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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Oct 22. 2019

나는 남편 덕분에 겨우 엄마가 됐다

[최초의 여행] 위기의 부부에게 한 달 여행이란

유모차가 부서졌다. 한 달 여행 떠난 지 열흘째 되는 날이었다.

가성비 좋은 스테이크 먹고 세 식구 모두 잔뜩 기분 좋아져 키즈카페 가는 길. ‘앗’하는 남편의 외마디 비명이 들렸다. 유모차 본체와 손잡이를 이어주는 오른쪽 막대기 중간 부분이 우지끈 부서졌다. 차는 옆에서 쌩쌩 달리고, 남편은 땀 뻘뻘 흘리며 유모차 상태를 확인했다.

“아 망했다. 본드 붙여도 안 될 것 같은데.”



발리로 떠나기 전, 유모차를 가지고 갈까 말까 수십 번 고민했다. 장기여행에서는 짐 줄이는 게 가장 중요한데 유모차 무게만 10kg 가까이 나갔다. 여기에 커다란 캐리어 두 개까지.

세 돌을 앞둔 아이는 이미 한국에서는 유모차를 잘 타지 않았다. 하지만 밖에서 낮잠 잘 때는 유모차가 꼭 필요했다. 여행 내내 제법 많은 거리를 걸어 다녀야 할 텐데 아이 다리 힘이 그 정도 될까? 아이는 이제 잘 걷고 잘 달렸지만 10분 거리인 어린이집에서 집까지 오는 길에도 몇 번이나 힘들다고 주저앉고 딴 길로 샜다.

그래도 사누르는 도로 상황이 좀 낫다고 하니까 일단 유모차를 가져가 보기로 했다. 듣던 대로 발리는 전혀 유모차 친화적이지 않았다. 인도는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 힘들 정도로 좁았고 그마저도 부서지거나 깨진 곳이 많았다. 유모차 가는 길은 평지였다가 높이가 있는 인도 블록이 나오다가를 반복했다.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유모차를 지지하는 막대에 무리가 간 모양이었다.

유모차 없이 여행하는 건 불가능했다. 키즈카페 갔다 돌아오는 길, 남편은 마트에서 본드와 청색 테이프를 사 와서 유모차 (임시) 보수에 나섰다. 그때부터 유모차 운전은 전적으로 남편 몫이 됐다.

운전 원칙은 최대한 유모차에 무리를 주지 않는 것. 막대가 부러진 오른쪽에 힘을 실으면 안 됐고,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나오면 남편은 아이를 태운 채로 유모차를 번쩍번쩍 들었다. 아이 무게까지 더하면 25kg이 넘는 무게였다. 유모차님이 힘드실까 봐 손잡이 고리에 짐도 못 걸었다. 7만 5천 원짜리 중국산 유모차는 졸지에 애지중지 모셔야 할 상전이 되었다.


 


위기의 부부



한 달 여행을 떠나기 전, 우리 부부는 여러모로 위기였다.


가장 큰 이유는 억울함이었다. 우리는 주변 가족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육아를 했다. 오로지 남편과 내가 한 팀이 되어서 아이를 돌봤다. 너 아니면 나 피아의 구분만 있는 관계는 끈끈하면서도 건조했다. 언젠가부터 남편에게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오늘 언제 퇴근해?”였다.
 
남편은 노동 강도가 높은 업계에서 일하고 있었다. 애 볼 사람이 나 아니면 남편밖에 없는데 남편이 바쁘다는 건 내가 아이를 더 많이 봐야 한다는 걸 뜻했다. 애 보느라 옴짝 달싹 할 수 없는 날이 이어졌다.

남편은 가사와 육아를 분담하기 위해 나름 최선을 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육아의 중심 추는 늘 내 쪽으로 더 기울어져 있었다. 임신 테스트기 두 줄을 확인한 후로 쭉.

남편이 차곡차곡 커리어를 쌓고 연봉을 높여가는 동안 내 커리어는 행사장 앞 풍선 인형처럼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러다 사회적 이름은 사라지고 엄마와 아내라는 이름만 남게 될까 두려웠다.


애 엄마가 애 보는 게 뭐 그리 억울한 일이냐고? 애는 함께 만들었는데 내 삶만 왜 이렇게 위태로운 걸까. 엄마의 무게는 왜 이토록 무거운 걸까. 나는 이 불평등이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 참을 수 없었다.


남편의 바쁨과 부부 싸움의 횟수는 정확히 비례했다. 남편에게 “더는 이렇게 못 산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 “미안해. 내가 잘할게. 근데 나도 힘들어.” "힘들어? 네가 나만큼 힘들어?" 승자 없는 불행 배틀이 이어졌다.

 


유모차 극기훈련



한 달이라는 길다면 긴 시간, 많다면 많은 비용을 들여 가족 여행을 떠난 건 우리 부부에게 큰 결심이었다. 지금처럼 사는 건 분명 아니었다.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마침표 같은 쉼표를 찍고 싶었다. 남편과 나 그리고 아이가 함께.

사누르에서 우붓으로 옮기면서 유모차 운전은 극기훈련이 되었다. 사누르에서는 그랩이라도 이용할 수 있지 우붓은 그랩, 우버 등 온라인 택시 이용이 사실상 금지돼 있었다. 배낭여행객과 스쿠터로 가득한 복잡하고 정신없는 거리에서 우리에게 유일한 이동수단은 두 다리와 부서진 유모차뿐이었다.

우붓 도로는 유모차 끌기에 최악이었다. 보도블록은 파여있고 좁고 높은 오르막길, 흙길, 비포장 도로가 나오다 말다를 반복했다. 다섯 걸음마다 택시 기사들이 택시 안 타냐, 투어 안 하냐 호객행위를 했고, 빠르게 달리는 스쿠터에게 길을 내줘야 했다. 매연은 옵션.



남편은 좌우를 살피며 사람과 스쿠터와 원숭이와 고양이 사이를 곡예하듯 유모차를 몰았다. 나는 남편과 유모차 뒤를 따라 걷다 위험한 길이 나오면 앞장서서 길을 만들었다. 덥고 습한 날씨, 하루에도 1만 보는 족히 걷느라 무릎이 비명을 질렀다. 어지럼증에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대체 왜 이렇게 사서 개고생을 하고 있는 거지.


하루는 논길과 풀숲을 헤치고 고지대에 있는 라이스 필드(라 쓰고 논밭이라 읽는다)를 보러 갔다 내려오는데 가파른 경사로가 펼쳐졌다. 아이는 깊이 잠들었고 길은 울퉁불퉁한 흙길에… 눈 앞이 캄캄했다. 여기로 가면 길이 있기는 한 걸까.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젊은 외국인 커플이 우리를 안쓰러운 표정으로 쳐다봤다.



남편은 유모차에서 아이를 빼내더니 15kg 넘는 아이를 안고 먼저 길을 걸어 내려갔다. 잠이 푹 든 아이는 젖은 솜처럼 무겁게 처졌다. 나는 유모차를 들고 낑낑대며 뒤를 따랐다. 다리가 벌벌 떨렸다. 좁은 골목과 계단, 아찔하게 높은 다리를 건너자 비로소 출구가 보였다.




3년 만에 알게 된 것들 



더위를 많이 타는 남편은 시지프스라도 된 것처럼 유모차를 끌고 또 끌었다. 비 오듯 땀을 흘리면서도 남편은 힘들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그저 자신의 소울푸드인 다이어트 콜라를 하루에도 몇 잔씩 벌컥 벌컥 마실 뿐이었다.


남편은 잘 참는 사람이다. 6년 전 하와이로 신혼여행 갔을 때 일이다. 수영하다 파도에 휩쓸려 남편의 오른쪽 어깨뼈가 부서졌다.


오른팔 전체에 피멍이 들고 팔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도 남편은 참고 또 참았다. 신혼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신혼여행을 망쳤을 때 내게 들어야 할 원망이 두려웠을지도.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은 곧장 응급실로 갔다.

3년 전, 내가 아이 낳는 과정을 옆에서 모두 지켜본 남편은 눈물을 흘리며 안쓰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고, 나는 너보다 훨씬 잘 참지 않냐고. 그 후 남편은 내게 한 번도 둘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건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유모차 전사 남편의 뒤를 따르면서 나는 조금씩 마음이 누그러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남편도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엄마 되기의 고통과 힘듦을 이야기해왔다. 나를 지키고 싶은 엄마를 위한 매거진 ‘마더티브’를 창간하고,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라는 책까지 냈다.


잊은 게 있었다. 내가 엄마가 처음이었듯이 남편도 아빠가 처음이라는 것.


남편도 나처럼 모든 게 처음이라 두려웠을 거다.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라는 역할이 버거웠을 거다. 너는 왜 나만큼 힘들지 않냐는 내 책망이 힘겨웠을 거다. 이제야 남편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상상할 수 있게 됐다. 아이가 세 돌이 되고 나서야.


돌이켜보면 나 혼자서는 결코 엄마가 될 수 없었다. 나처럼 저질체력에 인내심 없고 이기적인 사람이 아이를 키울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남편 덕이 크다.


남편의 인내심과 다정함 그리고 유머. 어쩌면 나는 남편 덕분에 겨우 엄마가 됐는지도 모른다. 아들은 아빠를 닮아 다정하고 애교가 많다.


우붓에서의 일주일, 우리는 부서진 유모차로 어디든 갈 수 있었다. 남편의 운전 실력은 날로 늘었고 유모차에 탄 아이는 작은 손을 흔들며 "아빠 힘내라!"를 외쳤다. 나는 열심히 에스코트를 했다. 이대로라면 유모차 세계 전지훈련도 가능할 것만 같았다. 우리 셋이 함께라면.



저의 첫 에세이집이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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