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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Jul 28. 2020

그럼에도 아기를 갖고 싶냐고 묻는다면

한 아이가 내게 온다는 것, <컨택트><네 인생의 이야기>

*이 글에는 영화 <컨택트>와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 남편은 울고 있었다. 영화관을 빠져나오며 남편은 말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루이스와 같은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까?"


영화 <컨택트>는 묻는다. 불행한 미래를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미래의 씨앗이 되는 과거를 선택할 수 있을까. 아이의 비극적 죽음을 미리 알면서도 아이를 갖기로 결정할 수 있을까.


영화는 루이스와 이안의 로맨틱한 대화로 끝난다.


"아기를 가지고 싶어?"

"네, 그래요."

(왜 남자는 반말이고 여자는 존댓말인지 모르겠다. 자막에 한국 패치가 붙은 듯)


            

영화 <컨택트> 스틸컷. 에이미 아담스.



어느 날 정체불명의 비행 물체가 지구에 나타난다. 저명한 언어학자 루이스는 정부로부터 그들이 어떤 목적으로 이곳에 왔는지 알아내라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루이스와 물리학자 이안은 7개의 다리를 가진 괴상한 외계인들을 '헵타포드'(그리스어에서 7을 뜻하는 hepta와 발을 뜻하는 pod를 합친 조어)라고 부른다.


헵타포드의 시간은 과거-현재-미래로 선형적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목적과 미래를 아는 상태에서 말하고 행동한다. 원인이 있어서 결과가 있는 것이 아니다. 원인과 결과는 동시에 일어난다. 헵타포드의 언어를 배우면서 루이스에게는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언어가 사고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영화 속에서 반복되는 한 소녀에 대한 기억은 훗날 루이스가 갖게 될 딸에 대한 '미래의 기억'이다. 문제는 그 소녀가 열두 살에 희귀한 병으로 죽게 된다는 것. 루이스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다.




우리 인생이 이렇게 달라질 줄 알았다면



남편과 나는 8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결혼 후 달라진 것은 거의 없었다. 일 년에 두 번 찾아오는 명절이면 '우리가 참 불합리한 제도에 제 발로 들어갔구나' 실감했을 뿐이었다. 명절은 금세 지나갔고 각성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엄마가 되겠다고 결심하는 데는 결혼 후 2년이 걸렸다. 나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이었다. 하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많았다. 아이가 생기면 내 인생은 끝나버릴 것 같았다. 나 같은 사람이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아이를 낳는다고 인생이 끝나지는 않았다. 대신 완전히 새로운 인생이 열렸다. 어느 날 밤, 아이를 재우고 남편과 소파에 나란히 누워 아이 사진을 보며 웃다가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는 이제 우리만의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됐구나."


생각해 보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이를 낳고  하루도  자본  없다. 저녁에 친구를 만나거나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상상도   없다.  먹으며 회식? 그게 뭔가요.  년에  번씩 훌쩍 떠나곤 했던 여행도 이제는 언감생심.  자주 가던 극장도 이제는 겨우겨우 시간을 내고  봐줄 사람을 구해야   있다. 향후  년간 휴식은 아주 머나먼 이야기가   같다. 우리 관계에는 새로운 계절이 왔고 이미 지나간 계절로는 되돌아갈  없다.




"분수나 샘이라도 된 듯한 기분으로 만들어주는 소리"


            

헵타포드에게 걸어가는 루이스



영화는 천재 작가라 불리는 테드 창의 단편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영화가 외계인이 지구에 나타나면서 생기는 갈등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낸다면, 테드 창의 원작은 헵타포드의 언어와 세계관이라는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에 집중한다.


이 책에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건 딸에 대한 미래의 기억을 서술하는 테드 창의 문장들이다.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아이를 아주 많이 사랑하는 사람일 거다.


"그때 내 머릿속에 떠오르게 될 생각. 너는 명백하게, 기가 막힐 정도로 나와는 다르다는 사실. 이 생각은 네가 나의 복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내게 또다시 일깨워줄 거야. 너는 매일처럼 내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소중한 존재이지만, 나 혼자 만들어낼 수 있었던 존재는 결코 아니야."

"네가 성장의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속도는 언제나 나를 놀라게 할 거야. 너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마치 움직이는 목표를 조준하는 것과 같아. 너는 언제나 내 예상보다 앞서 나가 있을 거야."

"우리 관계가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사실을 내가 매일 자각하게 되는 것은 네가 처음 걷기 연습을 하면서부터야. 너는 쉬지 않고 어딘가로 달려 나가겠지. 네가 문지방에 부딪히거나 무릎이 까질 때마다 나는 너의 아픔을 느끼게 돼. 마치 말을 안 듣고 멋대로 행동하는 팔이나 다리가 하나 더 생긴 듯한 느낌이지."

"(중략...) 그러다 강아지가 다시 밖으로 나와서 네 손가락을 핥고, 그럼 너는 또 꽥 소리를 지르고 웃기 시작할 거야. 그 소리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소리이지. 내가 분수나 샘이라도 된 듯한 기분으로 만들어주는 소리란다."


"내가 분수나 샘이라도 된 듯한 기분으로 만들어주는 소리." 나는 이 소리가 어떤 소리인지를 정확히 안다. 아이가 얼굴이 빨개지면서 반달눈을 만들며 깔깔 넘어갈 때마다 나는 이 문장을 떠올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소중한 아이가 희귀병에 걸려서 혹은 불의의 사고로(소설에서는 딸이 스물다섯 나이에 암벽등반을 하다 사고를 당하는 것으로 나온다) 죽게 된다면? 정해져 있는 미래를 알면서도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영화에서 루이스는 이렇게 말한다.


"그 병은 막을 수 없어. 꼭 너처럼. 네 수영실력, 글솜씨 같은 모든 놀라운 재능처럼."


그러자 딸 한나는 야무지게 대답한다.


"난 막을 수 없어."


1년 6개월이 조금 넘는 기간. 육아는 아이가 너무 예뻐서 울고, 아이 키우는 게 너무 힘들어서 우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제 맘대로 안 된다고 생떼를 쓰며 뒤집어질 때는 내가 이런 걸 배 아파가며 왜 낳았나 싶었다가도, 애교 부리고 장난치며 안길 때는 내가 이렇게 예쁜 걸 어떻게 낳았나 싶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아이 때문에 웃었다 울었다 한다.


한 아이가 온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가 함께 온다는 것을 뜻한다. 수영실력, 글솜씨 같은 놀라운 재능과 희귀한 병 가운데 좋은 것만 선택해서 살아갈 수는 없다. 누구 말처럼 꽃길만 걸을 수는 없다. 그런 삶은 없다.


인생이 비극적으로 끝난다고 해서 그 아이의 삶 전체가 불행했다고 결론 내릴 수 있을까. 그 아이는 태어나지조차 말았어야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언젠가 결국 죽을 걸 알면서도 순간순간 현재시제를 살아간다. 행복과 불행은 바로 그 순간에 깃들어 있다.


여기까지 써놓고도 여전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루이스와 같은 선택을 할지는 확신이 안 선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아이의 비극적 결말이라면.


그나저나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니. 내 인생은 확실히 새로운 페이지에 접어들었다.




*2018년 6월 오마이뉴스에 실렸던 글을 수정보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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