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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Aug 18. 2023

조회수 50만에 담담할 수 있는 이유

알고리즘의 간택을 받았다

조회수 55만. 눈을 비볐다. 이게 진짜 맞아? 오마이뉴스에 2주에 한 번씩 ‘문제적 여자들'​이라는 프리미엄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미디어 속 주목할 만한 여성들에 대해 쓰고 있는데 이영지와 이효리를 거쳐서 이번에는 드라마 <남남>에서 전혜진이 연기한 ‘은미' 캐릭터에 대해 썼다.


‘나를 키운 여자들' 연재는 글 한 편을 쓰는 데 몇 주가 걸렸다. 영화를 고르고 영화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보면서 영화 속 이야기와 내 이야기를 연결하고 글을 쓰고 다듬고… ‘문제적 여자들'은 품을 덜 들이고 가볍게 쓰기로 했는데 콘텐츠를 일단 봐야 하니까 시간이 걸리기는 한다.


그래도 오래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미디어 비평 글을 쓸 수 있어서 재밌다. 2주 한 번 연재가 왜 이리 빨리 돌아오는지는 모르겠지만 5화까지는 착실히 썼다(앞으로가 고비일 듯…).


어쨌든, 이번에 발행된 기사 제목은 <“너도 자위하잖아” 이런 엄마는 처음이야​>였다. 사실 엄마의 성적 욕망을 드러낸 드라마라는 평은 이미 다른 곳에서도 여럿 나와서 <남남>이 가족, 특히 싱글맘 서사를 다루는 방식에 좀 더 주목해서 썼고 원제는 다른 제목이었다. 엄마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을 뒤집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지금 제목도 좋다.  


시선을 끄는 단어가 들어가 있어서 조회수가 높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이건 너무 높은 게 아닌가 해서 연재 담당자에게 물어봤더니 구글에서 검색이 돼서 많이 읽혔다고 한다. 유튜브 구글 알고리즘이랑 비슷한 것 같은데…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몇 달 전에도 오마이뉴스에 썼던 기사가 구글의 간택(!)을 받아서 30만 넘는 조회수가 나오기도 했는데 언론사 데이터의 세계는 이제 내게서 멀어진 일이다.


내가 쓴 글을 많은 사람이 읽는 것은 물론 좋지만 딱히 동요가 되는 일은 아니다. 30만, 50만이라는 숫자 중에서 이 글을 제대로 읽은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물론 클릭수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에게 글이 노출됐다는 뜻이고, 조회수가 낮을 때보다 글을 깊게 읽거나 공감할 독자가 많을 확률도 그만큼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이는 가능성일 뿐 실제로 어땠는지는 알 수 없다. 조회수가 잘 나온 것이 내가 쓴 글이 좋은 글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같은 글을 제목을 달리 해서 브런치에 올렸지만 현재 조회수는 300도 안 된다 ㅎㅎㅎ 한마디로 제목과 알고리즘의 힘이라는 것이다.


사실 처음부터 이렇게 조회수에 덤덤한 마음은 아니었다. 소위 ‘조회수가 터지는' 글이 나올 때 신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이러다 확 유명해지는 것 아니야?’ ‘기고, 출간 제의가 밀려드는 것 아니야?’라는 달뜬 기대를 하기도 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런 과정을 몇 번 반복하면서 알게 됐다. 조회수는 크게 의미 부여를 할 일도, 의지할 일도 아니구나.  


조회수 때문에 놀라고 있을 때 예전에 썼던 기사에 좋은 기사 원고료가 달렸다는 알람이 떴다. 아래와 같은 응원 문구가 적혀 있었다.


‘좋은 기사 원고료로 응원합니다. 잘 읽고 있어요. 이런 글은 처음입니다.’


공짜로 읽어도 되는 글에 5000원이라는 원고료를 지급하며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감사하고 과분한 일이다. 그렇다면 좋은 기사 원고료가 많이 달린 글은 좋은 글일까. 잘 모르겠다. 표현하지 않는 마음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으니 좋은 기사 원고료가 좋은 글의 절대적인 지표가 될 수는 없지 않을까. 감사하고 과분한 일, 그 정도가 아닐까.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명확해진다. 나는 반응에 일희일비하지만 반응 때문에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었구나.


프리랜서 에디터로 일하면서 ‘작가'로 불릴 일이 많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민망했는데 작가 이외에 적당한 호칭이 떠오르지 않는다. 인터뷰 글을 쓰고, 감수와 윤문 작업을 하고, 구성안을 짜고, 틈틈이 칼럼과 에세이를 쓰고… 내가 하는 일을 소개하자 남동생은 말했다.


‘글로 하는 건 다 하는 거네.’


얼마 전 공공기관 사업을 홍보하는 디지털 마케터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강의를 하면서 나를 이렇게 소개했다.


‘사람이나 사건, 정보 등에서 본질을 파악해서 나만의 관점으로 재해석해서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사람.’


뒤늦은 주제 파악일 수도 있지만 내가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유명한 작가가 될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한다. 꼭 유명해져야 할까? 이름을 알려야 할까? 이런 이야기를 하자 지인들은 ‘유명해질 수도 있지! 사람 일은 모르는 거잖아!’라고 반박을 해줬지만(고마워…) 이제는 내 욕망이 그곳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나는 그렇게 야망이 큰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지금은 그런 고비들을 다 잘 넘긴 상태로, 마음이 평화롭다. 자신의 욕망을 정확히 깨달으면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 수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덜 흔들린다. 음, 나는 2차 판권 수입을 위해서가 아니라 멋진 작품을 쓰기 위해 소설가가 된 거였지, 하고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꽤 많은 문제가 해결되고, 심지어 자존감도 좀 고양된다.” - 장강명 <소설가라는 직업> 중에서


다시 강의 이야기로 돌아가, 공적인 글쓰기의 목적에 대해 나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공적인 글쓰기의 목적은 콘텐츠를 통해 독자를 설득해서 독자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내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변화가 꼭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되잖아요. 몰랐던 걸 알게 될 수도 있고, 느끼지 못했던 걸 느끼게 될 수도 있는 거고요. 글을 읽기 전과 후에 독자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공적인 글쓰기의 목적이 아닐까요. 그러니까 독자에게 무엇을 남길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거고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계속해서 미지의 독자를 생각하면서, 나만의 관점을 갖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는 것. 그리고 그 글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아주 작더라도)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


내가 글쓰기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이 정도다. 욕망을 정확히 정리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물론 새로고침과 일희일비는 앞으로도 계속되겠지만.



‘문제적 여자들’ 연재

‘나를 키운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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