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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Jul 28. 2019

주인공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두 작가의 첫 출간을 축하하며

퇴근 후 집에 도착했는데 택배가 하나 와 있었다. 뜯어보니 신소영 시민기자가 보낸 책이었다. <혼자 살면 어때요? 좋으면 그만이지>. 책장을 열어보니 정작 저자 사인은 없고 편지가 한 통 끼워져 있었다. 거기에 작은 선물까지.


 

“이 책을 내면서 제 기억과 소감 중에 가장 많이 소환된 사람이 은유쌤과 홍기자님이에요. 베푼 사람은 잊어도 받은 사람은 잊질 못하네요. 무슨 연애도 아니고... ㅎㅎㅎ”



신소영 기자와는 오마이뉴스 편집기자와 시민기자 인연으로 만났다. 첫 번째로 보내온 글이 정말 좋아서 정성스레 편집하고 제목 달았던 기억이 난다. 40대에 폐경... 왜 이리 억울하고 서럽지


40대, 여성, 비혼, 폐경... 키워드가 키워드인 만큼(?) 포털 사이트에는 글 내용과 무관한 무례한 댓글이 줄줄이 달렸고 나는 분노했다. 혹시나 신소영 기자가 상처 받지 않았을까 걱정돼 전화를 했다.


신소영 기자가 보여준 반응이 인상적이었다. 너무나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을 알지도 모르는 사람이 단 댓글에 신경 안 쓴다고, 오히려 편집자가 이렇게 마음 써줘서 고맙다고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어른스럽다는 게 이런 걸까.’ 머릿속을 스친 생각이었다.


무슨 연애도 아니고


잊지 말자, 저자 사인!


이후 신소영 기자는 몇 편의 글을 더 썼다. 나는 신소영 기자에게 ‘비혼일기’라는 제목으로 글을 연재하면 어떨까 제안했다. 20~30대 1인가구, 비혼여성의 이야기는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40대 비혼여성의 이야기는 드물었다. 이런 삶도 있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혼일기’라는 제목은 이서희 작가의 책 ‘이혼일기’에서 따왔다.


2주에 한 번, 신소영 기자는 너무 화려하지도 너무 궁상맞지도 않은 비혼의 이야기를 담담하고 통찰력 있게 쓴 원고를 보내왔다. 나는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지만 신소영 기자의 글에 많이 공감했고 많이 위로받았다.


특히 한쪽 청력을 상실할 정도로 자신을 갈아 넣어 일하다 결국 회사를 떠난 이야기, 40대 초반 나이에 라디오 방송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퇴사하게 된 이야기를 읽으며 나를 계속 돌아보게 됐다. 개인적으로 육아휴직 복귀 후 한창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크던 시절이었다.


후에 신소영 기자는 말했다. 비혼일기를 쓸 때 자신도 너무 힘든 시기였다고. 정상가족이라는 굴레, 일, 인간관계, 나이... 이 모든 이야기를 신소영 기자는 너무 무겁지 않게 차분하게 풀어낸다. 퇴고에 퇴고를 거친 정돈된 글을 보며 나도 함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비혼일기’를 연재해달라는 생각지도 못한 청탁을 받았고 덜컥 수락했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사실 글쓰기의 가장 큰 수혜자는 제 자신이었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 생각이나 감정이 정리되었고, 무엇보다 즐거웠으니까요. 쓰면서 곪아 있던 상처가 조금씩 치유되었고 세상에 다시 나설 용기가 생겼으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법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혼자 살면 어때요? 좋으면 그만이지> 에필로그 중


출간 축하 파티


정말 좋은 책 두 권:)


지난 수요일, 백만 년 만에 자유부인이 된 틈을 타서 저녁에 신소영 기자를 만났다. 같은 부서에서 편집자로 일했던(지금도 일하고 있는) 후배 이주영 기자 그리고 문하연 시민기자도 함께였다. 내가 회사를 나온 후 첫 만남이었다. 이날 모임 제목은 ‘출간 축하 파티’.  


문하연 기자는 가방에서 저자 사인이 적힌 책, <다락방 미술관> 두 권을 꺼냈다. 오마이뉴스에서 ‘그림의 말들’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엮은 책이었다. 내가 퇴사 전까지 전담 편집했던 연재였다. 이주영 기자와 내가 함께 기획했던 ‘명랑한 중년’ 연재도 곧 책으로 출간될 예정이라고 했다.


문하연 기자의 글이 들어오면 편집창에 들어가기 전부터 설렜다. 그의 글을 읽으면 어김없이 크게 웃고 끝에는 찡하고 울게 됐다. 재주 많은 문하연 기자는 요즘 드라마 작가 아카데미를 다니고 있다고(작사도 하는 그는 얼마 전에는 가요제에 참가했다^^).  


에필로그에 이름이 실리는 영광. 이주영 기자도 함께.


육아휴직 복귀 후 퇴사할 때까지 1년은 일과 육아 사이에서 숨이 꼴딱꼴딱 넘어갈 것 같던 날들이었다. 그 1년을 버틸 수 있게 해 준 건 ‘좋은 글’이었다. 오마이뉴스 ‘라이프플러스’팀에서 사는이야기 담당 편집자로 일하면서 좋은 글, 좋은 사람을 정말 많이 만났다. 그 좋은 글의 첫 번째 독자가 될 수 있어 영광이었다.


고백하건대, 취재기자에서 편집기자가 된 후 내가 더는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에 좌절한 적도 있었다. 기사의 주인공은 글 쓴 사람이 될 수밖에 없고 나는 그림자 노동을 하는 것처럼 느껴져 허탈하기도 했다.


편집기자로 일하면서 취재기자로 일할 때와는 전혀 다른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필진을 발굴하고 그 사람이 가장 잘 쓸 수 있는 주제를 기획하고 소통하고... 그렇게 글 한 편 한 편을 함께 만들어내는 과정. 그 글이 독자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을 때 내가 쓴 글인 것처럼 기쁘고 감격스러웠다.  


누군가는 사는이야기 글을 보며 말한다. 일기는 일기장에 쓰라고. 나는 한 사람의 경험과 통찰이 오롯이 담긴 사는이야기 글도 팩트와 뉴스를 다룬 글 못지않게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오직 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고유한 글이니까. 몸과 마음을 온전히 통과한 진실된 글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어쩌면 퇴사라는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좋은 글 덕분이었는지 모른다. 좋은 글을 보면서 나도 좋은 글이 쓰고 싶어 졌다.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나와 이주영 기자에게 고맙다고 하는 두 작가에게 말하고 싶었다. 오히려 고마운 건 나였다고.



덧) 두 사람은 브런치 작가이기도 하다. 아무쪼록 책 잘 팔리길. 구 편집자가 보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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