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아이들] 영화 <추락의 해부> 속 다니엘
아빠가 죽었다. 설산이 보이는 그림 같은 별장 앞에 피가 흥건하다. 사인의 증거로 남은 것은 머리의 외상과 세 점의 핏자국뿐. 사망의 직접적 원인은 관자놀이의 혈종이지만 그것이 충돌 때문인지 타격에 의한 것인지는 판단할 수 없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뜻이다. 경찰이 수사에 나서고 재판이 열린다. 엄마 산드라(산드라 휠러)가 강력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아빠 사뮈엘의 시신을 가장 먼저 목격한 사람은 열한 살 소년 다니엘(밀로 마차도 그라너). 다니엘은 네 살 때 교통사고로 시신경이 영구 손상돼 앞을 보지 못한다. 슬픔과 혼란에 빠진 다니엘을 위로하기 위해 그의 대모가 집을 찾아온다. 다니엘은 울먹이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해가 안 돼요. 난 이해해야 겠어요."
▲다니엘은 아빠 사뮈엘의 시신을 처음으로 발견한 목격자이다.그린나래미디어
사건 당일, 작가인 산드라는 1층 거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그때 남편이 있는 3층 다락에서 커다란 음악 소리가 흘러나온다. 음악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산드라는 결국 인터뷰를 중단한다. 그 사이 다니엘은 안내견 스눕과 산책을 나간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집 앞에서 아빠의 시신을 발견한다. 그가 집을 비운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오직 산드라와 죽은 사뮈엘만이 알고 있다. 외부인 침입의 흔적은 없다.
검사가 산드라를 남편 살해 용의자로 지목한 이유는, 두 사람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화의 시작에는 아들 다니엘의 사고가 있었다. 검사는 산드라가 양성애자라는 점을 근거로 그가 인터뷰를 하러 온 여학생을 유혹했으며 그에 대한 반발로 남편이 음악을 크게 틀었을 것이라 가정한다. 그 결과 다니엘이 없는 사이 두 사람 사이에 격한 싸움이 벌어졌을 것이라고.
산드라의 입장은 다르다. 사건이 일어나기 6개월 전에도 남편은 이미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주장한다. 자신은 인터뷰가 무산된 뒤 2층으로 올라가 잠시 일을 하다 잠이 들었고, 다니엘의 비명 소리를 듣고서야 남편의 죽음을 알게 됐을 뿐이라고. 그러던 중, 사뮈엘이 사건 전날 산드라와 다투는 내용을 녹음해 둔 파일이 공개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남편이자 아빠의 죽음이라는 한 가정의 비극은 대중에게 구경거리가 된다. 그린나래미디어
"녹음된 대화는 현실이 아니에요. 일부일 수는 있겠죠. 우리 목소리지만 진짜는 아니에요." - 산드라
영화 <추락의 해부>(2024년 개봉)는 추락사라는 하나의 사건을 둘러싼 사실의 파편을 해부하며 진실을 추적하는 영화다. 동시에, 우리가 얼마나 자신에게 편리한 진실을 믿으며 살아가는지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 진실이 되지 않는다. 어떻게 편집하고 재구성되느냐에 따라 진실은 쉽게 왜곡된다.
검사는 증언과 현장 감식 결과, 녹음 파일 등을 토대로 산드라를 살인자로 몰아간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정황 증거에 가깝다. 산드라를 범인이라고 믿는 이들은 저마다 사실의 조각을 끌어와 자신의 편견과 상상을 덧대며 그의 범행을 확신한다. 급기야 산드라가 쓴 소설에 남편 살해를 계획하는 여성이 등장한다는 사실마저 그가 살인범이라는 근거로 동원된다. 재판에서는 사실과 주관적 해석이 복잡하게 뒤섞인다.
남편이 자살했을 것이라는 산드라와 변호인의 주장 역시 주관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산드라는 남편이 자살하는 모습을 직접 보지도 못했고 이를 입증할 직접적 증거도 없다. 6개월 전 자살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 역시 그가 다시 자살을 시도했다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남편이 자살하지 않았다면 산드라 자신이 살인범으로 몰리기 때문에 산드라와 변호인은 자살 가능성에 무게를 실을 수밖에 없다.
교수 출신 남편을 죽인 유명 작가 아내 그리고 시각장애인 아들. 남편이자 아빠의 죽음이라는 한 가정의 비극은 대중에게 구경거리가 된다. 사람들은 마치 예능 프로그램 시청하듯 사건을 관전하며 저마다의 판단을 덧붙인다. 이것이 실제로 누군가의 삶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그리고 이 모든 모순과 혼란의 한가운데에는 열한 살 소년 다니엘이 있다. 다니엘은 아버지가 자신의 사고 이후 정신과 치료를 받아왔다는 사실도, (엄마의 주장에 따르면)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는 것도 이번 재판을 통해 처음 알게 된다. 부모의 관계가 걷잡을 수 없이 어긋나 있었다는 것도.
처음에 판사는 다니엘에게 이 모든 사실을 마주하는 일이 버거울 수 있다며 재판에 오지 말라고 말한다. 산드라 역시 "너는 그냥 아이답게 살아야 하는데, 조금 더 어린 아이로 남아야 하는데 말이야"라며 "이런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해"라고 말한다.
이러한 시선에는 아이를 보호하려는 마음이 담겨 있지만, 동시에 아이를 그저 아름답고 좋은 것만 보고 들어야 하는 존재로 여기는 인식 또한 숨어 있다. 그러자 다니엘은 말한다. 재판에 오지 못하게 하더라도 어차피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될 것이고, 오히려 더 집착하게 될 것이라고.
'애들은 몰라도 돼'라는 말은 아이들을 미성숙한 존재이자 그저 어른의 판단에 따라야 하는 존재로 규정하며, 아이들을 논의의 장에서 배제한다. 물론 아이들에게 어른과 동일한 정보를 같은 방식으로 전달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 집 초등학생은 2학년 때 '유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한동안 혼자 계단을 올라오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정보를 공유할 때는 그들이 받게 될 충격과 파장 또한 세심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아이들 역시 사회를 살아가는 한 명의 시민으로서, 자신을 둘러싼 현실을 이해하고 인식할 권리가 있다. 하루아침에 아빠를 잃고 엄마가 아빠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속에 살아가야 하는 다니엘에게는 이러한 권리가 더욱 절실하다.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충분한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도 언론은 이미 산드라에게 남편 살해범이라는 낙인을 찍는다.그린나래미디어
다행히 영화 속 법정에서는 한 명의 시민으로서 다니엘을 대한다. 다니엘은 이 사건의 중요한 증인이면서도 유력한 용의자인 엄마와 같은 집에서 살아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법무부는 다니엘의 증언이 독립성을 침해받지 않도록 직원을 파견해 재판이 끝날 때까지 다니엘과 함께 생활하도록 한다.
산드라 역시 다니엘에게 거짓말하지 않고 네가 기억하는 대로만 말하면 된다며 아이를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한다.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하루아침에 살인자로 몰렸고 아이가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나라면 과연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마지막 평결을 앞둔 주말, 다니엘은 엄마와 떨어져 법무부 직원과 둘이 있겠다고 말한다. 돌아오는 월요일, 그는 법정에서 증언을 할 예정이다. 다니엘이 직접 판사에게 요청한 증언이다. 다니엘을 집에 두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차 안, 자신의 사생활과 치부가 까발려지고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을 때도 시종일관 담담한 얼굴이었던 산드라는 영화에서 처음으로 가장 서럽게 눈물을 흘린다. 아이가 자란다는 것은 양육자가 더는 이해할 수도 통제할 수 없는 아이만의 세계가 생겨남을 의미한다. 산드라는 그 세계를 존중한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정말 엄마가 죽였을까요?"라고 묻는 다니엘에게, 법무부 직원은 말한다. 판단을 내려야 하는데 필요한 정보가 부족할 때는, 결국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그래야 의심을 떨쳐낼 수 있다고. 그러자 다니엘이 납득할 수 없다는 말투로 반문한다.
"믿음을 지어내라고요? 그럼 저는 지금 확신이 없으니 확신한 척을 해야 하나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충분한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도 언론은 이미 산드라에게 남편 살해범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산드라는 "어둡고 비뚤어진" 사람이며, 소설 곳곳에 살인의 암시를 숨겨두었다면서 그를 악마화한다. 방송에서 한 패널은 "실제 사망 원인은 중요하지 않고 작가가 남편을 죽였다는 그 설정 자체가 어느 교수의 자살보단 훨씬 더 흥미진진하"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믿을 수 있는 근거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믿고 싶은 진실을 믿는다. 단지 그것이 더 흥미롭다는 이유로.
산드라의 추락을 보면서 몇 년 전부터 유행하고 있는 '나락'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나락이 도파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자고 일어나면 또 누군가 불미스러운 논란과 함께 한순간에 추락하는 시대다. 그런데 논란을 들여다보면 반박조차 어려울 만큼 중대한 잘못을 저지른 경우도 있지만 진실 공방이 이어지는 사례 역시 적지 않다.
처음에는 반박과 재반박을 실시간으로 소비하며 신나게 돌을 던지던 대중은 논란이 길어질수록 어느 순간 흥미를 잃는다. 논점은 흐릿해지고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인상만 남는다. 법적 다툼이 이어지고 유의미한 결론이 내려질 즈음에는 이미 관심은 다른 곳으로 옮겨간 지 오래다. 그 사이 또 다른 누군가 처형대에 오르고 너무 빠른 단죄와 손절이 반복된다.
아찔할 정도로 빠른 '나락 문화' 속에서 무엇이 진짜 진실인지, 이 사안이 그렇게까지 비난받을 일인지 찬찬히 살피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도파민에 중독된 사회는 차분히 기다리고 헤아리며 주체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어쩌면 진실에는 애초에 아무도 관심이 없는지도 모른다. '나쁜 놈'에게 돌을 던지면서 즉각적으로 느끼는 효능감만이 중요한지도. 자신이 어떤 돌을 던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법정과 언론에서 어른들이 단편적인 정보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조합해 소설을 쓰는 동안, 다니엘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실을 검증하며 진실에 다가간다. 다니엘은 말한다. 아무리 찾아봐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면, '어떻게'가 아니라 '왜'를 물어야 한다고. 엄마가 아빠를 죽일 만한 이유가 있는가? 아빠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한 이유가 있는가? '어떻게'라는 질문을 '왜'로 바꾸는 순간, 다니엘은 비로소 사건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자신만의 결론을 내린다. 영화를 보다 보면 결국 묻게 된다. 여기서 진짜 미숙한 사람은 누구일까.
재판을 방청하게 해달라고 요청하면서 다니엘은 판사에게 말한다. 이미 상처받았지만 그렇기에 모든 이야기를 다 듣고 극복하고 싶다고.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고 다니엘은 이 상처를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러한 생각조차 편견일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다. 다니엘은 적어도 진실의 언저리에서 돌만 던지는 비겁한 어른은 되지 않으리라는 걸.
<오마이뉴스>에서 오랜만에 새로운 프리미엄 연재를 시작합니다. 그동안 '나를 키운 여자들', '문제적 여자들'을 통해 나와 닮아 있는 여자들의 서사에 천착했다면, 이번에는 영화 속 '아이답지' 않은 아이,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아이, 어딘가 조금은 '이상한 아이들'을 통해 이 사회에서 아이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고찰해 보려 합니다. 2주에 한 번씩 찾아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