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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May 02. 2023

내가 쓰지 않으려는 말의 목록

예민하고 불편한 언어 생활

아이는 학교에서 친척에 대해 배웠다고 했다. 들어보니 촌수를 배운 모양이다. 요즘 퀴즈에 빠져 있는 아이는 나와 남편에게 퀴즈를 내보라고 했다. 그럼 자기가 맞추겠다고. 날날이는 양가의 유일한 손주다. 나는 남동생이 한 명, 남편은 여동생이 한 명 있다. 남동생도 여동생도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사실 촌수를 따질 만한 사람이 별로 없다.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삼촌이 끝이다. 그래도 저렇게 의기양양한 얼굴로 퀴즈를 기다리고 있으니 문제를 만들어야지.


“아빠한테 만약 형이 있다고 생각해 봐. 그 사람을 뭐라고 하지?”

“어, 삼촌이라 그러고 결혼하면 큰아버지라고 해.”


오 제법인데.


“그럼… 꼬꼬 삼촌(내 남동생 별명이 꼬꼬다)이 만약에 결혼을 했어. 그 부인을 뭐라고 부르지?”


아이 얼굴이 어두워졌다. 숙모라는 말을 몰라서 그러나 했더니 뜻밖의 말을 했다.


“아니… 선생님이 엄마 쪽은 ‘외'를 붙여야 한다고 했어. 그러니까 꼬꼬 삼촌은 그냥 삼촌이 아니고 외삼촌이라고 해야 해. 부산 할머니, 할아버지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야."


이번에는 나와 남편 얼굴이 어두워졌다. 아이에게 친할머니, 외할머니라는 말을 쓰지 않으려 노력해 왔다. 엄마 쪽 가족에게 바깥 외(外)를, 아빠 쪽 가족에게 친할 친(親)을 붙이는 것은 남성 중심 가부장제 문화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나의 엄마와 아빠를 부산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부르고 남편의 엄마와 아빠를 원주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선생님 말이 법인 줄 아는 초등학교 1학년에게 “그런데 ‘외'라는 말은 안 쓰는 게 좋은 말이야"라고 해야 할까 고민하다 말을 삼켰다.


3월 입학식 때 학교에서는 남학생에게는 파란색, 여학생에게는 분홍색 머리띠를 선물했다. 머리띠에는 ‘입학을 축하해요'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남자는 파랑, 여자는 분홍이라는 도식이 이곳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통용되는 것일까. 머리띠가 아이가 앞으로 겪게 될 사회를 보여주는 것 같아 심란했다.



나조차 몰랐던 특권


“제주도 사람의 입장에서 남해(南海)는 틀린 말이다. 그들에게는 북해(北海)다.”


20대 초반,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다 이 대목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어떤 책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뇌를 깨우는 책'이라고 종종 답하는데 이 책을 읽었을 때 뇌를 깨운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온몸으로 경험했다. 누군가에게는 남해가 남해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다. 내가 교과서에서 배웠거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상식이 상식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도. 책에서 정희진 작가는 질문한다.


“왜 박완서는 ‘제3세계’ 문학이고, 괴테는 ‘세계' 문학인가. ‘유색 인종'은, 흰색은 하나의 색이 아니라 색의 기준이 된다는 백인 우월주의의 표현이다. 왜 한국의 프로야구 최종 결선은 ‘코리안 시리즈'인데, 미국은 아메리칸 시리즈가 아니라 ‘월드 시리즈'인가? 한국어나 영어에서 만남(meet)은 본다(see)는 것을 의미하는데(“또 봐요.”), 이는 시각 장애인을 배제한 말이다. 남성에게 성교는 삽입이지만 여성에게는 흡입이다.”


정희진 작가는 “언어는 차별의 결과가 아니라 차별의 시작"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쓴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는 거의 모든 말은 백인, 남성, 중산층, 성인, 비장애인, 이성애자, 서울 사는 사람의 시각에서 구성된 것이다. 중립적인 말,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언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해부터 평생 교육 현장 취재를 하면서 기차를 탈 일이 많았다. 부산에서 20년, 서울에서 20년을 살아온 나는 부산역과 서울역밖에 알지 못한다. 출장을 갔다 서울에 돌아오기 위해 기차를 기다리다 깜짝 놀랐다.


부산역과 서울역에서는 열차 출발 시간보다 조금 일찍 가면 역에 기차가 서 있었다. 부산역과 서울역은 출발역이나 종착역이기 때문이다. 약속 시간에 딱 맞춰 가는 것을 불안해하는 나는 미리 열차에 타서 열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리곤 했다.


그런데 다른 지역에서는 출발 시간보다 일찍 역에 도착해도 플랫폼에 열차가 없었다. 다른 역에서 오는 열차가 정차했을 때 기차를 타야 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열차는 한 시간에도 몇 대씩 있는데 호남 지역에 가는 열차는 하루에 몇 대밖에 없었다.


서울과 부산이라는 대도시에서만 살아온 나와, 대도시가 아닌 지역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경험은 다를 것이다. 느긋하게 기차에 앉아 열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는 삶과, 이번에 놓치면 몇 시간 후에나 탈 수 있는 열차를 기다리는 삶은 다를 것이다. 그때 내가 특권을 누려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조차도 특권인지 몰랐던 특권을.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김지혜는 “특권은 ‘가진 자의 여유'로서,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상태"라고 정의한다. 가지고 있는지조차 몰랐던 특권을 인식하는 계기는 특권이 흔들렸을 때다.


서른 살 넘어 ‘유아차’를 끌면서 나는 그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다니던 도로 곳곳이 휠체어를 탄 사람들에게 얼마나 불편했을지 상상했다. '서울' 시청역에 유아차를 끌고 가서야 그토록 많이 드나들던 시청역이 교통 약자들에게는 최악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언론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 지명을 쓸 때 앞에 서울을 붙이라는 교육을 받았는데 자주 잊는다. 서울에 살다 보면 서울이 기본값인 것 같다).



상처받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


<나를 키운 여자들> 최종 교열을 하면서 ‘지방'과 ‘지역'이라는 말을 두고 고민을 했다. 로컬이 주목받으면서 요즘은 ‘지방' 대신 ‘지역'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는 것까지는 알았지만 왜 ‘지방'이 아닌 ‘지역’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국어사전을 찾아봤더니 지방에는 ‘서울 이외의 지역'이라는 뜻이 있었다. 이는 서울 아닌 다른 곳에서의 삶을 상상한다는 내 글 속의 의미와 맥락이 통했다.


그래도 찝찝한 마음에 다시 검색을 해보니 지난 2021년 현행법에 사용된 ‘지방' 표기를 ‘지역'으로 대체하자는 입법이 추진됐다는 기사가 나왔다. ‘지방'은 중앙에 종속되는 상하 개념이고 ‘지역'은 수평적이고 가치중립적인 개념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지방이라는 용어를 없애는 것은 지방이라는 수직적 구조를 지역이라는 수평적 구조로 전환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편집자와 상의해 ‘지방'이라는 말을 ‘지역'으로 수정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김지혜는 자신이 차별을 할 리 없다고 생각하는 ‘선량한 차별주의자'에 대해 연구하게 된 계기로 ‘결정장애'라는 말을 소개한다. 대학 다문화학과에서 소수자, 인권, 차별에 관해 가르치고 연구하는 교수인 김지혜는 혐오 표현에 관한 토론회에서 ‘결정장애'라는 말을 썼다가 참석자에게 지적을 받는다.


‘부족함', ‘열등함'이라는 의미로 ‘장애'를 사용하게 됐을 때 장애는 부족하고 열등한 것이라는 인식이 생기게 된다. 김지혜는 “나는 다른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착각이고 신화일 뿐이었다"면서 “나를 둘러싼 말과 생각들을 하나하나 훑는 작업은 마치 세상을 다시 배우는 느낌이었다"라고 고백한다.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 몇 번이나 얼굴이 화끈거렸다.


얼마 전, ‘파행'이라는 표현의 뜻을 알고 또 가슴이 철렁했다. 파행의 '파(跛)'가 절름발이라는 뜻이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는 것을 장애에 비유하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인 표현이라는 것이다. 기자로 일하면서 파행이라는 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썼던 기억이 떠올랐다.


정희진의 말처럼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다. 안다는 것은 내가 무심코 타인에게 준 상처를 아프게 깨닫는 일이기도 하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외할머니' 표현에 대해 검색을 하다가 자신은 외할머니라는 말이 정겨운데 페미니스트들이 쓸데없이 표현을 바꾸려 한다는 게시물을 발견했다. 내가 정말로 두려운 것은 자신이 행하는 차별과 혐오가 차별과 혐오인 줄 모른 채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상처받는 것보다 훨씬 더 두렵다. 그래서 계속해서 공부하고 예민해지려 한다. 기꺼이 깨지고 불편해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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