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올해의 땡땡
안식년 결심하고 가장 먼저 도전한 것이 운전이었다. 장내기능 수업받고 멘탈이 탈탈, 역시 난 안 되나 봐 포기 직전까지 갔다 주변의 응원과(브런치 독자 분들 댓글도 큰 힘이 됐다) 남편의 특훈 덕분에 3월에 면허를 딸 수 있었다. 그 후로도 몇 번의 포기 위기가 (아주 많이) 있었지만 지금은 어린이집 등하원이 가능해졌고 얼마 전에는 군산에서 서울까지 무리 없이 운전해서 왔다. 새해 목표는 내비만 보고 서울 시내 돌아다니기. 제주도에서 운전하기.
-1월부터 3월까지 번역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부족한 영어실력을 통렬하게 깨닫는 시간이었고 나의 좋지 않은 한국어 사용 습관도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일을 업으로 하고 싶냐 묻는다면 일단은 보류 상태다. 어떤 일을 새롭게 시작해 익숙해지는 것을 넘어 잘 해내기 위해서는 박박 바닥을 기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운전과 번역 공부를 통해 새삼 알게 됐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무엇도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다.
-공동육아 어린이집 식구들과 함께 텃밭을 가꾼 것도 처음 경험해 보는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일 이외에도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아주 많다는 것을 경험했다. 흙을 만지고 쑥쑥 자라는 작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 평화‘라는 단어가 만져지는 것 같았다.
-피아노는 미국 여행 이후로는 전혀 못 치고 있다. 그래도 칠 때 즐거웠으니까 됐지 뭐. 꼭 꾸준히 해서 뭔가를 이뤄야만 의미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을까?
-프리랜서 외주 작업을 처음으로 했다(이전에도 외주는 해봤지만 그땐 팀으로 수주를 받았다). 매달 1-2건 인터뷰를 하고 기사를 쓰는 일이었는데 전국을 돌아다니며 인터뷰가 아니었으면 결코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이 즐거웠다. 차안에서 동료와 나누는 대화도. 가능하다면 인터뷰 작업을 어떤 형태로든 계속 이어가고 싶다.
-8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한 달 조금 넘게 미국-캐나다 여행을 다녀왔다. 절반은 친정 부모님, 남동생까지 함께, 나머지 절반은 나와 남편 날날이 우리 세 가족만. 여행 가기 전부터 이번에는 꼭 여행기를 제대로 쓰리라 다짐했다. 매일매일 아이폰 메모장에 기록을 남겼고(완전한 글을 쓰기는 어려워서 나중에는 취재수첩 작성하듯 키워드 중심으로 써두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꼭 쓰려했지만… 아직 시작도 못했습니다… 과거의 기록아 잘 있니.
-미국에서 나를 사로잡은 것은 광활한 자연이었다. 남편은 경외감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요세미티 국립공원 여행을 마치고 나오면서 결심했다. 나를 좁고 작게 만드는 것과 결별하자고. 그렇게 생각하니 명확해지는 것들이 있었다.
공동창업했던 회사에서 퇴사를 결심했을 때 공교롭게 박재범도 AOMG, 하이어뮤직 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그의 행보가 어떻게 될까, 오랜 팬으로서 정말 궁금했는데 역시는 역시! 이제 박재범은 좋아하는을 넘어서 존경하는 아티스트가 됐다. 욕심 없이 야망을 갖는다는 게 무엇인지, 그 야망을 성실함과 책임감으로 어떻게 구체적인 현실로 만들어 나가는지 결과물로 보여주는 사람. 박재범과 동시대에 살 수 있어 행복하다.
뉴진스 민지가 2년 동안 이 노래로 연습하면서 한 번도 질리지 않았다고 했는데 무슨 말인지 알겠다. 아무리 들어도 신선하고 청량하고 아련해. 첫 인트로에서 혜인이 파트 이후 하니가 춤을 추고 다니엘이 나풀나풀 핑그르 돌면서 나오는 부분을 볼 때면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1월의 시작을 영로열스 시즌1로 열었다. 스웨덴어로 보고 영어 더빙으로 보고 영어 자막으로 보고 몇 번을 보고 또 봤는지. 11월에 시즌2 나온 후 영로열스 때문에 10년 만에 트위터 재가입했습니다… 시즌1에 비해 시즌2는 고구마가 많았지만 미숙함과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서 오히려 더 좋았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되고, 최악의 모습조차 포용하게 되는 과정이 사랑이니까. 쓰다 보니 어째 올해는 덕질의 해였구나. 마음속에 미움이 아니라 좋아하고 응원하는 마음을 채우기에는 덕질이 최고지. 시즌3 기다립니다.
영로열스 왕자님 에드빈. 03년생인데 5살부터 연기를 시작했다고. 섬세한 감정표현을 어찌나 잘하는지 볼 때마다 감탄했다. 빌헬름과 시몬 덕분에 콜바넴 이후 오랜만에 가슴 저릿함을 느낄 수 있었다. 완벽한 모습의 성숙한 성인이 아니라, 여드름까지 그대로 드러낸 청소년이 10대 역할을 해서 더욱 감정이입이 됐다.
LA 서점에서 영어 원서를 구입했는데 읽는 속도가 호기심을 못 따라가서 결국 e북을 사서 스마트폰으로 읽었다(스토리에 대한 호기심이 너무 커서 번역 수업 들을 때 힘들었던 건가 싶기도). 엄마와의 기억을 이렇게까지 솔직하고 생생하게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엄마에 대한 감정에 애틋함과 그리움뿐 아니라 미움과 원망도 섞여 있어서 더 좋았다. 음식에 대한 묘사도 참 좋았고. 나는 묘사가 늘 어려운데 이 책에는 식상한 묘사가 어쩜 하나도 없다. 마침 엄마와 함께 여행하고 있을 때 읽어서 더 깊이 와닿았던 책. 보면서 많이 울었다.
극장에서 본 영화로만 기준으로 한다면 <헤어질 결심>도 좋고 <에브리씽에브리웨어올앳원스>도 좋았지만 그래도 올해의 영화는 이 영화. ‘좋은 엄마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모성에 대한 전혀 다른 서사를 대담하게 풀어냈다. 최근 나온 책 <돌봄과 작업>도 그렇고, 엄마에 대한 담론이 훨씬 다채로워진 것 같아 반갑다.
-봄즈음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모두 지웠다. 내 일거수일투족을 누군가에게 알릴 필요가 있을까(인스타를 하고 있으면 그래야 할 것만 같다) 회의가 들었고, 무엇보다 인스타와 페북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피하고 싶었던 부정적 감정을 마주하게 될 때가 많았다. 질투, 불안, 후회, 소외… 굳이 내가 내 손으로 이런 감정을 느끼려 할 필요가 있을까? 이걸 해서 내가 행복한가? 답은 아니오였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근황이 궁금해 웹 버전으로 인스타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누군가의 중요한 소식을 놓쳐서 속상해 하기도 했다.
-슬슬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하려 하면서 최근에 인스타를 깔았지만 어떻게 하면 이 플랫폼을 편하게 사용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인스타를 지워서 생긴 시간은 유튜브를 봤지요. 여행 유튜브 채널을 유난히 많이 본 해였다. 그중 최애는 원지! 예민한 성격이라서 잠자리가 바뀌면 잘 못 자는 나와 달리 세계 어디서든 편안하게 눕방을 찍는 원지의 모습을 보면 내 마음까지 편안해진다. 원지를 보면 자기 자신에 대한 해상도가 높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원하는 것, 할 수 있는 것, 잘하는 것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갖는 단단함이 엿보여서 보고 있으면 힘이 난다.
퇴사를 하면서 결심한 것 중 하나는 ‘돈을 쓰며 놀자!’였다. 창업을 하면서 안정적 월급이 줄어들었다는 이유로 소비에 인색했다. 물욕이 생기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돈을 쓸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정적인 수입마저 사라지면 마음이 위축돼서 급하게 일자리를 알아보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퇴사를 하자마자 200만 원 가까이하는 1인용 소파를 현금으로 턱 결제했다. 그동안 고생한 나에게, 앞으로 푹 쉬고픈 내게 준 선물이었다. 지인들이 집에 올 때마다 여기 편하게 누워서 쉬라고 말할 때 어찌나 뿌듯한지. 비싸도 좋은 것, 마음에 쏙 드는 것, 오래 쓸 수 있는 것을 사고 싶은데 그동안 쌓인 습관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올해 가장 큰 마음고생은 집 문제가 아니었을까. 새로 집을 구하는 것도 어려웠고 장기 여행을 앞두고 살고 있는 집이 도통 나갈 생각을 안 해서 속이 바짝바짝 탔다. 사람은 속수무책의 상황이 됐을 때 가장 무력해진다는 뼛속 깊이 실감했다.
-북미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 사실 한국에 오고 싶지 않았다. 계속 도망칠 수 있는 구멍을 찾았다. 그런데 성산동집에 자리를 잡고 하루하루 보내면서 집의 편안함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내가 생각보다 더 집순이이며,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아이 학교 다니는 동안 안정적으로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5월에 조기완경이 곧 찾아올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한약 때문인지 영양제 때문인지 그 후로도 계속 생리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어찌 됐든 그 진단을 계기로 몸의 나이 듦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100세 시대라고 했을 때 여성들 완경이 50세 전후로 찾아온다면 삶의 절반은 완경 이후를 살아야 하는데 그에 대한 담론은 오직 여성성의 상실(성적 매력, 재생산 능력 등)에만 맞춰져 있다. 답답하고 화가 난다. 이 이야기는 좀 더 공부해서 풀어내봐야지.
공동육아의 꽃이라 불리는 7세가 되면서 날날이는 택견을 배우고, 성곽 걷기를 하고, 손뜨개질을 하고, 2박 3일 졸업여행도 다녀왔다. 이번 송년잔치에서는 친구들과 연극도 했다.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는 것만큼이나 뭉클했던 건 아이 마음의 성장이었다. 여전히 처음 겪어보는 것에는 “싫어”가 먼저 나오지만 못 하더라도 해보고 꾸준히 노력하는 모습이 기특하다. 올해는 내 마음의 여유가 생긴 덕분인지 아이가 크는 과정을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줄 수 있어서 기뻤다. 날날이뿐만 아니라 같은 방 아이들이 성장해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던 것도. 내년에 드디어 초등생 학부모가 되다니!
봄에 책 계약을 했다. 3주에 한 번씩 오마이뉴스에 나를 키운 여자들 연재를 하고, 가을부터는 이전에 썼던 원고 개고 작업을 했다. 편집자님과 메일과 카톡으로 작업을 하면서 책 한 권을 내는 데 얼마나 많은 고민과 정성이 들어가는지, 감사하고 황송한 마음이 든다. 글을 쓰는 일은 책을 내는 일에서 아주아주 일부일 뿐이구나.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지만 분명히 그곳에 있는 마음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