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님과의 주말 점심
주말에 S님 집에 식사 초대를 받아 다녀왔다. S님 남편이 직접 담근 막걸리가 그렇게 맛있다고 들었는데 드디어 맛볼 기회가 온 것이다. 남편은 나와 날날이를 S님 집 앞에 데려다주고 회사에 출근했다.
S님 집에 들어갔더니 이미 식탁에는 정성 가득 한 상이 차려져 있었다. 매운 걸 못 먹는 아이를 위해 준비한 스팸김밥과 담백한 버섯전골, 곱게 부친 전, 낙지찜, 봄나물 무침까지. 길을 잘못 찾은 데다가 날날이가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해서 약속 시간보다 많이 늦었다. 배고픈데 기다려준 가족들에게 미안했다. S님의 글과 말로만 접했던 초등학생 남매와 남편 분을 직접 만나니 연예인을 보는 기분이었다.
S님을 처음 알게 된 건 6년 전 페이스북을 통해서였다. 페이스북 친구로 교류하는 사이였냐면 그건 아니었다. 내가 일방적으로 S님 페이스북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ㅎㅎㅎ 그때 나는 육아휴직 중이었고, S님은 페미니스트 엄마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분노(!)의 글을 자주 올렸다.
S님이 올린 글 중에는 ‘여자는 머리가 길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진 딸에게 여자라고 해서 머리가 길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 딸이 갖고 놀던 바비 인형 머리를 싹둑 잘랐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6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할 정도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가부장제 속에 살면서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정확히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을 속시원히 짚어주고 긁어주는 S님의 글을 보는 것은 육아휴직 기간의 낙이었다. 복직하면 꼭 S님께 연락해서 내가 일하고 있는 언론사의 필진으로 글을 써달라고 해야지 다짐했다. 이 후련함을 널리 널리 퍼트리고 싶었다.
복직 후 떨리는 마음으로 S님에게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내던 순간이 아직도 또렷하다. S님은 ‘페미니스트 엄마’라는 정체성으로 매체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나는 S님의 글을 편집했다. 문제를 문제라고 날카롭고 힘 있게 지적하고 비판하는 S님의 글은 독자들에게 열띤 반응을 받았다.
이후 S님은 ‘부너미’라는 이름의 ‘엄마 페미니즘 탐구모임’을 만들어 다른 엄마들과 함께 읽고 함께 썼다. 그리고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당신의 섹스는 평등한가요>라는 두 권의 책을 기획하고 썼다. 10명이 넘는 필진과 소통해 한 권의 책을 만들어 내는 동안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을지, 나는 짐작도 가지 않는다. 그만큼 보람과 기쁨도 크겠지만.
그런 사람이 있다. 내가 한 일을 나보다도 더 잘 기억해 주고 챙겨주는 사람. S님이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S님을 발견하기 전에도 S님은 이미 자신만의 정체성과 개성을 갖고 글을 쓰던 사람이었는데 S님은 내가 자신이 공적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이라며 두고두고 고맙다 말해줬다. 나는 그런 S님이 더 고마웠다. S님 같은 사람이 많지 않다는 걸 알기에. 나조차도 S님처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기에.
<나를 키운 여자들>이 나온 지 얼마 안 돼 인스타그램에 바로 리뷰 글을 올려준 사람도 S님이었다.
2017년, 5살 3살 두 아이 키우며 남편과 불화하던 시절 친정엄마도, 언니들도, 친한 친구들도 제 편은 없었어요.
“이 정도 남편이면 훌륭하다.”
“복에 겨웠다.”
“별것도 아닌 걸로 왜 시비를 거냐.”
육아하며 느끼는 좌절감, 고립감을 풀 길이 없어서 거칠게 쓴 글에 응원과 지지로 호응해 준 사람이 일면식 없는 홍현진 기자였습니다. 오마이뉴스에 기고하라고 제안하고, 쓰면 정성스럽게 편집하여 메인에 걸어주고. 덕분에 제 세상이 넓어졌지요. 참 고마운 사람입니다.
세상과 불화하는 여자들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공감하며 손 내미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그저 미친년이 되고, 잊히고, 병들어 쓰러질 여자들이요. 홍현진은 그런 여자들을 외롭게 두지 않는 다정한 사람입니다. 나를 키우고, 세상을 키우는 홍현진의 이야기. 안온한 세계를 부수고 나온 욕망하는 여자들의 이야기. 꼭 읽어보세요!
책을 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리뷰 글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 S님의 말처럼 내가 다정한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S님의 다정함만큼은 고스란히 전해졌다. 얼마 후 S님은 자신의 집에 오라며 식사 초대를 했다. 책 사인을 받아야 한다고.
책을 내니 세상 사람이 둘로 나뉘어 보인다. 내 책을 읽은 사람/ 내 책을 읽지 않은 사람. 무명작가의 책을 세상 모든 사람이 읽기란 당연히 불가능한 일임을 알면서도 내 책을 사지 않거나 읽지 않은 사람들은 다 밉고 야속하다.
7년 전 출산을 했을 때 갓 태어난 아이 사진을 보고 “예쁘다”라고 말해주지 않는 사람에게 서운함을 느꼈던 것처럼, 출간을 한 나는 (과하게) 기대하고 (과하게) 서운해하고를 반복한다. 출간 초기 호르몬의 장난일까.
책을 받자마자 어서 읽고 리뷰를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는 S님 얘기를 들으며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나는 누군가의 결과물에 그렇게 적극적으로 피드백하고 그간의 노고를 챙겨주는 사람이었나. 아니. 전혀 그렇지 못했다. 바쁘다는 이유로, 귀찮다는 이유로, 멋쩍다는 이유로, 나 역시 수많은 사람에게 서운함을 주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S님 남편이 쌀을 500번 씻어서 담갔다는 막걸리는 입에 착착 감겼고, 11살, 9살, 8살 아이들은 큰 돌봄 없이도 옆에서 잘 놀았다. 아이들 노는 소리, 엄마 찾는 소리를 ASMR 삼아 토요일 낮에 실컷 수다를 떨었다.
S님은 <나를 키운 여자들>에 나오는 영화를 하나씩 찾아보는 게 요즘 즐거움이라고 했다. 부너미는 곧 세 번째 책 출간을 앞두고 있다. 책 이야기, 명절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 소소한 사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빠르게 흐르는 시간이 야속했다.
집에 가기 전, S님이 책을 들고 와 사인을 부탁하는데 코끝이 찡했다. 역시 뭘 좀 아는 사람. 그러고는 쇼핑백에 막걸리와 서천김을 챙겨줬다. 달콤한 막걸리를 품에 안고 집에 오면서 다짐했다. 서운해하는 사람보다는 챙겨주고 축하해 주는 사람이 되자고. 그게 훨씬 멋지니까.
사인을 할 때마다 뭐라고 써야 할까 고민인데 S님에게는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세상과 불화하고 마음껏 욕망하는 삶,
함께 만들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