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는 인터뷰어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선생님의 B면' 이번 달 인터뷰이는 22년 차 음악 교사였다. 솔직히 22년 차 교사라는 타이틀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권태, 경직 같은 부정적인 단어였다. 지금까지 해오던 일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면서 관성적으로 일하고 있지 않을까. 보수적으로 정형화되고 안전한 답변을 할 것 같았다. 이럴 때일수록 질문지를 잘 짜는 것이 중요하다. 정형화되고 안전한 답변을 얻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생각해 보지 못했던 질문을 던져야 할 테니까.
밑취재를 위해 인터뷰이가 이전에 인터뷰했던 자료나 썼던 글, 출연한 영상 등 미리 찾아볼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찾아보는 편인데 일반 교사들은 이러한 자료를 찾기 쉽지 않다. SNS를 미리 알려달라고 하는 방법도 있지만 SNS 운영을 하지 않을 수도 있고 아무래도 사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그래서 교사 인터뷰 준비를 위해 내가 먼저 하는 작업은 이력서를 계속 들여다보는 것이다. 추리 탐정이라도 된 것처럼 이력서 속의 행간을 읽으려 한다.
S교사의 이력서를 보는데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S교사는 음대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여기까지는 다른 교사들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이력이다. 그런데 S교사는 1993년에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3년 뒤인 1995년에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 과정인 예술전문사과정에 입학한 것으로 적혀 있었다. 전문사를 ‘졸업’이 아니라 ‘수료’한 것이 1998년, 중고등 교사로 임용된 것은 2002년이었다.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력서 이면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아래와 같은 질문을 짰다.
-한예종 전문사를 수료한 것이 1998년인데 중고등 교사로 임용된 것은 2002년입니다. 30대 중반에 교사가 되셨는데요. 그 사이 진로에 대해 어떤 고민이 있으셨나요? 중고등학교 음악교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있을까요?
이력서를 바탕으로 개인적인 정보에 대한 질문지를 짠 다음에는 ‘음악교사'에 대한 정보를 탐색했다. 브런치와 블로그에서 음악교사가 쓴 글을 찾아보거나 유튜브에 올라온 브이로그를 보면서 교과 특성에 맞는 질문을 짰다.
교사 인터뷰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과 비교했을 때(고등학교 졸업한 게 어언 20년…) 교육 과정이나 교사에게 요구되는 역량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낀다. 요즘은 음악 교과서에 가요는 물론이고 랩, 뮤지컬 음악, 드라마 음악 등이 실리고, 칼림바, 드럼 같은 악기를 배운다고 해서 놀랐다.
다음으로는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인터뷰이를 떠올리면서 음악가가 쓴 책을 읽었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인터뷰이와 어울릴 것 같은 책을 골라 읽는데 이번에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류이치 사카모토가 쓴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를 읽었다. 인터뷰이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은 책을 읽다 보면 인터뷰이를 상상하는 폭이 넓어지고 인터뷰이와 스몰토크를 할 때도 도움이 된다.
얼마 전,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일하는 한 지인이 내가 쓴 인터뷰에 대한 글을 읽고 학생들과 인터뷰 수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근처 지역에 사는 문학가를 인터뷰하는 수업이었는데 지인은 미리 질문지를 보내면 인터뷰이가 준비된 답변만 하게 돼서 지루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물었다.
나는 일단은 인터뷰이가 편하게 인터뷰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질문지를 미리 보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이러한 고민을 솔직하게 인터뷰이에게 말하고 질문지를 미리 보내는 것이 좋을지 물어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그때 내가 말하지 않은 것이 있었는데, 예비 질문지를 준비하는 것이다. 지인의 말처럼 질문지를 미리 보내두면 준비된 답변만 나와서 생동감이 떨어지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첫 질문을 보통 질문지에 없는 것으로 가볍게 던지는 편이다. 인터뷰 답변 흐름에 따라 질문지 순서를 재조정하고 추가 질문을 던지고 예정했던 질문을 빼기도 한다. 정해진 틀 안에서 변주를 하는 것이다. 적절한 긴장감은 자연스러운 인터뷰를 이끌어 내는 데 도움이 된다.
인터뷰이의 말을 집중해서 들으면서 리액션하고 다음 질문을 고민하고 시간을 배분하고… 인터뷰를 한 번 하고 나면 진이 빠진다. 그런데 인터뷰를 처음 하는 사람이 유연성을 발휘해서 현장에서 바로 질문을 던지는 것은 쉽지 않다(나도 매번 어렵다). 이때 미리 예비 질문지를 짜두면 도움이 된다. 나만 볼 수 있는 인터뷰 질문지에 스몰토크로 활용하면 좋을 이야기를 메모해 두는 것도 유용하다.
이처럼 최대한 충실하게 인터뷰 준비를 하지만 인터뷰 현장에서는 질문지에 얽매이지 않으려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터뷰이와 현장에서 나누는 대화이기 때문이다.
1년 중 낮이 제일 길다는 하지에 음악실에서 만난 S님은 고운 하늘색 투피스 정장을 입고 나타났다. 22년 차 교사를 떠올렸을 때 생각했던 이미지와 달리 S님에게는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이 느껴졌다. 교육대학원을 졸업한 1993년과 교사가 된 2002년 사이 9년의 공백에 대해 물었을 때 S님은 진솔한 답변을 들려줬다. 음악을 정말 사랑해서 작곡을 전공했지만 삶은 결코 녹록지 않았던 세월에 대해. 고민하고 방황하고 도망치고 다시 결정을 내리며 치열하게 살아낸 시간에 대해.
S님이 여러 번 “정말 도망치고 싶더라고요"라고 말했을 때 나는 “정말 솔직하시네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S님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누구나 힘들 때는 도망가고 싶고 피하고 싶잖아요. 도망이 가고 싶지만 제 안에는 굉장한 책임감이 있었어요. 책임을 안 질 수는 없잖아요.”
S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과 책임을 지고 싶은 마음이 싸울 때마다 나는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꽁꽁 숨기려 했다. 책임감 없는 사람, 나약한 사람처럼 보이는 게 싫었다. S님이 “도망가고 싶었다"라고 투명하게 말할 때마다 내가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누구나 힘들 때 도망가고 싶은 마음은 똑같은 거구나. 도망치고 싶었다고 말해도 괜찮구나.
교사 인터뷰를 할 때면 학생 시절 내가 만났던 교사에 대한 기억이 어땠나 떠올려 보게 된다. 음악 선생님 하면 생각나는 건 엔니오 모리꼬네였다. 고등학교 때였다. 수행 평가로 선생님이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 리포트를 쓰라고 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엔니오 모리꼬네가 영화 <러브 어페어> O.S.T로 작곡한 ‘피아노 솔로'에 대한 글을 썼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이 아주 활성화된 시절은 아니어서 이 음악이 뭔지 몰라서 한참이나 찾아 헤매다 운명처럼 음악의 제목을 알게 된 순간에 대해, 내가 왜 이 음악을 사랑하는지에 대해 썼다.
인터뷰를 하면서 S님이 엔니오 모리꼬네를 좋아한다고 하자 그때가 떠올랐다. 음악 수업 시간에 뭘 배웠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내가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 과제를 했던 기억은 선명하다고 하자 S님은 반가운 얼굴로 “그래서 학생 중심 수업이 중요한 거예요"라고 말하며 피아노로 향했다. 그리고 피아노 솔로를 가볍게 연주해 줬다. 그러고는 신나는 표정으로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에 대해 설명했다. 그때 느낀 감동이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인터뷰를 할 때 나는 인터뷰어로서 최선과 진심을 다하려고 한다. 그것은 나의 일하는 윤리다. 그런데 좋은 인터뷰가 나오기 위해서는 인터뷰이도 함께 최선과 진심을 다 해야 한다는 걸 S님과 인터뷰를 하면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이 다 거기서 거기지'라고 쉽게 판단하게 된다. 사람에게 크게 기대하지 않으니 크게 실망할 일도 없다. 그런데 인터뷰를 할 때마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한다. 알고 있다고 단정 짓는 오만함을 되짚는다. 이력서에 적혀 있는 몇 줄의 프로필로는 결코 알 수 없는 무수한 서사가 사람들에게 숨겨져 있다. 그 서사를 발굴하고 엮어내는 일이 좋다.
최선과 진심은 통하는 걸까. 교사 인터뷰 시리즈는 지학사에서 뉴스레터로 중고등학교 교사들에게 발송되고 지학사 블로그에도 함께 실린다. 글이든 영상이든 숏폼이 유행하는 시대에 이렇게 긴 인터뷰를 정독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렇게 정성 들여 인터뷰를 쓰는 게 무슨 소용일까 의심하게 될 때가 있는데 아래 댓글을 보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놀랍네요. 요즘 교직 탈출은 지능순이라며 학교 현장의 분위기와 여건이 좋지 않아 우울하던 중 인터뷰를 보고 상황이 어떠하든 내가 좋아하는 일 즐겁게 하면 극복할 수 있겠다 싶어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되네요.”
"한 마디 한 마디, 인터뷰에 대한 대답들이 진정성 있게 다가오는 느낌. 저 또한 제 삶에 매우 진지했고 지금까지 음악만 35년 넘게 꾸준히 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지만 시련 또한 많았기에 너무 공감합니다.”
이 인터뷰 후기 글을 쓰고 있는데 S님에게 메일이 왔다.
“보내주신 인터뷰를 보며, 작가님의 고심과 노력이 느껴졌는데요. 작가님 덕분에 좋은 인터뷰글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2시간 남짓 짧게 뵈었지만 인터뷰 날, 화기애애한 분위기 만들어 주시고 예상치 못한 질문으로 잠자고 있던 나의 모습을 일깨워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작가님과 사진작가님 왠지 오래전부터 알던 분 같기도 하고요. ㅎㅎ”
이번 인터뷰 콘텐츠를 보면서 민정님이 찍은 사진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인터뷰를 할 때는 인터뷰이에게만 집중하느라 주변을 살피지 못하는데 민정님만의 시선으로 바라본 음악실이 이랬구나. 사진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뉴스레터 담당자분의 정성도 느낄 수 있었다. 인터뷰는 인터뷰어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매너리즘을 모르는 22년 차 음악교사와의 인터뷰 전문은 아래에서 볼 수 있다.
인터뷰어로서의 작업에 대한 노션폴리오를 재정비했다. 인터뷰에 대한 문의 및 제안은 hong698@gmail.com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