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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Jan 09. 2022

10년이나 일했는데, ‘이게 맞나’ 싶다면

19년 차 편집기자가 쓴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오마이뉴스> 최은경 기자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몸이 가벼운 사람이다. 그는 연재 코너 만들기의 달인이다.

2013년 '땀나는 편집'이라는 연재를 만들어 <오마이뉴스>의 편집 원칙과 비하인드를 정리한 것을 시작으로, 2015년부터 '다다와 함께 읽은 책'이라는 제목으로 두 딸과 함께 읽은 그림책에 대한 글을 60편 가까이 썼다.

2018년 성교육 전문가 심에스더님과 함께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라는 연재를 기획했고, '땀나는 편집' 이후로도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2019)', '편집자만 아는 TMI(2020)' 등 편집기자의 일에 대한 콘텐츠를 꾸준히 써왔다.

꾸준한 연재는 책이 됐다. 2017년에는 <짬짬이 육아>, 2019년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그리고 2021년 말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오마이북)이라는 책이 출간됐다.


2003년부터 <오마이뉴스> 편집기자로 일해온 최은경 기자는 내가 퇴사하기 전 마지막 팀장이었다. 나는 선배와 함께 2013년부터 5년간 편집기자로 일했다. 2017년 이주영 기자와 셋이 '라이프플러스(사는이야기+책동네+여행+문화)'라는 팀을 만들어 수많은 기획을 함께 했다.


선배는 후배에게도 가볍게 판을 깔아주는 사람이었다. 선배가 내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홍, 하고 싶은 거 다 해"였다. 육아휴직 복직 후 가장 힘들었던 시절, 선배 덕분에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볼 수 있었다.



편집이라는 그림자 노동


 최은경 기자가 쓴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오마이북)ⓒ 오마이북



취재부에서 일하다 처음 편집부에 갔을 때 선배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했던 말은 '네 글을 쓰라'는 거였다. 처음에는 의아했다. 편집을 하러 왔는데 왜 내 글을 쓰라는 거지. 시간이 지나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편집기자로 일하면서 자신의 글을 쓰는 건 마음을 다잡아야 할 만큼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선 편집부에는 일이 정말 많았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는 단언컨대 세상에 둘도 없는 특별한 직군이다. 일반 언론사에서 편집기자가 내부 취재기자가 쓴 글을 검토한다면, <오마이뉴스> 편집기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시민기자와의 소통이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2000년 창간한 오마이뉴스에는 누구든 시민기자로 가입해서 글을 쓸 수 있고, 편집기자는 시민기자의 기사를 검토한다.


검토는 교정/교열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팩트에 오류는 없는지, 무리한 주장은 아닌지, 기사 작성 과정과 내용에 윤리적 문제는 없는지 점검하는 것부터, 좀 더 나은 글이 될 수 있도록 시민기자와 소통해 수정과 보완을 요청하기도 한다. 글이 좀 더 가독성 있게 읽힐 수 있도록 제목과 소제목을 뽑고 적절한 사진을 넣고 기사가 나온 후에는 SNS 바이럴을 담당하는 것도 편집기자의 일이다.


들어온 기사만 검토하는 게 아니다. 각 시기별 이슈에 맞춰 적합한 시민기자에게 청탁을 하고, 시민기자가 잘 쓸 수 있는 주제를 함께 고민해서 연재 코너를 만들고, 시민기자가 계속 쓸 수 있도록 수시로 독려하고 직접 만나기도 한다. 여기에 하루에도 수십 통씩 걸려오는 민원 전화 응대 등 C/S 업무까지.


이렇게 수많은 일을 하지만 편집기자의 역할은 지면에 잘 드러나지 않는 그림자 노동이다. 주요 기사에 편집기자의 바이라인이 함께 들어갈 때도 있지만 어쨌든 기사의 주인공은 당연히 기사를 쓴 시민기자다. 회사 안에서도 편집기자는 취재기자에 비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어렵다. 최은경 기자가 책에 쓴 것처럼 취재기자처럼 특종상을 받는 것도 아니고, 편집기자를 위한 시상 제도도 따로 없다.


기사 바이라인에는 글을 편집한 사람의 이름이 들어가지 않는다. 기사를 쓴 기자의 이름이 들어간다. 이 당연한 명제를 잊지 않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내 일이다. -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p.39



10년이나 일했는데 해놓은 게 없는 것 같아서


최은경 기자는 편집기자로 일한 지 10년 만에 자신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에서 그는 낮에는 편집기자로서 시민기자의 글을 편집하고, 밤에는 스스로 시민기자가 되어 '내 글'을 쓰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게 일이었다. 적응이 좀 된다 싶으면 다시 100미터쯤 멀어지게 하는 사건들이 생겼다. 나에게 편집에 대한 특별한 재능이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고민이 커질 무렵, 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면서 내 삶이 조금 바뀌었다. 일도 더 잘하고 싶어졌고, 내 일의 의미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되었다. - p.7  


최은경 기자는 고백한다. 편집기자 일을 한 지 10년이 지났는데 편집기자로서 별로 해놓은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더 늦기 전에 "아직은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내 일을 정리해 보고 싶었다고.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에는 "언제나 시민기자와 함께"(p.30)여야 하는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일의 기쁨과 슬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글을 기사로 채택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디까지 어떻게 편집을 해야 하나 매일 반복되는 고민부터, 시민기자에게 자신의 글이 왜 채택 안 됐는지 항의를 받거나, 내가 편집한 글에서 치명적인 오류 혹은 오탈자가 발견되는 아찔한 순간까지.


최은경 기자의 일 기록을 읽으며 늘 긴장의 연속이었던 지난 시간이 재생됐다. "이 기사 누가 봤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간담이 서늘해졌던 기억도 함께. "편집은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야"(p.98)라는 대목에서는 나보다 훨씬 더 오래 일한 선배도 나처럼 "이리저리 휘둘리고 흔들"(p. 98)리는 시간을 관통했구나 위로받았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는 시민기자 때문에 울고 시민기자 때문에 웃는다. 최은경 기자는 웃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고 말한다. 끊임없는 가치 판단과 감정 노동에도 편집기자가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역시나 시민기자로부터 나온다.


최 기자는 "어떻게 좀 더 잘 '포장'해서 독자들에게 내놓을까, 고민하게 만드는 글을 만나면 참 좋다"면서 "편집기자 일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어디서 이런 분들을 만나볼 수 있을까"라고 썼다.


나는 특히 '사는 이야기'에서 내 일과 생활에 자극을 받을 때가 많다. 누군가 "책에서 삶의 위안을 얻는다"고 말할 때, 내가 떠올리는 것은 '사는 이야기'였다. 시민기자들이 자신의 일과 삶 속에서 사유하고 성찰한 그 수많은 글을 꼼꼼히 읽으면서 '내 삶은 지금 어떻지?''나는 과연 잘 살고 있는 걸까?' 돌아보는 시간이 많았다. 매일 삶을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p.21


그는 덧붙인다. "지금의 나는 어쩌면 '사는 이야기'들의 총합일지도 모르겠다"(p.22)고. 책을 읽으며 시민기자의 글을 편집하며 위로와 용기를 얻었던 시간이 줄줄이 소환됐다. 시민기자들이 갖고 있는 고유한 서사를 발견하고 그들이 계속 쓸 수 있도록 독려하면서 최은경 기자는 '인정 욕구'라는 약도 없는 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다양한 글쓰기에 대해 그동안의 편집 경험을 바탕으로 시민기자들과 의견을 나누고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나라는 사람의 '쓸모'에 대해 새삼 알게 되었다. 시민기자들을 만나고 오면 없던 기운도 펄펄 났다. 이것도 써보시라, 저것도 써보시라, 하는 나의 조언을 귀담아들었다가 도전하는 시민기자들을 보면 괜히 뿌듯했다. - p.79



'내 일'에 대한 기록


책에는 19년 차 편집기자가 알려주는 글쓰는 데 참고하면 좋을 팁도 가득하다. 개인의 삶을 담은 에세이부터 취재 기사, 주장성 기사, 인터뷰, 서평, 여행기, 맛집 소개 기사 등에서 한 끗이 다른 글쓰기를 할 수 있는 방법을 담았다.


기사라고 해서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기사를 '글'로 대체해도 고려해야 할 사항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보도자료를 그대로 가져온 글에 대해 "시민기자까지 굳이 그렇게 써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라는 최 기자의 질문은 의미심장하다. 누구나 다 쓸 수 있는 글, 어디서든 찾을 수 있는 글이 아니라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찾는 건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태도이기도 하다.


나의 일상 이야기가 기사 형식을 갖춘 '사는 이야기'가 되려면, 그 글이 기사인 이유가 반드시 하나라도 있어야 한다. 나는 그것을 '재미, 공감, 뉴스(정보)'라고 본다. 글에 새로운 관점이나 시선이 있고, 재미가 있고, 정보로서의 효용 가치가 있고,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읽는 이를 성찰하게 하는 지점이 있어야 한다. 이런 것들을 고려했을 때 하나라도 해당 사항이 있으면 그 글은 좋은 기사가 될 수 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는 그것을 보는 눈을 키워온 사람들이고, 그렇게 훈련된 눈으로 시민기자들의 기사를 편집하고, 기삿거리를 발굴(혹은 발견)하는 사람들이다. - p.141


첫 직장이었던 <오마이뉴스>를 퇴사한 후 가장 아쉬웠던 건 9년이나 수많은 글을 쓰고 또 편집하는 일을 하면서 정작 일에 대한 기록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거였다. 내가 하는 일이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닌 것 같아서, 괜히 자랑하는 것 같아 민망해서, 동료 혹은 관계자들의 반응이 걱정돼서. 매일 해야 하는 일에 압도되다 보면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정리하는 일은 자꾸만 미루게 됐다.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을 읽으며 최은경 기자에게 참 고마웠다. 우리가 함께했던 일, 지금도 편집기자들이 묵묵히 하고 있는 일을 충실히 기록해 줘서. 화려하지 않지만 소소하게 반짝이던 순간에 언어를 붙여줘서. 물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의 시간도 함께 말이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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