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과 기혼 사이] 애데렐라의 밤거리
나만큼이나 영단이도 여행 떠나기 전 마음이 불편했다고 말했다. 영단이는 남자 친구 그리고 강아지와 함께 살고 있다. 남자 친구와 같이 산 지는 2년 정도. 집에서는 결혼하라고 성화지만 영단이는 비혼과 비출산을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영단이는 몇 번이나 버림받았던 강아지를 임시보호하고 있다. 또다시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인지 강아지는 사람에게 집착했다. 영단이가 서울로 오던 날, 강아지는 아무도 없는 집에서 피가 나도록 현관문을 긁었다고 했다. 영단이는 그런 강아지와 남자 친구만 남겨 놓고 떠나는 게 미안하고 걱정스럽다고 했다.
동거와 결혼, 강아지와 아이의 차이만 있을 뿐 영단이도 나도 남겨두고 가는 것들 때문에 마음이 무겁긴 마찬가지였다. 애만 없으면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온기가 있는 생명은 다 의지가 되는 법이야."
온기가 있는 생명과 함께 산다는 것은 책임도 함께 따르는 일이다. 그게 꼭 법이나 피로 연결된 관계가 아니더라도.
경유를 위해 방콕 공항에 도착해서 유심칩을 갈아 끼웠다. 나도 영단이도 각자 영상통화를 했다. 스마트폰에 뜬 아이 얼굴을 보는데 또 눈물이 쏟아졌다. 아이에게 몇 번이고 손 뽀뽀를 해줬다.
한 번 더 비행기 갈아타고 1시간쯤 날아가자 치앙마이 공항에 도착했다. 동남아 특유의 습기를 머금은 후덥지근한 공기가 훅 하고 코와 몸을 감쌌다. 그제야 내가 정말로 떠나온 게 실감 났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반팔로 갈아입었다. 다시, 여름이다.
지난했던 여름이었다. 평생 살면서 이보다 힘든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존재를 뒤흔드는 질문이 매일 이어졌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소진됐다. 나는 결국 8년 8개월간 몸담았던 회사를 나왔다.
회사만 나오면 모든 게 다 해결될 줄 알았다. 운동할 시간도 생기고 회사 때문에 스트레스도 안 받고. 돈은 못 벌어도 시간 부자가 됐으니 그동안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못 했던 일을 다 해보기로 했다. 요가를 등록했고 독서모임과 독립출판 워크숍도 신청했다. 일과 육아 사이에서 나를 찾고 싶은 엄마들과 함께 ‘마더티브’라는 매체도 만들었다.
퇴사 두 달. 물론 회사 다니기 전보다는 훨씬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내 시간을 온전히 내가 통제하며 살 수 있고 그 시간 동안 가슴 설레는 일을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퇴사를 한다고 천국이 자동으로 열리는 건 아니었다. 또 다른, 어쩌면 더 큰 고민과 혼란이 시작됐다. 어떻게 한 퇴사인데. 하고 싶은 일도 해내고 싶은 일도 많았다. 지난 두 달간 단 하루도 마음 놓고 쉬지 못했다. 백수가 과로사한다고 회사 다니는 것보다 더 바쁘게 지냈다.
치앙마이 가기 전, 나는 영단이에게 말했다.
“가서 나는 쉬면서 책 읽고 카페에서 글 쓰려고. 관광은 안 할 거야. 숙소만 같이 쓰고 자유롭게 다니자.”
영단이는 좋다고 했다. 어차피 자신도 쉬고 오는 게 가장 큰 목표라고. 계획 없이, 부담 없이, 따로 또 같이 여행하자고 했다. 무리하지 말자고.
공항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푸니 오후 8시쯤. 우리는 서둘러 선데이 마켓으로 향했다(무리 안 한다면서...). 일요일마다 열리는 커다란 야시장. 일정상 오늘이 아니면 갈 수 없었다. 11월 치앙마이 날씨는 늦여름 같았다. 낮에는 더웠지만 습도가 높지 않았고 밤에는 적당히 선선했다.
선데이 마켓 초입에 들어서니 엄청난 인파가 보였다. 1km 거리에 노점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었다. 영단이도 나도 방콕에 한 번씩 다녀온 적이 있어서 이런 커다란 마켓도 이미 여러 번 가봤다.
익숙한 옷, 기념품, 수공예품. 치앙마이 물가가 방콕의 절반이라고 하더니 같은 물건인데도 가격이 훨씬 쌌다. 하지만 우리는 지갑을 열지 않았다. 어차피 사들고 가도 얼마 안 가 망가지거나 서랍에 고이 모셔둘 걸 아니까. 지난번 여행에서 샀던 핸드메이드 샌들도 가방도 모두 수명이 길지 않았다.
우리의 목적은 오직 하나. 길거리 음식을 먹는 거였다. 아이와 함께 방콕에 갔을 때는 길거리 음식을 전혀 먹지 못했다. 4월이라 날이 더웠고, 아직 어린아이가 비위생적인 음식을 먹고 탈 날까 겁났다. 노점에 앉아 국수 먹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반면 영단이는 혼자 여행을 하니 다양한 음식을 먹어보지 못해 아쉬웠다고 했다. 팟타이에 꽂혀서 매일 팟타이만 사 먹었다고.
일단 땡모반을 하나씩 손에 들고 먹거리를 찾아다녔다. 국수, 팟타이, 망고 찰밥, 쏨땀, 스퀴드 오믈렛. 이 모든 걸 다 합해도 280바트. 한국 돈으로 1만원이 안 됐다. 그래, 이 맛에 태국 오는 거지.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아이도 남편도 없이 이렇게 밤거리를 헤매 본 지가 언제더라. 출산 후 2년 넘게 저녁 없는 삶을 살았다.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5시 퇴근. 30분 정도 차를 타고 어린이집으로 육아 출근. 회사-어린이집-집이 내 유일한 동선이었다. 모든 약속은 점심시간에. 저녁 약속도 회식도 MT도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어린이집 하원 길, 고기 집에 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나도 밖에서 고기 구워 먹고 싶다. 소맥도 같이 먹으면 정말 맛나겠다.'
아련한 눈빛으로 유모차를 끌었다.
한 손에 땡모반, 한 손에 팟타이. 대충 그냥 아무렇게나 만든 것 같은 팟타이도 기분 탓인지 정말 맛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신나 보였다. 나도 신났다. 여기서는 아무도 내가 애 엄마라는 걸 모른다. 나는 더 이상 애데렐라가 아니다. “나는 자유인이다!!!”하고 외치고 싶었다.
미안하지만 애 생각은 하나도 안 났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