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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Oct 31. 2024

책을 가장 빨리 읽는 법

김동률 <산책> 뮤직비디오를 보다가 

-가수 김동률의 신곡이 나왔다. 제목은 <산책>. 지난해 나온 <옛 얘기지만> 이후로 11개월 만에 나온 신보다. 발매일을 손꼽아 기다려 뮤직비디오를 재생했다가 깜짝 놀랐다. 5분 30초라는 다소 긴 재생 시간도 그랬지만 뮤직비디오 속에 사계절이 다 있었다. 은유적 표현이 아니라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개의 계절이 오롯이. 계절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함께 걷자고 했"던 길을 홀로 걷게 된 화자의 마음이 더욱 절절하게 와닿았다. 


-이번 뮤직비디오는 2023년 가을부터 2024년 봄까지 총 9회 차의 촬영을 거쳐 완성됐다. 뮤직비디오 촬영에 거의 1년의 시간이 걸린 것이다. 날씨는 예측할 수 없는 것이기에 눈이 펑펑 오던 날이면 배우와 스태프는 촬영장으로 달려 나와야 했고, 폭설주의보가 내려도 실제 눈이 내리는 시간은 2시간 남짓이라 그 시간 안에 촬영을 마쳐야 했다.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김선혁 감독은 <산책> 영상 속에 담긴 눈이 “지난겨울, 낮에 볼 수 있었던 마지막 눈"이었다고 밝혔다. 


-김 감독은 김동률의 또 다른 곡인 <답장>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할 때도 10회 차에 걸친 촬영을 통해 가을의 풍경을 담아낸 바 있다. 그는 <산책> 뮤직비디오 공개 이후에 인스타그램에 아래와 같은 글을 남겼다. 


“2017년, 김동률 선배님은 앨범 공개가 반년 이상이나 남았을 때 <답장> 뮤직비디오를 의뢰했다. 거의 완성된 것이나 다름없는 음악과 함께. 그렇게 이르고 이른 첫 미팅 때 마주 앉아 내게 건넸던 말을 여전히 선명하게 간직하고 있다. 


시간을 이기는 건 없는 것 같다고. 


시간을 들여 만들어 낸 결과물의 질은 다르다. 그러니 작업자에게 최대한 많은 시간을 확보해 주고 싶었다고. <산책> 뮤직비디오도 이런 생각이 강화된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나 드라마도 아니고 단 하나의 곡의 뮤직비디오에 사계절을 담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 물리적인 측면을 말하는 게 아니다. 사계절에 맞춰 뮤직비디오를 찍기 위해서는 각 계절의 가장 아름다운 날을 기다려야 할 테고 그만큼 시간과 인력과 비용을 들여야 한다. 지난달 유행했던 노래가 무엇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요즘 같은 시대에 전혀 가성비를 고려하지 않은 방식이다. 아니, 가성비를 포기해야만 가능한 방식이다. 


-얼마 전, 다음 주에 있을 영상 촬영을 앞두고 사전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이는 20여 년 가까운 시간 동안 매일 글쓰기를 했다고 말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묻자 그는 말했다. 글을 쓰고 싶은 순간을 잘 붙잡아야 한다고. 그래서 본인은 항상 블루투스 키보드를 들고 다닌다고. 아이랑 병원에 갈 때도 들고 가고 학교에서 수업을 듣다가도 도중에 글을 썼다고. 그러면서 지금 쓰는 글이 2년 뒤 출간할 책의 한 챕터라고 생각했다고. 그는 그렇게 해서 10여 년 동안 20권이 넘는 책을 썼다. 


-요즘 나는 책을 가장 빨리 읽는 방법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더 많은 책을 읽고 싶어서 앞부분만 읽다가 만 책, 빠르게 넘기면서 읽은 책은 내 안에 남지 않는다. 읽었다는 착각만 남을 뿐이다. 글쓰기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을 들이는 것이다. 당장은 이렇게 매일 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겠지만 지금 쓰지 않는다면 나중은 너무 늦다는 것을 책 작업을 하면서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 왜 제때제때 기록해두지 않았을까. 왜 그 시간을 아깝다고 생각했을까. "잘 쓰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매일 못 쓰는 것 아닐까요?"라고 묻자 인터뷰이는 뭘 그런 것을 묻냐는 듯 답했다. "일단 쓰고 고치면 되잖아요." 


-미련하고 우직하게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만 쌓이는 것이 있다. 남들은 몰라도 나는 안다.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두는 아니라도 누군가는 알아볼 것이다. 내가 김동률의 뮤직비디오를 알아본 것처럼. 김동률은 이 노래가 “어느 볕이 좋은 날, 혼자 산책을 하며 플레이 리스트 안의 수천 곡의 음악을 무심히 듣다가, 문득 까맣게 잊고 있던 이 곡이 흘러나올 때, 그 5분의 시간을 아름답게 각인시켜 줄, 그래서 계절이 변할 때마다 한 번씩 또 꺼내서 듣고, 또 꺼내서 듣게 되는, 그런 곡"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처음엔 좀 심심한가 싶었다가도, 들을수록 맘에 깊게 와닿는, 오래오래 질리지 않고 들을 수 있는" 그런 노래. 


-이 글을 쓰는 지금, 6년 전 나온 <답장>의 뮤직비디오에는 아래와 같은 댓글이 달려있다. 


“산책 듣고 돌아오신 분 있나요.” 


댓글이 달린 것은 3일 전이었다. 시간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없다. 


-<산책> 뮤직비디오는 아래에서. 그 자리에서 계속 있어줘서 감사해요. 률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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