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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Mar 06. 2024

이 여자의 사투리에 열광하는 이유

[문제적 여자들] 유튜브 채널 <하말넘많> '사투리 특강'이 만든 균열 

부산에서 태어나 스무해를 살았다. 서울로 대학을 와서 사투리를 고치는 데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 언어 교정을 촉진한 것은 절박함이었다. 서울말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부산 사투리를 써서 굳이 튀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투리를 쓰는 게 창피하고 민망했다. 사투리 쓰는 여성의 이미지는 양극단이다. 사납거나 귀엽거나. 사투리로 찰진 욕을 하는 할머니, "오빠야"라며 애교를 부리는 여성을 떠올려보라. 나는 둘 다 되고 싶지 않았다. 평범하고 싶었다. 평범은 정상의 또 다른 말이었다. 


미디어에서 수없이 봐온 서울말을 따라 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말투에서 사투리가 지워질수록 '부산 사람인 줄 전혀 몰랐다'라는 반응이 반가우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배신자가 된 것 같았다. 스무해 동안 써온 말을 하루아침에 버린 배신자. 서울말에 사투리 억양이 옅게 묻어나는 여성들을 보면 씁쓸한 동질감을 느꼈다.  


20대 때 생각이 난 것은 유튜브 채널 <하말넘많>의 사투리 특강 시리즈를 보면서였다. 1월 29일 업로드된 사투리 특강 첫 번째 편의 제목은 '미디어 사투리 기강 잡으러 왔어예'다. 이 영상은 18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3월 1일 기준). 2월 2일 올라온 '<내남결> 미디어 사투리 잡으러 왔어예'의 조회수도 160만이 넘는다. 채널에는 한 달 동안 네 편의 사투리 강의가 업로드됐다.  



'미디어 사투리' 기강 잡기   


▲ 유튜브 채널 <하말넘많>의 사투리 특강 시리즈 ⓒ 하말넘많

 


90년대 생 강민지와 서솔이 운영하는 <하말넘많>은 '여성을 위한 미디어'를 표방하는 유튜브 채널이다. '하말넘많'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를 줄인 말이다. 2018년 개설된 채널의 구독자 수는 45만 명이 넘는다. 대학에서 함께 영상을 전공한 두 사람은 강의, 리뷰, 브이로그 등의 형식으로 여행부터 경제, 미디어 등 폭넓은 주제에 대해 비혼 여성들이 공감할 만한 콘텐츠를 제작해왔다. 2021년에는 <따님이 기가 세서요>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사투리 특강을 진행하는 강민지는 대구 출신이다. '강의의 신'이라는 콘셉트로 강민지가 칠판에 판서를 하면서 강의를 하고, 수강생인 서솔이 카메라로 촬영을 하며 리액션을 한다. 여기서 '미디어 사투리'는 지역에서 실제로 사용되는 말과는 다르게 영화, 드라마 등 미디어에서 재현되는 사투리를 뜻한다. 현지인들은 어색하거나 억지스럽다고 느끼는 사투리 표현이나 억양을 사용하는 경우가 포함된다.  


강민지는 "미디어에서 부산 사투리는 많이 들었을 텐데 대구 경북 사투리는 좀 낯설 것"이라면서 대구 사투리를 'TK 사투리'라고 칭한다. 그는 "태국에 간다고 가정을 합시다, '안녕하세요, 얼마예요' 배우잖아요"라면서 외국어 가르치듯 대구에서 쓰는 사투리 표현, 억양, 뉘앙스를 일타 강사처럼 알려준다. 영상에는 '경상도 출신 역할 맡은 배우들 진심 필수 수강해야 한다'라는 댓글이 달렸다.  


첫 번째 영상에서 강민지는 특유의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안녕하시소"라고 말하며 등장한다. 부산 출신 80년 대생인 나는 '안녕하시소'라는 말을 써본 적 없다. 같은 경상도라 해도 부산과 대구의 사투리는 다르며, 같은 지역 안에서도 연령대에 따라 사투리를 구사하는 방식이 다르다. 


미디어에서 '경상도 사투리'라고 퉁치며 뒤죽박죽 섞어 놓은 사투리를 강민지는 구체적인 용례와 함께 재치 있게 펼쳐놓는다. 퀴즈와 상황극이 몰입도를 높인다. '여보세요'는 '어여', '안녕히 계세요'는 '욕 보이소', '잘 지내세요'는 '별 일 없지예'로 통역된다. 현실감이 뚝뚝 묻어나는 생활 사투리에 웃음이 나왔다. 강민지는 자신이 쓰는 말은 50~60대 말투라면서 동성로에서 젊은이들이 쓰는 말은 다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오빠야'에 대한 설명. 애교의 대명사인 '오빠야'를 미디어에서 접하면서 어리둥절했다. 진짜 저렇게 과장된 애교로 '오빠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보지 못했다. 강민지는 "(남매의 경우) 보통 '오빠야'라고 부르지도 않아. 오빠! 오빠!! 보통 이렇게 던지지 말을"이라면서 "친형제간이 아니고 연인 관계라면 부드럽게 '오빠야'라고 부르겠지만 그래봐야 (미디어에서 나오는 것처럼) 오빠~야~ 이런 식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댓글 창에는 미디어에 나오는 것처럼 간드러지게 '오빠야'라고 불러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네이티브 경상도인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미디어에서 '오빠야'라고 애교 부리는 것 때문에 여자 사투리가 애교처럼 인식되는 것이 싫었는데 덕분에 속이 시원하다"라는 댓글도 달렸다. 나도 오랫동안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았다. 



사투리의 맥락과 매력


▲ 두 사람의 티키타카가 이어지면서 사투리 특강은 일방적인 정보 전달이 아니라 사투리에 대한 담화로 확장된다. ⓒ 하말넘많

 

최근 tvN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 출연한 이기광의 어색한 부산 사투리 연기가 논란이 됐다. 강민지는 이에 대해 "많은 배우들이 겪고 있는 문제"라면서 "모든 문장, 모든 단어에 리듬을 넣는데 경상도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무뚝뚝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단어, 문장에 멜로디를 붙이지 말고 가볍게 사용을 하려고 해봐"라고 조언했다. 짧고 간결하게 툭툭 던지는 느낌으로 사투리를 하라는 것이다. 


강민지는 "사투리는 말맛"이라며 말맛을 살리는 비법을 알려준다. "일본 사람들은 절대 표현을 못 하는 한국 말이 있고 한국 사람들이 발음을 못하는 일본어가 있는 느낌"처럼 경상도 언어 특유의 말맛이 있다는 것. 그러면서 미묘한 쇳소리를 내면서 말을 까뒤집는 법, 'ㅎ'을 비음으로 처리하는 법, 'O'에 악센트를 주는 법 등을 보여준다. 강민지는 "사투리는 아주 효율적인 언어"라면서 "모든 말에 악센트를 주지 않기 때문에 경상도 말이 빠르다고 느낄 수 있는데 얼마나 부드러운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강민지의 맛깔스러운 강의만큼이나 인상적인 것은 수강생인 서솔의 리액션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사투리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으로 희화화되어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 서솔은 강민지가 알려주는 사투리를 진지하고 성실한 태도로 배우고 따라 한다. 똑같은 말이 상황에 따라 다양한 뉘앙스로 사용되는 것을 보면서 "경상도 말은 가성비가 좋다"라고 포인트를 짚어주기도 한다. 타지인 입장에서 사투리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 호흡을 쌓아온 두 사람의 티키타카가 이어지면서 사투리 특강은 일방적인 정보 전달이 아니라 사투리에 대한 담화로 확장된다. '사투리 그렇게 쓰는 것 아니다'라면서 호통만 치는 것이 아니라, 그렇다면 어떻게 사투리를 쓰는 것이 실제와 가까운지 알려준다는 점이 <하말넘많> 사투리 특강의 차별점이다.  


개인적으로는 영상과 댓글을 보면서 사투리라고 인식하지 못했던 사투리가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대표적인 것이 '희한하다'였다. 강민지는 "타지 사람들은 '희한하다'를 쓸 때 이상하다, 석연치 않다는 의미로 쓰는데 TK에서는 '좋다'라는 의미로 쓴다"라고 말했다(물론 '이상하다, 석연치 않다'라는 본래의 의미로도 함께 쓰인다-기자 주). 해당 영상에는 아래와 같은 댓글이 달렸다. 


"경상도 남자와 결혼한 서울 여자인데 이 강의 듣고 시부모님에 대한 오해가 풀렸어요. 저희 집 오셔서 '희한하네' 하셔서 좋다는 건가 나쁘다는 건가 했는데 좋다는 거였네요." 


또 다른 사용자는 "희한하네는 너무 당연하게 칭찬으로 생각하고 있어서 다른 지역 사람들이 못 알아들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라고 댓글을 달았다. 지역 소멸이 심각한데 사투리도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이 올라오는가 하면, 타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사투리의 성조, 장음, 단음에 대한 강의 요청도 이어졌다. <하말넘많> 댓글 창은 사투리에 대한 공론장이 되었다.


얼마 전 영화 <서울의 봄>을 보면서 서울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남성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새삼 놀랐다. 주위를 둘러보면 똑같은 경상도 출신이라고 해도 남성들은 사투리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여성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방송에서도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남성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경상도 사투리 강의를 하는 여성이 신선하게 느껴질 정도로. 


사회언어학자 백승주는 책 <미끄러지는 말들>에서 언어를 '힘'의 문제로 바라본다. 그는 "비표준형을 사용하는 여성은 통제할 수 없는 야생의 존재, 계몽되지 않은 존재로 취급당한다"라면서 "반면 표준어를 사용하는 여성은 계몽된 존재, 정숙한 여인으로 인식될 것"이라고 말한다.


백승주에 따르면, '첫 번째 혀'인 사투리를 사용했을 때 사회가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기 때문에 여성들은 빠르게 사투리를 교정하고 표준어를 구사한다. 힘이 약한 집단에 속해 있는 여성에게는 표준어의 '위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말넘많>의 사투리 특강이 반가웠다. 수많은 여성들이 지우려 하고 숨겨야 했던, 사투리의 풍성한 맥락과 매력을 다름 아닌 여성의 목소리로 유쾌하게 알려줘서.


최근 '맛꿀마', '낄끼하네' 같은 말을 부산 사투리라고 부르는 밈이 SNS에서 유행했다.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에서 이용주가 만들어낸 말이다. 황당한 것은 '맛꿀마'와 '낄끼하네'가 정말로 경상도 사투리인 줄 아는 사람도 있었다는 것. 있지도 않은 말이 사투리로 둔갑할 정도로 지역 방언은 외계어 같은 존재일까. 그나마 경상도 사투리는 미디어에 노출될 기회가 많지만 다른 지역 사투리에 대해서는 정보를 얻기 더 어렵다. 다시 한번, 말은 곧 권력이다. 


강민지는 특강 말미에 이렇게 말한다.


"으쌰으쌰해서 이 땅에 표준어 쓰는 것들 몰아냅시다! 우리가 메이저가 되는 그 날까지 강의해 보겠습니다!"


경상도 사투리뿐만 아니라 지역 방언의 고유성과 다양성이 온전히 존중받는 날이 올까. 지역 사람들이 '첫 번째 혀'를 굳이 숨기지 않아도 되는 날이. <하말넘많>이 작은 균열을 낸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TV·OTT, 유튜브 등 영상 매체 속 심상치 않은 여자들을 사심 가득 담아 탐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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