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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철 Nov 1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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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만 봐도 알 수가 있다. 

  1980년대 텍사스 대학교의 존 리스킨드 교수는 한 가지 실험을 했다. 연구 참가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한 그룹은 똑바로 앉아있게 했고, 다른 그룹은 구부정하게 앉아있게 했다. 그 자세를 3분간 유지하게 한 후 퍼즐을 풀게 했다. 그런데 사실 참가자들이 제공받은 퍼즐은 풀 수 없는 문제들이었다. 연구자가 확인한 것은 안 풀리는 문제를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붙들고 있는지 였다. 즉 자세가 '끈기'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다. 두 그룹의 결과는 예상보다 확연하게 드러났다. 똑바로 앉아 있었던 사람들이 구부정했던 사람들보다 평균적으로 두 배 정도 더 오랜 시간 동안 풀리지 않는 퍼즐을 붙들고 있었다.


  어떤 운동을 배우든지 처음 시작하는 것은 기본 동작을 몸에 익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단순하고 반복적이기 때문에 지겹고 힘들다. 그래서 초보자들은 기본 동작은 대충 끝내고 빨리 멋있고 화려한 기술을 배우기를 갈망한다. 그런데 코치들은 기본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화려한 기술들은 무용지물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기본 자세가 운동에만 있을까? 아니다. 공부에도 기본 자세가 있다. 위 연구에서도 드러났듯이 자세는 그 사람의 끈기에 영향을 미친다. 어차피 몸과 마음은 분리된 것이 아니니깐. 마음이 곧 몸이고, 몸이 곧 마음이다. 


  몸은 마음이 밖으로 드러난 형태이다. 


  고수는 기본 자세만 봐도 단박에 알아볼 수 있다. 빈 틈이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앉아 있는 자세만 봐도 그 학생의 수준이 드러난다. 가짜로 드러 낼 수도 없고, 일부러 숨길 수도 없다. 자세는 그 사람의 실력을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자세만 봐도 그 학생의 정신력을 어느정도 알 수 있다.


  공부는 정신력 싸움이다. 하루 종일 앉아 있으면 힘이 든다. 그래서 많은 아이들은 어떻게 해서든 조금이라도 편한 자세로 책상에 앉는다. 책상에 엎드리는 아이도 있다. 그런데 엎드리면 잠이 온다. 그리고 많은 아이들이 엎드려서 수업을 듣다가 결국에 눈을 감는다. 수업시간에 그 아이 한 명만 있는 것이 아니므로 계속 자세를 지적할 수도 없다. (그리고 몇몇 아이들은 '내가 자겠다는데 네가 뭔데?'라는 표정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애초에 편하게 공부를 하겠다는 발상부터가 문제이다. 사람은 점점 더 편한 것을 원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공부는 편한 것과는 한 참 거리가 멀다. 공부는 힘들고 불편하다. 그래서 '편하게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은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역설적이다.


  고등학교 3학년 형택이는 서울에 4년제 대학을 가는 것이 목표이다. 수업시간에도 늘 의욕적으로 시작한다. 문제는 십 분쯤 지나면 자세가 무너진다는 것이다. 책상과 몸이 점점 달라 붙다가 팔을 베고 엎드려서 수업을 듣다가 결국 잠이 드는 것으로 끝난다. 형택이는 원하는 대학교에 갈 수 있을까? 갈 수 없다. 그 대학을 목표로 하는 전국의 셀 수도 없는 아이들이 눈에 불을 켜고 공부를 하고 있다. 수업시간에 똑바로 앉아서 한 시간도 견디지 못하는 지금의 정신력으로는 그 경쟁력을 뚫을 수 없다. 아니 아예 경쟁조차 되지 못한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자세는 그 사람의 정신상태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면 수업시간에 똑바로 앉아서 공부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참고 이겨내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이외에 다른 어떤 말도 거짓말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공부법 관련 책들을 보면 복습을 해라, 꿈을 가져라, 목표를 설정해라, 학습 계획표를 짜라, 자신을 믿고  공부해라, 오답노트를 정리해라... 등등 다 좋은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지금 내 아이에게 그러한 공부법들이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그 보다는 다음과 같은 처방이 더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꿈을 현실로 이루길 바란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 J.M.Power


  일단 일어나야 한다. 일어나서 바른 자세로 앉아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정신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위의 존 리스킨드가 했던 실험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바른 자세는 끈기를 향상시켜준다. 공부란 이해가 안 되는 내용을 이해가 될 때까지 읽고 또 읽고, 안 풀리는 문제를 풀릴 때까지 풀고 또 푸는 과정이다. 이를 해내기 위해서는 인내력이 꼭 필요하다. 수업 시간에 잠을 이기지 못해서 엎드려 있는 아이들에게 공부 비법을 아무리 알려줘 봤자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는 아이들에게 학습 플래너가 무슨 소용이고, 예습과 복습을 하라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데 수업 시간에 앉아서 공부를 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어렵다. 개인적으로 절대 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불편하고 어렵고 힘들다. 만약 쉽고 재미있다면 전국의 모든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똑바로 앉아서 공부를 할 것이다. 이는 엄청 힘들고 괴로운 자기와의 싸움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들이 그 힘든 것을 참고 이겨낼 수 있을까? 바로 힘든 공부를  참고해야 할 이유가 있으면 된다. 다시 동기로 돌아왔다. 공부에 관한 어떤 문제든지 줄기를 타고 들어가면 '동기'라는 뿌리를 만난다. 즉 힘들게 수업시간에 바른 자세로 앉아서 공부를 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힘든 것을  참고해야 할 이유가 없으니 편한 자세를 찾다가 결국 잠에 빠져드는 것이다. (동기에 대해서는 첫 번째 글을 참조.)


  사실 공부법을 알기 위해서 책을 사보거나 비싼 강연에 참석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반에서 공부 잘하는 친구를 보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보다 공부를 잘 하는 아이가 하는 것을 그 대로 따라 하면 된다. 문제는 따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하는 방법은 예컨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쉬는 시간 10분을 쪼개서 3분은 이전 시간의 배운 핵심 내용 암기하고, 3분은 화장실 갔다 오고, 3분은 다음 시간 배울 내용 예습하기.

  주말에 그 주에 배웠던 것을 백지에 써보고 안 써지는 내용은 그 부분을 공부하고 다시 써보기. 안 보고 전부 다 쓸 때까지 반복하기.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설명하는 내용은 파란색으로 필기하고, 자습서에 있는 내용은 빨간색으로 정리하고 이를 노트 한 권에 정리해서 암기하기.

  수학 문제집을 사서 처음부터 끝까지 10 회독 하기.


  보통 아이들은 얘기만 들어도 기가 질리는 방법들이다. 이것이 진짜 비법이다. 아니 '방법'이다. 사실 비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부를 하는 방법이 있을 뿐이다.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은 좀 더 치밀하게, 좀 더 정확하게. 좀 더 지독하게 공부할 뿐이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이 방법을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피겨스케이트 타는 법을 몰라서 김연아가 못 되는 것이 아니다.) 방법을 알아도 따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쓰는 문제집을 따라 산다던지, 공부 잘하는 아이가 다니는 학원에 다닌다던지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은 따라 하는데 별다른 힘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본질은 놓치고 겉모습만 따라 하는 것이다. 


  공부만 그런 것은 아니다. 세상일이 다 그렇다. 예전에 TV에서 맛집 소개로 나온 식당을 본 적이 있다. 맛집이라 그래서 기가 막힌 비법을 궁금해하던 시청자들 중 한 사람으로서 나는 그 방송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3대째 가보로 내려오는 양념장 레시피 같은 것이 있나 궁금했었다. 그런데 그 식당 주인은 새벽같이 일어나서 매일 그날 사용할 재료를 직접 시장에서 사 왔다.  몇십 년째  아침해가 뜨기 전에 남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한 것이다. 시장에서 일하는 야채가게와 생선가게 주인들이 저 분은 매일 조금씩 사 간다고 이 얘기가 사실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틀에 한 번씩 삼일에 한 번씩 가도 될 텐데, 그날 쓸 재료를 그날에 구입한다는 원칙을  몇십 년째 지키는 것이다. 트럭이 배달해 주는 야채를  납품받아도 될 텐데 굳이 본인이 고생스럽게 재료를 구입하는 것은 직접 내 눈으로 보고 가장 신선한 재료를 구입한다는 장사의 철학이 였보였다. 이 역시도 다른 가게들이 몰라서 안 하는 것이 아니다. 알아도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반찬도 한 번에 많이 만들지 않았다. 한 번에 많이 만들어 놓으면 편할 텐데, 굳이 불편하게 점심에  장사할 것을 만들고, 또 저녁에 장사할 것은 따로 만들었다. 미리 만들어 놓으면 맛이 떨어진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모든 식당 주인들이 그걸 몰라서 한 번에 만드는 게 아니다. 번거롭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백김치를 담그는데 필요한 물을 위해 식당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약수터까지 갔다. 정수기로 하면 그 맛이 안 난단다. 백김치도 조금씩만 담갔다. 생각 같아서는 쉬는 날 물을 왕창 떠와서 일요일에 다 만들어 놓고 주일에 편하게 쓰면 더 편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역시나 신선도가 떨어진단다. 매일 점심 장사를 마치고 그 먼길을 물을 뜨러 가는 식당 주인의 모습과 매번 쉬는 시간을 쪼개서 예습과 복습을 하는 상위권의 모습이 묘하게 닮아 있었다. 이것이 잘 되는 식당의 비법이었다. 보통의 식당들보다 조금 더 불편하게, 조금 더 부지런하게, 조금 더 정성 들여서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이것을 비법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다른 식당은 이것을 몰라서 이렇게 안 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러한 방법을 알려줘도 편하게 조금만 일하고 돈은 많이 벌고 싶어 하는 식당 주인이 이를 따라 할 수 있을까?


  정리하면, 공부하는 자세만 봐도 그 학생의 성적을 알 수 있다. 자세는 그 사람의 정신상태를 여과 없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른 자세로 공부하는 것이 쉽지 않다. 수업시간에 올바르게 앉아서 공부하는 것은 어렵다. 이렇게 어려운 것을 참고 공부하기 위해서는 힘든 것을 이겨내야 할 이유가 필요하다. 역시 공부의 모든 문제는 동기로 수렴한다. 이런 아이들에게 기가 막힌 학습법을 아무리 알려줘 봤자 효과가 없다. 방법을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다. 방법을 알아도 그 힘든 것을 해야 할 이유가 없어서 못하는 것이다. 결국 필요한 것은 학습법이 아니라 학습동기이다. 학습동기를 가질 때까지 적당히 공부하고 성적은 잘 받고 싶어 하는 학생은 공부 잘하는 학생의 방법을 절대로 따라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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