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여행] 말레이시아 레고호텔에서 생긴 일
말레이시아에 간 건 전적으로 레고 때문이었다. 싱가포르-말레이시아-발리-싱가포르. 우리의 한 달 여행 일정이었다. 남편은 싱가포르에서 차로 국경만 건너면 말레이시아에 갈 수 있다고 했다.
국경 도시인 조호바루에는 레고랜드가 있다. 조호바루는 물가가 싸고 교육 인프라가 잘 조성돼있어서 한국인들이 요즘 한 달 살기로 많이 찾는 곳이다.
우리 가족도 처음에는 한 달 살기 장소로 조호바루를 고민했다. 하지만 우리는 아이 교육 때문에 여행 가는 게 아니었고, 좀 더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에 가고 싶었다.
여행을 다녀온 지 몇 달이 돼서도 아이는 우리가 어디 여행 갔다 왔지, 하면 이렇게 말한다.
“달리(발리)! 레고호텔!”
발리에는 보름 정도 있었고, 레고랜드에는 단 이틀만 있었다. 레고호텔에는 단 하루 묵었다. 그런데 아이의 기억 속에는 발리와 레고호텔이 동일선상에 있다. 레고의 힘이 이렇게 강하다.
우리는 레고랜드 2일권을 끊었다. 첫날은 테마파크, 둘째 날은 워터파크.
테마파크에는 아이가 직접 장난감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는 곳이 있었다. 다른 애들이 잘 타길래 어느 정도 자동으로 움직이겠지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아이가 직접 페달을 밟으면서 핸들을 움직여 방향을 조절해야 했다.
아이는 혼자 이런 자동차를 타본 게 처음이었다. 이미 아이는 자신이 점찍었던 빨간색 자동차를 6살 한국인 형에게 뺏겨서 속상한 상황이었다(정말 분했는지 아이는 몇 개월이 지난 지금도 그때 이야기를 한다. 나 빨간 거 타고 싶었다고).
형누나들은 쌩쌩 달리는데 아이는 조금 가다 멈추고 막다른 곳으로 가기를 반복했다. 감 잡았다 싶으면 다른 차랑 추돌사고. 아이가 계속 정체돼 있자 안내해주는 직원이 몇 번이고 와서 아이를 도와줬다. 한국말로 “밟아~ 밟아~”하면서. 점점 직원의 손짓에 피로가 묻어났다.
막막하고 답답한 마음에 중도에 포기하지 않을까 했는데 아이는 계속 노력했다. 남편과 나도 “날날아, 너무 잘하고 있어. 너무 잘한다”하며 아이를 응원했다.
남들은 2바퀴 넘게 달리는 동안 혼자 1바퀴를 겨우 돌았을 때쯤 정해진 시간이 다 됐다. 아이는 갑자기 차에서 내리기 싫다며 소리를 질렀다. 날카롭고 큰 소리로. 아마 민망했을 거다. 자기 자신이 생각만큼 잘 못하는 상황이. 아마 나였다면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진작 내려서 도망쳤을지도.
지난번 어린이집 상담 때 선생님에게 아이가 민망한 상황을 잘 못 견디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기 마음대로 잘 안 될 때 소리를 지르거나 거친 말이 나온다고.
담임 선생님은 아이가 경쟁심이 강한 편이고 이 시기의 공격성은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아이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고 스트레스를 잘 풀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것 같다고 조언했다.
창피한 상황을 잘 못 견디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어설프고 미숙한 모습을 남들에게 드러내기 싫다. 늘 안전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다. 서른 해를 넘게 산 나도 이런데, 세 돌도 안 된 아이는 오죽할까.
아이와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부끄러운 상황이 닥쳐도 자존심 때문에 전혀 티를 내지 않으려 한다는 것 정도. 아이는 아직 자신의 감정을 잘 못 숨긴다.
소리 지르는 아이 모습이 당황스러우면서도 마음이 짠했다. 겨우 아이를 진정시켜 차에서 내렸다.
다음 날은 아예 숙소를 레고호텔로 잡았다. 레고호텔은 정말 천국이었다. 조호바루 물가를 생각하면 숙박비가 부담스러웠지만 한 번쯤은 올만 한 곳이었다.
로비에도 레고, 침실도 레고, 조식 먹는 식당도 레고. 이곳은 레고 천국이었다. 엘리베이터 탈 때마다 조명이 반짝이면서 신나는 노래가 나왔는데 그때마다 세 식구가 음악에 맞춰 막춤을 췄다. 아이는 시크한 표정으로 외쳤다. “엄마도 춤춰!”
둘째 날, 워터파크에서 신나게 놀다 로비에 오니 마술 클래스가 있다고 했다. 우리는 그냥 마술쇼를 하는 줄 알고 아이와 함께 기다렸다. 어린이용 의자가 세팅되고 아이도 다른 아이들 틈에 앉았다. 마술사가 들어오고 어디에서 왔는지, 몇 살인지 물었다.
대부분 동양인인 것 같은데 다들 영어를 잘했다. 아이는 그중 나이가 제일 어렸고 유일하게 영어를 못했다. 하긴, 한국말로 자기 나이도 잘 말하지 못하던 때였으니까(네 살인데 계속 여섯 살이라고...). 어디에서 왔냐는 질문에 아이는 머쓱해하며 웃었다.
마술사는 아이들에게 고무줄로 할 수 있는 마술을 알려줬다. 성공시키면 막대풍선으로 동물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스스로 성공하는 아이도 있었고,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 아이도 있었다. 그때마다 마술사는 아이들에게 풍선을 나눠줬다.
풍선이 줄어들수록 아이는 초조한 얼굴이었다. 자기도 달라고 손을 들어봤지만 마술사는 냉정했다. 마술을 성공한 아이에게만 풍선을 줬다. 결국 아이는 풍선을 받지 못했다. 아이는 금방이라도 울듯이 시무룩해졌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는데 나도 남편도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속이 쓰렸다. 남편은 말했다.
“이래서 영유(영어유치원) 보내는 건가?”
영어를 잘한다고 아이가 마술을 성공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영어를 잘하는 제법 큰 아이들도 부모의 도움을 받았으니까.
다만 영어를 못 해서 의사소통부터 막히는 게 남편은 속상했나 보다. 내가 아이에게서 내 모습을 발견한 것처럼 남편도 자신의 콤플렉스를 떠올렸을지 모른다.
풍선을 받지 못한 아이를 데리고 레고 만드는 곳으로 나왔다. 아이는 “아저씨 나빠! 누나들 나빠! 형들 나빠!” 하며 속상해했다. ‘그러게 그 마술사는 그냥 하나 주면 되지 왜 그랬대’ 나까지 마음이 뾰족해졌다. 남편도 마술사가 너무했다며 분노했다.
이제 아이는 세상에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훨씬 많다는 걸 알게 될 거다. 떼쓰고 울고불고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걸.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걸. 많이 좌절하고 속상할 거다.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삶은 그런 일들의 연속일 거다. 인간관계도, 공부도, 사회생활도...
저 작은 아이가 그 모든 걸 겪는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할 수만 있다면 아이가 상처 받지 않게 돕고 싶다.
<스카이 캐슬> 곽미향도 이런 심정이었을까. 아이가 아무 상처도 받지 않도록 가상의 온실을 만들면서.
처음으로 아이가 고깃집에 딸려 있는 놀이방에서 놀던 날이 기억난다. 어른이 들어갈 수 없는 놀이시설에 아이가 혼자 쏙 하고 들어가던 날.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이가 다치지는 않을지, 큰 애들에게 치이지 않을지 나는 불안해하며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신나 보였다. 엄마 아빠는 들어갈 수 없는 자기만의 세상에서.
“엄마 아빠 저리 가!”
아이는 작은 손으로 혼자 끙끙대며 레고를 만들었다. 엄마 아빠는 저리 가라며. 망가지고 또 망가져도 또 해보겠다며. 언제 속상하고 슬펐냐는 듯이.
어쩌면 아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괜찮을지도 모른다. 아이에게 나를 자꾸만 투영하니 필요 이상으로 아이가 애처롭게 느껴졌을지도. 아이는 시트콤인데 나와 남편만 다큐를 찍고 있었다.
앞으로 아이는 점점 혼자 설 연습을 할 것이다. 때론 넘어지고 때론 울면서. 아이에게는 아이가 감당하고 경험해야 할 몫이 있다. 우리가 아이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남편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옆에서 응원하는 것뿐이다.
근데 날날아, 그거 아니. 세상에 내 맘대로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엄마 아빠는 너를 키우면서 가장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는 걸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