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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나라 Jul 14. 2021

두 번의 유산을 통해 깨닫게 된 태도적 가치

불안을 이겨내기 위한 태도의 변화와 고통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삶의 의미

                                                                                                                                    

첫 번째 유산과 상실의 공허함


감내함이 아닌 회피함으로 벗어난 고통



처음 임신했을 때 딸일 것 같다며 선물 받은 신발. 아직도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처음 아기 심장 소리를 들으러 간 날 의사로부터 *계류유산이 되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임신이 되고 초음파에서 아기집도 보이나 발달과정에서 태아가 보이지 않는 경우 혹은 임신 초기(일반적으로 20주까지)에 사망한 태아가 유산을 일으키지 않고 자궁 내에 잔류하는 경우를 말한다. 대부분 무 증상이거나 소량을 출혈을 보인다.


나를 지탱할 에너지가 다 빠져나가 몸이 땅 밑으로 꺼지는 것만 같은 슬픔과 무력감을 느끼며 초음파실 검사대에 다리가 벌어진 채 그대로 한참을 울었다.

단 몇 주 간이지만, 그간의 설렘과 행복이 한순간에 낙담과 상실감으로 바뀌어버린 상황을 견뎌내기 힘들었다.


첫 번째 임신중절 수술 후 차마 쳐다볼 수도 없고 버려버릴 수도 없는 초음파 사진들, 미리 사 두었던 아기용품들을 방치한 채  몸이 회복될 새도 없이 예정되었던 일을 빠짐없이 해내고 일부러 약속을 만들며 유산의 기억을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래도 마음이 힘들어 올 때면 "아기는 나와 인연이 아니었던 거야.." 하며 합리화하고, "날 정서적으로 편하지 못하게 만든 사람들 때문이야!"라며 나의 죄책감의 감정을 애꿎은 남편과 시댁에 투사했다.


그 당시 내게 고통스러운 감정이란 하루빨리 '버려야만' 하는 것이었다.


고통의 감정에 직면하는 대신 의식적으로는 외부 활동에 전념하고 무의식적인 방어기제를 총동원하며 나를 보호했다.


마치 임신했던 사실이 없었던 것처럼...


내 삶이 '변하지 않도록', '삶의 항상성'을 유지하는데 온 힘을 기울이는 방식으로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두 번째 임신과 예기 불안


기쁨 대신 불안이 자리했던 8주간의 기억


다행히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임신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막상, 기쁨으로 채워져야 할 공간을 더 크게 차지한 감정이 있었다.


'혹시 이번에 또 유산을 하게 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예기불안이었다.


*두려운 상황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감 때문에 생기는 신경증으로서 평범한 일상적 행위를 할 때 이 전에 겪은 두려운 상황이 연상되어 또다시 두려운 상황을 예감하고 불안을 느끼는 상태이다.


나는 유산의 아픔을 충분히 극복했다고 생각했었지만 트라우마가 되어 무의식에 억압되었던 것이다.


심리적 트라우마가 된 유산의 기억은 '임신'이라는 이전과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봉인 해제되듯 돼 살아나 또다시 '유산'이 반복될지 모른다는 불안을 부추겼다.


그토록 바랬던 임신이었지만 그 소식을 주변에 알리지 않고, 따로 태교를 하거나 육아용품을 알아보는 일도 하지 않았다.


임신의 기쁨에 무심하게 대응하며 예감되는 유산의 고통 가능성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려고 한 것이다.


또한 수시로 '운명에 맡기자. 나와 인연이 될 아기 면 건강하게 태어나 주겠지.'라고 되뇌었다.


내 경우 이러한 되뇜에는 '지금 상황에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또다시 유산할 수 있지만 내 잘못으로 그렇게 될 것은 아니다'라는 전제가 바탕이 되어 있었다.


스스로를 무력하고 회피적인 존재로 만들어갔던 것이며 '미리 체념'함으로써 예기불안의 긴장감을 이완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내 행동방식이 순간의 불안에서 벗어나게 할 수는 있었으나 본질적으로 마음을 편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막상 뱃속의 아기를 오롯이 느끼고 충분히 축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4주 뒤,


"그래 네 예상이 딱 들어맞았어!"

라고 응답이라도 하듯 두 번째 계류유산을 하게 되었다.     

                                          


고통에 직면하다


두 번째 유산은 마음의 방패를 무너뜨린 것 같았다.

온갖 감정이 여과되지 않은 채 그대로 들이닥쳤고 그것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어떠한 행동도 할 수가 없었다.


그중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고통의 감정은 공허함과 불안이었다. 유산으로 인한 무력함은 삶 전체의 공허감으로 확대되었다.                                              

                                                                                                                                            정확한 원인도 확실한 예방법도 뚜렷한 증상도 없는 계류유산.


뱃속의 아이를 지킬 수 있다고 '보장된' 것이 없다는 사실은 나를 그저 운명에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 무력한 존재로 느껴지게 했다.


두 번의 유산 경험은 내 인생의 한 마디에 일어난 사건 일지 모르지만 삶 전체로 확대되어 인간의 노력이 운명 앞에 보잘것없는 것으로, 미래를 가망 없는 것으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인간 존재의 삶은 주관적인 경험의 세계이기 때문에 모두의 마음에 똑같이 적용되는 '객관적 사건'이 있을 수 없다.


누군가에겐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찰나의 경험이 다른 누군가에겐 전 인생까지 확대되어 영향을 끼치는 혁명적 사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실존적 공허함 역시 저마다에게 다른 상황을 계기로, 혹은 불현듯 밀려와 존재와 삶의 의미를 의심하게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실존적 공허함을 이겨내고 삶을 의미 충만한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불안의 사이클


예기불안의 메커니즘


그 당시에 극복했다고 여겼으나 심적 트라우마로 남은 첫 번째 유산은 두 번째 임신의 상황에서 유산이 되풀이될 것이라는 불안을 예감하게 했다.


그리고 상상했던 불안이 실재 두 번째 유산을 통해 '형상화' 됨으로써 '유산을 유발하는 객관적인 요인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유산을 할 수 있다는 불안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심지어 잠을 자다가도  '유산이 연단 것은 내가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일까?'라는 생각에 갑자 두려움이 밀려들며 소스라치듯 깨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의 심리적 충격이 해결되지 않고 상처로 남을 경우 그 상처를 자극할 만한 요인이 발생했을 때 아픈 경험이 되살아날 것 같은 예기불안이 일어날 수 있다.


만일 상상했던 불안이 형상화된다면 그동안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던 일도 단서 삼아 불안을 예견하게 되는(심지어 객관적인 단서가 없음에도) '불안의 사이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이클이 순환하는 과정에서 불안의 크기는 불어날 수 있으며 관성의 힘을 갖고 불안한 상황이나 증상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불안의 사이클을 깨뜨릴 수 있을까?


숙명론적 사고와 실존적 공허함



악착같이 손에 움켜쥐고 있던 것이 모래알처럼 다 빠져나가 버린 것만 같은 공허함은 우울로 나를 가라앉혔고

다시 임신을 하더라도 같은 상실을 경험할 것이라는 불안은 끊임없이 나를 각성시키며 쉬지 못하게 했다.


난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고통 가운데 들어갔다. 


이전처럼 고통스러운 감정과 상황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용기를 내어 직면하고 하고 분석해 보기로 한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 책장에 꽂힌 심리학 이론서들을 정말 닥치는 대로 읽었다.


마음대로 안 되는 게 마음이다.


하지만 자기 분석적 태도로 자신의 감정을 객관화해 봄으로서 감정의 역동으로부터 벗어나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내가 겪은 고통스러운 감정들의 근원엔 공통적으로 '숙명론 적 사고'가 바탕이 되어 있었다. 내가 원하는 데로 상황을 바꿀 수 없으며 원하는 삶을 만들어 나갈 가능성도 없다고 생각한 데서 실존의 공허함이 생겨났다.


예기 불안 역시 예견되는 현상(유산)이나 증상을 내 의지로 제어할 수 없다고 여긴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즉, 운명이 내 의지를 넘어선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듯 숙명론적 사고는 실존적 공허함을 부추기며 의미 추구에의 자유와 가치 실현의 의지를 박탈한다.


고통의 의미


아이를 위해서라면 배에 주삿바늘을 꽂는 게 무섭지 않았다

고통 앞에서 내 존재와 삶의 방향을 선택할 자유 의지를 포기해 왔다는 것을 깨닫고 우울은 죄책감으로 바뀌었다.


공공의 도덕률이 아닌 내 마음의 양심에 따른 죄책감이었다.


그리고 과거를 돌아보게 되었다. 내 미성숙함을 부모 탓으로 돌리며 원망했던 기억들, 감정에 지배당하며 내 곁의 사람들에게 상처 줬던 기억들, 그리고 무엇보다  


뱃속의 아기를 사랑해 주지 못한 것...


볼 수 없었고 만질 수 없었지만 분명 존재했었고, 내 배에 품고 있는 순간은 단 하루라고 해도 아기와 함께하는 시간인 것인데...


열 달이 지나 세상 밖으로 나와야 내 새끼고, 그때부터가 아기랑 함께하는 시간의 시작인 것 마냥 나는 불안에만 사로잡힌 채 엄마가 아기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가치인 사랑을 주지 못했구나...


다시 며칠을 울었다.


과거의 눈물은 유산으로 인한 상실의 고통을 의미한다면 이 당시 눈물은 아기에 대한 애도의 의미였다. 만나 보지 못한 두 명의 아기는 현재 실존하진 않지만 애도로 말미암아 내 마음속에 안전히 살아가고 있다.


두 번째 임신 때와 상황은 변하지 않았고 내가 할 수 있는 행동도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고통을 감내하는 과정에서 같은 상황을 받아들이는 내 태도는 변화되어 있었다.


유산의 가능성을 내 의지로 변화시킬 순 없지만 '이 상황에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가'라는 내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의 되뇜도 이전과 달라졌다.


"나의 소중한 아기는 이미 존재하고 있고 지금 나와 함께 있다. 이별을 두려워하지 말고 소중한 지금을 만끽하자. 나는 오직 나만이 줄 수 있는 사랑으로 아기와의 오늘을 의미 있게 만들 것이다."


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게 해 주는 태도적 가치를 실현할 의지를 갖게 된 것이다.


아이를 품고 있는 하루는 더 이상 불안하지 않았다. 오늘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했고, 하루 두 번 배에 유산방지 주사를 놓는 것은 내 아이를 더 건강하게 해 주는 일 같아 그 시간이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마침내 기적처럼 다민이를 내 품에 안을 수 있게 되었다.


다민이를 만나기까지의 과정은 내게 육아에 관한 마음 자세를 만들게 해 주었다.


변화시킬 수 없는 상황 속에 있을 지라도 그것을 감내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고통의 순간과 감정또한 그것에 어떠한 태도를 가지느냐에 따라 성장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의 유산은 고통스러운 기억이지만 만일 누군가 내 인생에서 그 일을 '없던 것'으로 하고 싶은지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연 달은 유산 경험은 상실감과 허무감으로 나를 고통스럽게 했고, 벗어날 수 없는 불안의 사이클 속에  갇힌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게 했지만 고통에 직면하고 감내하는 과정에서 숙명론적 사고에 맞설 수 있는 태도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를 알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내 아이를 위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변화시켜 줄 수는 없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마음의 눈을 만들어 줄 수 있도록 나는 오늘도 의미를 찾는 의지를 가지며 하루를 살아낼 것이다.




                                                                                                                                                                                                                                                                          


                                              



















































































                                              








































                                                                                                                                                                                                                                                                                                                                                                                                                                                                                                                  

처음 아기 심장 소리를 들으러 간 날 의사로부터 *계류유산이 되었다는 말을 들게 되었다.


*임신이 되고 초음파에서 아기집도 보이나 발달과정에서 태아가 보이지 않는 경우 혹은 임신 초기(일반적으로 20주까지)에 사망한 태아가 유산을 일으키지 않고 자궁 내에 잔류하는 경우를 말한다. 대부분 무 증상이거나 소량을 출혈을 보인다.




초음파실 검사대에 다리가 벌어진 채 그대로 한참을 울며, 자아를 지탱할 에너지가 다 빠져나가 몸이 땅 밑으로 꺼지는 것만 같은 슬픔과 무력감을 느꼈다.




단 몇 주 간이지만 그간의 설렘과 행복이 한순간에 낙담과 상실감으로 바뀌어버린 상황을 견뎌내기 힘들었다.




첫 번째 임신중절 수술 후 차마 쳐다볼 수도 없고 버려버릴 수도 없는 초음파 사진들, 미리 사 두었던 아기용품들을 방치한 채  몸이 회복될 새도 없이 예정되었던 일을 빠짐없이 해내고 일부러 약속을 만들며 유산의 기억을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래도 마음이 힘들어 올 때면 '아기는 나와 인연이 아니었던 거야..' 하며 *합리화하고,


'날 정서적으로 편하지 못하게 만든 사람들 때문이야!'라며 나의 죄책감의 감정을 애꿎은 남편과 시댁에 *투사했다.




그 당시 내게 고통스러운 감정이란 하루빨리 '버려야만' 하는 것이었다.


고통의 감정에 직면하는 대신 의식적으로는 외부 활동에 전념하고 무의식적인 *방어기제를 총동원하며 나를 보호했다.


*'모두를 위한 심리학 summary-방어기제' 편을 참고해 주시길 바랍니다.




마치 임신했던 사실이 없었던 것처럼...




내 삶이 '변하지 않도록', '삶의 항상성'을 유지하는데 온 힘을 기울이는 방식으로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두 번째 임신과 예기 불안


기쁨 대신 불안이 자리했던


8주간의 기억




다행히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임신을 하게 되었다.




임신 4주 차라는 말에 막상 기쁨으로 채워져야 할 공간을 더 크게 차지한 감정이 있었다.


'혹시 이번에 또 유산을 하게 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예기불안이었다.


*두려운 상황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감 때문에 생기는 신경증으로서 평범한 일상적 행위를 할 때 이 전에 겪은 두려운 상황이 연상되어 또다시 두려운 상황을 예감하고 불안을 느끼는 상태이다.




나는 유산의 아픔을 내 인생에 영향을 주지 않을 만큼 충분히 극복했다고 생각했었지만 무의식적으로 심적 트라우마가 되었던 것이다.


심적 트라우마가 된 유산의 기억은 '임신'이라는 이전과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봉인 해제되듯 돼 살아나 또다시 '유산'이 반복될지 모른다는 불안을 부추겼다.




그토록 바랬던 임신이었지만 그 소식을 주변에 알리지 않고, 따로 태교를 하거나 육아용품을 알아보는 일도 하지 않았다.


임신의 기쁨에 무심하게 대응하며 예감되는 유산의 고통 가능성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려고 한 것이다.




또한 수시로 '운명에 맡기자. 나와 인연이 될 아기 면 건강하게 태어나 주겠지.'라고 되뇌었다.




내 경우 이러한 되뇜에는 '지금 상황에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또다시 유산할 수 있지만 내 잘못으로 그렇게 될 것은 아니다'라는 전제가 바탕이 되어 있었다.




스스로를 무력하고 회피적인 존재로 만들어갔던 것이며 '미리 체념'함으로써 예기불안의 긴장감을 이완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내 행동방식이 순간의 불안에서 벗어나게 할 수는 있었으나 본질적으로 마음을 편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막상 뱃속의 아기를 오롯이 느끼고 충분히 축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4주 뒤,


"그래 네 예상이 딱 들어맞았어!"


라고 응답이라도 하듯 두 번째 계류유산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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