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인터뷰 시리즈를 시작하며
봄이 오기 전, 브런치를 통해 제안을 하나 받았다. 한 교육출판기업에서 중고등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뉴스레터를 새롭게 론칭할 예정인데 인터뷰 콘텐츠를 맡아달라는 내용이었다. 제안 글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며칠 전 발행하신 <인터뷰 질문지를 짤 때 고민하는 것>이라는 글과, 그밖에 여러 글들을 읽으면서 인터뷰이를 진심으로 생각하시는 에디터라는 생각이 들었고, 기쁜 마음으로 이렇게 제안을 드립니다.”
신기했다. 이렇게 일이 들어올 수도 있구나.
안식년이 끝나고 프리랜서가 되기로 결심했지만 사실 막막했다. 어떻게 나를 알리고 일감을 얻을 수 있을까. 회사를 나와서 직접 만든 브랜드인 마더티브와 창고살롱을 통해 여러 제안을 받고 협업을 진행한 적은 있지만 이제 내게는 아무 소속이 없었다. 0에서부터 다시 나만의 포트폴리오를 쌓아가야 했다.
다행히 완전히 0부터는 아니었다. 그전의 일 경험이 새로운 일의 기회로 연결된 것이니까. 일 기록을 할 때마다 민망함과 자기 검열이 따르지만 브런치에 차곡차곡 기록해두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업체에서는 유명 교사가 아니라 보통 교사의 삶을 담을 수 있는 심층 인터뷰 콘텐츠를 원했다. 대면 회의와 이메일 소통을 통해서 기획을 구체화해 나갔다. 코너명이 정해졌다. ‘선생님의 B면’. 인터뷰 기획 소개글은 이렇다.
교사라는 직업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선생님이라는 ‘직업’ 이면의 ‘사람’을 들여다 볼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선생님의 B 면] 은 중·고등학교 교사들과의 진솔한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 잘 몰랐던 교사라는 개인의 B면을 들여다 봅니다. - 편집자 말
인터뷰 시리즈의 첫 인터뷰 콘텐츠는 매우 중요하다. 기획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면서 앞으로 어떤 인터뷰가 진행될지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어떤 인터뷰이를 선정할 것인지, 인터뷰이의 어떤 면에 대해 보여줄 것인지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논의를 통해 첫 인터뷰이는 중학교에서 가르치는 90년생 여자 교사 S님으로 정해졌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10년 차 교사이자, EBS 국어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분이었다.
아이들이 모두 떠난 금요일 오후 4시 30분, 인터뷰를 위해 찾은 학교는 조용했다. 초, 중, 고 12년 동안 머물렀으니 학교라는 공간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들이 퇴근 준비를 하는 학교는 낯설었다.
교사라는 직업만큼 사람들이 쉽게 ‘안다’고 생각하는 직업이 있을까. 저마다 자신이 겪었던 교사의 모습으로 교사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만든다. 학교 다닐 때 만났던 선생님들은 대부분 무기력해 보였다. 어쩌면 내가 바라본 교사라는 직업 자체가 재미없어 보였기에 선생님이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S님은 학교에 오는 게 매일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다. 어떻게 직장에 다니는 게 매일 즐겁고 행복할 수 있을까. 조직 안에서도, 조직 밖에서도 일하는 게 재밌고 보람 있었지만 늘 한편에 ‘이게 맞나’라는 의심을 품고 살았던 나로서는 더욱 믿기 어려운 말이었다. 하지만 S님의 얼굴에는 정말로 ‘행복’이라는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사실 저는 교사 준비할 때 확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내게 교사가 정말 맞을까? 내가 이렇게 큰 영향력을 가진 직업을 가져도 될까?’ 직접 교사가 되어 보니까 생각보다 훨씬 행복하고 생각보다 훨씬 힘든 직업인 것 같아요(웃음). 물론 행복한 순간이 훨씬 많아서 힘든 순간을 상쇄하지만요. 저는 정말 매일 학교 오는 게 행복하거든요. 직장을 다니면서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한테 ‘사랑해요.'라는 말을 진심으로 듣는 직업이 많지 않잖아요. 교사는 학생들한테 ‘선생님 좋아요, 선생님 사랑해요.'라는 말을 진심으로 듣거든요. 정말 이런 직업이 없는 것 같아요.”
S님께 솔직한 질문을 던졌다.
-저는 사실 학교 다닐 때, 학생 입장에서는 매년 똑같은 내용을 수업하려면 너무 지겹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똑같은 수업을 1반부터 10반까지 해야 하잖아요. 그런 데서 오는 답답함은 없으셨어요?
“똑같은 수업을 해도 차시마다, 반마다 조금씩 달라요. 첫 수업은 저도 망하거든요. ‘아, 시간 배분 망했다(웃음)’. 그런데 그다음 반에서는 조금 더 낫고, 그다음 반에서는 조금 더 낫고… 거기에서 오는 즐거움이 있으니까 똑같은 수업이라는 생각이 별로 안 들어요. 아이들은 못 느끼겠지만 저 혼자 느끼는 게 있어요.”
S님은 교사라는 직업이 갖고 있는 안정성 때문에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겠지만, 교사는 오히려 노력하지 않으면 더 티가 나는 직업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끊임없이 배우려 한다고.
“내가 노력하지 않는 것을 아이들이 바로 느낄 것 같은 직업이랄까요. 그래서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열심히 하는 것이 학생들에게도 자극이 되고요.”
인터뷰를 하기 전, '요즘 교사'들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 몇 권의 책을 읽었다(책 덕후는 모든 걸 책으로 배운다 ㅎㅎㅎ). 그중 <나는 87년생 초등교사입니다>라는 책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교사로 살아보니 교사란 단순한 직업인이 아니었다. 살아가며 하는 많은 선택의 순간에 ‘내가 교사인데 이래도 되나' 하고 잠시라도 생각한다. 그런 시간이 숱하게 쌓이며 나는 ‘교사란 직업이 삶 자체가 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 송은주, <나는 87년생 초등교사입니다>
‘직업이 삶 자체가 되는 사람’이라는 말이 무겁게 다가왔다. S님에게 일과 삶의 균형을 어떻게 맞춰가고 있는지 물었다.
“제가 평소에 무엇에 관심이 있고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그대로 수업에 녹아들어 가잖아요. 교사라는 직업은 일과 삶을 떼려야 뗄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일과 삶이 분리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고, 아이들에게 좀 더 올곧고 올바른 시선으로 사회의 다양한 부분에 대해 전달해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려 해요. 제가 관심을 가지는 만큼 아이들에게 생각의 문을 열어줄 수 있으니까요.”
일이 곧 삶이 되어 번아웃을 겪었던 개인적 기억이 소환됐기 때문일까. S님의 말이 머리로는 이해가 가면서도 너무 모범생스러운 답변 같기도 했다. ‘아 뭔가 부족한데’라는 마음을 품고 있는데 사진작가인 민정님이 교실 뒤에 있는 학급 문고에 대해 물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학급 문고로 갔다.
책의 면면을 살펴보면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안다. 굴러다니는 책을 아무렇게나 꽂아놓은 책장과 고심해서 고르고 고른 책을 꽂아놓은 책장의 차이를.
책장에는 S님이 정성껏 직접 고른 150권 정도의 책이 꽂혀 있었다. 매년 반 배정이 될 때마다 S님은 학급 문고를 제일 먼저 옮긴다고 했다.
“제가 읽고 좋았던 책들을 학급 문고에 갖다 두는 거예요. 선생님이 추천해 주는 책을 읽는 걸 아이들이 좋아하더라고요.”
S님에게 ‘원픽’이 뭐냐고 물었더니 양귀자 작가의 <모순>을 꺼내 들었다.
“추천하는 이유는, 삶은 모순으로 가득 찬 것이다. 아 망했네요(웃음). 이 책을 통해서 삶에 대해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긍정적으로 바라봤던 이면에 부정적인 게 있을 수 있고, 내 인생의 선택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라 애들한테 많이 추천해요.”
S님은 <긴긴밤>을 아침 자습시간에 아이들에게 읽어줬다고 말했다. 때로는 S님이 아이들에게 책 추천을 받아 빌려 읽기도 한다고. 책장 앞에 선 S님은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다.
이제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 S님은 이 일을 정말 사랑하는구나.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민정님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민정님이 이 인터뷰를 살렸다고.
집에 와서 S님이 추천해 준 <모순>을 바로 주문해서 읽었다. 책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아마 아버지 스스로도 사람들이 자신을 그런 식으로 쉽게 판단하고 생각을 그쳐버리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을 것이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아무에게나 간단히 설명될 수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은 누구에게나 치욕이었다.” -양귀자 <모순>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는 것 같았다. 나 역시 나의 기준과 잣대로 인터뷰이를 납작하게 재단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모순>을 읽으면서 S님의 긍정은 밝은 면만 보려고 하는 긍정이 아니라 행복과 불행을 모두 알고 있는 이의 긍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 질문지를 짜고, 대화를 나누고, 원고를 정리하고… 인터뷰에서 인터뷰어의 역할은 물론 중요하다. 인터뷰어의 판단에 따라 인터뷰이의 삶이 편집돼 독자에게 전달된다. 하지만 인터뷰의 중심은 누가 뭐래도 인터뷰이다. 인터뷰어인 나를 기준으로 인터뷰이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더 낮고 겸손한 자세로 인터뷰이를 이해하려 노력해야겠다고 반성했다. 그래야 독자에게 인터뷰이라는 사람이 더 투명하게 전달될 수 있을 테니까.
다시 추가 질문지를 짰다. S님과의 인터뷰 중에서 더 자세하게 듣고 싶은 내용을 서면으로 다시 물었다. S님은 역시나 정성스러운 답변지를 보내면서 메일에 이렇게 썼다.
“에디터님의 질문 덕분에 저도 제 자신에게 물음을 던질 수 있었습니다. 내면에 숨어 있던, 저조차도 말로 표현하지 못하던 마음들을 발견하는 시간이었어요.”
첫 인터뷰는 좌충우돌일 수밖에 없다. 그걸 알면서도 잘하고 싶은 마음에 내가 너무 욕심을 부렸던 게 아닐까. 인터뷰이의 말에 귀 기울이기보다 내가 듣고 싶은 말에 집중하려 했던 건 아닐까. 추가 인터뷰 답변지를 읽으면서 그제야 인터뷰 원고를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인터뷰라는 작업이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가내수공업 같다. 준비 시간부터 실제로 작업물이 나오기까지 생각할 것도 많고 조율할 것도 많고 실제로 손도 정말 많이 쓴다. 나는 인터뷰가 한 번에 모든 것이 결정되는 작업이 아니라 좋다. 인터뷰에는 끊임없이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티솔루션 뉴스레터 ‘선생님의 B면’은 지학사 티솔루션을 이용하는 중고등학교 교사들에게 한 달에 한 번 발송된다. 경력 10년 차에도 '이 일이 정말 좋다'고 말하는 강송연 교사와의 인터뷰 전문은 지학사 블로그에서도 볼 수 있다. 블로그에 다른 교사들이 나는 어떤 교사가 되고 싶은지 댓글을 달았는데 읽으면서 마음이 뭉클했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꿈을 꾸고 노력할 수 있도록 자신감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공부 왜 필요하냐는 질문들을 하는 아이들에게 수업을 통해 그 이유를 찾아주고 싶었는데 막상 쉽지가 않습니다. 동료 선생님들의 댓글들을 읽으며 다들 고민하시며 가르치시는구나 다시 한번 느끼며 위안을 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