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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공부에 미친 아이들

아이들을 공부에 미치게 할 수 있는 방법

by 홍석철

엄마는 화가 난다. 비싼 학원에 보내줘,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싶대서 독서실 보내줘, 국어는 과외시켜 달래서 과외시켜줘, 뭐뭐뭐.. 해달라는 거 다 해주는데 왜 성적은 떨어지는지 엄마는 서경이를 이해를 할 수 없다. 서경이 아버지는 아이 성적이 안 좋은 책임을 은근슬쩍 엄마에게로 돌리고 있다.


「아 거 애들 뒷바라지를 어떻게 하고 있는 거야?」

「좀 쏘다니지 말고 집에 붙어서 애들이 학교, 학원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확인 좀 하고 그래.」

「엄마나 애들이나 돈만 쓸 줄 알지... 이래서 밖에서 일하는데 힘이 나겠냐고?」


평소에는 애들 문제에 관심도 없다가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면 툭 던지는 아빠의 가시 돋친 말에 서경이 엄마는 말문이 막힌다. 쥐꼬리 같은 월급을 쪼개고 쪼개서 알뜰하게 생활하고 남은 돈으로 저축까지 하고 있는데 좋은 소리는커녕 애들 문제만 나오면 죄인으로 몰리니 속이 상한다. 서경이는 열심히 공부한다고는 하는데 고3이 되면서 오히려 성적이 떨어지고 있다. 얘기 좀 해보려면 바쁘다는 핑계로 자기 방으로 도망가버리는 바람에 뭐가 문제인지 파악할 수도 없다. 중3인 동생 지훈이는 기타를 배우겠다며 음악학원에 다니고 있는데 괜히 헛바람이 드는 것은 아닌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집안 일 하면서 애들 키우는 것도 벅찬데 하필 이때 시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일주일에 두세 번씩 병원에 모시고 간다. 이렇게 힘겹게 버티고 있는데, 남편은 도와주기는커녕 자기를 몰아세우니 서경이 엄마는 끝내 탈이 났다. 소화불량과 두통을 호소하다가 우울증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용하다는 한의원을 소개받아 가보니 이 모든 증상이 ‘화’를 참았기 때문이란다. 아... 엄마는 정말 화가 난다.


아이도 답답하다. 서경이는 고3이 되면서 배수진을 쳤다. 학교를 마치고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다시 새벽 두 시 까지 독서실에서 공부를 한다. 그런데 오래 앉아 있는 시간 만큼 공부가 더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독서실에서 잠을 자는 시간도 많아졌고, 수업시간에도 자꾸만 다른 생각이 든다. '이러면 안 되는데...'하지만 수험생활 막바지로 갈수록 체력도 떨어져서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고2 때까지 국어 2등급, 수학 1등급, 영어 4등급이 나왔는데, 고3이 되자 국어 3등급, 수학 2등급, 영어 4등급으로 내려앉았다. 수능 때는 10만 명이나 되는 재수생의 유입으로 한 등급씩 더 떨어진다는 얘기를 듣고는 불인이 극에 달했다. 하지만 누구한테 하소연할 수도 없다. 다 본인이 부족해서 생긴 결과라며 자책하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학원, 과외, 동영상 강의를 활용해서 효율적으로 공부한다고 하지만 성적은 요지부동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이유도 모른 채 서경이는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그런 서경이에게 만나는 사람들마다 물어보는 말은 다 똑같다.


「너 몇 등급이냐?」


그걸로 끝이다. 그 등급에 따라 본인이 어떤 미래를 살아가야 하는지 수 도 없이 들어서 다 외울 지경이다.


「그 성적으로 인 서울 4년제는 어림도 없다. 어설픈 대학교에 들어가서 취업이나 될 줄 아느냐? 그런 애들이 다 공무원 하겠다고 몰려서 9급 공무원 경쟁률이 50대 1, 100대 1이야. 너 말야. 그런 꼴 당하기 싫으면 빨리 정신 차리고 열심히 공부해라!」


아침 7시에 일어나 새벽 두시까지 공부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인지 서경이는 묻고 싶다. 떨어지는 성적과 함께 본인의 인생도 서서히 침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고 답답하다.


선생님은 속수무책이다. 정선생은 동료 교사들 사이에서 진정한 교육자로 통한다. 그러나 학교 수업을 무시한 채 학원에서 공부하고 학교에서 대놓고 잠을 자는 상위권 아이들, 스스로 학업을 이끌어 나갈 동력이 부족해서 한 시라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중위권 아이들, 매일 게임 중독, 불량 서클, 지각, 결석, 폭행, 흡연, 음주 등의 문제를 일으키는 하위권 아이들을 모아 놓은 교실은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정선생은 조금이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아이들을 이끌고 싶지만 현실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상위권 아이들은 학원에서 6월, 9월 모의고사 성적을 가지고 대입 지원 결과를 시뮬레이션한 결과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학원에 있는 입시전략연구소에서 여러 명의 전문가들이 분석한 결과이므로 한 명의 교사가 판단한 것보다는 더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중위권 아이들은 본인의 성적으로 갈 수 없는 터무니없는 대학교를 희망하고 있어서 말이 통하지 않았다. 하위권 아이들은 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본인이 수능에서 3번으로 다 찍고 가장 빨리 나오겠다며 유세?를 하는 아이들을 보고 정선생은 말없이 담배를 문다.


′안되나?...′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동영상으로 찍혀서 인터넷으로 퍼지는 요즘. 학급 친구를 심하게 괴롭혀서 손 바닥을 몇 대 때렸다가 학부모가 찾아와서 우리 아이는 피해자인데 왜 때리냐며 항의하는 요즘. 인생 역전을 꿈꾸지 않는 아이들에게 열심히 공부하라고 한 마디 하면 네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 하냐며 대드는 요즘. 본인은 스스로에게 당당하다고 하지만 교사로서 무력감과 회의감이 든다. 다른 교사들처럼 적당히 수업하고 아이들의 문제에 관심을 끊으면 맘고생이야 줄어들 것이다. 실제로 정선생은 한 때 그런 적이 있었다. 그러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교사 출신인 집안에서 그런 태도는 오래갈 수 없었다. 어떻게든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일하지만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하루에도 여러 번씩 든다.


이 모든 문제의 본질은 아이가 학습에 대한 동기가 없다는 데에서 비롯한다. 이러한 갈등은 아이가 학습에 대한 동기를 찾기 전까지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 한참 공부를 해야 할 시기에 아이들이 학습동기를 찾지 못해서 방황하니 어른들은 속이 타들어간다.


그런데 나는 신기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아이들이 공부에 미쳤던 것이다. 그것도 단체로. 하지 말라고 윽박질르고 소리를 쳐도 공부를 하는 아이들을 말릴 수 없었다. 심지어 팔에 깁스를 해서 펜을 못 잡는다고 했던 아이도 펜을 잡고 공부를 했다. 이게 바로 모든 어른들이 바라는 아이들의 모습 아니었던가? 이 이야기를 공유해보고자 한다.


몇 년 전 월요일에 시험을 앞두고 있는 중학생들을 불러서 주말에 공부를 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서 공부하는 중1 학생이 수학 문제를 질문했다. 나는 '수학 선생님에게 물어봐라.'라고 말하려다가 '1학년 문제이니 나도 풀 수 있지 않을까?'라는 위험한 생각을 했다. 마침 무료했기 때문에 그 문제를 풀면서 지루함을 달래 보려는 생각도 있었다.


어? 그런데 문제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았다. 문제를 풀기 위해서 여러 각도로 식을 세우고 풀어봤다. 그런데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의 수학 실력은 중학교 1학년 문제도 풀 수 없었던 것이다. 창피했지만, 쿨하게 인정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는 중2 아이들에게 문제를 풀 수 있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풀이법이 궁금하기도 했다.


당시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은 월요일에 영어 시험을 앞두고 있어서 모두 영어를 공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말에 강제로 학원에 나와서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하고 있으니 열심히 할리 없었다. 아이들은 졸고, 낚서를 하고 엎드려서 영어를 공부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이렇게 엎드려서 공부를 하는 이유도 다 학습에 대한 동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즉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하고 있으니 몸도 처지는 것이다.


엎드려서 공부.jpg 많은 아이들이 이렇게 엎드려서 공부를 한다. 그런데 편한 자세로 공부하는 학생치고 성적이 좋은 경우가 별로 없다.


그런데 내가 수학 문제를 물어보자 갑자기 능동적이고 생동감 있는 기류가 형성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의욕 없이 영어를 공부하던 아이들이 모두 수학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사실 이러한 상황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수학에 관심이 있는 아이 두세 명이 풀어볼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런데 중2 모든 아이들이 그 문제에 완전히 몰두했던 시간은 지금도 흥미로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어쨌든 10분이 지나도록 문제를 푼 아이가 나오질 않았다.


「야. 수학 문제는 됐고. 월요일이 시험이니 영어 공부나 하자.」


나는 아이들에게 수학 문제를 그만 풀라고 말했다. 그리고 30분 정도가 지났다.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하고 있나 자습실을 돌아보는데 중2 아이들이 전부 다 아까 그 수학 문제를 붙들고 있었다. 머리를 긁적이고, 식을 세우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때 그 아이들이 문제를 푸는 모습은 흔히 말하는 '진심으로' 공부를 하는 바로 그 모습이었다. 모르는 부분은 심각하게 서로 의견을 교환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그만 풀라고 소리치고 윽박질렀지만 아이들은 나의 협박에 굴하지 않고 문제를 풀었다. 어떤 아이들은 나에게 등짝을 맞으면서 까지 문제를 풀었다. 심지어 손에 깁스를 해서 펜을 잡지 못한다고 했던 아이도 펜을 들고 열심히 식을 세우고 있었다. 신기한 모습 이었다. 그런 아이들이 아니었다. 원래 학업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 아이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그 아이들을 3년 동안 가르쳤으니 내가 보는 눈이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 아이들이 그토록 열정적으로 공부하는 모습을 지난 3년간 본 적이 없었다. 그럼 왜 아이들은 그 순간 그 수학 문제에 미치도록 매달렸던 것일까?


20130616_154915.jpg 중1 학생이 질문한 수학 문제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인간이 하는 대부분의 행위는 '위대해지고 싶은 욕구'로부터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열심히 사는 것이 직장에서, 가정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사회에서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서라는 말이다.


「당신 정말 괜찮은 사람이야.」

「항상 성실한 우리 아이 정말 자랑스러워.」

「그렇게 힘든 일을 해내다니. 김대리 정말 대단해! 다시 봤어.」

「어머니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바르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기 때문에 우리 가정이 화목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말을 듣는 사람이 기분 좋은 이유는 본인이 인정을 받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정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그 어떠한 어려움도 참고 견뎌낼 수 있는 정신적 에너지를 준다. 결국 사람은 인정받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즉 그때 수학 문제를 풀었던 아이들은 무의식 중에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이 수학 문제는 중1 아이들이 못 풀어서 선생님에게 질문했는데, 선생님도 못 푼 문제이다. 만약 중2 학생이 이 문제를 풀게 되면 선생님도 못 푼 문제를 풀어준 '대단한' 중2 선배가 되는 것이다. 요컨대, 그 순간 그 문제를 통해서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너무 강해서 월요일에 영어 시험을 보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밀어 놓고 수학 문제에 매달렸던 것이다.


이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얼마나 강한 것이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 있다. 바로 연예인 '홍석천'씨의 커밍아웃 사건이다. 그는 그냥 조용히 살면 되지 왜 커밍아웃을 해서 힘들게 사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눈물을 흘리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단 한 순간이라도 진정한 나로서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이 잘 하는 모습을 보이면 인정해주자. 예상 밖의 효과에 놀라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칭찬을 남발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초등학교 5학년만 돼도 아이들은 빈말로 하는 칭찬에는 가시 돋친 반응을 보인다.


「아이고 우리 성년이 수학 문제 잘 푸네~」

「됐어요. 저도 아닌 거 알거든요.」


아이들은 또래하고 비교해 보면서 본인의 위치를 꽤나 정확하게 알고 있다. 칭찬에는 '진정성'이 담겨져 있어야 하며, 구체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초등학교 4학년 승준이는 책 읽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래서 학교 시험 중에서 사회와 국어과목은 늘 100점에 가까운 점수가 나온다. 이럴 때


「너는 왜 영어 수학은 못하니?」


이렇게 상대적으로 못하는 부분을 지적하지 말자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말을 하면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마음만 상할 뿐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몇몇 아이들은 이런 말을 듣고 발끈해서 '내가 진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실력을 보여 줘야지!'라는 오기로 공부에 매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소수 아이들의 얘기이다. 절대 다수의 아이들은 움츠려 들어서 잘하는 것도 못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 따라서 아이들의 성격을 파악해서 말해야 한다. 평범한 아이들에게는 윽박지르는 것보다 마음에서 우러러 나오는 칭찬을 하자.


「독서는 여러모로 굉장히 중요한데 책을 읽는 습관은 너의 큰 장점이고 앞으로 살아가는데 자산이 될 거야.」


이런 말 한마디가 시험을 잘 보면 장난감을 사주겠다고 하는 것보다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나 훨씬 효과가 좋다. 이런 말을 들고 자란 아이가 자존감, 자신감, 자립심에 문제가 생길 리가 없다.


2013년에 개봉한 영화 ‘전국 노래자랑’에서 주인공 김인권(박봉남 역)은 가수를 꿈꾸며 아내의 미용실에서 일을 도와주고 있다. 그는 가수로 성공하기에는 2% 부족하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고 틈틈이 오디션을 보고 있다. 아내는 노래는 취미로 하고 생업을 위해서 미용기술을 배우라고 설득하고 있지만 가수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남편과 매일 다툼을 한다. 남편은 시종일관 자기를 무시하는 아내 때문에 기분이 나쁘다.


「내 기왕 이렇게 된 거 굶어 죽더라도 진짜 내 하고 싶은 일 하면서 행복하게 살 거야 평생 내가 진짜... 무시하고, 괄시하고, 깔아뭉개고 우이씨... 내가 기필코 내가 폴포츠 같은 가수가 돼 가지고 이놈의 마누라 내 평생 진짜 이를 갈며 후회하고 땅을 치며 후회하고 나중에는 울며불며 내한테 매달리게 만들어버릴 거야~ 팍!... 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집에 들어가야지 머 별 수 있나..」


아마 직접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우리 아이들의 속마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공부 좀 못한다고 사람 대접하지 않는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을 때가 있을 것이다.


「공부도 못 하는 게 어디서 반찬 타박이야?! 그냥 주는 대로 먹어!」

「공부도 못해, 형광등도 제대로 못 갈아, 나중에 커서 뭐 될래?」

「공부도 못해, 운동도 못 해, 자기 관리도 못하고 게을러서 살이 디륵디륵 쪄가지고는... 됐다. 말해봤자 내 입만 아프지.」


중요한 것은 이렇게 다른 사람을 무시를 할 때, 듣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생각해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 내가 정말 부족하구나. 앞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나도 인정을 받아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아니면


「아이씨. 또 잔소리야... 흥! 그래 어디 네가 잘 사나 내가 잘 사나 두고 보자. 내 기필코 너 보다는 잘 돼서 떵떵거리고 잘 살 거다! 에이! 더럽고 치사해서 정말...」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공부로 인정받지 못하는 아이가 보여주는 행동양식은 대체로 비슷하다. 본인이 무시당하는 공부 대신에 인정받을 수 있는 다른 쪽으로 가는 것이다. 바로 음악, 미술, 운동, 노래, 춤 등 예체능 쪽으로 빠지 경우가 그런 경우이다.


기섭이는 태권도장에서 거의 살다시피 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도장에 간 이후로 태권도에 푹 빠졌다. 학교와 학원에서는 ‘공부 못하는 아이’로 무시당하지만, 태권도장에서는 달랐기 때문이다. 타고는 근력과 순발력 덕분에 실력이 일취월장으로 늘었다. 그런 기섭이를 관장님은 애지중지했다.


「기섭이 하는 거 잘 보고 따라 해라.」


다른 관원들 앞에서 이렇게 말할 정도로 기섭이의 실력을 인정한다. 겨루기를 할 때 기섭이가 멋있는 발차기를 해서 상대방이 넘어지면 아이들은 '우와~ 최고다.'를 연발한다. 태권도장은 기섭이가 그런 관심과 찬사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다른 아이들은 5시에 단체운동을 시작해서 6시면 집에 가지만 기섭이는 그 뒤에 있는 6시 반 운동, 8시 운동까지 다 하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온다. 다른 아이들보다 연습량이 월등히 많으니 실력이 쭉쭉 느는 것은 당연지사다. 어떻게 보면 기섭이는 태권도장에 태권도를 하러 가는 것이 아니다. 태권도장에 '인정'을 받으러 가는 것이다.


이런 기섭이를 태권도장 대신에 영어, 수학 학원에 보내면 어떻게 될까? 먼저 완강히 저항할 것이다. 본인이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을 떠나서 무시받는 곳으로 가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부모님이 강제로 시키면 어쩔 수 없이 가방을 들고 학원에 갈 것이다. 또 몇 번은 열심히 하려고 노력도 해 볼 것이다. 그러나 열심히 노력해도 다른 학생들보다 실력이 나아지지 않으니 좌절을 경험하고 불안과 우울에 빠지다가 결국에는 무기력해질 것이다. 이러한 아이들이 전국의 학교와 학원에 부지기수로 많다. 이는 단 기간의 노력으로는 극복하기 힘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방면에 재능을 태고난 아이도 노력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더 빨리 성장하고 결국에는 그러한 노력과 발전을 즐기는 단계로 진입하기 때문이다. 태권도장에서 다른 아이들이 기섭이를 따라갈 수 없었듯이, 기섭이도 영어 수학으로는 다른 아이들을 따라잡기 힘든 것이다. 여기서 기섭이가 영어 수학으로 다른 아이들을 따라 잡으려면 죽기 살기로 파고 들어야 한다. 이 때 필요한 것이 훈계나 체벌이 아니라 바로 학습동기인 것이다.


이럴 때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공부로 전국 수석을 하거나 운동으로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한 사람의 인터뷰를 보면 항상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이 있다.


건장한 체격(187cm 98kg)의 좌완 정통파 투수인 윤정현은 "메이저리그 복수의 구단으로부터 영입 제의가 있었다. 하지만 볼티모어에는 한국인 스카우트(최은철)도 있고 타 구단에 비해 마이너리그 육성환경이 좋아 볼티모어를 선택했다. 반드시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평생 고생만 하신 어머니에게 경제적으로 효도할 수 있는 아들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위의 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어머니에게 효도할 수 있는 아들이 되고 싶다'는 말이다. 이는 달리 표현하면 보란 듯이 성공해서 부모에게 '인정'을 받고 싶다는 말이다. 즉 모든 아이들의 성공에 대한 욕구 저변에는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깔려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낳아주고 길러준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부모님의 인정은 아이에게 그 어떤 것보다 더 큰 보상이 된다. 집집마다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도 그 내면에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무의식에 깔려있다. 그런데 본인의 능력으로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으니 삐뚤어지게 행동하는 것이다. 이는 나를 인정해 달라는 반증의 표현이기도 하다.


친구 중에 군대에 가기 전에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 천만 원을 부모님에게 드리고 간 녀석이 있었다. 우리는 이 친구 때문에 늘 비교의 대상이 되는 슬픈? 경험을 했다. 그 친구의 어머니는 만나는 사람마다 이를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그리고 친구도 본인이 그 돈을 쓰면서 느꼈을 즐거움보다 부모님이 그렇게 본인을 대견하게 여기는 모습에서 더 큰 행복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바로 이것이 프로이트가 말한 '인정'받고 싶은 욕구인 것이다.


정리하면, 공부와 관련된 수 많은 문제들은 결국 동기로 귀결된다. 그리고 인간의 동기 중에서 가장 강력한 동기는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이다. 따라서 아이들이 잘 하는 모습을 보이면 '진정성'있는 칭찬을 해 주자. 사람은 누구나 남보다 잘 하는 것이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본인의 몫을 해내는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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