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요 치앙마이, 애도 남편도 없이

[비혼과 기혼 사이] 애없이 퇴사여행(feat. 20년지기 친구)

by 홍밀밀

싼티탐에 위치한 아카아마 커피.


먼저 치앙마이에 다녀온 친구가 강력 추천해서 찾아온 곳이다. 이 지역 아카족이 생산한 커피콩을 공정한 가격에 거래하는 공정무역 카페란다. 소박한 목조건물 통유리창 너머로 초록초록 나무. 눈부신 햇살. 그래, 여기가 치앙마이구나.


직원이 친절하게 커피를 자리까지 가져다준다. 라떼 한잔에 50바트. 우리나라 돈으로 2000원도 안 하는 가격이다. 한국에서는 이 정도 인스타 갬성이면 6000~7000원은 족히 받을 것 같은데. 주변을 돌아보니 디지털 노마드의 천국답게 노트북으로 작업하는 서양인들이 많다(그런데 콘센트가 안 보인다...콘센트 없으면 급불안초조).


35살의 우리는 더 이상 여행지에서 셀카나 설정샷을 찍지 않는다. 셀카 100만 장 찍어 한 장 건지면 프로필 바꾸고 SNS에 열심히 올리던 시절은 지났다. 더 이상 우리는 그때만큼 어리지도 예쁘지도 않다(귀엽지도 않아...). 사진 잘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 확인하며 다시 찍고 또 찍던 시절은 끝났다. 사진 속 우리는 빼도 박도 못하게 30대 중반이 되었다. 그걸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다.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한국에도 맛있는 커피집이 많아서 그런가, 내가 커피 맛을 모르는 건가. 그리 큰 감흥은 없다. 가방을 뒤져 전자책을 꺼내들었다. 안경도 꺼냈다. 얼마 전 맞춘 눈 보호용 안경이다.


“한동안 눈이 너무 부셔서 무슨 문제 있나 하고 병원에 갔더니 노화라고 그러는 거야. 어쩔 수 없는 거라고.”

“헐. 30대 중반에?”

“라식 후유증인 거 같기도 해. 밤에 휴대폰 볼 때 불빛 제일 약하게 해놓고 보잖아.”

“맞아 맞아. 나도 나도. 라식 후유증. 빛번짐 장난 아니잖아.”

“나 지난번에 무릎 아팠던 것도 병원 가니까 이제 점점 퇴화돼서 그런 거라고...”


잠시 말이 없어졌다. 고작 30대 중반인데. 우리 왜 이렇게 됐니.



나도 그런 엄마가 되었다


숙소 창문에서 내려다본 풍경. 초록초록. 디스이즈 치앙마이.


아이가 태어나자 스마트폰 사진첩은 온통 아이 사진으로 가득 찼다. 내 사진은 가뭄에 콩 나듯 하나씩. 생기 넘치는 아이와 달리 나는 뭘 해도 푸석푸석 건조했다. 피부도 머리카락도 어쩌면 마음도. 사춘기도 아닌데 얼굴에 뭐가 이리 나는지. 어쩌다 아이와 함께 셀카 찍을 때면 화면 속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헉, 나 왜 이 모양이지. 서둘러 카메라를 아이 쪽으로 돌렸다. 내 얼굴은 반쪽, 아니 3분의 1쪽만.


아이가 태어난 후, 내 젊음과 에너지는 모두 아이에게 가버렸다. 어리면 무조건 예쁜 거라는 말은 진리였다. 아이는 어떻게 찍어도 (내 눈에는) 예뻤다. 반짝반짝 눈부셨다. 이런 게 내 속에서 나왔다니, 사진을 찍는 입꼬리가 들썩였다. 언젠가부터 프로필 사진에는 아이의 모습이 나를 대신했다. 어느 순간 내 옷보다 아이 옷을 더 많이 사는 나를 발견했다(애 낳기 전과 몸무게는 분명 같은데 묘하게 몸이 건장해졌...).


이제는 안다. 대체 왜 엄마들이 애 사진을 SNS에 올리는지. 내 근황은 아이의 근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아이가 나보다 훨씬 예쁘니까. ‘나 이렇게 살고 있어요’ 하고 아이 사진을 올리는 것이다. 나도 그런 엄마가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자 그렇게 열심히 찍던 맛집 사진도 잘 안 찍게 됐다. 밥 먹을 정신도 없는데 사진은 무슨. 풍경도 마찬가지. 아이만큼 새롭고 신기한 건 없었다. 아이 이외의 것에 신경 쓸 수 있는 여유도 에너지도 내 안에 없었다. 아이 보고 일하는 것만으로도 늘 지쳐있었다.



여행계는 사랑입니다


아무렇게나 슥슥, 푹푹 퍼주는데 맛있어. 쏨땀은 사랑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는 아이가 없다. 내 앞에 앉은 사람은 20년 지기 친구 a.k.a '영단이'. 나는 애없이, 비혼친구와, 퇴사 여행을,(너무 감격스러워서 강조) 떠나왔다. 기간은 7박 8일. 비행기와 숙소 말고 여행계획은 아무것도 세우지 않았다.


이번 여행 목적은 단 하나. 무조건 쉬는 것. 원 없이 쉬고 책 읽고 글 쓰다 오는 것(여기서부터 꼬이기 시작). 출산 29개월. 애도 남편도 없이 해외여행을 온 건 처음이었다.


9월 퇴사 후 10월에는 홍콩 가족여행, 11월에는 애없이 치앙마이. 한 달 만에 여행을 또 온 건 내가 돈이 많아서...는 아니고 쌈짓돈이 있었기 때문이다. 4년 전, 영단이와 나는 적금을 들었다. 이름하야 남미여행계. 40개월 넘게 매달 각각 5만원, 총 10만원씩 차곡차곡 모았다.


치앙마이 여행은 충동적으로 결정됐다. 내년 봄 영단이는 회사를 그만두고 치앙마이에 갈 거라고 했다. 요즘 유행하는 한 달 살기를 해보고 싶다고. 그래? 그럼 나도 애 데리고 가지 뭐(애는 무조건 옵션).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영단이가 갑자기 11월 초에 치앙마이에 가지 않겠냐고 했다. 자기도 회사를 그만둘까 고민 중인데 그 전에 남은 휴가를 써야겠다며.


두 달 연달아 여행 가는 건 부담됐지만 퇴사까지 한 마당에 뭐 어때 싶었다. 회사 그만두면 월급은 못 받아도 시간 부자가 될 테니(그때는 그런 줄 알았다)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볼 심산이었다. 더구나 우리에게는 자금까지 있었다. 모아둔 400만원의 절반만 써도 항공권과 숙박비를 감당할 수 있었다. 분명 내가 모든 돈인데 뭔가 공돈이 생긴 기분이었다(여러분, 여행계를 드세요!).


처음에는 당연히 아이를 데리고 가려고 했다. 남편은 야근이 많고 언제 퇴근할지 예측하기 어려운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7박8일 동안 남편 혼자 아이를 돌보고 등하원 시키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았다. 남편이 갑자기 바쁜 프로젝트에 투입이라도 되면 당장 주변에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부산에 있는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산에서 일주일만 데리고 있거나, 아님 엄마가 서울에 와서 어린이집 등하원 좀 시켜주면 안 되겠냐고. 엄마는 피식 웃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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