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밀밀 Jun 07. 2023

책이 안 팔리면 글쓰기는 무의미할까

돈도 명예도 안 되는 글쓰기를 하는 이유

책이 나온 후 일주일에 얼마나 많은 신간이 나오는지 실감하게 됐어요. 저만 하더라도 SNS에 들어가면 마음이 급해져요. 이 책도 봐야 할 것 같고 저 책도 봐야 할 것 같고요. e북에 종이책에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까지. 책상 위는 물론이고 침대 머리맡, 소파, 식탁 등 집 안 곳곳에 앞부분만 조금 읽다 말고 연필을 끼워놓은 책이 넘쳐나요. 


쏟아지는 책 사이에서 제 책은 어떤 책인지 생각해 봅니다. <나를 키운 여자들>은 영화 에세이에요. 32편의 영화와 드라마 속 여성들의 서사를 통해 제 삶을 들여다본 책인데요.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든 책이니 널리 읽히고 많이 팔렸으면 하는 마음, 당연히 있죠. 그런데 <나를 키운 여자들>이 이토록 많은 책 중에 꼭 읽어야 할 책이냐고 물어본다면, (느린서재 대표님께는 죄송하지만) 저조차도 고개를 갸웃하게 돼요. 꼭… 까지는 아니고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지 않을까…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네요.


출간 후 한동안 ‘다음 책은 교양 필독서를 쓸 거야!’라는 말을 하고 다녔어요. 대학교에서 꼭 읽어야 할 책으로 선정되고 전국 도서관 어디에나 있는 그런 책 말이에요. 남편에게 이야기했더니 이제야 제게도 야망이 생긴 것 같다며 만족스러워하더라고요. 그런데 얼마 전 새벽에 일어나 홍제천을 달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왜 우리는 생산성과 효용성을 입증해야만 그 일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많이 팔리는 책이 되지 못한다면 글쓰기는 의미가 없는 걸까? 

-의미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걸까? 


애초에 <나를 키운 여자들>을 썼던 마음을 떠올려 봤어요. 32편의 작품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그보다 훨씬 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똑같은 작품을 몇 번씩 돌려보면서 어떻게 글을 쓸지 구상하고 초고를 쓰고 퇴고를 하고… 글 한 편을 쓸 때마다 제 가장 깊고 어둡고 약한 곳까지 들어갔다 나오는 경험을 했어요. 자주 괴로웠고 피하고 싶었어요. 진짜 속마음을 숨기고 싶었어요. 


그럼에도 글을 쓰면서 제가 정한 원칙이 있다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자는 것이었어요. 제가 믿을 수 있는 글을 써야 독자도 제 글을 믿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게 글 한 편을 완성하고 나면 마음이 단정해졌어요. 금세 어지럽고 더러워지더라도 마음을 정리해 본 경험이 제 안에 남았어요. 그 기억으로 다시 다음 글, 그다음 글을 써나갈 수 있었어요. 


32편의 글을 쓰며 나와 비슷하게 어둡고 약한 부분을 꽁꽁 감추고 있을 누군가를 떠올렸어요. 제가 원하는 것은 제 글이 더 멀리, 더 많이가 아니라 정말로 제 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정확하게 가닿는 거예요. 제가 누군가의 글에서 정확한 위로와 용기를 얻었던 것처럼요. 독자들의 리뷰를 읽으면서 이러한 노력이 아주 실패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누군가는 자기 만족을 위한 글쓰기가 아니냐고 되물을지도 모르겠어요. 자기 만족이면 어떤가요. 돈과 명예가 되지 않는 글쓰기면 어떤가요. 무엇이 되려 할수록 글쓰기는 무겁고 어려워지더라고요. 새벽 바람을 가르며 타박타박 달리면서 푸른 나무를 보고 반짝이는 강물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이제 저는 글이 무엇이 될지에 매달리지 않기로 했어요. 그보다는 꾸준히 쓰고자 하는 마음을 지키기로요. 이렇게 계속 쓰다 보면 언젠가는 제 글이 더 멀리, 더 많이 가닿는 날도 오지 않을까요. 아니어도 어쩔 수 없고요.


너무 트렌디한 책만 읽는 게 아닌가 싶어서 도서관에서 빌려온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는 이런 구절이 있더라고요. ‘내 글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라는 의심이 드는 분들께 읽어주고 싶어요.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은 그저 그 자신일 뿐만 아니라 일회적이고, 아주 특별하고, 어떤 경우에도 중요하며, 주목할 만한 존재이다. 세계의 여러 현상이 그곳에서 오직 한 번 서로 교차되며, 다시 반복되는 일이 없는 하나의 점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중요하고, 영원하고, 신성하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은, 어떻든 살아가면서 자연의 뜻을 실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이로우며 충분히 주목할 만한 존재이다.”


우리 모두는 한 사람 한 사람 고유한 존재이기에 우리가 쓰는 글 한 편 한 편도 “경이”롭고,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고 믿어요. 그러니 저도, 여러분도 그냥, 일단 썼으면 좋겠습니다. 아무것도 되지 못해도 적어도 나 자신은 될 수 있을 테니까요. 단, 어깨에 힘을 빼고요. 



<나를 키운 여자들>을 출간한 출판사 '느린서재'에서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있는데요. 느린서재 뉴스레터에 실은 글입니다. 뉴스레터 구독은 아래에서 할 수 있어요. 1인 출판사 편집자 이야기, 독립서점 이야기, 느린서재 저자 이야기 등이 실려요. 



매거진의 이전글 엉덩이 가볍게 글쓰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