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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Mar 21. 2023

글쓰기라는 '비싼 취미'

기꺼이 시도하고 실패하기 위해 

“그래서 니 꿈이 뭔데? 앞으로 뭘 하고 싶은 거냐고.” 


점심을 사주겠다며 부른 선배는 시시껄렁한 농담을 이어가다 갑자기 툭, 질문을 던졌다. 꿈이 뭐냐는 질문을 오랜만에 받아봐서였을까, 꿈이 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본 지 오래돼서였을까.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나는 선배에게 말했다. 꿈이나 계획 같은 건 모르겠고, 일단은 일의 총량을 줄이고 싶다고. 나는 일에 과몰입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에 일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다고. 비슷한 의미에서 9 to 6로 회사를 다니는 것도 지금으로서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선배에게 차마 못 했던 이야기가 있다. 일의 총량을 줄이고 남는 시간에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어차피 나는 직업적으로도 글을 쓰니까 여기에서 글은 업무와는 무관한 글을 의미한다. 내가 온전히 주도권을 쥐고 쓸 수 있는 글. 돈이 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정말로 쓰고 싶은 글. 


주 3일 정도는 직업적인 일을 하고 주 2일은 내 글을 쓰고 싶었다. 그렇게 쓰다 보면 언젠가는 주 5일 동안 내가 쓰고 싶은 글만 쓰게 되는 날도 오지 않을까. 


왜 선배에게 그 말을 못 했을까. 내가 과연 글만 쓰고 싶다는 이야기를 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런 이야기는 베스트셀러 작가나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글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 세계를 지지해 주는 팬을 가진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줄줄이 출간 계약을 맺고 마감이 쌓여있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첫 책이 나온 후 주저함은 더욱 커졌다. 주변에서는 책이 나왔으니 바쁘겠다고 말했지만 사실 하나도 바쁘지 않았다. 책이 나왔다고 여기저기서 불러주거나 책이 화제가 되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다. 매일 판매지수와 리뷰를 확인하는 것을 빼고는 이전과 다를 것 없는 일상이었다. 책 한 권을 내는 데 드는 시간에 비해 신간이 매대에 올랐다 내려가는 시간은 허무하리만큼 짧았다. 


책이 나왔을 때쯤 나는 다음 커리어를 고민하고 있었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내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지, 이전처럼 회사에 다니면서 사이드 프로젝트로 글을 쓸지. 고민 끝에 일단은 전자를 택했지만 불안은 수시로 찾아온다. 직업적으로 커리어를 쌓고 돈을 벌어야 할 시간에 이렇게 글을 쓰고 있어도 괜찮은 걸까. 애매한 재능으로 허황된 꿈을 좇고 있는 건 아닐까. 자기만족을 위해 글쓰기라는 비싼 취미 생활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며칠은 이보다 좋을 수 없을 정도로 평온한 날을 보내다 어제부터 갑자기 불안해졌다. 내 글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서사도 통찰력도 표현력도 하나도 특별할 게 없었다. 내가 가진 유일한 재능은 꾸준함인데 꾸준히 별로인 글을 쓰게 될까 겁났다. 


그러다 잠들기 전 대니 샤피로의 <계속 쓰기 : 나의 단어로>를 읽다가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글을 쓰는 삶이란 용기와 인내, 끈기, 공감, 열린 마음, 그리고 거절당했을 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기꺼이 혼자 있겠다는 의지도 필요하다. 자신에게 상냥해야 하고, 가리개 없이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고, 사람들이 보는 것을 관찰하고 버텨야 하고, 절제하는 동시에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기꺼이 실패해야 한다. 한 번만이 아니라 자꾸만, 평생을. 언젠가 사뮈엘 베케트는 이렇게 썼다. “시도했고, 실패했다. 상관없다. 다시 하기. 다시 실패하기. 더 잘 실패하기.” 


작가는 말한다. “성패에 좌지우지될수록 글쓰기에 뛰어들기가 어려워진다"고. “짧고 나쁜 책"을 쓰겠다는 마음으로 “작게 시작"하라고. 하나의 단어가 문장이 될지, 단락이 될지, 한 편의 글이 될지, 시작하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지만 일단 써보라고. 


“그리고 단어 하나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단어를, 또 다음 단어를, 그렇게 문장 하나가 완성될 때까지. 밑져야 본전이다. 마침내 몇 페이지를 써냈다. 완벽하지 않았고 나쁘기까지 했지만, 그래도 시작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 가장 많이 기억에 남은 건 내 작품이 <뉴요커> 폰트로 실린 걸 봤던 순간도 아니고, 아버지의 삽화를 봤을 때도 아니고, 이어지던 축하 전화와 메시지도 아니다. 해가 뜨기 전 새벽, 침실 책상 아래쪽 브로드웨이를 지나는 차들의 불빛과 어둠 속에서 빛나던 컴퓨터 화면이다.” 


자다 일어나 책을 조금 더 읽다 이 글을 쓴다. 한 단어에서 시작된 글을. 그저 자기만족일지 몰라도, 계속 실패하고 또 실패할지 몰라도, 나는 계속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마음 하나는 분명하기에 이번만큼은 도망치지 않고 버텨보려 한다. 시도하고 실패하고 더 잘 실패하면서. 


“우리는 더듬거리고, 사랑하고, 패배한다. 때로는 예측하지 못한 힘을 발견하고, 때로는 두려움에 무릎을 꿇는다. 우리는 초조하고 앞으로의 일을 알고 싶다. 하지만 글을 쓰는 삶은 답을 주지 않을 것이다. 글쓰기는 우리를 지금 여기로 몰아간다. 오직 우리가 종이 위로 펜을 가져가는 지금 이 순간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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