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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철 Aug 06. 2019

708쪽 총균쇠 10분 요약

잘 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의 궁극적인 원인은?

총균쇠는 한 때 베스트 셀러였고,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 셀러가 되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지적인 석학 중 한 명인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25년 연구를 정리한 명저라서, 추천 교양서적의 늘 높은 순위를 지키고 있다. 게다가 각 대학별 추천도서에 늘 상위에 랭크되어 있어서 한 번쯤은 읽어보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다.


하지만 총균쇠는 총 708페이지의 두꺼운 볼륨을 자랑한다. 책꽂이에 꽂아 놓으면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 끝까지 읽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일단 시작할 엄두가 안 나고, 서술 방식도 대중 서적보다는 논문스러운 면이 있어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저자가 던지는 질문에 호기심을 공유하는 사람이라면 매우 흥미진진하게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총균쇠를 탄생시킨 25년이 넘는 연구의 시작은 사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사소한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지인인 뉴기니의 정치인 얄리와 해변가를 거닐던 어느 날 얄리는 문뜩 질문을 던졌다.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배, 총, 갑옷 등)’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질문에 대한 가장 흔한 설명은 암묵적으로 여러 민족 사이에 생리학적 차이(근면성, 창의성)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굳게 믿고 있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 설명에 대한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대답은 아주 역겨울 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틀렸다고 단언한다.    


즉 질문은 미국은 잘 사는데 왜 아프리카는 그만큼 잘 살지 못하냐는 것이다. 우리는 나라마다, 대륙마다 삶의 다양한 질적인 측면에서 차이가 있는 것은 알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건지도 모른다. 잘 사는 사람도 있고 못 사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 하지만 궁극적인 원인이 무엇이냐고 물어봤을 때 정확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총균쇠는 이 질문에 대한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답변이다. 총균쇠가 어떤 책이냐고 한 마디로 정리하면 대륙들 마다, 나라들 마다 왜 경제, 사회, 문화적 발전 속도에 차이가 났는지를 원인을 규명한 책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요소 세 가지를 저자는 총, 균, 쇠로 본 것이다. 하지만 책 속에서 실제로 총, 균, 쇠가 언급된 부분은 별로 없다. 혹시 총이나 균의 종류를 기대한 독자라면 읽어가면서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한 내용은 1도 없다.


지금 나라마다 국력에서 차이가 난 결정적인 시점을 저자는 유럽의 식민지 확장이 막 시작되던 1500년 경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때 대륙마다 과학기술 수준과 정치적 성숙도에서 이미 상당한 차이가 존재했다. 더 발전된 사회와 덜 발전된 사회가 만났을 때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생겨난 것은 피할 수 없는 결과였다.


그럼 여기서 다시 질문이 생겨난다. 1500년 경의 차이가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된 것일까? 사실 총균쇠의 대부분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결론부터 정리하면,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25년간 각 대륙의 생태학적 환경, 지리적 특징, 역사, 문화를 연구 조사한 결과 각 대륙마다 발전 속도가 달랐던 것은 ‘우연’ 때문이었다고 판단했다.     


첫 번째, 우연히 대륙마다 존재하는 동물과 식물군이 달랐다. 특히 인간의 노동력을 덜고 식량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대형 포유류가 몇몇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예컨대, 인간이 쟁기로 밭을 갈다가 소가 이 일을 대신 해주자, 덕분에 인간은 남는 시간을 창의적인 활동에 투자할 수 있게 되었다. 


식물의 경우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종이 특정 지역에 밀집되어 있었다. 그래서 어떤 지역은 이동생활에서 정착생활로 바뀌고 식량 생산이 용이해지자 남는 시간에 다양한 물건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토기, , 철기, 갑옷() 등이 만들어지면서 대륙마다 생활 모습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물건이 있고 없고는 우리의 생활양식을 혁신적으로 바꾼다. 예컨대 토기가 있으면 물을 담을 수 있게 되고,  이전에는 먹기 힘들었던 식재료를 끓이고 삶게 되었다. 불에 직접 익히면 타거나 말라서 못 먹던 채소, 조개, 씁쓸하지만 영양가 높은 도토리를 데쳐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은 끓여서 부드럽게 된 음식을 먹으면 좀 더 일찍 젖을 떼게 되었고 출산 주기도 짧아져 부모님의 육아 시간이 줄어들었다. 나아가 문자가 없던 시절, 정보의 지식 창고였던 이 없는 노인들의 수명이 길어졌다. 토기가 촉발시킨 이 모든 결과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반면에 다른 대륙에는 인간의 노동력을 덜 수 있는 쓸만한 대형 포유류가 없었다. 그리고 마땅히 경작할만한 곡식도 없었다. 결국 계속 이동하면서 채집과 사냥하는 삶의 형태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또 자주 이동해야 하면 물건이 많으면 안 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창의적인 사람이라도 창의성을 발현시키기 쉽지 않다. 그리고 이동할 때 아이가 많으면 힘들다. 그래서 이주 민족은 아이를 많이 낳을 수가 없다. 


반면에 동/식물을 활용해서 농업을 발전시킨 사람들은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된 것이다. 당시에는 인구의 차이가 곧 경쟁력의 차이로 이어졌다.      


특히 당시 전쟁에서는 말이 중요했는데, 말이 없는 민족은 기동력에서 경쟁 자체가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전쟁보다 천연두, 인플루엔자, 결핵, 말라리아, 페스트, 홍역, 콜레라 등 유럽 사람들이 가져온 에 의해서 죽어나간 원주민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여기서 저자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왜 유럽 사람들의 균은 원주민들을 맥없이 쓰러지게 했는데, 그 반대의 경우는 일어나지 않았던 것일까? 왜 원주민들의 균이 유럽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피해를 못 준 것일까? 


질문에 대한 답은 이런 치명적인 전염병은 대부분 동물에게서 인간으로 진화된 것이다. 따라서 다양한 동물과 함께 부대끼며 살았던 사람들은 균에 면역력이 이미 존재했던 것이다. 균을 선물해준 사람도 선물 받은 사람도 그 당시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했지만, 현대 의학적인 관점으로 보면 이미 그들의 면역력에서 전쟁의 승패는 이미 결정 나 있었다. 


그렇게 주변에 수백 명, 수천 명씩 피부가 썩고, 피고름을 흘리며 죽어가는 걸 본 원주민들은 전의를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원주민들은 전쟁에서 죽거나, 전염병으로 죽거나, 노예가 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두 번째, 우연히 대륙마다 지정학적 특징이 달랐다. 일단 유럽/아시아가 다른 대륙보다 면적이 훨씬 컸다. 면적이 넓고 인구가 많으면 그만큼 서로 경쟁하는 사회 수가 많아지고 발명품도 많이 만들어지며 그만큼 더 빨리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다른 대륙의 가축과 작물을 들여오려면 기후와 토양 조건이 비슷해야 하고 험준한 지형과 높은 산맥 같은 장애물이 없어야 전파 속도가 빠르다. 기후와 토양 같은 환경적인 특성을 고려해보면 아프리카, 북남미 대륙보다 유럽과 아시아가 옆의 동식물이 전파되기 더 용이했다.


요즘이야 과학 기술의 발달로 새로운 작물을 만들어내서 지정학적 위치가 발전에 큰 저해가 안 되지만, 당시만 해도 기후와 토양이 다르면 한 종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국가의 문화, 즉 새로운 것을 잘 수용하는 성향인지, 배척하는 성향 인지도 문명의 전파 속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세 번째, 국가의 정치적 상황이 대륙마다 달랐다. 이미 통일국가를 이룩한 대륙이 있었고, 작은 부족들끼리 전쟁하느라 중앙 집 권척 체제가 요원한 대륙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어떤 국가의 형태가 미래에 패권을 가질지 아무도 몰랐다.

 

예컨대, 콜럼버스가 보잘것없는 세 척의 배로 죽을뻔한 위기를 넘기고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에 도달하기 수십 년 전 중국은 이미 인도양을 건너 아프리카에 진출했었다. 당시 중국은 주철, 나침반, 화약, 종이, 인쇄술 등 세계의 기술을 선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필 그때, 중국에서 두 파벌 사이에 권력투쟁이 일어났다. 반대파가 승리해서 정부를 장악했는데 이전 정부가 하던 모든 사업을 없애버렸다. 당시에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곧 해양 항해를 금지시키고 조선소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없애버렸다. 나중에 다시 해상 장악권을 차지하려고 해도 조선소가 하나도 없어서 시간이 뒤쳐질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의 평민이었던 콜럼버스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투자유치?를 받기 위해 설명회를 하고 있었다. 콜럼버스는 후원을 얻기 위해 포르투갈과 프랑스를 비롯한 나라를 수년간 돌아다녔지만, 모두 퇴짜를 맞았다. 왜냐하면 그가 요구한 조건이 터무니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과 후손들에게 귀족의 칭호와 제독의 계급을 요구했다. 더불어 새로 발견된 땅에서 얻은 수입의 10%를 원했고, 모든 무역 거래의 8분의 1을 자신의 지분으로, 그가 발견한 땅이 식민지가 될 경우 자신을 총독으로 임명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스페인 이사벨 여왕이 콜럼버스가 원하는 조건으로 후원을 약속했다. 그래서인지 이사벨 여왕과 콜럼버스가 서로 좋아한다는 풍문도 나돌았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만약 유럽이 통일되어 한 명이 다스리고 있었다면 콜럼버스는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망상에 사로잡힌 동네 한량으로 생을 마감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처럼 유럽의 지리적 분할 상태는 여러 의견이 공존할 수 있는 국가적 생태계였던 것이다. 


반면에 당시 중국은 통일국가였다는 점, 그리고 전 세계 국가의 앞으로 운명이 결정되던 그 중요한 시기에 (당시는 몰랐겠지만) 보수적인 정당이 집권했다는 점이 묘하게 얽히면서 전 세계 No.1이 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중국 사람들은 보면 중화사상이 넘치는 경우를 자주 보는데, 공산당 일당 독재 시스템이라서 국민들을 세뇌교육으로 주입시켰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총균쇠를 보니 영 근거가 없는 허세는 아닌 거 같다.


나아가 유럽 대륙은 서로 경쟁하는 수십 개의 국가들이 있으니, 만약 혁신적인 문물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성장 동력을 잃으면 정복당하거나 경제적으로 뒤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기술과 아이디어의 전파가 활성화되었다. 여기서 왜 르네상스가 14∼16세기에 유럽 대륙에서 태동했는지도 납득이 갔다. (이 부분은 책에 없는 얘기지만 그냥 떠올랐다...) 


산업혁명도 18세기 영국의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한 것으로부터 촉발된 것으로 설명하는데, 증기기관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산업혁명은 사실 18세기 전부터 시작하여 점진적이고 연속적인 기술혁신의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리고 당시의 이러한 차이가 오늘날 국가 간의 사회, 경제, 과학, 의학, 정치, 문화 등의 불균형으로 이어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역시 부동산이다!! ^^;


하지만 총균쇠에서 저자의 결론은 ‘지리적 결정론’이라는 비판점이 있다. 인간의 창의성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인가? 기후, 동물, 식물에 따라 그 지역의 사람들은 정해진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냐고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에 대한 제레드 아이아몬드는 그 비판을 겸허히 수용한다. 


그리고 덧 붙인 말은 그래도 환경적으로 풍요로우면 인간의 잠재력이 발현될 기회가 많다는 주장은 바꾸지 않는다. 당장에 1-2명의 뛰어난 인재가 있으면 혹독한 환경을 이겨내고 성공하겠지만, 천년, 만년 단위로 보면 결국 개개인의 차이보다 환경적 차이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끝으로 책을 읽으면서 이런 궁금점이 생겼다. 국가 간 차이가 우연히 주어진 동식물과 지리적 차이가 원인이라면, 과연 개인 간 학업적인 차이는 어떤 것으로부터 비롯되었을까? 총균쇠의 관점으로 질문에 접근해보자면 20대 공장에서 경험했던 순간이 뇌리에 스쳐 지나간다.


20대 초반 군 복무 대신에 공장에서 일을 했던 적이 있다. 당시 공장에서 받았던 제일 큰 충격은 고등학교 때부터 그곳에서 일하는 10대 20대 친구들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왜 공장에서 일하냐고 물어보니깐 본인도 대학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부모님이 대학은 가서 뭐하냐며 공장에서 당장 돈을 벌어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딱히 기술이 없는 10대 후반, 20대 초반 친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결국 몸으로 때우는 것이다. 그렇게 다른 친구들은 언어, 수학, 과학적 지식을 익히며 몸값을 높이는 동안, 어떤 친구들은 그런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그 시간에 일을 하고 있었다. 당장에는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 수입이 더 낫지만, 30대가 넘어가면서 수익구조와 삶의 질이 비교할 수 없게 달라진다.  


만약 어려서부터 공장에서 일을 해야 했던 사람들 중에서 우리 부모님처럼 공부하겠다고 하면 집을 팔아서라도 교육비를 대주겠다고 하는 환경에서 살았더라면 그들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공장에서 일하던 친구들과 얘기해보면 그들의 지적 수준도 대학교를 다니던 친구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더 책임감, 인내심, 배려심 등 성숙한 면이 많았다. 아마 일찍부터 경제활동과 사회생활을 시작해서일 것이다. 


사원-주임-대리까지는 당연히 실무 경험이 많은 그들이 먼저 가지만... 결국 4년제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더 빨리 과장 자리에 간다. 경영, 경제, 역사, 사회, 심리, 철학, 기술 등의 지식을 가지고 영어를 이해하고, 문서를 작성하고 대기업과의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고 협상할 수 있는 역량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학에서 흥청망청 노느라 허송세월 한 사람보다 공장에서 열심히 일한 사람이 더 성공하는 케이스도 있다. 하지만 이는 일머리가 특출 나고 근면성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예외적인 경우이다. 표본수를 천, 만, 십만 단위로 늘려서 평균치를 비교해보면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삶의 질이 달라진다는 것이 모든 연구의 공통된 결론이다.


대체복무를 마치고 공장에서 나오던 날, 나를 배웅해주던 친구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나는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대학교로 복학했고, 그 친구는 주야 2교대의 삶이 기다리고 있는 공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학창 시절 주변 친구들이 다 대학에 가서 그게 당연한가 보다 했는데, 다른 지역에 가보니 그동안 내가 받았던 환경적인 이점을 인지할 수 있었다. 솔직히 나 정도의 머리는 길에 넘치고 넘친다. 결국 부모님이 만들어주신 환경 안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학창 시절에는 맨날 공부하라고 해서 원망했는데 이제야 부모님에게 감사한다는 마음이 생긴다...ㅠ


땡큐 제레드 다이아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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