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부인과 '야근 프리패스'

[비혼과 기혼 사이] 추억은 매우 다르게 적힌다

by 홍밀밀


치앙마이 출발 한 달 전. 퇴사 기념으로 홍콩 여행을 다녀온 후 남편은 진지하게 말했다.


“비행기표 취소해. 너 혼자 애 데리고 치앙마이 갔다 오면 나 이혼당할 것 같아.”


2박 3일간의 홍콩 여행은 힘들었다. 싸구려 유모차 끌고 경사진 언덕과 계단을 오르내리려니 무릎이 완전 나가버렸다. 두 돌이 훌쩍 지난 아이는 몸무게가 15kg이 넘는다. 힘도 세다. 무엇보다 말을 지지리도 안 듣는다.


차가 있건 사람이 있건 무조건 직진. 마음에 안 들면 바닥에 드러눕는다. “엄마 아빠 간다, 안녕” 가버리는 시늉 하면 “안 돼!” 울며불며 잠깐 따라온다. 목청은 어찌나 큰지. 사람들이 다 쳐다본다. 당황해서 “이제 가자” 다가가면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위험하고 더러운 것을 찾아 헤맸다.


그 사람 많고 복잡하고 더러운 홍콩 거리에서 아이는 온몸으로 바닥 청소를 하고 누워서 180도 회전을 했다. 나랑 남편은 타일렀다가 소리 질렀다 화내다 울다. 사이코 패스 드라마를 수십 편 찍었고 홍콩에 한궈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확실히 심고 돌아왔다.


이 짓을 남편 없이 혼자 한다면? 게다가 친구도 있는데? 아찔했다. 남편은 번쩍 안아서 들고 올 수라도 있지, 이제 나는 5분 이상 아이를 안는 것도 버거웠다.


비행기 타는 것도 큰 걱정이었다. 인천에서 치앙마이까지. 방콕에서 환승 시간을 포함해 8시간 정도 걸린다. 올 때 갈 때 비행기를 총 4번 타야 하는데 혈기 넘치는 아이가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아주 어릴 때처럼 비행기에서 막무가내로 난리 치지는 않겠지만 답답하다고, 뛰어다니겠다고(응?), 내리겠다고(응? 여기서?) 할 게 뻔하다. 영상과 젤리로 달래는 것도 몇 시간이지, 8시간은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직항을 타자니 가격 부담이 컸다.



이 짓을 혼자 한다면


홍콩 소호 거리에서 질주하는 아드님. 넌 신나겠지(출처 : 홍밀밀)


홍콩에 있던 2박 3일. 나는 ‘이걸 내가 혼자 한다면’ 하며 치앙마이 상황을 끊임없이 시뮬레이션했다. 세상에는 아이와 둘이서 해외여행 다니는 대단한 엄마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그런 엄마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남편과 수시로 협상에 들어갔다.


“나는 남편 국내, 해외 출장 갔을 때 재택근무하면서 등하원 다 시켰다. 그때 혼자 애 보고 일하느라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못했다. 수족구, 독감 등 전염병 걸릴 때마다 나 혼자 통으로 일주일씩 휴가 내고 독박 육아했다. 심지어 애 때문에 한 달 무급휴직도 냈다. 나는 애랑 남편에게 사정 생기면 늘 회사에 양해 구하면서 희생했는데 남편은 왜 못하냐.”(동정심에 호소)


“이번 여행은 보통 여행이 아니다. 9년 가까이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친구와 떠나는 첫 해외여행이다. 애랑 같이 가면 나도 친구도 애도 얼마나 힘들겠냐. 차라리 한국에서 어린이집 보내는 게 낫지 않겠냐.”(회유)


“그래. 애를 혼자 데리고 갈 수는 있다. 하지만 나와 아이 둘 다 한국에 돌아오는 건 장담 못한다(비장). 그럼 내가 남편을 얼마나 원망하겠냐. 그걸 감당할 수 있겠냐.”(협박)


계속된 협박 아닌 협상에도 남편은 꿈쩍도 안 했다. 나만 안절부절. 어쩔 수 없지. 최후의 카드. 나는 남편에게 ‘까방권(까임방지권)’을 주겠다고 했다.



뭔가 말린 것 같긴 한데


그래, 혼자 떠날 수만 있다면(출처 : unsplash)


“야근하고 늦게 들어와도 당분간 뭐라고 안 할게.”


남편은 벌써 수개월째 매일 야근을 하고 있었다. 그냥 야근도 아니고 살인적인 야근에 주말 출근까지. 내가 퇴사를 하게 된 이유에는 남편의 과노동도 있었다. 나의 인내심은 점점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째깍째깍, 언제 가슴속에서 폭탄이 터질지 몰랐다. 결혼 생활은 분명 위기였다. 까방권을 준다는 건 휴전을 선언한다는 의미였다.


남편의 눈이 번뜩, 입꼬리가 실룩거렸다. 숫자에 밝은 남편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다. “얼마나?”하고 물었다. “3개월?”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남편은 말했다.


“내년 3월까지 야근 프리 패스 줘.”


원래 남편은 올해 말까지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를 그만두기로 나랑 약속한 상황이었다(이 이야기는 나중에 자세히). 지금이 10월인데 내년 3월까지? 하는 수 없었다. 애 없이 치앙마이만 갈 수 있다면. 나는 콜!을 외쳤다. 뭔가 남편에게 말린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소라 언니가 그랬던가.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고. 이렇게 바꿔야겠다. 협상은 다르게 기억된다고. 훗날 남편은 이 협상을 어린이집 소식지에 이렇게 기록했다.


“같이 사는 친구는 사업을 하겠다면서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사업가가 된 친구는 홀로 치앙마이에 일주일간 머물며 사업구상을 해야겠다고 얘기해왔습니다. “같이 사는 분과 지지고 볶고 둘이서 알아서 해봐라”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지지고 볶는 대가는 저의 불가역적인 퇴사 시기를 뒤로 좀 미루고, 2019년 3월 말까지 야근 프리패스를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협상의 귀재인 이 친구의 능력에 감탄하며 '한반도뿐이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등에도 평화가 올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가지며 협상을 종료했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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