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내 미래 아냐?" 남편의 예지력

[비혼과 기혼 사이] 엄마 비행기 타고 멀리 가야해, 빠빠이

by 홍밀밀


이래서 60중 추돌사고가 나는구나 싶었던 안개(사진은 관련 없음. 출처 : unsplash)


인천공항으로 가는 차안.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가 자욱했다. 앞차 헤드라이트 불빛에 의지해서 조심조심 차를 몰았다. 이렇게 심한 안개는 처음이었다. 무사히 공항까지 갈 수 있을까. 나도 영단이도 남편도 잔뜩 긴장했다.


남편은 말했다.


“이게 내 미래 아니야?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깔깔 웃었지만 사실 걱정됐다. 내가 떠나면 남편은 7박 8일간 독박육아를 해야 한다. 아이는 이제 29개월. 남편이 출장 갔을 때 나 혼자 아이를 본 적은 몇 번 있지만 남편 혼자 등하원을 모두 책임진 적은 없었다. 평일에는 어린이집에라도 보낼 수 있지만 주말이 문제였다. 에너지 넘치는 아이와 하루 종일 함께, 그것도 단둘이 있는 건 정말이지 지치는 일이다. 운전하는 남편 옆모습이 괜히 짠했다.


나는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나도 남편 출장 갔을 때 혼자 애 봤잖아. 나도 하는데 왜 못해.’


남편과 내 보육능력은 비슷하고 아이는 나보다 아빠를 더 따랐다. “아빠가 없어서 기분이 안 좋아”“아빠 보고 싶어”. 아이가 제일 자주 하는 말이다. 남편과 아이 둘이 있는 건 별로 걱정이 안 됐다.


변수는 남편의 야근과 아이의 감기. 남편이 갑자기 바쁜 일이 생기면 아이 하원을 시킬 수 없다. 아이 하원 시간은 최대 오후 7시. 일주일 동안 늦지 않게 아이를 데리러 갈 수 있을까.


아이가 아픈 건 더 큰 문제였다. 감기가 심하게 걸리거나 전염병이라도 걸리면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었다. 11월. 하필 또 날이 쌀쌀해지고 있었다.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우리에게는 도움 받을 가족이 주변에 없었다.


남편은 걱정 말라고, 어떻게든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 정 안 되면 회사 그만두겠다고(협박인가...).



이렇게 떠나도 되는 걸까


나는 계속 남편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출처 : unsplash)


공항에 도착하자 아이는 흥분해서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나와 영단이는 미리 신청했던 유심칩을 찾고 탑승수속을 밟았다. 면세점도 들러야 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아침에 일어나 아무것도 못 먹었더니 허기가 졌다. 카페인도 간절했다.


식당을 찾고 있는데 갑자기 아이가 울고불고 자지러진다. 전날 아이는 친구와 놀다가 얼굴을 긁혔다.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습윤밴드를 붙여놨는데 남편이 그걸 너덜너덜해졌다고 떼버린 거다. 아이는 “아파, 아파”하며 뒤집어졌다. 상처는 생각보다 심했다. 남편은 아이를 안고 공항약국을 찾아 달렸다. 결국 밴드를 새로 사서 붙이고 나서야 아이는 겨우 진정됐다.


남편은 진 빠진 얼굴이었다. 나는 아까부터 계속 남편 표정을 살피고 눈치를 보고 있었다. 위액이 올라오는 느낌. 남편은 입으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얼굴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영단이까지 괜히 눈치를 보게 되는 분위기. 나는 허겁지겁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밀어 넣었다. 속이 쓰렸다.


‘이렇게 떠나도 되는 걸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공항에는 괜히 데려다 달라 그랬나. 그냥 영단이랑 둘이 버스 타고 올 걸. 가슴 한편에는 남편과 아이에 대한 죄책감이, 또 한편에는 이 인간(=남편)은 마지막에 좀 좋은 얼굴로 보내주지, 아오, 하는 원망이 피어올랐다.


출국장으로 들어가는 길. 아이와 남편과 나, 나란히 서서 공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지금도 종종 그때 사진을 찾아보는데 코미디가 따로 없다. 나는 매우 신났고 아이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른 채 브이를 그리고 있고 이 인간, 아니 남편은 눈은 웃고 있는데 입은 울고 있다.


아이와 작별인사 할 시간이 됐다.


“날날아, 엄마 비행기 타고 멀리 가야해. 빠빠이~”


그제야 아이는 엄마가 혼자 간다는 사실을 알고 울먹였다.


“안 돼. 엄마가 없으면 안 돼~”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이런 애를 놓고 혼자 여행을 가다니.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아이가 더 울면 어쩌지, 안 떨어지면 어쩌지 걱정하고 있는데 상황은 단 한 마디로 종료됐다.


“날날아, 아빠가 소방차 사줄게.”


소방차 이야기를 들은 아이는 용감하게 빠빠이를 해줬다(일주일 후 돌아와 보니 집에는 소방차 5대가 늘어나 있었다).



온전히 겪어내야 할 세계


마냥 설레는 비행은 없었다(출처 : unsplash)


타이항공은 두 번째였다. 승무원들이 친절하고 기내식이 맛있던 기억이다. 무거운 마음으로 이륙을 기다리고 있는데 남편에게 사진과 함께 메시지가 왔다. 아이는 놀이터에서 해맑게 놀고 있었다. 아직 오전 11시. 남편에게 오늘 하루는 참 길겠지. 남편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비행기에는 영단이, 나 그리고 태국인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나란히 앉았다. 창문 쪽에 앉은 남자는 한국말을 참 잘 했다. 영화나 드라마 보면 비행기에서 로맨스도 많이 생기던데, 이제 나는 그런 로맨스를 기대할 수도, 기대해서도 안 되는 30대 중반 유부녀가 되었다. 게다가 애엄마.


비행기가 이륙하자 그제야 내가 애없이 떠난다는 게 실감났다. 비행기 타기 전, 마냥 설렜던 기억은 없다. 늘 두려움이 컸다. 누군가는 비행기가 추락할까봐 두렵다고 하던데 그런 건 무섭지 않았다. 어차피 추락하면 죽게 될 테니까.


내가 두려운 건 비행기가 착륙한 후 맞닥뜨리게 될 새로운 세계였다. 낯선 언어, 낯선 사람, 낯선 음식, 낯선 풍경. 내가 온전히 겪어내야 할 것들. 비행기가 빨리 출발했으면 하는 마음과 비행기가 뜨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교차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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