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라는 질문
인터뷰이 N님은 인터뷰 날짜를 최대한 빨리 잡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화 통화를 하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묻자 N님은 머리 이야기를 꺼냈다.
“그게, 제가 지금 머리가 길어서 자르고 싶은데 인터뷰 사진 찍어야 하니까 인터뷰 끝나고 자르려고요. 머리 자르면 사진 이상하게 나올까 봐(웃음). 머리가 치렁치렁하니까 불편해서 빨리 자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빨리 했으면 좋겠다고 했죠.”
N님은 사뭇 진지하게 이야기하는데 웃음이 나왔다. 인터뷰 날짜를 정할 때 머리는 예상도 못했던 변수였다. 가장 빠른 시기로 인터뷰 일정을 잡았다.
“선생님, 그럼 날짜를 O월 O일로 잡고요. 그런데 인터뷰하려면 아직 한 달이나 남았는데 머리 때문에 불편하시면 안 되니까 지금 빨리 자르시면 어때요? 그럼 그때즈음에는 자연스러울 것 같은데요.”
N님은 인터뷰 장소로 집 주소를 알려줬다. 집안에 돌봐야 할 식구가 있어서 밖에서 인터뷰를 하기 어렵다고 했다. 인터뷰를 하는 날, N님은 긴 생머리가 아니라 짧은 단발 파마머리를 하고 나타났다. 나는 머리가 정말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산뜻하고 예쁘다고. N님은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N님 집에 들어서자 거실에 N님의 20대 딸이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뇌병변 장애 1급이라고 했다. 따님 모습이 사진에 담겨도 괜찮냐고 묻자 N님은 말했다.
“그럼요. 자랑할 딸도 아니지만 숨길 딸도 아니에요.”
부엌 식탁에서 인터뷰를 시작하려 하자 거실에 있는 딸이 답답하고 불안해하는 기색을 보였다. N님은 딸에게 다가가더니 두 손을 주먹 쥐어 보이면서 말했다.
“나가서 옆집 OO이 엄마랑 산책할래? 아니면 여기서 엄마 인터뷰하는 거 볼래? (왼 주먹을 흔들며) 여기, (오른 주먹을 흔들며) 여기 선택해 봐.”
딸은 나가서 산책하는 것을 선택했다. N님은 능숙한 솜씨로 딸을 거실용 휠체어에서 야외용 휠체어로 옮겼다. 밖에 나가자 날이 봄날처럼 따뜻했다. OO이 엄마가 올 때까지 N님과 함께 휠체어를 끌고 주차장을 돌았다. 딸의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 N님은 딸의 하얀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손이 얼마나 예쁜 줄 몰라요. 우리 식구들은 여름에 손이 더 빛나요. 잘 안 타서.”
50대 중반인 N님은 굴곡이 많은 삶을 살았다. N님과의 인터뷰 기사 인트로는 이렇게 시작한다.
삶을 긍정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지난 3월 7일 천안에서 최남숙(55)씨를 만나 인터뷰하면서 계속 맴돌았던 질문이다. 이날 인터뷰는 남숙씨 집 부엌에서 진행되었다. 남숙씨가 인터뷰를 하는 동안 뇌병변 장애 1급인 딸 명옥(26)씨는 휠체어를 타고 옆집 이웃과 산책을 하다 들어와 거실에서 TV를 봤다. 곳곳에 남숙씨의 손길이 느껴지는 집은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다.
14살부터 공부 대신 스스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남숙씨는 48살이 되어서야 검정고시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중졸·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한 남숙씨는 6년의 공부 끝에 지난해 공인중개사 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공부 중독"이라는 남숙씨는 지금은 또 다른 공부를 하고 있다.
이날 인터뷰에서 남숙씨가 가장 많이 쓴 표현은 ‘재밌다'였다. 궁금한 것도 해보고 싶은 것도 많다는 남숙씨의 공부 도전기를 들어보았다.
11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14살부터 가족과 떨어져 남의 집 살이를 하고, 장애를 가진 딸을 늘 곁에서 돌봐야 하고… 이런 상황 속에서도 N님은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딸이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울면서 다시 집에 들어왔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겠어요'라고 말하자 N님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고생이라고 생각을 안 해요. 한 이틀, 삼일만 힘들어요. 우리 남편 사업 망했을 때도 삼일만 힘들고 끝났어요. 저는 우리 딸을 장애인이라서 더 밝게 키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결혼식장도 가고 장례식장도 데려갈 수 있으면 데려갔어요. 쟤, 방송국도 많이 갔어요. 국악을 좋아해서 KBS <국악 한마당>도 보러 가고요. 남상일씨랑 사진도 찍었어요(웃음).”
인터뷰이가 마치 내 마음을 꿰뚫은 것 같은 답변을 하는 순간이 있다. 인터뷰를 위해 서울에서 천안으로 가는 길, 함께 취재를 간 동료와 힘든 상황을 견디는 각기 다른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똑같이 고난을 겪으면서도 그 고난에 붙들려 자기 연민에 빠져 있는 사람과 고난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N님의 말을 듣는 순간 차 안에서의 대화가 떠올랐다.
마흔여덟에 공부를 시작해 중졸,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6년 공부 끝에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땄지만 N님은 아직 일을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24시간 곁에서 딸을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아는 (부동산) 사장님이 와서 일하라고는 하는데, 애 때문에 못 하니까. 그래도 괜찮아요. 언젠가는 하겠죠. 급하게 안 하고 남편 정년 퇴직하면 같이 하려고 해요. (부동산) 사무실 자리는 계속 보고 있어요.”
N님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음속 질문이 그대로 튀어나왔다.
“어떻게 그러실 수 있어요? 6년이나 어렵게 준비해서 시험에 합격했는데, ‘나중에라도 하면 되겠지'라는 마음을 어떻게 먹을 수 있는지 궁금해요.”
그러자 N님이 말을 이어갔다.
“딸이 집에만 있다가 학교에 가니까 제가 식당에서 일을 시작했거든요. 그때도 저는 감사했어요. 식당을 다니면서 일할 수 있고, (식당에서) 남이 해준 밥 먹을 수 있고, 얼마나 감사해요. 애 핑계 대고 집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것도 감사했어요. 안 그럼 저도 돈 벌러 갔을 테니까요. 못 하는 건 안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감사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감사와 불평 사이에서 감사를 택하려 한다는 N님의 말을 들으며 숙연해졌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어쩔 수 없는 것들 사이에서 어쩔 수 있는 것들을 찾아가며 우리는 어른이 되어간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이기란 어른이 되어서도 힘겹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못 견디거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이리 재고 저리 재고 자꾸만 생각이 많아진다. 맞다. 내가 그런 사람이다.
N님은 생각하고 걱정하기 전에 먼저 도전하는 사람이었다.
“저는 무모하게 하는 걸 좋아해요. 이거 재고 저거 재고 계산 안 하고, ‘나쁜 일 아니다’ 싶으면 무작정하는 거죠. 공인중개사 공부할 때도 ‘어려운데 왜 하냐'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요. 아무리 어려워도 다 사람이 하는 일이잖아요. 남들이 3시간 공부하면 저는 5시간 공부하면 되고 남들 1년 걸리면 저는 3년, 4년 걸리면 되니까요. 그래서 해보는 거예요. 하면 되지. <우리말 겨루기>도 꼴찌 해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나갔어요. 물론 열심히 하기는 했지만, 꼴찌를 해도 안 창피하다 이거죠.”
요즘 나는 불확실성을 견디고 뭔가를 지속하는 사람들이 궁금하고 신기하다. 이제는 도망치기보다는 버티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은유 작가는 인터뷰집인 <크게 그린 사람> 서문에서 이렇게 쓴다.
“이야기는 힘이 세서 견고한 관념을 부순다. 내가 듣는 이야기는 내 감각과 정신의 속성을 천천히 바꾼다. 살아가면서 참조할 수 있는 사람 이야기가 많아야, 삶에 대한 질문을 비축해 두어야 내가 덜 불행하고 남을 덜 괴롭히게 된다는 것을 나는 경험했다.”
인터뷰이의 서사가 내 삶을 통과할 때마다 나는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인터뷰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참조할 수 있는 사람 이야기'가 많아지기를 바라며, 계속 이야기를 듣고 질문을 던지고 글을 쓴다. 이야기는 정말로 힘이 세기 때문이다.
N님과의 인터뷰는 <평생학습e음>에서 볼 수 있다.
*프리랜서 에디터로 일해요. 관련 문의 및 제안은 hong69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