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화가난다

그래도 화를 내면 안 됩니다.

by 홍석철

동현이는 게임에 빠졌다. 엄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밥 먹는 것도 잊을 정도로 게임을 한다.’ 초등학교를 지나 중학교 때 까지는 부모님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여전히 변함없는 아들의 모습에 부모님은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동현이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부부싸움도 잦아졌다. 아이를 설득도 해보고, 훈계도 해보고, 화도 내봤지만, 그때뿐이었다. 또래보다 체격이 작고 붙임성이 없어서 학교와 학원에서 ‘왕따’를 당해서 현재 학원은 다니지 않는 상태이다. 그러다 보니 학교 갔다 와서 잘 때까지 내내 게임에 매달렸다. 아버지는 참다 참다 마음에 안 드는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출하기 시작했다.


「저 놈에 자식 미워 죽겠다.」


동현이와 어머니와의 대화는 늘 이런 식이다.


「하루 종일 게임만 하고, 공부는 안 하니?」

「해야지요...」

「언제 하려고?」

「이것만 하고요...」

「그게 언제 끝나는 데?」

「좀만 있으면 끝나요..」


이쯤 되면 어머니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슬슬 부하가 치밀어 오른다. 그 ‘조금’이라는 시간이 어머니가 생각하는 시간과 동현이가 생각하는 시간이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체득했기 때문이다. 한 5분쯤 있으면 알아서 정리하고 들어가겠지 생각하다가 30분이 지나서도 여전히 게임에 매달려 있는 동현이를 보고 어머니는 솟구쳐 오르는 화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너, 엄마 말이 말 같지 않아?! 도대체 언제 까지 할 거니?!」

「아이... 이제 들어가려고 했어요...」

「조금 만하고 들어간다고 했으면 10분 정도 있다가 알아서 정리해야지! 30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하고 있니?!」

「어? 벌써, 그렇게 됐나?...」

「알았으면, 빨리 끄고 들어가?!」

「네, 네.... 조, 조금만... 이, 이것만... 깨고요....」

「조금, 조금 하다가 도대체 언제까지 할 거니?!?!?!?」

「어?! 어?!?!?!?.......」


엄마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전원코드를 뽑아버렸다. 동현이는 일그러지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으로 들어가면서 동현이가 한 말은 '죄송해요... 앞으로 조금 만 할게요.'가 아니었다.


「아이... 저장해야 되는데 다 날아갔잖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잖아...」


엄마는 그 말을 듣고 화를 참지 못해서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고 고백했다.


드디어 사건이 터졌다. 아버지가 '저놈의 자식 정신을 차리게 해 주겠다.'며 손찌검을 한 것이다. 그 후로 '이번 기회에 썩어빠진 정신력을 뿌리째 뽑아버리겠다.'며 아버지는 몇 차례 더 '사랑의 매'를 들었다. 그러나 그 썩은 정신력이 뽑히기 전에 먼저 지친 것은 부모님이었다. 결국 사랑의 매가 아이를 컴퓨터에서 떼어놓지 못했다. 아이가 맞으면서까지 컴퓨터에서 떨어질 수 없는 이유(교육컨설팅 3편에서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가 있었지만, 부모님은 이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때려도 안 되니 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더욱이 ‘손찌검’을 한 이후로 감정이 격해져서 아버지가 집에 있는 날이면 동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거나 자리를 피한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동현이 아버지께서 나에게 SOS를 친 것이다. 아이를 만나보니 부모님이 왜 때렸는지 단번에 알 것 같았다. 일단 아이가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했다. 계속 두리번 거리고 의미 없는 농담과 혼잣말 그리고 얼굴 표정을 과장되게 짓는 듯했다. 이는 정서가 불안한 사람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특징이다. 친구가 별로 없다 보니 타인을 배려하면서 대화하는 의사소통 능력도 습득하지 못한 듯 보였다. 학교 갔다 와서 자기 전까지 게임만 한다는 어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게임을 한다는 것이 단순히 그 시간에 공부를 못하는 것을 떠나서 한 인간이 인격적으로, 정서적으로 균형 있게 성장하는 것을 저해할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런데 동현이는 답이 없어 보이지 않았다. 사회과목을 좋아하고, 수학과목도 남들 정도는 했다. 일단 좋아하는 과목이 하나라도 있으면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다. 영어와 과학은 포기상태였다. 이미 고등학교 1학년이니 뜬구름 잡는 얘기로 헛된 희망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달성 가능한 목표를 얘기해야 본인도 수긍하고 희망을 가지고 공부를 해 나갈 것이다. 그렇게 실현 가능한 목표에 관해서 얘기를 시작했다. 게임에 대해서는 그만하라거나 줄이라는 등의 말을 일절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하지 말라고 말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동현이가 하고 있는 게임에 대해서 얘기를 좀 들어줬다. 역시나 게임 얘기가 나오면 눈 빛부터가 달라졌다.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본인이 즐겨하는 게임에 대해서 신나게 얘기를 늘어놓았다. 엄마는 쓸데없는 얘기로 시간을 끈다며 아이에게 그만하라는 눈치를 보냈지만 나는 끝까지 웃으면서 들어주었다.


사실 사람이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남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법이다.


나 역시도 아이가 게임에 관해서 얘기를 하는 동안 들어주는 것이 힘들었다. '그 따위 쓸데없는 소리 당장 집어 치워!'라고 화도 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일을 그르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참고 얘기를 끝까지 들어준 것이다. 사람은 하고 싶은 말을 다 뱉어내고 나서야 머리에 공간이 생긴다. 이 공간이 생겨야 비로소 다른 사람이 말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나이가 많든 적든 사람은 누구나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건강, 돈, 외모, 공부, 인간관계 등등...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인의 문제점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이미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실행할 수 있는 의지력이 부족한 것이다. 여기서 이 부족한 의지를 지적하거나 고양시키겠다고 개입하는 타인들이 사실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남에게 의지가 부족하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작 본인들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예컨대 담배를 못 끊는 사람이 뚱뚱한 사람한테 살을 못 뺀다고 의지력 운운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아직 결혼도 안한 사람이 부부관계에 대해서 상담을 해 주겠다며 한 소리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어쨌든 동현이도 본인의 문제점을 스스로 파악하고 있었다. 그 이후에는 의지의 문제이며 이는 결국 '동기'로 귀결된다. 게임을 하면서 느끼는 즐거움 보다 공부를 해야 할 더 큰 이유가 있다면 아이는 말하지 않아도 컴퓨터에서 내려와 책상에 앉을 것이다. 예컨대 좋아하는 이성 친구가 수학 문제를 물어보면 아마도 그 문제를 풀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 공부를 할 것이다. 그리고 그제야 비로소 '진짜'공부를 하는 것이다. 부모님이 무력으로 아이를 책상에 앉힐 수는 있어도 강제로 공부를 시킬 수는 없다.


동현이의 경우 결정적인 문제는 부모님이 아이에게 '화'를 냈던 것이다. 물론 동현이 부모님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역시 화가 났었으니깐. 그러나 화를 내면 안 된다.


왜냐하면 화를 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른이 아이와 얘기하면 답답하고 화가 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인생에 대한 경험치가 다르기 때문에 말이 통하지 않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어른과 아이가 부딪혔을 때 어른들이 화를 내는 순간 다이터마이트에 불이 붙는 것이다.


「시끄러. 그런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워!」

「뭐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

「밥 먹여 주고 편하게 해주니깐 복에 겨워하는 구나 아주!」

「어이구. 이런 등X 쪼X 아무짝에 쓸모없는 놈 같으니라구!」

「이런 썅! 나가 죽어!」


다이너마이트는 듣는 사람의 마음에서 폭발한다. 기억해야 할 점은 말하는 사람의 마음에서도 폭발한다는 것이다. 화를 내다 보면 감정이 더 격해지는 경우가 생긴다. 말로 타이르려다가 화가 화를 더욱 키워서 결국 매까지 드는 경우도 있다. 요컨대 화를 내는 순간 더 이상 건설적인 관계는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화를 내면서 함께 분출되는 짜증, 비아냥, 폭언은 아이들의 생각에 어떠한 긍정적인 변화도 주지 못한다.


고2 성년이는 엄마의 잔소리가 지긋지긋하다. 성년이는 쉬는 날을 좋아하지 않는 전국에서 몇 안 되는 학생들 중의 한 명이다. 쉬는 날이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엄마의 잔소리에 머리가 지끈지끈 거리기 때문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성년이는 엄마에게 줄 특별한 선물?을 계획했다. 식사자리에서 몰래 휴대폰 녹음 버튼을 누른 것이다. 그 날도 어김없이 엄마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성년이는 말없이 식사를 끝내고 방으로 갔다. 다음 날 학교 갔다 오자마자 엄마는 아이에게 습관처럼 잔소리를 시작했다. 그때 성년이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이제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돼. 내가 다 녹음해 놨어. 필요할 때마다 이거 듣을게.」


성년이는 이어폰을 엄마의 귀에 꽂았다.


「꼭 무슨 대학교를 들어가거나, 반에서 1등을 하라는 건 아닌데.. 그저 공부 열심히 해서 사회에 나가서 기죽지 말고 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당당하게 살라고 그러는데, 누굴 닮아서 공부는 저리도 관심이 없는지... 에휴... 네가 학원을 안 다니니? 책을 사 볼 돈이 없니? 공부할 니 방이 없니? 이 어미가 뒷바라지를 다 해주는데 왜 그렇게 속을 썩여!... 넌 다른 거 아무것도 할 필요 없이 공부 하나만 하면 되는데 왜 이 어미 맘을 몰라 이것아!」


엄마는 얼굴이 화끈 달아 올랐다. 쉴 새 없이 쏘아붙이는 앙칼진 목소리는 본인이 들어도 정말 숨이 막혀왔다. 본인이 그동안 그런 말을 해왔다는 사실을 직접 들으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아마도 어머니는 이성적으로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도움이 되는 얘기를 친절하게 해 주고 있다고 스스로는 생각했을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말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말'에 대해서 지나치게 과대평가 하는 경향이 있다. 즉 말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난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날 목욕탕에서 씻고 있는데 냉탕에서 초등학생들이 심하게 놀고 있었다. 너무 찬물을 튀어서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아이들은 낯선 어른이 굳은 표정으로 말하니 '네 알겠습니다.'하고 금방 순한 양으로 변했다. 그런데 1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 아이들은 다시 찬물을 튀기면서 난리를 쳤다. 이 번에는 더 큰 소리로 무섭게 말했다. 다시 아이들은 겁먹은 표정으로 조용해졌다. 그리고 다시 1분 뒤 찬물이 날라왔다 . 나는 아이들을 물 밖으로 불러내서 아주 무섭게 혼을 내 주었다. 아이들은 얼마나 무섭게 느꼈는지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다시는 물을 튀기지 않겠다고 연거푸 고개를 조아렸다. 그리고 나는 순진하게도 아이들이 이제는 조용해지겠지 하고 기대했다. 그러나 1분도 지나지 않아서 다시 나에게 찬물이 날라왔다.


그렇다. 나는 말로 찬물을 튀는 것 조차 바꾸지 못했다.


아이들이라서 그럴까? 커서 어른이 되면 말을 알아 들을까? 예전에 경기도 오산의 어느 공장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같이 일했던 사람 중에 동식이 형이 있었는데, 그 형은 항상 왼손을 주머니에 넣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이고 다녔다. 그러한 동작이 스스로 멋있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 늘 그 자세를 유지했다. 식사 시간에도 근무시간에도 그 자세를 유지했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동료들이 점잖게 말해도, 과장님이 조용히 타일러도, 선배들이 윽박질러도 묵묵부답이었다. 동식이 형은 어떠한 말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우리는 말로써 한 사람의 손을 주머니에서 빼지도, 기울어진 고개를 똑바로 세우지도 못했다.


우리가 말을 잘 못했기 때문에 듣는 사람의 행동에 변화가 없었던 일까?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을 설득하는데 세 가지 요소가 있다고 보았다. 그는 그 중에 '논리'는 가장 적은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논리보다는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그리고 말 속에 들어있는 논리나 감정보다 말 하는 사람 그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인류역사상 논리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아리스토텔레스 조차도 논리로만 사람을 설득하는 것은 어려웠나 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득 3요소

1. 논리적인 측면 (근거 제시) : 설득에 10% 정도 영향을 미친다.

2. 감정적인 측면 (공감, 경청) : 설득에 30% 정도 영향을 미친다.

3. 인격적인 측면 (명성, 호감) : 설득에 60% 정도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엄마가 목청이 터져라 '니 방은 니가 청소해라'고 말해도 아이들은 들은 척도 안하는 것이다. '니가 쓰는 방이니 니가 청소하라'는 논리는 틀린 것이 아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사람은 논리에 의해서 움직이는 동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보다 '엄마가 오늘 넘어져서 손목이 너무 아프니깐 니 방하고 거실좀 치워줄래?' 이렇게 나오면 아마도 거절하기 힘들 것이다. 이는 논리보다는 감정적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좋아하거나 유명한 사람이 말하면 무조건 동의하는 경향이 있다. 잠실종합경기장 같은데서 콘서트를 하는 아이돌 가수가 '여러분 주변의 자리에 쓰레기가 있으면 우리 다 같이 치웁시다.'라고 말하면 2만 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일사분란하게 주변을 치우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이는 말 하는 내용이 설득적이어서라고 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말이니 맹목적인 따르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5년 공부해서 50년 편하게 살자'는 말이 논리적으로는 맞지만, 이 말을 듣고 아이들이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은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역시 논리로만 사람을 설득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여담인데 모든 문제가 '말'로서 해결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위에서 초등학생이 찬물을 튀는 것을 말로써 그만두게 하지는 못해서 화가 났지만 내가 다른 자리로 옮김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 즉 말로 사람의 행동을 바뀌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찬물이 튀는 문제는 해결한 것이다.


그리고 동식이형의 손과 목도 말로써 변화를 이끌어 내지는 못했었다. 어느 날 다 같이 퇴근하는데 어둑어둑한 전봇대에 웬 사납게 생긴 불독 한 마리가 묶여 있었다. 여자 직원들은 무서워하며 그 앞을 걸어가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그 때 동식이 형이 호기롭게 걸어가서 발로 땅을 세게 차며, ‘어이!’ 하고 불독에게 겁을 주었다. 물론 그 순간에도 왼손은 주머니에 고개는 오른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 불독이 사납게 짖으며 동식이 형한테 달려드는 게 아닌가? 개 목줄이 전봇대에 묶여있던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옆에 놓여있었던 것이다. 그 날 우리는 드디어 동식이 형의 왼손이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고개도 원위치로 돌아왔다. 그리고 동식이 형은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저 멀리 사라져가는 동식이 형의 뒷모습과 이를 쫓아가는 성난 불독을 통해서 나는 말을 통해서 만 인간의 행동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더 이상 그런 행동을 유지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이자 누가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정리하면, 어른이 아이와 대화를 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마음가짐이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경우에도 화를 내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그런데 아이와 화를 내지 않고 대화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다. 이는 엄청난 인내심을 요구한다. 그래도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 화를 내는 순간 말로서 아이와 어찌 해볼 방법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사람은 나이가 많은 적든 본인에게 화를 내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닫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을 해서 다른 사람의 행동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사람은 말을 통해서 설득이 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아이의 공부에 도움이 되는 어른의 행동양식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첫 째, '공부해라'라는 말을 하지 말고,

둘 째, '차별'하지 말고,

셋 째, '화를 내지 않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다 하지 말라는 것이다. 맞다. 이 세 가지는 절대 하면 안 된다. 이 세 가지를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역설적으로 아이의 공부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를 바탕으로 한 어른과 아이의 건설적인 관계의 출발점을 다음 글에서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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