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 친구와 애 데리고 해외여행, 괜찮을까

[비혼과 기혼 사이] 괜찮겠어? 너 말고 니 친구

by 홍밀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부산에 있는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산에서 일주일만 데리고 있거나, 아님 엄마가 서울에 와서 어린이집 등하원 좀 시켜주면 안 되겠냐고. 엄마는 피식 웃었다.


“엄마도 일하는 사람인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주일을 어떻게 빼노.”


얼마 후, 엄마에게 아이 비행기 값을 주겠다며 다시 협상을 시도했다. 50만 원이 넘는 돈이었다. 엄마는 급 정색하며 말했다.


“야가 지금 무슨 소리 하노. 돈이 문제가 아니고... 안 돼! 니 자식인데 니가 데려가야지!”


그러게. 안 되는 걸 뻔히 알면서 왜 물어봤을까. 나와 남편이 엄마를 부르는 말이 있다. ‘희대의 쿨녀’. 언젠가 남편은 말했다. “장모님은 59년생이 갖기 어려운 쿨함이 있어. 남자로 태어났으면 진짜 큰 인물 됐을 거야.”


엄마는 어릴 때부터 내게 말했다.


“엄마도 엄마 인생이 있어.”


그 말이 어릴 때는 이해가 안 갔다. 자식을 위해 모든 걸 헌신하고 희생하고. 엄마들은 다 그런 줄 알았다.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지 못한 엄마는 비정상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모성신화의 가해자였다.


쿨한 엄마는 쿨한 할머니가 되었다. 자식이나 손주보다는 내 인생이 중심에 있는 사람.


쿨도 쿨이지만 엄마는 아이를 일주일 동안 볼 수 있는 체력이 안 됐다. 엄마는 만날 때마다 아픈 곳이 늘어났다. 아이를 안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갈수록 무거워지고 힘도 세지는 아이를 맡길 수는 없었다. 30대인 나도 내 아이 보는 게 이렇게 힘든데...


내 자식인데 내가 데려가자는 심정으로 아이 비행기 표를 끊었다. 인천에서 치앙마이까지 직항은 비싸서 방콕 환승으로. 무려 8시간이나 걸렸다(한숨).


아이와 셋이 머물 수 있는 숙소도 구했다. 방 2개, 화장실 2개인 에어비앤비. 남편은 환호성을 지르며 스마트폰 달력에 ‘자유의 날들’이라고 적었다.



아이를 보는 것과 보는 것


인천에서 치앙마이까지 환승 포함 8시간. 애 데리고 가능할까(출처 : unsplash)


결혼 안 한 친구와 애 데리고 셋이 치앙마이까지 가겠다고 하자 주변에서 다들 걱정했다. 내가 아니라 친구를.


“괜찮겠어?”

“친구는 무슨 죄야.”

“차라리 주변에 애 있는 친구를 찾아봐.”


영단이에게 우리랑 따로 다녀도 된다고. 나는 애 데리고 키즈카페 가거나 수영할 테니까 혼자 놀러 다녀도 된다고 말했다. 영단이는 본인은 상관없다고, 괜찮다고 했다. 평소에 친구 아이들 많이 봤다고.


영단이는 괜찮다 했지만 마음에 걸리는 점이 몇 가지 있었다.


1. 영단이는 돌아오는 비행기 좌석 지정을 안 해놓았다(그래, 일주일 겪어보면 따로 오고 싶을 수도 있지...).

2. 엄마에게 비행기 표로 딜을 해보라고 슬쩍 조언한 것도 영단이었다(헉...).


그러고 보니 영단이는 30개월 다 돼가는 동안 굳이 아이를 보러 온 적이 없다. 출생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왜 그런 친구들 있지 않은가. 유난히 아이를 좋아하고 예뻐하는. 영단이는 분명 그런 류는 아니었다(나도 애 낳기 전에는 전혀 안 그랬다). 아이를 안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엄청 좋아하는 편도 아닌 것 같았다.


우리 집 아드님(a.k.a 날날이)은 또래 평균 이상의 에너지와 진상력을 갖고 있다. 어린이집은 나의 가장 큰 구세주다. 영단이가 그동안 주변 친구 아이들을 자주 보았다고(look) 하더라도 일주일을 부대끼며 남의 애를 보는(care)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다. 나 혼자도 감당하기 어려운 아이를 남편도 아니고 미혼 친구랑, 일주일을, 그것도 해외에서. 이 여행... 괜찮을까.



내 친구 영단이


우리 우정... 괜찮을까(출처 : unsplash)


영단이와 나는 중고등학교 동창이다. 영단이는 신화, 나는 H.O.T ‘빠순이’. 매달 하이틴 잡지에 있는 오빠들 사진을 공유하면서 차곡차곡 우정을 쌓았다. 영단이는 신화 이민우, 나는 H.O.T 강타를 좋아했다. 신화와 H.O.T가 앞뒤로 한 페이지에 있으면 그런 낭패가 없었다. H.O.T와 신화 활동이 뜸해지자 우리는 god 팬질도 잠깐 함께 했다. 교복을 입고 부산 구덕운동장 입구에 앉아 god를 기다리던 기억이 난다. 손에는 하늘색 풍선을 들고.


고등학교 졸업 후 나는 서울에서, 영단이는 부산에서 대학을 다녔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자주 연락했고, 부산에 갈 때마다 얼굴을 봤다. 싸이월드만 봐도 서로의 근황을 아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대학 졸업 후 나와 영단이는 서울에서 1년 남짓 함께 살았다. 나는 언론고시를 준비했고, 영단이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방송작가 준비를 했다. 이후 다시 부산으로 돌아간 영단이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이름을 바꾸게 됐다. 1980년대 제일 인기 있던 이름에서 2010년대 제일 인기 있는 이름으로 말이다.


개명을 한 사연이 있으니 자주 불러주는 게 맞는데 어쩐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 친구 영미가 순식간에 태린이가 된 느낌이랄까...(실제 이름과는 다름, 시대도 약간 다름)


‘영단이’라는 별명을 생각해낸 건 남편이었다. 나랑 영단이가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 수시로 카톡을 하고 있으니 “아주 영혼의 단짝 났네, 났어”하면서 이름을 붙여줬다. 영혼의 단짝, 줄여서 '영단’. 남편은 이번 치앙마이 여행이 나와 영단이의 마지막 여행이 될 거라 단언했다.


해외 여행 갔다가 절교하거나 묘하게 어색한 관계가 돼버린 친구들 이야기를 간간이 들었다. 하루하루 두려움에 떨던 어느 날. 남편이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출발 한 달 전이었다.


“날날이 비행기표 취소해. 안 그럼 이혼당할 것 같아.”


홍콩에서 돌아온 직후였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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