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가방 속에 숨겨진 비밀을 찾아서
매일 가는 학교와 학원. 아이들은 영혼 없는 얼굴로 가방을 메고 교실로 향한다. 유일하게 컴퓨터를 하거나 TV를 볼 때만 다른 사람이 된다. 어떨 때는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집중력으로 TV를 본다. '그런 집중력으로 공부를 했으면 좋으련만...'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데 이러한 즐거움도 한 번에 날려버리는 질문이 있다.
「공부는 잘 하고 있니?」
「.....」
아이들의 얼굴은 심각해진다. 북한에서 남한으로 핵무기를 쏘았다 해도 그렇게 심각한 표정은 짓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천편일률적인 대답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몰라요.」
고등학생이 되면 아이들은 더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사납게 대꾸한다.
「아이... 몰라...」
공부 얘기만 꺼내면 일촉즉발 무언가 터질 것 같은 험악한 기류가 흐르니 공부에 대해서 물을 수도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모님 입장에서는 속이 터질 노릇이다.
'우리 아이가 공부는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일까?'
아이가 학업은 잘 따라가고 있는지 정말 궁금하지만 가끔 가져다 주는 성적표는 등수도 없고, 예전처럼 수/우/미/양/가 도 없다. 백분율, 표준편차 등등 이해하기 힘든 용어로 가득 차 있다. 왜 이렇게 점수가 떨어졌냐고 다그치면 '엄마는 잘 알지도 모르면서 잔소리한다.'고 도리어 큰 소리 친다. 이번에는 시험이 어려워서 다 떨어졌는데 본인은 성적이 덜 떨어졌으니 상대적으로 오른 거란다. 듣고 보니 그런 거 같기도 한데 어딘가 미심쩍다. 그리고 요즘은 대학교 전형이 복잡해져서 공부만 해서는 대학 가기 힘들고 봉사활동, 동아리 활동, 독서 활동을 많이 하고 교내 대회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가야 한단다. 그래서 오늘은 친구들과 과학 경시대회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학원을 갈 수 없단다. 이도 매우 의심이 가지만 타당한 근거가 있으니 일단 허락은 해준다. 어른 입장에서는 매년 변하는 입시에 대해서 잘 모르니 일단 더 자세히는 추궁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공부를 안 해서 정상적인 대학교에 갈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든다.
맞다. 어른들의 예감이. 냉정한 사회에서 치이고 당하면서 예리해진 어른들의 감각은 언제나 본질을 향하고 있다. 아무리 대입 전형이 복잡해져도 핵심은 단순하다. 바로 열심히 노력한 학생이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아이는 냉정히 판단해보면 열심히 공부하는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아무리 핑계를 대고 논리적으로 설득을 해도 어른들이 보기에 불안한 것이다.
중2 현수를 처음 봤을 때 여느 학생과 마찬가지로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고, 학습 능력도 지극히 평범하게 보였다. 그런데 두 달 정도 가르쳐 보니, 공부에 별 관심이 없는 것은 맞지만, 학습능력은 또래보다 좋은 것 같았다. 그래서 점점 더 학습량을 늘려 보았다. 사실 교사가 가르치는 학생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그 아이가 하루에 소화할 수 있는 학업량이다. 그 결과 현수는 상위권 아이들과 경쟁할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현수야. 지금은 네가 그동안 공부를 안 해서 성적이 저조하지만, 넌 열심히 하면 공부를 잘 할 수 있다.」
「네. 알아요. 저 원래 공부 잘 했어요.」
이렇게 받아치는 게 아닌가? 스스로도 본인의 능력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시험을 봤다. 시험 난이도는 평이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8~90점대의 영어 성적을 받았다. 그런데 현수는 영어점수가 66점이 찍힌 성적표를 들고 왔다.
「너 뭐냐?」
「뭐 가요?」
「점수가 이게 뭐야?」
「제 점수가 어떤 대요? 원래 이 정도 나와요. 그나마 좀 오른 건데.」
「그게 아니라 시험 전날 테스트 본거는 몇 개 안 틀렸잖아?」
「아.. 어쩔 수 없어요. 수행하고 실기에서 다 깎였어요. 」
현수는 본인의 성적에 별로 개의치 않아하는 듯 싱글벙글이다. 어쨌든 수업을 하기 위해서 지난번에 나눠준 프린트를 꺼내라고 말했다. 그런데 현수가 가방을 계속 뒤적이고 있었다.
「어... 이상하다? 분명히 이 책 사이에 끼워둔 기억이 나는데....」
현수의 가방 속을 힐끗 보았다. 그 안에는 책과 프린트가 뒤엉켜 있었다. 마침 시험도 끝났고 급할 게 없어서 현수보고 가방 속에 있는 내용물을 다 꺼내라고 시켰다. 그리고 현수가 좋은 역량을 가지고도 왜 그렇게 저조한 점수를 받았는지 알 것 같았다.
현수의 가방 속은 난장판이었다. 책가방에는 책이 없었다. 대신에 쓰레기들이 가득 차 있었다. 게다가 선생님들이 나눠준 프린트가 하나도 제대로 있지 않았다. 구겨지고 찢어져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대개 프린트는 선생님들이 교과내용을 요약 정리해서 주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소중한 교육 자료를 함부로 다루니 공부를 잘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라이터가 있는 걸로 미루어 짐작컨대 담배를 피우는 것이 의심된다. 슬쩍 추궁해 보니 라이터는 친구의 것이고 본인은 죽어도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펄쩍 뛴다. 이렇게 격한 반응은 대체로 나쁜 짓을 하다가 들켰을 때 나온다. 하지만 현장을 포착하기 전까지는 어쩔 수가 없다. 어쨌든 현수는 매일 이런 것들을 가방 속에 넣어서 들고 다녔던 것이다. 과연 이 중에서 진짜로 필요한 것은 얼마나 될까? 그런데 더 비극적인 사실은 현수는 가방 속에 어떤 책과 프린트가 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일일이 친구의 도움을 받아가며 그게 어떤 것인지 파악했다.
「야. 이거 뭐냐?」
「그거 지난주에 학교에서 국어 선생님이 준 거잖아.」
「아, 그래? 그럼 버려도 되겠군.」
「이건 뭐지?」
「어?... 그게 머였더라? 아, 지난달에 수련회 가기 전에 담임이 준거잖아. 그게 아직도 있냐? 」
「그래? 그럼 이것도 필요 없는 거고. 이건 머였더라?」
「그건 선생님이 1학기 중간고사 때 공부하라고 준 거잖아!」
「아. 그런가? 맞네...」
그렇게 현수의 가방 속에 있는 물건들을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나눠보았다. 수업에 필요한 책은 한 권이 있었다. 나머지는 필요 없는 프린트물과 다 쓴 노트 두권, 그리고 쓰레기들이었다. 저 음료수 병은 지난달에 친구한테 얻어먹은 것이란다. 필요한 책 한 권에, 뒤섞여 있는 불 필요한 자료 더미들, 그리고 쓰레기.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저 정리를 잘 못하는 보통의 중학생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다. 이는 현수의 머릿속을 대변하는 것이다. 현수의 머릿속도 공부한 내용 조금, 그리고 여기 저기서 보고들은 지식이 두서없이 엉켜있고, 나머지는 잡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현수는 상당한 양의 쓰레기, 다 쓴 노트, 불필요한 프린트를 가방 속에 가지고 다녔던 것이다. 지금 현수에게 시급한 것이 학교 수업일까? 학원 수업일까? 아니면 정리 정돈하는 습관일까?
공부는 머릿속에 지식을 정리해 나가는 과정이다. 일반적으로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은 머릿속에 지식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학생들은 십중팔구 가방 속에 그날 공부할 책이 순서대로 들어가 있다. 반면에 가방이 어지러운 학생은 머릿속도 혼란스럽다고 보면 대체로 맞다. 그런 상태로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열심히 공부해봤자 성적은 늘 제자리 걸음이다.
그렇다고 섣불리 혼내지 말자. 혼낸다고 문제가 해결된다면 전국에 이러한 문제로 인한 갈등은 사라졌을 것이다.
「너는 왜 가방 속이 그 모양이냐?!」
「예? 가방 속이 왜요?」
「정신이 하나도 없어. 정리는 하는 거니 안 하는 거니?」
「가끔씩 정리해요. 원래 가방 속이 이렇지 않아요? 난 괜찮은데?... 」
「내 뱃속에서 나왔지만 도대체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남을 이해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마음도 흘러가는 것을 경험한다. 하물며 남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이런 아이들은 타이르고, 설득하고, 혼내고, 때려도 별다른 효과가 없다. 본질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3 민영이는 평소처럼 쉬는 시간이 끝날 즈음 화장실에 간다. 소중한 쉬는 시간을 화장실 갔다 오는 것처럼 하찮은? 일에 쓰기에는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대신에 금쪽같은 쉬는 시간을 휴대폰으로 친구들과 게임을 하는데 할애했다. 그렇게 민영이는 늘 그랬듯이 수업이 시작하고 5분 뒤에 들어온다. 늦게 들어와서 교실에 앉는데 선생님에 대한 눈초리는 이미 내성이 생겨서 민영이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국어시간인데 사회책을 꺼내서 한참을 뒤적거리다가 짝이 펼쳐놓은 페이지를 보고 따라 펼쳐놓는다. 그렇게 책을 펼쳐놓고 턱을 괴고 5분마다 힐끗 시계를 확인한다. 언제 끝나나 생각하다가 무료한 기분을 달래려고 손톱 밑에 낀 때를 샤프로 빼내기 시작한다. 순간 무언가 섬뜩한 기운이 느껴져서 고개를 들었는데 선생님이 본인을 내려다보고 있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서 샤프를 떨어뜨린다. 떨어뜨린 샤프를 주워서 분해했다가 조립하기를 반복한다. 참다 참다 드디어 선생님이 한 마디 한다.
「너 뭐하고 있느냐?」
「아.. 샤프가 고장 나서요...」
「어디가 고장 났는데?」
「떨어뜨려서 심 나오는 부분이 휘었어요..」
「왜 떨어뜨렸는데?」
「아 네 어쩌다 보니..」
「근데, 그걸 꼭 지금 고쳐야 하니?」
「.....」
「샤프 하나 밖에 없어? 필통 속에 있는 그건 뭐야?」
「아 맞다. 하나 더 있었지...」
가방 속이 어지러운 학생이 수업시간에 보이는 행동양식은 보통 이런 식이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가방을 정리시킨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본인은 이러한 행동이 '전혀 문제가 없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영이처럼 이런 한 특성을 보이는 아이들이 전국에 너무나도 많다. 그리고 그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구제불능이라고 고개를 젓는다. 더욱이 이러한 아이들에게
「가방을 정리해라.」
「쉬는 시간이 끝날 때 화장실에 가지 말아라.」
「수업 시간에 샤프를 분해하지 말아라.」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가방을 정리한다고 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습적으로 수업시간에 늦게 들어오는 아이를 수업시간에 맞게 앉혀 놓는다고 해서 아이가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다. 수업 시간에 샤프를 분해하지 못하게 하면 아이는 수업시간에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낼 것이다. 이러한 아이들을 도대체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아이도 공부를 잘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데 공부가 재미가 없어서 하기 싫다는 것이다. 만약에 재미없는 공부를 해야 할 이유가 생긴다면? 아이는 가방을 정리할 것이고, 수업 시간에 늦지 않을 것이고, 쉬는 시간에 샤프를 분해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동기로 돌아왔다. 가방 속이 어지러운 이유는 정리 정돈하는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학습동기가 결여되어 있어서 나타난 지엽적인 증상들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정리하면, 우리 아이가 공부는 제대로 하고 있는지 궁금한 부모님은 아이의 가방 속을 들여다 보자. 그러면 그 아이의 머릿속이 어떤 상태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일석이조로 아이들의 비행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너는 왜 가방 정리는 안 하니?!」
라고 혼내지 말자. 그렇게 쉽게 고쳐질 습관이 아니다. 이러한 감정적인 접근은 상태만 악화시킬 뿐이다. 잔소리로 임시처방은 가능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억지로 가방을 정리시킨다고 해도 며칠이 지나면 다시 원상 복기가 될 것이다. 결국 먼저 지치는 것은 누구인지 불 보듯 뻔하다. 보다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바로 스스로 가방을 정리할 이유를 만들어 주면 되는 것이다. 역시 공부에 관한 모든 문제는 동기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