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정 작가 북토크에 다녀왔다
지난 금요일 저녁, 임희정 작가의 북토크에 다녀왔다.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 무려(!) 띠지 추천사를 쓴 주영, 전 직장 마지막 팀장이었던 은경 선배도 함께. 셋이 이렇게 모이는 건 내가 오마이뉴스를 퇴사한 이후 처음이다.
나와 이주영, 최은경 기자는 사는이야기를 다루는 ‘라이프플러스팀’에서 함께 일했다. 세 명의 에디터가 함께 팀을 꾸릴 때 목표는 ‘프로듀서’가 되는 거였다.
시민기자의 기사를 검토하는 수동적인 역할을 넘어 한 명의 시민기자가 하나의 연재 주제를 정해 책 한 권을 낼 수 있도록 기획하고 독려하고 관리하자고. 그렇게 우리는 1년 가까이 함께 일했다.
그리고 또 1년이 지났다. 나는 퇴사와 창업을 거쳐 소셜벤처로 이직했고, 주영과 은경 선배는 라플팀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
그들과 함께 일한 덕분에 나는 기획 역량을 키울 수 있었고, 마더티브를 창간할 수 있었고, 퇴사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좋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게 됐다. 임희정 작가도 그중 한 명이다.
행사장에 가니 ‘축 출판’이라는 너무나도 정직한 이름의 화환이 떡 하니 있었다. 이제는 전 직장이 된 회사의 대표님 이름과 함께. 임희정 작가는 사전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임희정 작가를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한다.
글을 읽으면 안다. 슥슥 가볍게 쓴 글과 한 글자 한 글자 고민하며 쓴 글의 차이를. 그녀의 글은 명백히 후자였다. 84년생. 나와 동갑인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깊고 섬세한 글을 썼다.
그녀의 글을 편집하고 있으면 부끄러운 마음을 넘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정성스러운 글을 이리 쉽게 읽어도 되는 걸까. 그녀를 직접 만나고 싶었다.
나는 그녀에게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녀는 부모님 이야기로 연재까지 하는 것은 어쩐지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밝히는 것도 조심스러워하던 그녀였다. 아나운서라는 말이 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무게를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을 거다.
나 역시 수년간 편집기자로 일하면서 사는이야기의 무게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막노동하는 아버지와 아나운서 딸. 분명 ‘그림’이 될만했다. 화제가 될 것이고, 내게 월급을 주는 회사에 조금은 도움이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쓰라고 제3자가 강요할 수는 없었다. 사는이야기의 무게는 오롯이 쓰는 사람이 지게 되는 거니까. 에세이를 쓴다는 건 삶의 문제이기도 했다.
그렇게 다른 연재 주제를 정하고 헤어졌는데 그녀가 보내오는 글은 또다시 부모님에 대한 글이었다. 언젠가 그녀는 이런 쪽지를 보냈다. 왜 자꾸만 부모님 이야기를 쓰게 되는지 모르겠다고.
이후 인터뷰에서 임희정 작가는 부모님에 대한 글을 쓰고 나면 한동안 끙끙 앓았다고 했다. 그만큼 오랜 시간 부모님 이야기가 마음속에 깊이 박혀있었던 것 같다고.
임희정 작가는 1년 가까이 오마이뉴스에 부모님에 대한 글을 썼다. 그녀의 글은 그때도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그녀가 자신이 아나운서라는 사실을 밝히는 순간, 모든 게 달라졌다. 그녀의 이름은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고, 순식간에 유명인이 되었다.
나는 어리둥절한 기분이 들었다. 속 깊은 그녀는 지금쯤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괜찮을까. 문자를 보낼까 하다 그만뒀다.
책 출간을 앞두고 그녀는 내게 문자를 보냈다. 내가 그녀의 글을 편집하면서 지었던 제목을 책 본문에 싣게 되어 작게나마 사례를 하고 싶다고.
그동안 편집기자로 일하면서 수많은 글을 편집했고, 그 글이 책으로 엮여 나온 적도 더러 있었다. 심지어 내가 편집한 내용에서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책이 나온 적도 있지만 사례를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사례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다. 그림자 노동은 편집자의 숙명이라 생각할 뿐이었다. 제목 사례비라니, 주목 받지 못 하는 노동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다운 태도였다.
더 감동적인 건 수오서재 대표인 황은희 편집자의 문자였다.
“작가님의 글을 깊이 이해해주시고 좋은 문장들을 발견해주시고 편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임희정 작가는 책을 내면서 편집자와 100통의 이메일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임희정 작가가 그녀처럼 마음 깊은 편집자를 만나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조금은, 아니 조금 많이 부러웠다.
북토크는 2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다. 임희정 작가의 절친인 이은혜 작가의 사회로 두 사람이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았다. 얼마나 열심히 북토크를 준비했을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북토크조차도 그녀다웠다.
임희정 작가에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글을 써보라고 제안했던 은유 작가가 그랬던가.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는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라고. 임희정 작가는 이제 부모님 이야기를 써도 더 이상 아프지도, 슬프지도 않다고 했다.
이날 북토크에는 슈퍼마켓 하는 부모님을 둔 딸, 막노동하는 아버지를 둔 아들이 나왔다. 그녀가 자신의 아픈 손가락을 정확하고 단정한 언어로 표현했을 때,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아픈 손가락을 따스한 눈길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사랑 덕분에 자신의 인생에는 늘 봄밖에 없었다는 어느 딸의 이야기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임희정 작가의 부모님은 다음 날 김장 때문에 북토크에 오지 못 했다.
집에 돌아와 임희정 작가가 직접 보내준 책을 들여다봤다. 내지에는 그녀의 사인과 함께 부모님의 사인이 정직한 글씨체로 적혀 있었다.
감사합니다. 임동명.
고맙습니다. 조순덕.
그녀와 그녀의 부모님이 오래오래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