될수록 오히려 덤덤해진다. 앞서 소영은 재호에게 젖도 안 뗀 아이를 입양 보낸 이야기를 하면서 "제가 진짜 나쁜 년"이라고 "평생을 빌고 빌어도 용서받지 못할 거"라고 말한 적 있다. 자신은 지옥에 갈 거라고. 아이를 입양 보낸 순간부터 소영은 죽지 못해 사는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죽을 수 있는 선택지조차 자신에게는 사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죽지 못해 사는 삶,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삶을 누구보다 잘 아는 소영이기에 삶 대신 죽음을 택한 노인들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일만큼은 자신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소영을 "꽃뱀"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돈 100만 원에 사람을 죽인 할머니"라고 부른다. 하지만 세상의 언어로는 소영의 선택을 설명할 수 없다. 아래 소영의 대사처럼 말이다.
저 사람도 무슨 사연이 있겠지. 아무도 진짜 속사정은 모르는 거거든. 그냥 다들 거죽만 보고 대충 지껄이는 거지.
▲ 늙는다는 것, 존엄하게 죽는다는 것은 뭘까 ⓒ CGV 아트하우스
영화를 보면서 지난해 1월 세상을 떠난 시할머니 생각이 났다. 소영처럼 북한에서 피난 온 시할머니는 일찍 남편을 잃고 장사를 하며 홀로 삼 남매를 키웠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원주에서 서울까지 혼자 대중교통을 타고 왔다 갔다 할 정도로 적극적이고 활발한 성격이었던 할머니는 지병이었던 심장병 때문에 건강이 급속도로 안 좋아졌다.
집 근처에서 걷기 운동을 꾸준히 하고 시부모님이 회사에 갔을 때 집안일을 챙기기도 했던 할머니는 나중에는 집 밖을 나가는 것조차 힘들어질 정도로 체력이 떨어졌다. 활동이 줄어드니 식욕이 떨어지면서 살도 많이 빠졌다. 할머니 옆에 있으면 가만히 있는데도 쌕쌕대는 숨소리가 들렸다.
시가에 갈 때마다 할머니는 작아져 있었다. 움직임도 거의 없었다. 나는 할머니가 마치 가구 같다고 생각했다. 혼자 힘으로는 움직이지 못하고 그냥 거기에 그대로 있는 가구.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나들이를 간 적 있다. 요즘처럼 더운 여름이었다. 계곡 옆 평상에 있는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는데 할머니는 오늘은 본인이 쏘겠다고 했다. 먹고 싶은 것 다 먹으라고. 돈 계산에 밝아 쌈짓돈을 쉽게 열지 않았던 할머니는 건강이 안 좋아질수록 가족들에게 자꾸만 뭔가를 사주고 싶어 했다. 할머니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은 사람 같았다.
식사를 마친 후 다른 가족들은 아이와 함께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고 할머니는 그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잠시 누워 잠을 청하기도 했다. 그날 할머니는 유난히 밖에 오래 있었다. 오후 4~5시쯤 됐을까. 시어머니가 집에 가서 밥하기 싫다면서 삼겹살도 시키면 안 되냐며 할머니를 쳐다봤다.
그러자 지금까지 나온 비용을 이미 셈으로 더해본 할머니는 10만 원 이상은 낼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할머니가 미리 생각하고 온 예산이 10만 원이었던 것이다. 그날 할머니는 정말로 10만 원만 딱 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남편과 종종 그때 이야기를 한다. 할머니 정말 웃기지 않았냐고. 늙고 아프면 욕심이 사라진다는데 할머니는 끝까지 자신만의 고유함을 잃지 않았다. 할머니는 가구가 아니라 마지막까지도 사람이었다.
이후 병세가 악화된 할머니는 요양병원에 들어간 지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코로나19가 한창 심할 때라 한 달 동안 면회가 금지됐다. 40년 동안 할머니를 모셨던 시부모님은 할머니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던 것을 두고두고 한스러워 했다. 할머니가 죽고 나서야 가족들은 할머니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환하게 웃는 할머니의 영정 사진을 보며 10만 원 이상은 낼 수 없다고 버티던 귀여운 할머니 모습이 생각났다. 늙었다고 해서 병들었다고 해서 마음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죽여주는 여자>에 나오는 노인들은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죽음을 택한다. 가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소영은 그들을 위해 죽여주는 여자가 된다. 노인들이 "저 세상에서는 좀 편해지셨"기를 바라며.
소영 역할을 연기한 배우 윤여정은 이 모든 서사를 납득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50년 연기 경력의 윤여정에게도 성매매 할머니 역할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것이다. 윤여정은 "이 나이에 잃을 게 없지 않나"라는 마음으로 배역을 택했다고 한다. "(이 영화를 통해) 모르고 죽었으면 좋았을 것들을 알게 됐고 그걸 연기해야 했다"는 윤여정은 "이 영화가 우리가 외면하지 말아야 할 문제를 들여다보는 시발점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영화 마지막, 소영은 감옥에 들어가서야 평생 해오던 밥벌이를 그만둘 수 있게 된다. 늙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존엄하게 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윤여정에게 큰 빚을 졌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나를 키운 여자들
취업하고 결혼하고 엄마가 되면 자연스럽게 어른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여전히 어떻게 사는 게 맞는 걸까 어지러울 때, 소파에 벌러덩 드러누워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보면 뿌옇던 세상이 조금은 선명해졌습니다. 나를 키운 여자들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