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존재가 궁금해질 때
‘생물’ 과목 명칭이 ‘생명과학’으로 바뀐 것을 알고 있는가. 기사를 찾아보니 2007년 개정된 교육과정에 따라 2012년부터 생물이 생명과학으로 변경됐다고 한다. 10년이 지났지만 나는 이번에 그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만큼 중고등학교 교육과 무관한 삶을 살았다.
인터뷰이 K님은 충남 아산에 위치한 고등학교에서 생명과학을 가르치는 교사다. 나는 전형적인 문과형 인간이었다. 수학과 과학은 이해하는 과목이 아니라 암기 과목이었다. <선생님의 B면> 다음 인터뷰이가 과학교사로 정해졌을 때 긴장한 것은 당연했다. 과학수업이 어땠더라. 어렵고 지루했다는 기억밖에 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올해 초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인터뷰를 하면서 과학과 내적 친밀감을 쌓은 상황이라는 것.
K님은 여러모로 나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K님이 말을 하면 눈앞에 도표와 수식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이를 테면', ‘예를 들어'라는 표현을 자주 썼고 ‘첫째, 둘째, 셋째'라는 말과 함께 사례를 설명했다. 인터뷰에 대한 답변을 하는 게 아니라 가설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나도 한 논리 하는 문과생이었는데 이과생의 논리는 장르가 달랐다. 나와 다른 존재를 만났을 때 거부감이 드는 경우도 있고 호기심이 생기는 경우도 있는데 K님은 후자였다. K님이 어떤 답변을 할지 기대됐다.
어릴 때부터 과학을 좋아했다는 K님은 연구자가 되고 싶어서 생물학과 진학을 목표로 했다가 생물교육과에 가게 됐다고 했다. 사범대학에 가서도 교사보다는 연구자의 길을 꿈꿨던 K님은 사범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박사학위 논문을 검색하니 초파리에 대한 논문을 쓴 것으로 나왔다. 제목은 ‘초파리 spinster 유전자 기능 연구 및 초파리를 이용한 유전자 발현 조절에 관한 탐구활동의 개발’.
연구를 하며 강사 생활을 하던 K님은 우연한 기회에 고등학교 과학교사가 됐다. K님 나이 만 서른여섯 일 때였다. 교사가 된 지 올해로 10년 차인 K님은 학교에서도 초파리를 키우며 학생들과 함께 연구를 하고, 농업생명과학 수업을 하며 학교 뒤뜰에서 농사를 짓는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K님을 부르는 별명은 ‘초파리 아빠', ‘농부'다.
과학을 한 번도 재밌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궁금했다. 과학의 어떤 점이 재밌었을까.
과학이 왜 좋았냐는 나의 질문에 K님은 현미경 이야기를 꺼냈다.
“학창 시절부터 실험이 좋았고 특히 생물이 좋았어요. 그 당시만 해도 좋은 현미경을 쓰기 어려웠는데 제가 과학고를 다녔거든요. 학교에 좋은 현미경이 있었어요. 이천몇 백 배로 볼 수 있는 현미경이요. 선생님이 그 현미경 쓰는 법을 저한테 알려주시더라고요. 그때 현미경으로 양파 세포 분열을 관찰했는데 그 모습이 너어무 예쁜 거예요(이 대목에서 박 교사는 ‘너어무'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그걸 사진으로 찍어서 인화해서 학교 축제 때 팔기도 했어요. 그때부터 현미경으로 작은 세상을 본다는 것에 매료된 것 같아요. 현미경은 안 보이던 세상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하잖아요.”
인터뷰가 끝나면 나는 남편에게 인터뷰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본격적으로 녹취를 풀고 인터뷰 원고를 쓰기 전에 인터뷰를 정리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남편을 첫 독자라고 생각하고 인터뷰 후기를 들려주다 보면 내가 인터뷰를 하면서 어떤 내용이 흥미로웠는지 스스로 깨닫게 된다. 남편의 반응을 보면서 원고 방향에 대한 힌트를 얻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는 나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재밌겠구나, 이건 나만 흥미로운 이야기일 수도 있겠구나, 이건 원고에 포함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겠구나.
K님을 인터뷰한 후 남편에게 현미경 이야기를 들려줬다. 정확히는 현미경 이야기를 하던 K님의 얼굴에 대해.
“사람이 좋아하는 마음을 숨길 수 없다고 하잖아. 40대 중반인 분이 고등학교 때 현미경 봤을 때 이야기를 하는데, 진짜 행복해하는 얼굴인 거야. 나는 그런 순간을 발견하는 게 좋아. 아이 사진 찍을 때 사진 찍어주는 사람 얼굴 본 적 있어? 아이를 정말 사랑스러워하는 마음이 얼굴에 다 드러나거든. 그런 순간을 목격하는 게 좋아. 그건 꾸며낼 수가 없는 거잖아.”
옆에서 운전을 하던 남편은 아이 학교 데려다줄 때 이야기를 꺼냈다.
“어제 날날이 등교하는데 날날이 친구 OO이가 저기서 오는 거야.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해서 막 달려오는데 친구도 그렇고 날날이도 그렇고 좋아하고 신나 하는 마음이 얼굴에 다 드러나는 거야. 그걸 보면서 아, 날날이가 학교를 즐겁게 다니고 있구나 생각했지.”
K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번 인터뷰를 위해 읽은 책이 떠올랐다. 천문학자인 심채경 작가가 쓴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작가는 수학이나 과학에서 딱히 특별한 재능이 없었던 자신이 천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설명하면서 연주시차를 설명하던 선생님의 모습을 설명한다.
“거리와 각도, 시차를 설명하기 위해 칠판에 옴싹 달라붙어서, 모두가 보고 있지만 아무도 보지 못하게 애쓰며 점 두 개를 칠판에 찍고는 돌아서서 이토록 흥미진진한 것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학생들을 바라보던 그 순간, 무미건조한 중년 아저씨의 눈에서 반짝, 소년이 지나갔다. 술이나 산해진미도 아니고 복권 당첨도 아닌데. 하다못해 아름다운 ‘연주씨'를 만난 것도 아니고 그냥 연주시차. 지난 십몇 년 동안 한 해에 예닐곱 반에서 똑같은 설명을 했을 텐데 어째서 연주시차 따위가 저 사람을 그리 즐겁게 하는 것인지 몹시 궁금했다. 일 년 뒤, 나는 지구과학 경시대회에 나가서 어쭙잖은 상을 탔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인터뷰이와 관련된 자료를 최대한 다방면으로 찾아보려 한다. 인터뷰이에 대한 정보를 중심으로 진행하는 인터뷰도 있지만 <선생님의 B면> 인터뷰는 인터뷰이라는 사람을 보여주는 데 좀 더 집중하는 인터뷰 시리즈다. 인터뷰어가 인터뷰이를 어떻게 해석해서 보여줄지가 그만큼 중요하다.
과학교사라는 일을 하는 K님이라는 사람을 독자들이 입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인터뷰어인 내가 과학교사라는 직업을 이해하고 있어야 했다. 과학교사가 쓴 블로그, 브런치를 검색해 보고 K님이 재직하고 있는 학교 유튜브 채널에서 학생들이 어떻게 과학실을 이용하고 있는지 찾아봤다.
이야깃거리가 소소하고 구체적일수록 인터뷰이는 인터뷰어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주변 사람들에게 고등학교 과학선생님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지, 과학선생님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지 질문을 수집하기도 했다. 나의 상상력과 호기심에는 분명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K님처럼 과학을 사랑하는 과학자들이 쓴 책을 찾아봤다. 첫 번째 인터뷰였던 S님의 경우 문학을 사랑하는 국어교사였는데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이 무엇인지는 알 것 같았다. S님이 소설 <시선으로부터> 이야기를 꺼낼 때 어찌나 반가웠던지. 수능 공부하면서 수학 공부하다 힘들 때 힐링하려고 국어 공부를 했다는 말에도 격하게 공감했다.
그런데 과학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이럴 때 도움이 되는 것은 언제나 책이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가 대학 비정규직 행성과학자의 일상을 보여준다면, <쓸모없는 것들이 우리를 구할 거야>는 K님처럼 현미경으로 작은 생물을 탐구하는 생물학자가 쓴 책이다.
<쓸모없는 것들이 우리를 구할 거야>를 쓴 김준 작가는 ‘예쁜꼬마선충'이라는 생물을 연구하는데 이 책 덕분에 생물학 연구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초파리가 인간과 유전자가 60퍼센트나 일치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고(예쁜꼬마선충 유전자는 70~80퍼센트가 사람의 유전자와 비슷하다고), 초파리를 연구하는 실험실에 들어가면 식초 냄새가 진동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두 책을 읽으면서 남들은 쓸모없고 어렵다 생각하는 학문을 사랑하는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한 분야를 깊이 파고들고 더 정확하게 알고 싶어 하는 마음, 그 지식을 타인과 나누고픈 마음을.
김준 작가는 과학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을 “시간이 멈춘 듯 조금씩 세상을 낯설게 바라보게 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게 된다는 것은 호기심을 갖고 찬찬히 보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K님이 현미경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던 세상을 세세하게 볼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인터뷰를 하는 과정도 비슷하다. 이번에 K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초파리가 궁금해졌고 과학실이 궁금해졌고 과학을 업으로 삼는 이들이 궁금해졌다. 언젠가 나를 스쳐 지나갔거나 당연한 듯 주변에 있었지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들을 유심히 지켜보고 질문을 던지고 싶어졌다.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잠시 시간을 멈추고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들여다본다. 인터뷰어는 독자가 낯선 세상을 익숙하게, 익숙한 세상을 낯설게 관찰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다.
연구자와 교사 사이에서 고민하다 교사가 된 K님은 연구자로서의 경험이 교사 생활의 큰 원동력이 된다고 했다. 과학실 소개를 하며 학생들과 함께 하는 과학 수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K님의 얼굴을 보며 그 말이 진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K님과 헤어지면서 K님 같은 선생님을 만났다면 과학을 좋아할 수 있었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10대의 나는 다른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사범대생이었지만 사범대가 싫었고, 교사가 아닌 연구자를 꿈꿨지만 서른여섯이 돼서야 교사라는 진로를 찾은 K님은 학생들에게 진로는 언제든 바뀔 수 있고 언제든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준다고 말했다(K님은 학교에서 진로진학부장을 맡고 있다). 생각해 보니 내가 기자를 그만뒀을 때가 만으로 서른 넷이었다. 기자 아닌 직업을 상상해 본 적 없고 기자가 아닌 나를 상상해 본 적 없는데 이렇게 계속해서 프리랜서로 취재를 하고 글을 쓰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그동안의 경험이 내 안에 고스란히 쌓여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연료가 된다는 것도. K님과 나의 공통점을 하나 찾았다.
K님과의 인터뷰는 지학사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