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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Aug 07. 2023

양육자 인터뷰를 기획하며

'균형'이 아닌 '조율'

김포에 가까워지자 비행기에 탄 아이들이 하나둘 울기 시작했다. 아이들 우는 소리는 고양이 우는 소리를 닮았다. 숨이 넘어가게 우는 아이를 달래려 ‘쉬, 쉬' 소리를 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얼마나 초조한 마음일까. 고개 돌려 쳐다보지 않으려 애썼다. 시선이 느껴지면 더 마음이 애탈 테니. 어서 아이가 마음의 안정을 찾기를, 부디 아이 울음소리에 짜증 내는 사람이 없기를 바랐다. 책을 읽던 날날이는 옆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던 시절을 지나 날날이는 8살이 되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잔뜩 겁먹은 것이 무색할 정도로 아이는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처음으로 혼자 등교를 했다. 결연한 표정으로 집문을 나선 아이가 학교 정문을 통과했다는 알람을 받고는 육아의 한 시절이 끝났음을 알 수 있었다. 안도감과 섭섭함이 교차했다.


아이가 태어난 후 엄마인 동료들과 웹진을 창간했다. 집중 육아기를 보내고 있는 엄마들을 위한 에세이집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를 썼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내 일을 지켜나가고 있는 엄마 10인의 인터뷰집 <내 일을 지키고 싶은 엄마를 위한 안내서>를 펴냈다.


콘텐츠 다음은 커뮤니티였다. 엄마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일과 삶을 고민하는 여성들을 위한 온라인 여성 커뮤니티를 공동창업했다. ‘이렇게 살아갈 수도 있구나'라고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레퍼런스를 여성들에게 제시하고, 여성들이 안전한 판에서 연결될 수 있었으면 했다.


웹진도 커뮤니티도, ‘엄마로 살면서 어떻게 나를, 내 일을 지킬 수 있을까'라는 내 삶의 고민에서 시작됐다. 웹진을 창간한 지 3년, 커뮤니티를 운영한 지 1년 즈음 됐을 때 이제는 다음 챕터로 넘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크면서 육아가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진 것도 이유라면 이유일 수 있겠다. 엄마 이외의 다른 키워드로 나를 설명하고 싶었다.  


시간이 흐른 후, 나처럼 오랫동안 천착해온 주제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한 누군가에게 나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은 말을 들은 적 있다. “나에게 다른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멈추기로 했다.  


안식년이 끝나고 프리랜서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면서 양육자 인터뷰 기획 제안을 받았을 때 잠시 망설였다. 누구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기획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렇기에 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엄마’에서 그만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나.


그럼에도 인터뷰 시리즈를 진행하기로 한 이유는, 첫째는 엄마뿐만 아니라 엄마와 아빠를 함께 포함하는 양육자 인터뷰를 해보고 싶었다. 둘째는 클라이언트가 처음 보내온 기획안을 보면서 자꾸만 떠올랐던 한 단어 때문이었다. ‘조율'.


인터뷰 시리즈의 대문이 되는 ‘나의 엄빠일지' 소개 글은 다음과 같다.  


“엄빠로 살면서도 ‘나' 자신으로서의 삶은 여전히 소중합니다. 엄빠의 삶과 나의 삶을 조율하면서 살아가는 다양한 양육자들의 이야기를 ‘나의 엄빠일지'를 통해 들려드립니다.”


소개 글을 쓰면서 감회가 새로웠다. ‘엄빠'라는 말이 당연하게 사용되는 것도, ‘엄빠로 살면서도 ‘나' 자신으로서의 삶은 여전히 소중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7년 전 아이를 낳았을 때만 하더라도 상상하기 어려웠다. 느리지만 사회가 조금씩 또렷이 변했다는 것을 실감했다.


@지학사 엄빠공감 이민정


안식년을 보내기 전의 나였다면 ‘조율’ 대신 ‘균형'이라는 단어를 썼을 것이다. 나로서의 삶과 엄마로서의 삶의 균형, 일과 육아의 균형, 일과 삶의 균형. 명확한 선을 긋는 데서 안정감을 느끼는 내게는 균형을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일을 할 때 육아가 침투하거나, 육아를 할 때 일이 침투하면 못 볼 것을 본 사람처럼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균형에 집착하면 할수록 알게 됐다. 균형이란 신기루라는 것을. 일과 삶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고체가 아니기에 왼쪽에 5, 오른쪽에 5를 올려놓을 수 없었다. 일과 삶은 액체처럼 서로에게 스며들고 뒤섞였다. 일과 삶이 5대 5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되 일이 삶을, 삶이 일을 잠식하지 않도록 끝없는 조율이 필요했다.


한편으로는 그런 의문도 든다. 일과 삶을 동등한 위치에 놓는 게 맞는 걸까. 일은 삶에 포함돼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전에는 ‘나'가 곧 ‘일'이었다면 이제는 ‘나'의 범주에 취향, 취미, 휴식 등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엄마로서의 삶과 나로서의 삶을 무 자르듯 나눌 수 없다는 것도.


그렇다고 해서 ‘나'를 지키는 것, ‘내 일'을 지키는 것이 중요했던 시기의 내가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그때는 그때의 ‘독기(!!!)’가 있었고 그때만 만들 수 있었던 콘텐츠가 있었다. 초등학생 양육자가 된 지금, 일이 곧 나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지금의 내가 만들 수 있는 콘텐츠가 있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나의 엄빠일지'는 지금까지 두 개의 인터뷰가 발행됐다. 첫 번째 인터뷰이는 엄빠가 된 후 퇴사를 하고 진짜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자영업자 부부인 이수지, 김니노씨, 두 번째 인터뷰이는 두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사수하면서 ‘전업맘'과 ‘워킹맘' 사이에서 자신만의 이름을 만들어가고 있는 정소령씨였다.


인터뷰를 하고 원고를 정리하면서 모양이 매번 달라지는 퍼즐 조각 맞추기를 떠올렸다. 인생의 생애주기에 따라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방식, ‘나'의 삶과 ‘엄빠'의 삶을 병행하는 방식은 매번 달라진다. 어떨 때는 일, 어떨 때는 육아의 비중이 높을 때도 있고 어떨 때는 아내가, 어떨 때는 남편이 좀 더 육아에 몰두하기도 한다. 아이가 커갈수록 아이도 가족이라는 팀의 일원으로서 ‘조율'을 하는 일에 동참하게 된다. 다양한 조율의 방식을 인터뷰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지학사 엄빠 공감 이민정


고백하자면, ‘이건 내가 정말 잘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고 시작한 인터뷰 시리즈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끙끙댔다. 이전에 만든 콘텐츠와 차별화돼야 할 것 같고 더 잘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비슷한 것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인터뷰를 준비하고 진행하고 원고를 정리하면서 자꾸만 욕심이 생겼다. 부담이 쌓였다.


그러다 다시 ‘독자'를 떠올렸다. 쓰는 사람이 너무 많은 맥락을 갖고 너무 무거워지면 독자는 부대낀다. 얼마 전 <엔니오 : 더 마에스트로>라는 영화를 봤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뿐만 아니라 삶에 대해 엿볼 수 있어서 충분히 좋은 영화였지만 마지막에는 이제 좀 끝나도 괜찮을 것 같은데 영화가 도무지 끝날 생각을 안 했다. 엔니오에 대한 극찬이 끝없이 이어졌다. 강조에 강조가 반복되자 내 마음은 오히려 냉랭해졌다. 그때 생각했다. ‘감독이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관객은 부대끼는구나.’


세 번째 콘텐츠로는 아빠 인터뷰를 앞두고 있다. 의식적으로 가벼워지려고 한다. 결국 콘텐츠가 가닿는 곳은 독자니까.


지학사 엄빠공감 블로그에 들어가면 인터뷰 전문을 볼 수 있고, 8월 인터뷰에서는 커피 쿠폰을 주는 댓글 이벤트도 진행 중이다.



인터뷰를 읽어보고 혹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분이라면, 엄빠의 삶과 나로서의 삶을 어떻게 조율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간략한 설명과 함께 hong698@gmail.com으로 이메일 부탁드려요. 여러 얼굴의 양육자를 만나서 이야기 듣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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